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상황봉
산행일시 : 2007년 12월 16일(일)
산행코스 : 대구미마을-심봉-상황봉-백운봉-업진봉-숙승봉-원불교-불목리(5시간)
호남고속도로 광산나들목~13번 국도~나주~영암~성전~2번 국도~강진~18번 국도~계라 삼거리~55번 지방도~북평~13번 국도~완도
한 뼘도 남지 않은 한 해가 점점 저물어간다. 까닭 없이 외롭고 서글퍼지는 12월. 요즈음은 섬 산행이 제격이다.
멀다. 대전에서 거의 4시간을 달려야 도착하는 곳 완도(莞島)는 해남에서 바다 건너 남쪽에 위치한다. 고금도, 약산도, 신지도, 노화도, 보길도, 청산도 등 60여개의 유인도와 140여개의 무인도가 짙푸른 남해바다에 흩어져 있다. 이 가운데 완도가 가장 큰 섬으로 군 소재지다.
요즘 섬들은 이름만 섬이지 실제로는 육지와 별 다름이 없다. 연륙교라는 게 놓여 웬만한 섬들은 국도까지 연결되기 때문이다. 완도도 마찬가지.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와 달도를 거쳐 완도군 군외면 원동리가 완도대교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완도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 청해라 부르고,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했다. 이후 완도는 일본과 당나라의 삼각 해상무역을 펼치던 중요한 요충지로 떠올랐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청해진대사 장보고의 세력 확장에 불안을 느낀 조정이 부하 염장을 시켜 장보고를 죽이고 청해진을 파한 후 신라 조정은 장보고의 추종세력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완도 주민들을 김제 땅으로 이주시키게 된다. 이 때문에 완도는 고려 공민왕 때까지 500여 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는 섬으로 남게 되었다. 장보고의 청해진 유적은 완도군 장좌리 앞 바다 장도(將島)에 남아 있다.
완도읍에서 정도리 방면 서부 지방도로를 타고 17km쯤 가면 왼편에 화흥리 대구미 마을 입구 표지석이 나온다. 화흥리 대구미 마을 입구의 표지석이 산행 출발점이다.
고산 윤선도 선생이 제주도로 귀양길에 산세가 수려함을 보고 뱃길을 돌려 가까이 와서 보니 지금 이동 뫼산이 큰 거북이와 같다 하여 大龜尾(대구미)라 했다가 글자가 획순이 많고 까다로와 후세에 대구리(大口里)로 개칭하여 부르고 있다.
마을 뒷산에 띠꽃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보이면 마을 여자들이 바람이 난다하여 마을 주변을 나무숲으로 울창하게 가꾸어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현재도 바위주변 수목을 베지 않고 있다 는 전설이 전해온다.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100m 가량 들어서면 길 왼쪽에 한국전력공사에서 세워놓은 등산안내도를 만난다. 산길은 짙은 동백 숲속으로 이어져 있다. 완도는 동백나무와 동백꽃의 고장이다. 완도읍과 군외면의 상황산 자락은 물론이고 12개 읍, 면 도서지역 골짜기와 바닷가에 없는 곳이 드물다.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면 1봉, 2봉, 3봉을 거치면서 정상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다도해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동백나무 숲 사이로 난 등로는 그다지 가파르지 않아 힘들이지 않고 산행할 수 있다. 각 봉우리는 숲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다. 넓은 암반과 바위봉우리에서 내려다보는 남쪽 화흥포와 정도리 일대의 조망이 그림엽서를 연상케 한다.
네 번째 봉우리인 쉼봉은 이 오봉 코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봉우리로 높이 30m 정도의 바위로 형성되어 있다. 고도가 높고 주변에 나무가 없어 이 일대 경관을 조망하기 좋은 전망대 역할을 한다. 옛날에 나무꾼들이 쉬어가던 장소였고, 그래서 이름도 '쉰다'는 뜻의 '쉼봉'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최근 세운 표석에는 “심봉”으로 되어 있다.
정상은 넓고 평탄한 바위지대로 여러 명이 앉아 식사를 해도 여유가 있을 정도다. 쉼봉에서 상황봉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산행기점에서 상황봉 정상까지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상황봉은 원래 상왕봉(象王峰)이었으나 일제에 의해 상황봉(象皇峰)으로 개악된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상황산(象皇山)”이라는 이름은 코끼리의 우두머리 산이라는 뜻이다.
부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의 꿈에 흰 코끼리가 태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부처를 잉태하였다고 한다. 부처님은 결국 꿈속의 코끼리 왕인 것이다. 그래서 한자로 상왕(象王)이므로 상왕봉(象王峯)은 곧 부처의 모습인 것이다.
상황봉(644.1m)은 완도 최고봉답게 백운봉(白雲烽 600m), 숙승봉(宿僧峯 435m) 등의 봉우리를 거느리고 섬 중앙에 우뚝 솟았다. 이들 봉우리 외에도 업진봉(業盡峯), 심봉 등 완도의 거대한 등줄기를 형성하는 봉우리를 합쳐 오봉산(五峯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두 개의 전망안내도가 설치되어 있고 정상표지석 오른쪽에 봉수대 흔적이 남아있다. 이곳은 다도해에 흩어져 있는 청산, 신지, 신안, 소안, 보길, 땅끝, 약산의 봉수대와 연기와 불꽃으로 서로 교신 했던 곳이다.
다도해 조망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전망안내도와 하나씩 맞추어가며 동쪽으로는 장좌리 앞 바다에 떠있는 청해진터를 품은 장도를 비롯해서 고금도, 조약도, 신지도와 그 너머로 천관산과 고흥반도까지 눈에 담는다.
신지명사십리(薪智鳴沙十里) 해수욕장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중심에 위치한 남해안 최고의 해수욕장으로 그 규모뿐만 아니라 아름다움도 매우 빼어난 곳이다. 신지도의 명사십리해수욕장은 명사(鳴沙) 즉, 모래가 운다는 뜻이다. 여름철이면 모래 우는 소리가 십리에 걸쳐 들린다 하여 『울모래등』 또는 『명사십리』로 불린다. 신지명사십리는 완도와 신지도를 잇는 신지대교가 2005.12월 14일 개통되어 육지로 탈바꿈 되었다,
▲상황산 정상에서 바라본 신지대교와 완도항
서쪽 바다 건너로는 달마산에서 도솔봉을 거쳐 땅끝으로 이어지는 산릉이 마치 누에가 기어가는 것 같다.
늦은 점심식사를 위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도시락을 펼친다. 머리 위로 봄볕 같은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는다.
상황봉을 내려서면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대야리에서 오르는 길이다. 왼쪽 백운봉으로 향한다.
내리막 길이다. 10여분을 가니 나무전망대가 나타난다, 통나무로 시설한 이곳은 완도수목원이 등산객들을 위해 설치한 시설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강진만과 다도해, 장흥의 부용산 모두가 정겨운 모습이다.
철계단을 내려서 조금 진행하자 하느재다. 하느재는 완도의 동부사람과 서부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진 고개이다. 차가 귀하던 옛날 지금 군외면의 일부지역 사람들은 모두 이길을 통해 완도와 연결이 됐던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고개마루다. 여기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완도수목원이고 우측으로 내려서면 대수골이 나온다. 백운봉은 곧장 가야한다.
계속 직진하여 백운봉으로 발길을 옮긴다. 산길이 가팔라지면서 상록수림이 서서히 벗겨지더니 수목원 제2전망대를 지나 급경사 길을 15분 정도 오르면 백운봉 정상에 닿는다. 너럭바위가 있어 쉬어가기 좋은 백운봉은 하느재에서 25분쯤 걸린다.
사방이 단애를 이룬 정상부는 거침없이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정사각형 모양의 바위에 한글로 “백운봉” 이라 적혀있다.
백운봉을 내려서서 업진봉으로 가는 길에서는 바다 건너 달마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백운봉에서 업진봉까지는 20분 거리. 업진봉 역시 널따란 암봉으로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남창과 달도가 엎어지면 닿을 듯 가깝게 보인다.
업진봉에서 북쪽 아래 사면길로 내려서 억새로 뒤덮인 헬기장을 지난다. 고압선 철탑 뒤로 백운봉의 모습이 드러난다. 정면으로는 제법 위압감을 주는 거대한 숙승봉이 앞을 가로막는다. 드라마 “해신”을 통하여 숙승봉의 아름답고 웅장한 자태가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숙승봉을 바라보며 진행한다. 숙승봉을 오르려면 가파른 바위사면을 올라야 하지만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어려움은 없다. 바위사면을 100m쯤 올라 숙승봉 정상(해발 435m)에 선다.
완도는 1천200년 전 동아시아의 드넓은 바다를 호령한 장보고의 해상왕국(청해진)이 건설됐던 곳이다. 숙승봉은 바로 이 해상왕국을 둘러싼 천연의 울타리였다. 실제로 이 봉우리에 서면 청해진(해군·무역기지) 본진이 있었던 장도는 물론, 1만여 명의 병사가 기거했던 완도와 주변의 부속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지나온 상황봉, 백운봉, 업진봉이 멋진 하늘금을 긋는다.
숙승봉은 업진봉에서 바라보면 영락없이 졸고 있는 스님의 얼굴 형상이라 해서 이름 지어진 봉우리다.
커다란 바위벽과 그 형태가 인수봉과 흡사해 좋은 암벽등반 대상지처럼 보이지만, 이 지역 산악인들이 조사해본 결과, 조금만 힘을 줘도 홀드가 쉽게 부서져내려 등반이 어렵다고 한다.
철계단을 이용하여 오른다. 150여m 높이의 바위절벽이 압권인 숙승봉에 올라 벼랑 끝에 서면 내려다보이는 완도 북쪽의 조망이 이 코스의 백미다,
'어떤 스님이 숙승봉의 토굴에서 기거하며 수도하고, 업진봉에 이르러 업을 다하고, 백운대에 이르러 흰구름을 벗 삼고 쉼봉에 이르러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숨을 쉰 다음, 상황봉에 이르러 부처가 되었다'는 풀이를 보면 상황산이 불교와 밀접하게 관련된 산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숙승봉에서 슬랩을 다시 내려서서 반대쪽 철계단을 내려서면 KBS드라마 해신의 신라방 촬영세트에 눈길이 머문다. 드라마 중반 장보고가 설평상단에 들어가 채령과 애틋한 사랑을 나누고, 무령군의 장군으로 염문이와 대결을 하는 장면이 주로 촬영된 곳이다.
동백나무 군락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터널을 뚫고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가파른 산길을 따라 30분 정도 내려서면 억새가 흐드러진 불목저수지와 만나고 곧이어 원불교소남훈련원과 완도청소년수련원 사이로 난 소로와 연결된다.
백운봉에서 업진봉과 숙승봉을 거쳐 원불교 수련원이 있는 불목리까지는 3.3km 거리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불목리 버스정류장에서 산행은 종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