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5일(일)
43구간(21.1km 선운사주차장~사포버스정류장)
오늘은 성탄절이다.
개인적으로는 성탄(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에는 큰 의미를 두지만, 성탄절에는 의미를 두지 않는다.
12월 25일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 아니다.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아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은 모른다.
12월 25일은 짧아졌던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우리의 동지와 비슷하여, 이교도들이 태양신의 탄생을 축하하는 축제일이었는데 서기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면서 자신이 믿고 있던 태양신의 탄생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지키게 된 것이 유래라고 한다.
성탄절은 예수님이 가장 먼저 생각나야 하는데 산타클로스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기독교인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열광하는 축제가 되었다.
7시. 아직 어두움이 물러나지 않은 시각 2022년 마지막 서행랑길을 걷기 위해 집을 나선다.
세밑 강력한 한파가 전국을 꽁꽁 얼려버렸다. 털모자와 장갑 그리고 목도리까지 이용하여 온몸을 싸매보지만 파고드는 한기가 매섭다.
어제까지 호남 지방에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에 아이젠, 스패츠를 비롯하여 방한 패딩에 보온물병까지 짐이 많다.
창고에 처박아 두었던 큰 배낭으로 교체했다. 성탄절 영향인지, 혹한 때문이지 참여 인원이 적다.
다행히 고속도로는 제설이 다 되어 차량 통행에는 지장을 주지 않는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텅 빈 겨울 들판과 벌거벗은 채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 산은 흰 이불을 덮고 여백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저 속에도 조용히 봄을 기다리는 새 생명을 품고 있을 것이다.
서해랑 43구간은 선운사 버스정류장에서 연기제, 미당 서정주 생가, 상포 마을회관, 김소희 생가를 거쳐 사포 버스정류장까지 이어지는 21.1km다. 그러나, 지난번 트레킹을 42구간 종점인 선운사 주차장에서 삼인교차로까지 1km 넘게 더 걷고 마무리했기 때문에 오늘 도보여행은 20km가 조금 안 되는 거리다.
10시경 삼인교차로에서 하차하여 연기교를 건너기 전 단체 기념사진을 남긴다.
날이 풀려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섰다. 바람도 없다. 패딩 대신 바람막이로 갈아입고 길을 걷는다.
눈이 부실 정도로 온천지가 눈 세상이다.
선운산과 소요산 사이에는 서해와 맞닿아 있는 주진천(舟津川)이 흐른다. 서해와 민물이 만나는 갯벌은 뱀장어(민물장어)가 서식하기 좋은 천혜의 조건이다. 이런 곳을 풍천(風川)이라고 한다.
풍천은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밀물이 되어 바닷물이 강 쪽으로 들어올 때면 바다에서 육지 방향으로 바람이 불기 때문에 ‘바람을 타고 강으로 들어온다’라는 뜻으로 ‘바람 풍風’에 ‘내 천川’자가 붙었다.
연기마을을 지난다. 연기마을은 중국, 일본, 조선의 천자로 내세웠던 보천교의 창시자 차경석(1880~1936)이 소요산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 곳이다. 그의 부친 차치구는 동학의 접주였으며 차경석은 우연히 증산교 교주 강증산을 만나 교주까지 오르며 동학과 일진회, 1925년 조만식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고 한다.
얼마 걷지 않아 연기제에 닿는다.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자연이란 화가가 그려낸 멋진 흑백의 수묵화다.
소요산 주변에는 연기교, 연기마을, 연기제 등 연기(緣起)라는 지명이 많이 들어간다. 이는 소요산에 있었던 연기사와 연관이 있다. 백제 시대 연기조사(緣起祖師)는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구례 화엄사와 연기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연기사는 한 때는 38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가람이었지만 지금은 이야기로만 전해질 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630년 전라감사가 부친의 묏자리를 만든다는 구실로 연기사에 관군을 보내 스님들을 살해한 후 폐사시켜버린 사건은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의 단면을 보여 준다.
질마재길은 서서히 산비탈로 올라선다. 길에는 하얀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앞서간 이들의 발자국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소요산이라면 가을 단풍으로 이름난 동두천의 산을 떠올리겠지만, 고창에도 소요산이 있다. 한자 이름도 둘 다 ‘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닌다’라는 뜻의 ‘소요(逍遙)’를 쓴다.
트레킹 코스는 소요사를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비켜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질마재에서 선운리로 내려가는 옛길 주변의 울창한 숲길에도 눈이 쌓여있어 발목까지 푹푹 빠지며 조심조심 내려간다.
‘질마’는 소나 말의 안장을 뜻하는 ‘길마’의 사투리다. 옛날 소금 농사를 짓는 바닷가 심원마을 사람들은 부안면 알뫼장터에서 곡물과 교환하기 위해 좌치나루터를 거쳐 이 고개를 넘었다. 서정주 시인의 ‘질마재 신화’라는 시로 인해 질마재는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됐다.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라고 노래했던 시인의 생가에 도착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로 시작하는 ‘국화 옆에서’라는 시로 잘 알려진 미당 서정주는 1915년 선운리 진마에서 태어나 21세에 동아일보 신춘문예 ‘벽’으로 등단해 국화 옆에서, 귀촉도 등 1,000여 편의 작품을 남긴 고창의 들 산 바다의 감수성을 발휘한 고창인이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적과 독재 하수인 역할이 밝혀지면서 철저히 외면받게 된 문학인이다.
두 채의 초가집이 왠지 어색하고 초라하다.
생가를 지나자 마땅히 앉아서 쉬어갈 곳이 없다. 탁 트인 들길을 걸으면서 영양 떡과 커피로 허기를 달랜다.
해안문화 마실길이라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 걷는다. 간간이 구름 사이로 해가 얼굴을 내밀면 따스한 온기가 전해진다.
도로는 눈이 얼어 미끄럽다. 걷는 내내 조심스럽다.
고창의 들과 바다, 그리고 갯벌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가 내륙으로 깊숙이 갯벌을 끌고 들어온 후포와 곰소, 그리고 바다 건너 병풍처럼 펼쳐진 눈덮힌 내변산의 전경도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다.
터벅터벅 혼자 걷다 보니 상포 마을회관을 지나 김소희 생가에 도착한다.
김소희(金素姬)는 100년에 한 번 나오기 어려운 천부적인 목소리를 가졌으며, 국창(國唱)으로 추앙받는 판소리 대명창이자 국가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다.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소리꾼으로, 화랑창극단 등에서 판소리와 창극 배우로 활약하였으며, 신영희, 안숙선, 오정해 등이 그의 제자다. 얼굴 보면 다 안다.
3시. 반석교회를 지나 사포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면서 서해랑길 43구간은 끝이 난다.
반석교회 앞 공터에 주차된 버스에 배낭을 내려놓고 바람막이를 패딩으로 갈아입은 다음 준비해 간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랜다. 온몸이 따뜻해진다.
일행들이 속속 도착하여 술 한잔과 뜨끈한 순두부 한 그릇씩 비운다.
4시 정각 대전을 향해 출발한다. 올해 마지막 여정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 이정표는 45도 정도 돌아간 듯하다.
▲아리송한 석조형물이 군데군데 눈에 띤다.
▲이 이정표는 표기가 잘못 된 듯하다. 미당시문학관 6.4km
▲서해랑길 44구간 시작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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