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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65구간(안면관광안내소~몽산포해변)

2025. 3. 9(일)

65코스(15.9km) 태안관광안내소-(3.9km)-당암리 다목적회관-(7.1km)-청포대해수욕장-(2.7km)-달산포해수욕장-(2.2km)-몽산포해변

 

서해랑길 태안 65코스의 시작점, 서산 B지구방조제에 내리자 눈앞에 탁 트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태안군 관광안내소가 자리한 이곳은, 고 정주영 회장이 폐유조선을 가라앉혀 만든 방조제로 '정주영 방조제'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인간의 도전과 자연의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서해안 휴양관광 중심도시 태안'이라는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낙지와 청자를 실은 배 모양의 상징물은, 2007년 한 어민이 주꾸미의 빨판에 붙은 청자 조각을 발견한 데서 비롯된 실화를 담고 있다. 이 작은 발견이 고려 시대 조운선을 인양하는 계기가 되어, 태안 앞바다에서 3만여 점의 유물이 빛을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 길을 걷는 이들에게 또 다른 역사 여행을 선물한다.

 

단체사진을 찍고 방조제의 끝자락에서 당암리 들길로 들어서면태안의 고즈넉한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언덕을 내려오면 당암리 경로당과 천수만로 도로를 만난다.

 

길가에 서 있는 서해랑길 표지판에 뜬금없이 등장한 ‘쥬라기공원’ 안내는 웃음을 자아내지만, 실제로 2km 거리에 박물관이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저드레길은 '산자락에 있는 마을'이라는 이름처럼 당암리의 산을 따라 이어진다. 솔바람을 맞으며 언덕길을 넘으면, 서해랑길은 77번 국도 안면대로와 마주친다. 

 

국도를 건너 서쪽으로 향하는 길은 신온 1리 마을회관을 지나 마검포길로 이어진다.

 

수로를 건너면 해변 솔숲이 반긴다이곳에서 태안 해변길 4코스 '솔모랫길'을 알리는 표식을 마주한다.

 

태안 해안국립공원 해안가에 마련된 태안 해변길은 총 7개의 코스로 전체 거리는 100km다. 1코스 바리길은 학암포~신두리 12km, 2코스 소원길은 신두리~만리포에 이르는 22km, 3코스 파도길은 만리포~파도리 13km, 4코스 솔모랫길은 몽산포~드르니항 13km, 5코스 노을길은 백사장항~꽃지 12km, 6코스 샛별길은 꽃지~바람아래 14km, 7코스 바람길은 바람아래~영목항 15km.

 

솔숲을 따라 걷는 길은 상쾌한 솔향기와 부드러운 모래의 질감을 온전히 느끼게 한다.

 

국립공원 구역답게 깔끔하게 정비된 산책로와 안전쉼터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어, 비바람 속에서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배려가 반갑다.

 

소나무 숲 사이로 바다가 보인다. 흰 파도가 계속 밀려오고, 파도 소리도 들려온다. 바다를 따라 이어진 소나무 방풍림 길을 계속 걷는다.

 

원청리의 또 다른 이름은 ‘별주부 마을’이다. ‘토끼가 살았던 마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연관된 지명도 여럿 남아 있다. 마을 입구의 아름드리 해송 숲은 용왕의 명을 받은 자라가 토끼의 간을 구하기 위해 육지에 첫발을 디뎠다는 용새(龍塞)골이다. 민박집과 펜션이 들어 차있는 마을에는 토끼가 ‘간을 떼어 청산녹수 맑은 샘에 씻어 감추어 놓고 왔다’는 ‘묘샘’ 등이 전해진다. 

 

가까운 바다에는 독살이 있다. 독살은 V자 혹은 초승달 모양으로 쌓아 올린 돌담이다. 돌발, 돌살, 석전, 석방렴으로도 불린다. 조수간만의 차이로 밀물에 휩쓸린 물고기가 독살에 들면, 썰물을 기다려 퍼내기만 하면 되는 전통 어로 방식이다.

 

 ‘마당같이 넓은 포구’ 청포대 해변에 다다른다. 해안가에 작은 섬이 물 위에 떠 있다. ‘자라바위’다. ‘덕바위’로도 불린다. 용왕이 있는 바다를 향해 엎드려 있는 형상이다. 마을 사람들이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를 찾아 육지로 올라왔던 ‘별주부전’의 자라라고 믿는 바위다. 안내판에 ‘자신의 충성이 부족해 토끼에게 속았다고 탄식하며 죽은 자라’라는 설명이 새겨져 있다.

 

청포대 해수욕장의 펜션촌을 지나 해변 끝자락에 이르면, 태안 8경 중 하나로 꼽히는 몽산포 해수욕장의 넓은 백사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파도 소리에 발걸음을 맞추며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몽대 마을의 옛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던 효자의 꿈에서 비롯된 이름 '몽대리'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몽산리'로 바뀌었다는 역사는 바다의 너른 품속에 씁쓸하게 녹아든다.

 

청포대라는 이름처럼 울창한 송림과 모래밭, 몽산포와 이어지는 넓은 백사장이 시원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이마트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막거리를 사서 야외 탁자에 자리를 잡고 점심상을 펼친다. 햇살이 포근하다.

 

백사장항에서 몽산포항까지는 동서트레일 2구간이기도하다.

동서트레일은 충남 태안에서 경북 울진까지 한반도를 동서로 잇는 849km 걷기 길이다. 5개 시·도, 21개 시·군, 87개 읍·면의 239개 마을을 지난다. 우리나라 중부지방을 동서로 연결하는 최초의 걷기 길이며, 기존에 운영되는 걷기 길들을 엮는 형식으로 조성되고 있기에 많은 예산을 들이지 않는다. 55구간의 정규코스 외에 충북 충주, 제천을 우회하는 우회 코스도 생길 전망이다.

 

한반도 중심을 횡단하는 총 849km 중 2024년까지 개방된 구간은 양쪽 끝부분인 태안 1~4구간 57km와 봉화 47구간 15km, 울진 55구간 20km다. 나머지 구간들은 2026년까지 순차 개방될 예정이다. 기대가 크다.

특히 동서트레일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백패킹이 가능한 걷기길’이란 콘셉트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걷다가 트레일 곳곳에 지정된 장소에서 화기를 이용한 취사와 야영이 합법적으로 가능하다. 게다가 이런 백패킹 장소들은 되도록 넓은 캠핑장 형태가 아니라 소수의 백패커만 머물 수 있는 작은 공간으로 구성될 예정이라고 한다.

 

캠핑촌과 주차장을 지나 몽산포항으로 이어지는 길은 다시 울창한 솔숲을 통과한다. 파도의 리듬과 솔바람의 선율이 교차하는 이 길에서, 서해랑길의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의 손길과 자연의 숨결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우리는 서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사이의 수많은 이야기를 조용히 마음에 새긴다.

 

인근의 몽산포와 청포대해수욕장에 가려져 이름까지 감춰진 달산포 해수욕장은 몽산포의 넓은 백사장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길을 따라 송림이 빼곡히 우거져 있다.

 

몽산포는 유속이 세지 않아 파도가 거칠지 않다. 파도는 그저 습관처럼 천천히 멀어졌다 다시 돌아오길 반복한다. 간간이 갈매기 울음소리, 송림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바람 소리가 섞여 들려온다.

 

몽산포 전망대에 오른다. 타워형이 아닌 루프스테이 형으로 관광객들이 산책로를 걷듯 올라가 몽산포 바다를 감상할 수 있게 태안 해안에서 자생하는 해당화의 꽃잎을 형상화해  만들었다고 한다. 최고높이는 11m, 총 연장은 256.9m다. 그러나 이게 뭐지? 이걸 왜 만들었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몽산포해수욕장. 서해랑길 65코스의 끝에서 돌아보는 길 위의 순간들. 바람과 파도, 그리고 이 길을 만들고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여 이곳은 더없이 따뜻하고도 깊은 곳이 된다.

세계 5대 갯벌중 하나로 꼽히는 ‘서해안 갯벌’에 속한 안면도의 몽산포해수욕장 갯벌은 썰물시 3km에 이르는 넓은 갯벌이 펼쳐진다.
태안 8경 중 하나이자 태안해안국림공원에 속하는 몽산포해수욕장

 

실제 오늘 트레킹은 66코스를 조금 더 진행하여 몽산포항에서 종료한다.

 

몽산포항에서 뒷풀이.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잔잔한 파도가 조용히 리듬을 맞추는 몽산포항. 트레킹을 마친 일행은 작은 플라스틱 테이블을 중심으로 하나둘씩 모여든다. 

 

테이블 위에는 방금 손질된 싱싱한 회가 가지런히 놓인다. 투명한 비닐 아래, 바다의 향을 머금은 광어살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그 옆에는 빨간 초고추장이 자리 잡고 있다.

 

낮은 의자에 둘러앉아 회를 집어 초장에 찍어 먹는 순간, 한입 가득 퍼지는 바다의 신선함이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해준다. 걸으며 나눈 이야기들이 다시 이어지고, 오늘 본 풍경과 느꼈던 감정들이 한마디씩 흘러나온다.

 

서해랑길 트레킹은 단순한 걷기가 아니다. 함께한 이들과 추억을 쌓고, 바다를 마주하며 새로운 기운을 얻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서 맛본 한 점의 회, 나누었던 한 잔의 술이 이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