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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2025 봄맞이(광양/구례)여행

2025. 3. 25(화)

 

남도여행1 광양 섬진매화마을

황사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 속에서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공기 속에 스며든 먼지가 흐린 장막을 드리운 듯하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은 바빠졌다.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관광버스가 가득하고, 어디를 가든 봄을 맞이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봄이 봄꽃에서 온다는 말처럼, 자연은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꽃으로 이야기한다. ‘봄’이라는 단어가 ‘보다’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봄이 오면 남도는 꽃 천지다.  새로운 생명을 보는 계절, 꽃을 보며 봄을 실감하려고, 살랑이는 바람을 따라 남도로 향한다.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이 있다. 서리와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 땅을 뚫고 피어나는 꽃, 바로 매화다. 매화는 가장 먼저 피어나 봄의 시작을 알린다. 마치 오래 기다린 이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미는 것처럼, 겨우내 차가웠던 세상에 따스한 기운을 전하는 존재다.

 

섬진강을 따라 흐르는 길을 달리다 보면, 하얀 매화꽃이 흐드러진 마을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봄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 중 하나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에 자리한 매화마을이다. 섬진강을 품은 이곳은 봄이 시작되는 첫 번째 마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화마을은 섬진, 도사, 소학정 마을을 아울러 부르는 이름으로, 그 중심에는 청매실농원이 자리하고 있다. 10만 평이 넘는 땅에 자리 잡은 수많은 매화나무들이 매년 봄이면 환하게 꽃을 피운다.

 

홍쌍리청매실농원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수십 년을 자란 매화나무들이 가득한 농원은 마치 하얀 눈이 내린 듯하다. 눈부시게 피어난 백매화, 붉은 홍매화, 그리고 푸른 기운이 감도는 청매화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한 발 한 발 걸어 들어갈수록 매화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이 향기는 봄의 전령이 전하는 인사와도 같다.

 

꽃잎마다 봄의 향기가 배어 있어 코끝이 간질거린다. 매화 향이 짙은 골목을 거닐며 한껏 봄을 만끽한다.

 

섬진강을 따라 흐르는 바람이 볼을 스치고, 눈앞에는 하얀 꽃과 푸른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진다. 강물은 유유히 흐르고, 그 곁을 지나는 사람들은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바쁜 손놀림을 이어간다. 멈춰 서서 바라본다. 봄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이곳에서, 가장 순수한 봄을 만난다.


길을 따라 걸으면, 온 세상이 하얗고 붉게 물들어 있다.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마치 봄이 눈꽃이 되어 산을 덮은 듯한 풍경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살랑이며 공중을 떠다닌다.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도 조용히 이 순간을 음미하는 듯하다. 사진을 찍는 이도,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이도 모두 같은 감탄을 품고 있다. 돌담길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더욱 장대한 매화밭이 펼쳐진다. 여기서 내려다본 풍경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산 아래에서 바라보던 봄과, 산 위에서 마주하는 봄은 사뭇 다르다. 가까이에서 보면 한 송이 한 송이가 섬세한 아름다움을 뽐냈고, 멀리서 보면 온 산이 하나의 거대한 화폭이다.

봄은 이렇게, 서서히 다가오며 우리를 감싸 안는다. 차가운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볕 아래 서 있는 이 순간, 나는 다시금 살아있음을 느낀다.

 

남도여행2 구례 화엄사
전남 구례의 화엄사는 지리산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의 초입에 자리한 고찰이다. 이곳은 천년의 역사가 깃든 사찰로, 봄이면 특별한 손님을 맞이한다. 바로 300여 년의 세월을 품은 홍매화다.

 

화엄사 경내 각황전과 원통전 사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실나무에 홍매화를 보러 올라간다. 조선 숙종 때 원통전과 각황전의 중건을 기념하며 심어졌다고 전해지는 이 홍매화는 꽃잎이 검붉어 ‘흑매화’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수령이 300년을 넘긴 고목이지만, 붉게 물든 꽃잎은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화엄사의 홍매화는 대한민국 4대 매화 중 하나로 손꼽힌다.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와 나란히 하지만, 검붉은 빛을 띠는 것은 오직 화엄사 홍매화뿐이다. 그 독특한 색감 덕에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와 봄의 정취를 만끽한다. 안타깝게도 올해는 아직 만개하지 않아 조금은 실망스럽다.

 

화엄사의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만나는 홍매화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짙고 고운 붉은 빛깔이 고풍스러운 절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자연의 품 안에서 고요한 평온이 스며든다.

2024. 3.19 촬영사진1
2024. 3. 19 촬영사진2
2024. 3. 19 촬영사진3

대웅전 뒤편으로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잠시 걸으면, 구층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붕과 탑에 내려앉은 세월의 두께는 이곳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한다. 그 아래쪽 비탈에는 또 하나의 귀한 매화가 자리하고 있다. 2007년 10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들매화’다.

 

이 들매화는 자세가 기울어 있고, 나무의 형태도 다소 초라해 보이지만, 수령이 약 450년으로 추정되는 귀한 고목이다. 사람 혹은 동물이 먹고 버린 씨앗이 싹을 틔워 성장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화려한 자태보다는 그 오랜 세월을 견뎌낸 생명력 자체가 감동을 준다.

 

화엄사의 홍매화와 들매화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잠시 머물고 싶어진다. 수백 년을 이어온 나무가 계절마다 꽃을 피우고 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우리에게도 묵묵히 시간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듯하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오지만, 돌아갈 때는 한결 가벼운 마음이 된다. 매화꽃이 피어 있는 동안, 화엄사의 봄은 더욱 깊어간다.

구례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300호). 신라 문무왕17년(677년)에 조성된 것으로, 사자 네마리가 길쭉하고 네모난 돌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신라 문무왕17년(677년)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대의 석등으로, 높이가 6.36m이다. 꽃잎의 형태는 3천 년만에 한 번 핀다고 하는 우담바라의 꽃잎이다.
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보물 제133호). 화업사 대웅전 앞에 동서로 서 있는 쌍탑 가운데서 서쪽 탑이다.신라말기 현강왕 원년(875년)에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설에 따라 조성하였다.

무겁게 닫혀 있는 오래된 목조 문 옆의 한자는 오래된 가르침을 품고 있고, 단청이 입혀진 처마 너머로는 산세가 유려하게 펼쳐진다. 그 앞에 사람들이 두 손을 무릎 위에 얹고 나란히 앉아 있다. 여행자일까, 수행자일까. 저마다의 모습으로 햇살을 맞이하며 잠시 시간을 멈춘 듯한 풍경이다.

이 순간, 굳이 말을 섞지 않아도 모두가 같은 쉼을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길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멈춰 서는 시간이 더 깊이 남는다.

남도여행3 구례 산동마을

마지막 코스로 산수유 꽃을 만나러 간다. 구례 산동면에 들어서자마자 사방이 노란 물결이다. 노고단(1507m)과 만복대(1433m) 사이, 넓고 깊은 고을 전체가 산수유 꽃으로 뒤덮였다. 마치 노란 꽃으로 지어진 궁전 같다. 따스한 햇살이 꽃잎 위에 내려앉고, 부드러운 봄바람이 꽃잎을 흔든다.

 

산수유는 1000년 전, 중국 산둥성에서 시집온 처녀가 가져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리산의 잔설이 녹기 전, 이곳에는 어김없이 노란 산수유 꽃이 핀다. 전국 산수유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이곳은 그야말로 산수유의 본고장이다.

 

봄은 이렇게도 선명하게 다가온다. 온 세상이 노랗게 물든 사이, 커다란 붉은 액자 속에서 봄을 바라본다. 액자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노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봄의 일부가 되어 자연과 어우러지고, 살랑이는 개나리 꽃잎은 봄바람에 맞춰 가볍게 춤을 춘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봄을 만끽하고 있다.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는 사람, 꽃 사이에서 조용히 미소 짓는 사람, 모두 같은 풍경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봄을 즐기고 있다.

붉은 액자는 마치 또 다른 시선의 창 같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풍경이 아닌, 특별한 순간이 담긴다. 액자 바깥에서는 그냥 스쳐 갈 수도 있는 장면이, 이 프레임 안에서는 온전히 기억하고 싶은 장면으로 남는다.

 

축제의 설렘은 현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형형색색의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거리 곳곳에서 들려오는 흥겨운 음악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축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주전부리다. 다양한 먹거리들이 진열된 가판대를 지나칠 때마다 코끝을 스치는 달콤하고 고소한 향기에 마음이 들뜬다.

 

SBS ‘생활의 달인’에 소개된 꽈배기와 수제 깨강정이 발걸음을 멈춘다. 갓 튀겨낸 꽈배기는 한눈에 봐도 쫄깃한 식감이 느껴진다. 반죽을 정성껏 숙성시키고, 기름에 튀겨낸 후 설탕을 살짝 묻힌 꽈배기는 한입 베어 물자마자 바삭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입안 가득 퍼진다. 평범한 꽈배기와는 차원이 다른 깊은 풍미에, 하나 더 집어 든다.

 

달인의 손길로 탄생한 깨강정은 일반적인 강정보다 더욱 바삭하면서도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통깨와 견과류가 듬뿍 들어가 있어 씹을수록 고소함이 배가되고, 달콤한 조청의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이 한 조각에 정성 어린 손맛과 전통의 깊이가 담겨 있다.

 

주전부리를 하나씩 음미하며 축제장을 거닌다. 축제란 단순히 눈으로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맛과 향, 분위기까지 오롯이 경험하는 것이다.

 

결국 여행의 기억은 미각과 함께 남는다. 이번 여행에서 맛본 꽈배기와 깨강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추억이 된다. 축제의 즐거움은 오감을 통해 완성된다. 

경남 하동의 '달인꽈배기' : 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맛집으로, 'sbs생활의 달인'에 소개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봄날의 따스함과 꽃들의 향연 속에서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진다. 봄이란 계절이 주는 설렘을 가득 안고 귀가한다.

 

▽전시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