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1일(일)
41구간(9.5km 동호항~심원면사무소)
우리 처가는 딸만 다섯이다.
장인, 장모님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일 년에 서너 번 동서들과 부부 동반해서 모인다.
이번 일요일이 송년회 모임이어서 서해랑길 참여가 망설여진다.
천만다행(?)인지 주최하는 동서 가족이 모두 코로나 확진으로 모임이 연기되어 서해랑길에 나설 수 있었다.
여느 때처럼 배낭과 스틱을 챙겨 집을 나선다.
7시인데도 아직 어두움이 머물러있다.
점점 해가 늦게 뜨고 늦게 진다. 그래서 동지까지는 밤이 길어진다.
호남고속도로를 질주하던 버스는 8시 20분 여산휴게소에서 25분 정도 쉬어간다. 햇살이 포근한 느낌이다.
휴게소 주차장에 나들이 차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
10시 10분. 동호해수욕장에 도착한다. 2주 만에 다시 오니 오랜 친구를 만나러 온 것처럼 반갑다.
2주 전에는 저녁에 도착하여 밀물로 백사장이 모두 뒤 덮였었는데, 오늘은 오전에 도착하니 썰물로 드넓은 백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쪽으로 보이는 섬이 '위도'라고 한다.
1993년 10월 10일 서해 훼리호가 돌풍을 만나 회항하던 중 전복되어 침몰하면서 292명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동호항을 향해 도보여행을 시작한다.
동호항부터는 물이 빠진 광활한 고창갯벌이 펼쳐지고 내변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바닷바람이 세차게 분다. 귀마개 달린 모자와 바람막이로 중무장했지만, 옷깃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매섭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걸으면서 하는 독서라고 한다.
이제 눈도 침침하고 돋보기 없이는 책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아직 두 다리는 건강하다. 그래서 두 다리를 믿고 의지하며 걷고 또 걷는다.
누군가 인생은 두 다리로 걸을 때까지라고 했다.
고창CC를 지나 송림 사이 나무데크를 따라 해안으로 들어선다.
고전리 해안가에는 길이 1.3km, 폭 40~70m의 쉐니어 지형이 발달해 있다.
한쪽에 마련된 안내판에는
쉐니어(chenier, 조류에 의해 갯벌 위에 모래와 자갈이 육지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쌓인 퇴적 지형)에 대한 설명이 있다.
서해안 바람공원에 도착하면 갯벌과 빨간 풍차가 반긴다. 전망대가 있어 갯벌을 감상하기에 좋다.
칠산 바다가 품고 있는 고창갯벌은 유네스코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소중한 보물이다.
안내판 설명에 의하면
만돌마을은 1850년대만 하여도 바다였다.
'만돌'은 '만 개의 굴뚝이 솟을 땅'이라는 풍수에서 유래되었으며 현재 약 220세대가 살고 있다.
만돌마을에서 닭이 울면 중국에서도 들린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걷다보니 람사르 고창 갯벌센터에 도착한다. 옆에는 서해랑 쉼터가 자리하고 있다.
동호항을 출발하여 쉼 없이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하여 약 2시간 만에 심원면사무소에 도착한다.
서해랑길 41구간은 이곳까지다.
42구간(13km 심원면사무소~선운사주차장)
동행들과 점심 식사를 위해 심원면사무소 앞에 있는 중국집(나성반점 T. 564-7789)으로 들어간다.
먼저 도착한 다른 일행들이 담소를 나누며 고량주를 시켜 놓고 주문한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동네 맛집인지 손님이 많고, 음식 맛도 좋다. 주인이 맛보라며 김장 김치까지 식탁에 내놓는다.
얼큰한 짬뽕과 볶음밥을 주문하여 배를 든든히 채우고 42구간 도보여행을 시작한다.
서해랑길 42코스(11.6km)는 심원면사무소에서 시작해 화산마을, 견치산 소리재, 천마봉을 들러 도솔암과 선운사를 거쳐 선운사 버스정류장까지 이어지는 조금 힘든 산행코스다.
느티나무 고목들이 많은 화산마을을 지나면 연천마을이다. 심원면에서 약 1시간 정도.
인적 없는 아담한 옛집 뒤에 산길 입구가 나 있다. 그 앞에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서 있다.
낙엽 쌓인 푹신한 산길을 20여 분 쉬지않고 숨 가쁘게 치고 오르면 수리봉(선운산)과 견치산 갈림길 능선에 닿는다.
물 한모금 마시고 몇 걸음 옮기자 돌탑이 보인다. 지도상 국사봉(개이빨산)이다.
근처에 설치된 이정표 상에는 이곳이 국사봉이고 500m 떨어진 곳이 견치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돌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한 장 남기고 소리재를 지나 260여 개나 되는 철계단을 올라 낙조대에 도착한다.
선운산은 그다지 높지는 않으나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릴 만큼 계곡미가 빼어나고 숲이 울창하다.
낙조대는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 최상궁이 자살했던 암봉이다.
해발 335m밖에 안 되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해 일몰이 장관이어서 유명한 곳이 됐다.
아직 일몰 시각이 안 되어 낙조대 전망대에서 주변의 절경을 마음에 담고 아쉬운 발걸음을 옮긴다.
낙조대에서 천마봉은 지척이다.
천마봉에서 내려다본 마애불과 도솔암, 그리고 도솔계곡의 풍경은 선운산의 제1경으로 꼽힌다.
눈 아래 보이는 도솔암과 진흥암을 보며 조심조심 하산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도솔암 옆 거대한 암벽에는 미륵상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보물 제1200 호인 도솔암의 마애석불은 거대한 마애불이 연꽃무늬를 새긴 받침돌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 농민항쟁인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던 1894년 전봉준 장군 등 동학군을 이끌던 이들은
이 마애불 앞에서 피로 맹약문을 썼다고 한다.
동학군의 비원을 간직한 마애불은 지금도 묵묵히 세상을 지켜보고 있다.
선운사의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 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돌로 연못을 메워나가던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연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곤 하여,
이를 신기하고 기이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은 금방 메워지게 되었다.
이 자리에 절을 세우니 바로 선운사의 창건이다.
검단 스님은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절 이름을 '선운(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검단 선사가 선운사를 창건할 당시 선운산은 도적 떼의 소굴이었다.
검단 선사는 도적들에게 소금 굽는 법을 가르쳐 생계 수단으로 삼도록 했다.
양민이 된 그들은 고마운 마음을 담아 해마다 봄, 가을 두 차례 검단 선사에게 보은염(報恩鹽)을 보냈는데
그때 소금을 운반했던 길이 바로 참당고개다.
하산길 왼쪽에 자리한 부도밭의 백파 선사 비가 보인다.
비석은 2006년 선운사 박물관으로 옮겼고 이곳은 모조 비석이라고 한다.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선운산의 옛 이름은 도솔산(兜率山)이다. 일주문에도 도솔산 선운사로 적혀있다.
‘선운’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며, ‘도솔’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이라는 뜻으로
둘 다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의미다.
선운산 입구 바위 절벽에는 내륙에서는 제일 큰 송악(천연기념물 제367 호)이 자라고 있다.
오후 4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는데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서해랑길 42구간은 선운사 관광안내소에서 끝이 나지만 도립공원 내여서 뒤풀이가 여의찮아
선운사 주차장에서 선운산 풍천 장어 거리를 지나 1km 넘게 더 걸어 내려가 선운대로에서 마무리한다.
고창은 복분자주와 장어로 이름난 고장이다.
장어하면 풍천, 풍천은 바닷물이 밀려들어 오면서 바람을 몰고 올라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장어 하나만 보고도 고창을 올 만하니 고창의 풍천 장어길은 장어 미식가들에겐 더 없는 성지다.
바람이 분다. 길가에 뒤풀이. 그냥 가긴 서운하잖아.
시원한 맥주와 뜨끈한 순두부 한 그릇으로 출출한 배를 채우고 행복한 추억을 안고 서둘러 귀갓길에 오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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