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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 11(일) 서해랑길 87~86구간 (22.6km) : 화성방조제 중간 지점 이동통신 안테나-(3km)-매향 선착장-(5.6km)-매향리 생태공원-(3km)-기아 모터스-(3km)-이화리 정류장-(1.8km)-남양방조제-(4km)-수도사-(2.2km)-원정초등학교
서해랑길 87구간(14.6km) : 화성방조제 중간 지점 이동통신 안테나-(3km)-매향 선착장-(5.6km)-매향리 생태공원-(3km)-기아 모터스-(3km)-이화리 정류장
혹한의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해랑길을 나선 회원들로 버스는 거의 만석이다. 매서운 추위보다 길을 걷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였던 사람들이다. 두툼한 외투 속에 숨은 설렘이 버스 안 공기를 은근히 데운다.
서해랑길 87코스는 경기둘레길 47코스 화성방조제길이다. 걷는 길이자, 기억을 마주하는 길이다.
한때 미 공군 폭격훈련장으로 사용되었던 매향리 마을을 지나며, 이 땅이 품고 있던 역사의 아픔을 조용히 되새기게 된다. 길은 약 10km 화성방조제를 따라 이어지고, 농촌과 어촌, 산업단지가 겹겹이 펼쳐지며 사람의 삶이 남긴 흔적들을 차분히 보여준다. 이화리 종점 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해 매향리 평화 생태공원을 지나 궁평항까지 이어지는 21.1km의 도보여행은 단순한 트레킹을 넘어선 시간의 이동이다.

뒤풀이 장소를 두고 고민한 끝에, 87코스를 걷고 지난번 발걸음을 멈췄던 86코스 원정초등학교까지 역방향으로 길을 잇기로 한다.

궁평항에서 시작하기엔 거리의 부담이 있어, 화성방조제 중간지점의 이동통신 안테나 앞에서 길을 시작한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얼어붙은 화성호수. 겨울이 만든 고요한 수면 위로 스며드는 빛이 묘한 매력을 자아낸다. 차가운 풍경 속에서도 이상하게 마음은 차분해진다.
화성호는 매향리와 궁평리를 잇는 길이 9.81km의 화성방조제가 건설되며 만들어진 인공 해수호다. 인간의 손으로 빚어졌지만, 이제는 자연의 시간이 더 깊게 스며든 공간이 되었다. 특히 화성습지는 풍부한 먹이 자원을 품고 있어, 매년 봄과 가을이면 도요새를 비롯한 철새들이 쉬어 가는 중간 기착지이자 삶의 터전이 된다.

바람을 등지고 햇살을 안은 채, 앙상한 가지만 남은 가로수들이 줄지어 선 화성방조제 제방 도로를 걷는다.
화성(華城)방조제는 공식 사업명이 ‘화옹지구 간척사업’이었다. 그래서 화옹지구 간척을 위해 건설된 방조제란 의미로 ‘화옹방조제’라고도 부른다.


겨울의 색은 단순하지만,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발걸음마다 과거와 현재가 겹치고, 길 위에서 우리는 자연과 역사,그리고 사람의 시간을 함께 걷는다.




화성방조제의 중간지점에 있는 매향항은 서해안의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작은 포구다.




화성방조제를 벗어나자, 화성 매향리 갯벌 습지보호지역으로 외부인 어로 행위(해루질)를 금하고 있다.
칠면초, 지체 군락 등 염생식물과 칠게, 바지락 등 대형저서동물 및 저어새, 알락꼬리마도요 등 철새 회귀종과 다양한 바닷새의 서식지와 경유지로써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이다. 해양 생태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갯벌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화성시 안내문]

미 공군 비행 사격장 농섬이 바다 위에 떠 있다. 반세기에 걸쳐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미 공군의 폭격 훈련으로 만신창이가 된 매향리 농섬을 고장 난 섬이라고들 한다. 폭격으로 섬의 1/3이 소실됐다고 한다.




길은 평화 생태공원으로 접어든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풍경은 고요하지만, 분위기는 절대 가볍지 않다.



평화와 인권이 살아 숨 쉬는 매향리 한쪽에, 역사를 기억하려는 화성 시민들의 마음을 모아 세운 평화의 소녀상이 조용히 서 있다. 말없이 서 있는 작은 소녀의 시선이, 오히려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이 땅에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을 담아 세워진 소녀상을 바라보며, 매향리(梅香里) 평화 생태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름 그대로라면 매화 향기가 가득해야 할 마을, 매향리(梅香里)는 경기도 서해안에 자리한 평범한 농어촌 마을이었다. 그러나 6·25전쟁은 이 마을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매화 꽃향기 대신 화약 냄새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1951년 8월, 매향리 앞바다의 농섬을 표적으로 미 공군기의 폭격 훈련이 시작되었고, 1954년에는 미군이 본격적으로 매향리 해안에 주둔하게 된다.
1955년 한미행정협정(SOFA)에 따라 폭격훈련장이 설치되고, 1968년에는 마을 농지 위에 육상 사격장이 조성되며 '쿠니사격장'이 들어선다. 쿠니(KOON-NI)라는 이름은 매향1리의 옛 이름 '고온리'가 발음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붙여진, 다소 무심한 명칭이다. 하지만 그 이름 아래에서 마을은 오랜 세월 소음과 공포, 불안 속에 놓여야 했다.




2000년 8월, 국방부가 '매향리 사태 종합 대책'을 발표하며 지상 화기 사격훈련은 전면 중단되었고, 마침내 2005년 8월 사격장은 폐쇄된다. 긴 시간이 걸렸지만, 그제야 이 땅은 총성과 폭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아픈 역사를 지우는 대신 기억하고, 상처를 덮는 대신 치유하기 위해 2021년 9월, 이곳은 평화 생태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제 매향리는 과거의 상처를 안고서도, 평화를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 남겨진 기억의 길이다.




매향리 평화 생태공원 안쪽으로 들어서자, 평화의 종이 눈에 들어온다. 높이 매달린 종은 쉽게 울리지 않는다. 총성과 폭음으로 얼룩졌던 시간을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소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워진 종이다. 바람이 스치며 종을 살짝 흔들 때마다, 들릴 듯 말 듯한 울림이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린다. 매향리에 붉은 깃발이 게양이 되면 이 곳 주민들의 일상은 멈춰야만 했다.

당시 떨어진 물건들을 모아 만든 조형물의 이름은 '폭탄이 날고 싶다'이다.

철꽃 화분은 폭탄으로 만들어진 화분이다. 이곳에 어울리는 상징이라는 생각이 든다. 포탄과 탄피, 철제 구조물로 가득했던 매향리에서, 철은 파괴의 재료였다. 그 철이 이제는 꽃의 형태로 다시 태어나 화분이 되었다. 생명을 흉내 내는 철꽃은 역설적이게도 회복과 재생을 말한다. 상처 입은 땅 위에서도, 평화는 이렇게 피어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선언처럼 보인다.


'푸줏간'이라는 이름의 작품 앞에 멈추게 된다. 이름부터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바로 이 작품의 목적일지도 모른다. 전쟁과 폭격 속에서 삶이 얼마나 무참히 잘려 나갔는지를,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희생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떠올리게 한다. 한때 이 땅은 훈련이라는 이름 아래 생명과 일상이 무참히 해체되던 공간이었다. 작품 앞에 서면, 그 잔혹한 기억을 외면하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전해진다. 예술은 때로 위로보다 질문을 먼저 던진다. 이곳의 '푸줏간'은 그 질문을 가장 날카롭게 드러내는 공간이다.

'푸줏간'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이 곳은 실전용 불발탄 등을 모아 푸주간의 고깃덩어리처럼 모아놓은 것이다.





매화리 평화 역사관은 과녁 형상의 돔 구조가 특징이다.








한때 위협의 공간이었던 바다와 들판이 이제는 고요하다. 그러나 이 평온함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매향리 평화 생태공원을 빠져나온다.

매화 4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 어느집 차고에 자리를 잡고 점심상을 펼친다. 지붕과 삼면은 가리막으로 둘러 겨울 찬바람을 막아주고, 입구 쪽으로는 따스한 햇빛이 깊숙이 스며든다. 차가운 계절 속에서도 빛과 온기가 머무는 공간이다. 찰밥, 시루떡, 뜨끈한 쌀국수와 컵라면 거기에 금산 인삼막걸리가 한 병 곁드려지니 행복한 시간이다.

'띨'은 경기·서해안 일부 지역에서 '띠(갈대·띠풀)'를 가리키는 사투리고, '뿌리'는 말 그대로 풀의 뿌리를 뜻한다. 즉 띨뿌리는 띠풀(갈대)의 뿌리를 의미한다.
매향리와 화성호 일대는 예부터 바닷가와 습지가 넓게 펼쳐진 지역으로, 갈대와 띠풀이 무성했다. 이곳 주민들은 갈대와 띠풀을 지붕을 이는 재료로 쓰고, 가축의 먹이로 활용하며 때로는 연료와 생활 자재로 사용했다. 띠풀이 많던 이 길을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띨뿌리가 많은 길'이라 불렀고, 그 이름이 오늘날 '띨뿌리길'로 남게 되었다.
특히 땅속 깊이 뻗은 띠풀의 질긴 뿌리는 바람과 물에도 쉽게 뽑히지 않아 이 지역 땅의 성질과 사람들의 끈질긴 삶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래서 띨뿌리길은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이 지역 사람들의 삶과 인내를 은유적으로 담은 이름이다.


화성 이화리 정류장이 서해랑길 86코스의 종점이자 87코스의 시작점이다. 서해랑길 87코스 안내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86코스로 이어간다.

서해랑길 86구간(8.0km) : 이화리 정류장-(1.8km)-남양방조제-(4km)-수도사-(2.2km)-원정초등학교

이화리(梨花里)는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의 남쪽 끝에 위치한 마을로, 배가 마을 앞까지 드나들어 뱃골(船谷)이라 불리었다. 배가 다니는 길인 뱃골(船谷)을 먹는 배인 배골(梨谷)로 잘못 인식, 이화리(梨花里)로 통용되었다고 한다.

바다를 가로막아 남양호를 만든 남양방조제(南陽防潮堤) 위를 걷는다.



화성시와 평택시 경계지점을 지난다. 평택(平澤])은 해발고도 100m 이하의 낮은 지대로, 평지의 연못이라는 뜻이다.


포승공단지구 방향으로 남양호수 길을 따라 걷는다. 바닷물을 남양방조제로 만들어진 남양호에는 가물치가 많이 서식한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서해랑길 안내판이 반갑다.


남양대교(南陽大橋)는 늘어나는 교통 수요를 대처하기 위해,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이화리와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를 잇는 1,230m의 다리이다.

남양대교에서 직진하면 평택섶길 5코스 소금뱃길이다. 남양호를 따라 청북면사무소까지다. 오른쪽이 수도사로 이어지는 서해랑길이다


'섶'이란 한복 저고리의 앞자락에 있는 작은 조각이다. '섶길'이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주변의 아름답고 작은길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평택 섶길'은 평택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중요한 길이다.


수도사는 평택섶길 4코스 원효길의 종점이자 5코스 소금뱃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소금뱃길'은 소금으로 이어졌던 서해 사람들의 삶을 따라 걷는, 조용하지만, 깊은 역사 길이다.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 봉화산(熢火山)에 자리잡은 수도사(修道寺)는 852년(신라 문성왕14) 염거(廉巨)가 창건하였다. 661년(문무왕1) 원효(元曉)가 해골물을 마시고 득도한 곳으로 염거가 창건하기 전에 암자가 있었음을 추정하고 있다.

수도사 입구는 일주문을 대신하여 금강역사(밀적금강)와 금강역사(나라연금강)이 지키고 있다.



당나라로 유학 가던 중, 깊은 밤 갈증을 해결한 시원한 물이 다음 날 아침에 해골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해골물을 통해 얻은 원효대사의 깨달음이 수도사(修道寺)를 통해 계속 이어져 가고 있다.


원효가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던 중 수도사 근처 바위 굴에서 하루를 머물게 된다. 원효는 밤에 목이 말라 바가지에 들어 있는 물을 시원하게 마셨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물을 마셨던 바가지가 해골인 것을 알고는, 모든 것이 마음에 있음을 깨닫고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였다는 설화가 삼국유사에 전해오고 있다.




수도사를 지나 해군 2함대 사령부 철조망 옆으로 이어지는 평택 섶길 4코스 원효길을 따라 10여 분 걸어 산길을 벗어난다.



원정초등학교/괴태곶봉수공원 앞에서 트레킹을 끝낸다.


원정초등학교 바로 옆, '순창밥상'에서 오늘도 뒤풀이가 이어진다.
제육볶음, 감자탕, 닭볶음탕… 각자의 취향대로 자리를 잡고 뜨거운 김이 오르는 상을 마주한다. 긴 걸음을 끝낸 뒤라 허기는 솔직하다. 진한 국물 한 숟갈에 몸이 먼저 풀리고, 잔을 기울일수록 하루의 피로도 조금씩 가라앉는다.
길 위에서는 말이 적었지만, 식탁 앞에서는 이야기가 다시 살아난다. 오늘 걸었던 풍경, 바람의 세기, 추위 속에서도 좋았던 순간들이 술잔 사이로 오간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마음을 나누며, 또 하나의 서해랑길 하루를 조용히 마무리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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