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정맥이란?
한북정맥은 백두대간이 백두산에서 남하하다가 이북의 원산 남쪽 추가령 동쪽에 솟은 백봉에서 남으로 뻗어 내려오면서 백암산, 법수령을 지나 오성산, 적근산, 대성산,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운악산, 축석령, 도봉산, 북한산을 거쳐 와 경기도 파주군 교하에서 장명산을 일으킨 뒤 한강-임진강 합류지점에서 강 속으로 가라앉는 긴 산줄기이다.
이 산줄기는 한반도 중부지방의 북한경계(北限)로 볼 수 있다. 이 산줄기는 또 임진강 수계와 한강수계의 분수령을 이룬다는 점도 커다란 특징이다. 그러나 장명산은 한강 하구에서 공릉천을 타고 한참 내륙으로 들어온 곳 곡릉천변 남쪽에 있는 산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따진다면 북한산 도봉산을 산경표에 끌어드리기 위하여 지금의 한북정맥이 된 것이고 산경표의 원리대로 한다면 도봉산 오기 전 한강봉에서 서진하는 산줄기를 따라 한강 하구에 있는 오두산(鰲頭山) 통일 전망대에서 끝이 나야 맞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산경표(山經表)에서 확인해 봐도 장명산은 교하 동쪽 3리에 있는 산이라고 표기하고 오두산은 교하 서쪽 7리이고 한수단강합기하(漢水 江合其下)라고 표기하고 있다 장명산은 교하라는 마을에서 동쪽 즉 내륙으로 3리 즉 1.2km 떨어져 있고 오두산은 교하마을에서 서쪽으로 즉 바닷가로 7리 2.8km 떨어진 곳에 한강물이 여울지는 두 강과 합쳐지는 그 아래에 있다고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북정맥
수피령에서 파주교하 장명산까지(한강북쪽산줄기)/도상거리 162km
*신한북정맥
한북정맥상 한강봉에서 오두산통일전망대까지/도상거리 50km 계:212km
한북정맥은 백두대간상 북한쪽 식개산 추가령에서 시작하여 파주 교하 장명산까지 한북정맥, 다시 한강봉갈림길에서 분기하여 오두산통일전망대까지 신한북정맥이라 불리운다. 현재 북한쪽 한북정맥길과 대성산을 거쳐 수피령까지는 군사지역으로 되어 있어 갈수가 없다. 따라서 현재 한북정맥의 시작은 수피령에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직까지 여러 가지 의견과 개념이 분분하여 제대로 정립이 되어 있지는 않으나 사패도봉산을 거쳐 장명산에 이르는 한북정맥의 개념은 일산지역 택지개발 및 장명산의 붕괴로 인해 더욱 더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다. [인터넷 펌글]
산행일시 : 2009년 3월 1일(일)-28명
산행코스 : 곡릉천-장명산-고봉산-현달산-신촌고개
곡릉천과 곡릉천이 보이는 지점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한북정맥의 첫발을 내 딛는다. 한북정맥은 장명산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7분 정도 오르면 장명산에 닿는다. 장명(長命)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산은 이미 죽어가고 있다. 정상에는 화생방종과 종을 두들기는 망치가 있고, 나무 가지에는 한북정맥을 종주한 선답자들의 표지기들이 걸려있다.
곡릉천 너머로 또 다른 한북정맥 끝이라고들 하는 오두산과 통일공원 전망대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뒤로 또 다른 산줄기가 마루금을 긋고 있다.
장명산을 내려서자 왼쪽의 쓰레기 산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흙무덤이 또 하나의 봉우리를 대신한다.
도로 밑에 공장들이 보이고 열림실업 울타리 능선이 마루금이다. 교하중학교 정문에서 직진하여 잠시 마루금을 이탈 알바한다.
다시 교하중학교 입구 삼거리로 되돌아와 학교 담장을 오른쪽에 끼고 진행한다. 다율리및 당하리지석군묘 이정표가 보이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진행한다.
파평 윤씨 교하종중묘역 이정표에서 몇 걸음 옮기자 오른쪽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 조선시대 어느 빈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조금더 진행하여 왼쪽에 있는 성재암은 둘러보지 않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마루금을 묵묵히 따른다.
자유로와 이어지는 56번 국지도를 굴다리로 통과하여 건넌다.
택지개발사업 현장을 지나 포장도로로 들어서 왼쪽으로 이동한다. 경기인력개발원이 보이는 곳에서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교하신도시 아파트 건설 현장으로 들어서면서 진행이 난감하다. 이미 정맥의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산길로 들어서 운동시설과 벤치들을 보며 철망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군용 삼각점이 설치되어있는 108봉 무덤 앞에서 자리를 펴고 점심식사를 한다.
금정굴에 닿는다. ‘금정굴에서 발굴된 유골 및 유물’ 사진이 외벽에 전시된 허름한 ‘양민희생자 유족회사무실’과 6・25때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또는 원한관계로 무참히 학살하고 매장했다는 안내문 그리고 ‘산자들이여 우리를 기억하라’는 구구절절한 글귀가 송판에 적혔다.
98번 국지도가 지나가는 중산고개가 보인다. 고양시 일산동구와 서구 경계선으로, ‘통한의 금정굴을 평화의 공원으로’ 양각한 나무기둥과 금정굴 표지를 이고 있는 장승들이 들머리를 지키고 있다. 신호를 받아 도로를 건너 성석동으로 이어지는 도로에 내려선다.
중산고등학교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중산태미공원으로 오르면 고봉정이 반긴다.
철책문을 통과하고 통나무 계단을 올라선다. 헬기장에 서면 고봉산高峰山(206.2m) 철탑이 눈에 들어온다.
장사바위와 영천사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영천사 방향으로 진행한다. 영천사는 암자 수준의 아담한 절이다. 만경사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막걸리와 빈대떡을 파는 노점상이 길손을 맞는다. 빈대떡 부치는 고소한 냄새가 코끝에 전해온다.
만경사를 지나 성동고개로 내려선다. 2차선 도로가 넘어가는 고갯마루 콘크리트길 입구에 만경사와 영천사 팻말이 그리고 고봉산 안내도가 세워졌다.
이곳에서 몇 분은 산행을 접고 나머지 일행은 도로를 건너 산길로 접어든다.
군부대 초소가 보이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진행한다.
백마부대 정문에서도 계속 철조망을 타고 정맥길이 이어진다. 임도로 만나고 임도를 나오면 포장 도로와 만난다. 도로를 건너면 예빛교회 입간판이 눈에 들어오고 오른쪽에 교회가 보인다.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앞에서 다가오고 뒤에서 쫓아오는 덤프트럭이 위험하다.
식사동과 문봉동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가로 질러 건너 잠시휴식을 취한다. 문봉동재 도로표지판에는 견달마을이라는 지명이 보이는데 아마도 현(現)과 견(見) 한문을 오기한 것으로 추측된다.
고도 139m 현달산 오르막은 조금 숨이 차다.
현달산에서는 지나온 고봉산과 앞으로 가야할 북한산, 도봉산이 빤히 보인다. 아울러 고양시내 모두를 볼 수 있는 조망 터로 으뜸이다.
북으로는 휴전선 근처의 산하를 볼 수 있는데 청명한 날씨임에도 서울의 대기 오염으로 시계는 불량이다.
현달산이라는 지명은 경기도 고양시 사리현동과 현달산, 주교동, 관산동, 원당동 등이 있는데 현달산은 닭이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또한 주교동은 닭을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달이 되고, 마을 이름에 연결하면 달리라는 말이 되는데 이것을 다리 즉, 교량(橋樑)이라는 의미로 잘못 해석을 한 듯하다.
관산동은 닭의 벼슬을 한자로 해석을 한 것이고, 원당동은 닭이 있는 동산(園山)이라는 의미인데 여기에서 닭을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달이 되고 이것을 달다는 의미인 당(糖)과 사당이라는 의미인 당(堂)으로 잘못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달산에는 ‘서울 407, 1994 재설’ 삼각점이 박혀있다.
넓은 길이 이어진다. 숫돌고개 길 모서리에는 ‘사격시 입산금함’ 경고판이 붙어있다. 광목장 정문에서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51탄약대대 철조망을 따라 진행한다. 철조망은 휴전선 철책을 닮은 듯 자갈을 철망을 끼어 놓고 보초를 서고 있다. 다행히 철망 울타리를 끼고 길을 내놓아 지나기 편리하다. 초병들이 가끔씩 방향을 가르쳐주어 고맙기도 하다.
일행들이 자식들 군 생활을 떠올리는 듯 군인들과 친절하게 인사하며 정맥을 지난다. 북한산이 한 폭의 그림처럼 조망된다. 커다란 무덤 앞에 다다른다.
이 씨 문중의 무덤 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세종의 아들 효령대군의 자손인 듯 직계 표시가 된 비석이 이채롭다.
넓은 무덤가에서 맘껏 휴식을 취한 후 다시 한 번 탄약고를 돌아 오르니 부대 정문이 나온다.
포장도로가 지나는 신촌고개에서 한북 정맥 1구간 산행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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