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08년 10월 19일(일) - 20명
산행코스 : 효제골(645번 도로) - 문박산 - 학동목장 - 매일우유공장 - 아리고개(29번도로) - 박정거리 - 여주재(36번도로 구봉휴게소) - 천마봉 - 매산리도로 - 오봉산(구봉산) - 공덕재(610번 지방도) 약 8시간 소요
8시 20분. 지난 구간 산행 종료지점이자 이번 구간 들머리인 645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효젯골에 도착한다. 마을 이름은 윤형갑, 윤세웅 부자의 효자가 살았다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농로인 고추밭 사잇길로 접어들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야트막한 능선 길은 벌목지대와 잡목으로 초반부터 진행을 어렵게 한다.
들머리에서 약 35분,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초소를 왼쪽으로 끼고 1분 정도 진행하자 삼각점(청양 382 / 78.8 복구)이 박혀있고, 몇 걸음을 옮기자 문박산(文博山, 337.8m) 정상에 도착한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준.희의 표지판을 확인하고 마루금을 이어간다.
밤나무 농장사이로 걷다가 자작나무 조림지를 지나 임도를 따라서 진행한다. 시멘트도로로 내려서 한동안 시멘트도로를 따라 걷는다. 철탑과 잡목사이를 오르내리며 마루금이 이어진다.
학동목장의 철조망이 가끔씩 발길에 채이고 잡목이 얼굴을 때리는 등 진행을 방해한다. 배추 밭 사잇길로 내려서자 29번 국도에 닿는다.
▲자주쓴풀
청양에서 홍성, 예산으로 통하는 29번 국도를 따라 청양읍 학당리에 있는 고개가 아리고개이다. 이 고개는 고도는 높지 않으나 이 고개를 기점으로 북은 홍성, 예산 방면으로 기울고, 남은 청양 방면으로 기울어 분수령이 되는 고개로 청양장례식장이 있다. 고개 옆으로 금북정맥이 지나는 청수리에는 한국전력의 청양전력소가 자리하고 있다.
▲청양의 특산물 구기자
청양장례식장 뒤편 공업사에서 산길로 올라선다. 밀양손씨의 묘 3기가 모두 커다란 묘비를 안고 있다. 맨 마지막 묘 오른쪽에 “토지지신” 비석이 보인다.
무연고자들의 묘가 건너편 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매일유업 철망 울타리를 따라 진행하다 표지기가 가리키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길가에 알록달록 예쁜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 한 그루가 반긴다.
청수리 마을 위로 고압선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송전탑들이 산허리마다 박혀 있다. 금북정맥 구간 중 가장 많은 송전 철탑을 지난다.
청수리는 산골이어서 맑은 물이 늘 흐르므로 붙여진 이름이며, 학당리는 글을 배우는 학당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학당동 또는 학댕이라고도 불렀다.
4번 철탑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진주강씨 묘와 공조참의 벼슬을 지낸 파평윤씨 묘를 차례로 지나 오류골과 방죽골을 잇는 박정거리에 내려선다. 4번 철탑에서 약 30분 소요.
돌무더기 흔적이 남아있는 고개를 지나고 9번 송전탑 아래를 통과한다. 잡목이 얼굴과 팔다리를 사정없이 긁어댄다. 삼각점(청양 401 / 1990 복구)이 박혀있는 334봉에 닿는다. 예상대로 준.희의 표지판이 보인다.
내리막 길이다. 334봉에서 약 30분 정도 진행하여 여드재(여주재)에 닿는다. 장승리에서 신정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여드재라고 부른다. 옛날엔 이 고개에 도적이 많아서 고개를 넘을 때는 여든 명이 모여서 넘었다고 해서 여든이재라고 부르게 되었다. 고개 아래에 마을이 있는데 이곳도 여드재, 여티라고 부른다.
묘지 앞에 자리를 잡고 점심도시락을 펼친다. 점심식사를 하고 나자 먼저 이곳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머지 산행을 접고 대천항으로 향한 A팀의 여정이 마냥 부럽다.
"여기는 여주재 정상(해발210m)"안내판이 있는 여주재는 36번 국도가 지나간다. 구봉휴게소는 문이 닫혀있고 SK 주유소에서는 식수를 구할 수 없어 난감했다. 남은 물을 아껴 마시기로 하고 천마봉으로 향한다. 허름한 계사를 지나자 사슴농장이 보인다.
급경사 오름길이라 알고 있었지만 식사 후의 가파른 오르막길이 턱밑까지 숨이 차게 한다. 천마봉 (天馬峰, 422.1m, 대삼각점 : 국방부지리연구소)에 도착한다. 여주재에서 25분 소요. 산불감시초소와 통신안테나가 서 있고 국방부지리연구소에서 설치한 대삼각점과 정상을 알리는 준.희님의 표지판이 걸려있다.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파평윤씨묘를 지나 오른 산길로 접어든다. 후미 일행이 이곳에서 알바를 하여 늦어진다.
매산리 도로로 내려선다. 큰골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후미를 기다린다. 20분 정도 지나 후미의 모습이 보인다. 노란 산국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절개지를 치고 오른다.
잡목 길을 벗어나자 멋진 소나무가 반긴다. 길은 임도로 이어지고 편안한 길이다.
왼쪽 아래로 고원식물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서서히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오르고 또 오른다. 이곳 동네사람들이 구봉산이라고도 한다는데 봉우리가 다섯 개가 아닌 아홉 개 인가 보다.
잡풀이 묻혀 있는 헬기장을 지나 오봉산(五峰山, 455m) 정상에 도착한다. “이곳은 정상입니다”는 이정목과 표지판이 자리하고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길을 재촉한다.
437봉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서낭당흔적이 있는 옛고갯길을 지날 즈음 마중을 온 대간의님과 칸님이 반갑게 일행을 맞아준다. 공덕재로 내려선다. 오봉산에서 50분소요. 공덕재는 남양면과 화성면의 경계로 610번 지방도로가 지난다.
남양면의 예전 이름은 사양면(斜陽面)이었다 한다. 해가 기운다는 뜻의 ‘사양’이 고을 이름이 된 유래도 재미있다. 남양면에 매우 좋은 물이 나오는 우물이 있어 ‘황금우물’이란 뜻의 ‘금정리’마을이 있다.
이 우물의 물이 좋아서 백제의 왕들은 왕도 사비성(부여)에서 90리(36km)나 되는 이 금정에서 물을 길어다 마셨다 한다. 물을 짊어지고 가는 왕궁 사람들이 남양면의 온직리와 부여군 장평면 거전리 사이에 있는 고개를 넘을 때 해가 기울어서 그 고개 이름을 사양치(斜陽峙)라 했고, 이 사양치의 ‘사양’이 남양면의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러나 사양의 뜻이 지는 해로 좋지 않다 해서 1987년 이름을 남양면으로 고쳤다. 지금도 사양치 고개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다.
8시간의 산행을 종료하면서 힘든 구간을 접는 다는 생각에 행복이 밀려온다.
지난 1967년 8월22일 낮 12시40분께 충남 청양군 사양면 구봉광산 갱도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이날 붕괴 사고로 수직갱 125m 지점 제1배수구에서 갱을 수리하던 양창선(당시 36세)씨가 매몰됐다가 15일 9시간(368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출됐다. 당시로서는 매몰 사고를 겪은 뒤 생환한 경우로 세계 최장 기록이었다.
전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던 탓에 양씨는 구출된 뒤로도 오랫동안 화제를 모았고, 각 언론사도 불꽃 튀는 취재 경쟁을 벌이는 등 지금까지도 당시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고재일 청와대 민원비서관을 붕괴 현장에 급파해 구조작업을 독려하기도 했다.
한편 양씨의 최장 매몰 기록은 28년 뒤인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께 무너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15일 17시간(377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박승현(당시 19세) 양에 의해 깨졌으며, 이 사고는 몇년 뒤 극작가 윤대성의 희곡 `출세기`로 다시 태어나 1970년대 중반 연극무대에 올라 당시 우리가 처한 삶을 비극적으로 묘사했다. -중도일보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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