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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24. 큰세개골-영신대-수곡골


 

산행일시 : 2007년 7월 8일(일)

산행코스

대성교 - 대성골 - 대성마을(민박) -작은세개골 철다리 - 큰세개골 철다리- 왼쪽산죽길 - 큰세개골 계곡산행 - 대성폭포 -  영신대 - 창불대 - 음양수 - 남부능선(낙남정맥) - 수곡골 - 대성마을(민박) - 대성교 (10시간 30분 소요)


가는 길

대전-통영간고속도로 함양분기점→88고속도로→남원요금소→19번국도→구례(하동방향)→화개→의신(대성교)


아침 7시 30분. 전주해장국집(055-782-0161)에서 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토지면소재지를 지나 화개로 향한다.


산자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가는 섬진강의 곡선미는 여정을 즐겁게 하고 강에서 낚시하는 강태공의 모습이 한가롭기만 하다.


맑은 물 흐르는 화개천을 따라 오르는 쌍계사 십리 벚꽃 길(지방도 1023호선)은 나이 든 벚꽃나무가 청초한 신록 이파리들로 초록빛 숲 터널을 만들고 의신마을로 가는 도로변에는 아담한 녹차 밭과 운치 있는 찻집이 녹차의 고장임을 말해준다.


덕평골, 큰세개골, 작은세개골, 수곡골 등, 여러 가닥의 물줄기가 모여 흐르는 화개천은 수량이 풍부하다. 세월이 만든 바위와 곳곳에 형성된 소가 화개천의 풍광에 아름다움을 더한다.

 

대성교에서 하차하여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을 하고 야영터에서 철망문을 통과하여 짙은 그늘의 공간으로 빨려들 듯 들어간다.


시계가 9시를 가리킨다. 예정보다 산행 시작이 많이 늦어졌다. 시작부터 낙엽 쌓인 옛길을 따라 오르는 가파른 길이 숨 가쁘게 한다. 플러스님이 아침 먹은 게 탈이 나 로즈마리님이 수지침으로 응급처치를 하고 후미에서 천천히 진행한다.

의신 1.2km 이정표가 서 있는 정규 탐방로와 만난다. 대성마을 민박집에 도착하자 다행스럽게도 플러스님이 상태가 좋아졌다며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성교에서 대성마을까지는 50분 남짓 걸린다. 2가구가 살고 있는 대성마을은 모두 민박(임옥순씨집 전화 055-883-0835)을 하며 대성골을 찾는 나그네들의 쉼터 역할을 한다. 평상에 걸터앉아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태정님이 건네는 막걸리 한 병을 배낭에 넣는다.


이곳부터가 1952년 1월 제3차 빨치산 토벌 작전 당시 빨치산 수백 명이 비참한 죽음을 당한 대성골이 시작된다.


이태의 저서 <남부군>을 보면 당시 토벌군은 대성골 내에 집결한 빨치산들을 능선 빙 둘러 포위한 상태에서 비행기로 기름이 담긴 드럼통들을 골짜기에 투하한 뒤 폭격을 하여 불바다를 만들었다고 한다.


민박집 뒤 쓰러진 안내판에는 질곡의 근세사가 적혀있다. 이 지역에서 퇴각하던 빨치산들은 수곡골로 올라 남부능선을 넘어 한벗샘에서 한숨 돌리고 자빠진골로 자빠져가며 퇴각했다. 그러나 자빠진골은 골짜기가 능선에 삐뚜름하게 붙어  자빠진 모양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대성주막을 막 지나면 오른쪽 계곡에 커다란 소가 하나 있다. 소를 건너면 수곡골이다. 오후에 날머리를 확인하고 계류를 건너지 않고 길을 이어간다.


대성민박집에서 약 25분. 원대성마을 갈림길에 도착한다. 원대성마을은 원래 주민들이 살고 있었으나 1968년 울진. 삼척 무장공비사건 후 마을을 폐쇄하여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직접 확인하지 못했지만 현재는 두 가구가 살고 있다고 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막걸리 한 잔으로 갈증과 허기를 달랜다. 오른쪽 길을 따라 조금 진행하면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다리를 만나는데 이곳이 작은세개골 입구이다.


작은세개골 입구를 지나 약 20여 분을 가면 다시 철다리를 만나게 된다. 이 다리가 있는 곳이 큰세개골입구이다. 휴식을 취하던 선두와 합류한다.


주변에 이름 없는 폭포가 조용한 대성골을 깨우고 있다. 조금 더 진행하여 ‘등산로 아님’ 표지판이 걸려있는 줄을 넘어 큰세개골로 들어선다.


이제부터는 계곡 자체가 등산로다. 크고 작은 폭포들의 향연이 펼쳐지며 인적이 없는 계곡에는 물소리와 매미소리만이 화음을 맞춰 귓전에 전해온다.


집채만 한 바위 사이를 거침없이 흐르던 계류는 소를 만나 잠시 쉬었다 가는 여유를 보인다. 후미 일행도 남은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잠시 쉬어가는 여유를 부린다.


흐르는 계곡물에 수시로 세수를 하고 땀을 씻어 내보지만 금방 땀으로 범벅이 된다. ‘큰세개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계곡이 넓고 깊다.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 대성골 실비단폭포(이끼폭포)가 한 동안 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끼 낀 돌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다.


10여분 진행하자 드디어 대성폭포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말로만 듣던 4단 폭포의 위용이 대단하다. 폭포의 길이가 100m를 넘는다고 한다. 중간 부분에 넓은 암반이 있고 왼쪽에 사람이 오를 수 없는 독립 암봉 위에는 분재 같은 소나무들이 자태를 뽐내며 눈길을 끈다.


길을 막아선 폭포수를 바라보며 너른 암반에 자리를 잡고 점심 도시락을 펼친다. 20분간의 그리 길지 않은 점심시간은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은 행복한 시간이다. 


영신대로 가는 길은 폭포 왼쪽으로 이어진다. 대성폭포에서 영신대까지는 약 1시간의 거리인데 계곡을 계속 따라 오른다. 고도는 높아지고 능선은 눈앞인데 생각보다 그 길은 멀다. 급경사가 영신대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영신대는 '지리산 최고의 기도처' 라고 입을 모으는 명당이라고 한다. 영신봉(1,651m) 아래 남쪽 사면의 대성계곡 본류가 발원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집채만 한 바위 아래 돌무더기로 쌓은 작은 제단에 관홍님이 손수 준비한 과일과 술로 간단하게 제를 올리고 음복을 하며 10분 정도 휴식을 취한다.


왼쪽 길은 주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20분 오르면 하늘이 열리고 시야가 탁 트이며 촛대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6-7분 진행하면 창불대에 닿는다. 옛날 영신사란 사찰이 자리했던 이곳 창불대(唱佛臺)는 부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뜻하니 곧 구도에 정진함을 이르는 말이다. 두 바위가 높이 솟았는데, 암벽이 내리꽂히면서 협곡을 이룬 형상이 황산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창불대(唱佛臺)를 올라가 보니, 깎아지른 절벽이 하도 높아서 그 아래로는 밑이 보이지 않았고, 그 위에는 초목은 없고 다만 철쭉[躑躅] 두어 떨기와 영양(羚羊)의 똥만이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서 두원곶(荳原串), 여수곶(麗水串), 섬진강(蟾津江)의 굽이굽이를 내려다보니, 산과 바다가 서로 맞닿아 더 기관(奇觀)이었다.……  " - 김종직의 유두류록에서-

른쪽으로 2-3분 진행하면 세석산장이 눈에 들어오고 영신봉 정상을 알리는 표지도 희미하게 보인다.

음양수로 내려서기 전 전망 바위에 올라서자 촛대봉을 휘감는 운무가 더욱 운치 있는 조망을 선사한다.


음양수로 내려선다.

너른 암반 바로 아래가 바로 음양수(陰陽水). 바위 아래 신기하게도 양지 음지 두 곳에서 샘물이 흘러나온다. 예부터 자식 없는 여성들이 마시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전해온다.


동서로 길게 누운 지리산 주능선과 T자를 이루며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남부능선은 낙남정맥길이라 길이 좋다.


16시 5분. 대성골로 떨어지는 갈림길에서 청계님을 비롯한 몇 분이 대성골로 하산하고 나머지 일행은 삼신봉 방향으로 계속 직진한다.


남부능선의 명물 석문(石門)을 통과한다. 능선 상에 자리 잡은 높이 10m 정도의 이 석문은 청학동으로 가는 입구라는 전설이 있다. 석문 위에는 몇 그루의 수목이 자라고 있어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전망대에 도착했지만 운무가 뒤덮여 산 아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대성골 갈림길에서 2.2km(약 50분)진행하면 비상용 이동통신중계기와 이정표가 보이고 몇 걸음 더 옮기면 오른쪽으로 탐방로 표지판이 줄에 걸려있다. 이곳이 수곡골 입구다.


                                                                                                                      [산에가자님 사진]

사람 키 높이까지 자란 산죽을 헤치며 내려서면 너덜지대와 만난다. 너덜 지대가 끝나면 왼쪽으로 계곡이 이어지고 산비탈을 가로지르며 걷기 좋은 등로가 이어진다.


수곡골은 흐르는 물소리마저 통곡소리로 들렸기에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 당시 계곡 전체는 민족상잔의 비극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대성통곡이 끊일 날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산행기를 읽은 어느 분에 의하면 수곡골이라는 이름은 옛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에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통곡소리와는 무관하다고 한다.


작은 폭포와 소들이 계속된다. 몇 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계곡으로 내려섰다 다시 등로로 올라서기를 반복한다.


남부능선 상의 수곡골 들머리에서 약 1시간 30분. 수곡폭포에 닿는다. 20m 높이에서 부채꼴로 물보라를 만들면서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휴식을 취하던 선두 일행이 일어서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족탕을 하며 휴식을 취한다. 시원한 물보라가 얼굴까지 전해온다.


조금 더 진행하여 작은 언덕을 넘자 대성골 주막이 눈에 들어온다. 계류를 건너 대성골 주막에서 막걸리 한잔으로 갈증을 달래고 대성교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서서히 어둠을 내려앉는 산길을 적막감이 감돈다.


아침에 출발한 대성교에 도착하여 10시간 30분간의 지리산 심층산행은 끝을 맺는다.

산행 안내를 해주신 곽고문님이 삼겹살 파티까지 열어 함께 한 회원들을 감동시킨다. 허여사님한테 조니워커블루라벨(1리터)을 선물 받은 꼬마산적 덕분에 귀한 술맛에 취하고 정에 취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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