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리산

22. 칠선계곡

산행일시 : 2007년 6월 17일(일)

산행코스 : 지리산 칠선계곡(추성리-선녀탕-옥녀탕-비선담-추성리)

 

'산에 같이가자' 고 조르다시피 해도 안 따라나서던 아내가 웬일로 이번 지리산 칠선계곡 산행에 같이 가겠다고 하여 함께 집을 나선다.  

 

아침 6시 10분. 종찬님 부부와 경화님 그리고 우리 부부를 태운 나의 애마는 지리산을 향해 출발한다. 안영톨게이트로 들어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달린다. 함양휴게소에서 정차하여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함양분기점에서 88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지리산톨게이트로 빠져나간다. 직진하여 갈림길에서 인월방면으로 진행하다  60번 지방도로로 접어들어 칠선계곡이정표를 따라간다. 추성리에 도착한 시간은 8시40분.

 

칠선계곡은 설악산의 천불동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함께 한국 3대 계곡의 하나로 꼽힌다. 지리산의 원시림에 7개의 폭포수와 33개의 소(沼)가 천왕봉에서 칠선폭포를 거쳐 의평마을까지 장장18㎞에 걸쳐 이어진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골이 깊고 험해 죽음의 골짜기로도 불린다. 총연장 18㎞ 가운데 추성마을에서 천왕봉까지의 14km 정도가 등반코스다.

 

심산유곡을 자랑하던 이곳은 그러나 최근에 곳곳에 철사다리가 가설되고 등산로도 뚜렷해져 일반 등산객도 많이 찾는 골짜기가 되었다. 


추성리 마을 골목을 지나면 예쁜 건물이 눈길을 끈다. 추성 시인의 마을(예전 매표소)을 통과하여 인조석을 깔아 정비한 돌길을 따라 오르막을 오른다.  언덕에 올라서면 두지동이 눈에 들어온다. 이른 시간이어서 인적이 거의 없다. 걷기 좋은 호젓한 산길을 전세 내다 시피 하여 10여분 걸으면 두지동(두지터)에 닿는다.


두지터란 이름은 이곳 지형이 쌀뒤주를 닮았다고 하여 부른다고도 하나, 옛날 가락국 어느 임금이 국골에서 진을 치고 있을 때 식량창고로 이용한데서 유래한다는 설이 유력하다. 지금도 이곳에선 불에 탄 쌀이 발견된다고 한다.


이 일대의 지명과 관련된 야사가 여러 가지 전해온다. 추성리 주위로는 신라가 가락국을 침범할 때 양왕이 군마를 이끌고 이곳에 들어와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피난처로 이용했다는 성터가 남아 있는 '성안' 마을이 있고, 칠선계곡 옆으로 양왕이 진을 쳤다는 '국(國)골'이 있다. 국골 옆의 어름터는 석빙고로 쓰였다고 한다.

 

두지교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울창한 잡목 숲을 따라 조금 더 진행하면 계곡을 가로지른 출렁다리를 건너고  7-8분 정도 오르면 칠선동 마을터에 도착한다. 곧이어 전망이 좋아 쉼터로 안성맞춤인 넓은 바위를 만나는데 추성 망바위이다. 

 

"추성 2.9km 두지동 1.6km 선녀탕 0.5km" 이정표가 서 있는 고개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계속해서 하늘을 가린 숲길을 한동안 오르내리면 선녀탕에 도착한다.

 

선녀탕에는 일곱 선녀와 곰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즐기던 일곱 선녀의 옷을 훔친 곰은 옷을 바위 틈 나뭇가지에 숨겨 놓는다는 것을 잘못해서 사향노루의 뿔에 걸쳐 놓아 버렸다. 선녀들이 옷을 찾아 헤매는 것을 본 사향노루는 자기 뿔에 걸려 있던 옷을 가져다 주었다. 이에 선녀들은 옷을 입고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었고, 그후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노루는 칠선계곡에서 살게 해 주고 곰은 이웃의 국골로 내쫓았다고 한다.

 

선녀탕을 지나면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옥녀탕이 나온다. 수심 3∼4m, 넓이 100여 평 남짓한 옥녀탕은 칠선계곡에서 가장 넓고 빼어난 소(沼)이다. 이곳에는 넓적한 반석도 있어 휴식하기에 적당하다.

 

계곡 오른쪽에 설치된 목재교량을 따라 걷는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비선교를 건너 계곡을 흐르는 시원한 물소리를 벗삼아 여유로운 발걸음을 옮긴다. 울창한 원시림은 하늘을 덮고 깊은 계곡에는 심연과 폭포, 절벽의 연속이다. 벼랑을 오르면 비선담이 나온다.

 

2008년 개방을 앞두고 공단 측에서 선녀탕, 옥녀탕, 비선담까지 안전시설(목재 교량) 및 보완 공사를 해 놓았지만 개방이 될지는 미지수다. 이곳은 야생곰과 노루, 삵 등 대형 야생 포유류의 최후 근거지이자, 다양한 고산 희귀 식물종이 사는 '한국 토착 동식물의 씨앗 저장고'라는 이유로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들이 개방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부터 천왕봉까지는 출입통제구간이다. 비선담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옥녀탕으로 향한다. 옥녀탕 옆 너른 암반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아내와 경화님이 손을 흔든다. 점심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한다. 단체 산행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오더니  담배를 피워 공기를 오염시킨다. 산에 왜 왔는지.. 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떠났던 산행에서 사람 때문에 가끔 얼굴을 찌푸리는 일이 있다. 그냥 웃는다. 호시탐탐 노리는 산행객들에게 명당자리를 내어주고 올라왔던 길을 따라 추성리로 되돌아간다.

 

벽송사 서암정사로 향한다.

벽송사는 지리산 빨치산들이 야전병원으로 쓰던 곳으로, 수백 명의 빨치산들이 그곳에서 죽어갔다. 원응 스님은 폐허가 된 산사에서 어둠의 역사를 위로하는 특별한 구도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원응 스님은 화엄경의 세계를 바위에 새겨 넣어 국내 유일의 자연석굴인 '서암정사'가 완성되었다.  

 

사찰 입구에 불교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대방광문 앞에는 바위에 조각된 사천왕상이 지킨다. 대방광문을 지나 도량 안으로 들어서면 석굴법당이 있다. 신발을 벗고 법당 안으로 들어서면 아미타여래가 주불이 되어 온갖 돌조각으로 극락세계를 형상화한 화려한 벽면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모두 자연의 암반에다 굴을 파고 조각을 함으로써 불교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건축학적으로도 특이한 기법을 보이고 있어 학계에서도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함양으로 가기 위해 오도재를 넘는다. 

오도재의 유래

오도재는 광양, 하동지역의 소금과 해산물을 운송하는 중요 관문으로, 예전 내륙지방 사람들이 남해안쪽 사람들과 물물교환을 하고자 지리산 장터목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했던 고개였다고 한다.


가야 마지막 왕이 은거 피신하실 때 중요한 망루였고, 임란 당시는 서산, 사명, 청매 등 승군이 머물렀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점필재 김종직, 김일손, 유호인, 정여창 등 시인 묵객이 지리산 가는 길에 잠시 땀을 식힌 곳이다.

 

변강쇠와 옹녀가 지리산으로 들어갈 때 올랐다는 전설의 고갯길 오도재에는 지리산전망공원이 있다. 각자 취향대로 고른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정자에 올라 조망안내도를 따라 하봉, 중봉, 천왕봉, 벽소령, 형제봉, 반야봉 등 지리산 주능선을 따라 시선을 돌린다. 지리산이 한눈에 잡힌다. 

 

지리산제일문을 지나 급경사 커브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마치 먹이를 포착한 뱀이 재빠르게 움직이는 듯한 급커브길 지안재. 그러나 이 길은 속도와의 경쟁을 불허한다. 이유는 바로 길의 모습 때문. 생긴 모양이 마치 뱀이 기어가는 듯하다. 길은 지난 2003년 11월 30일 새로 개통됐다. 그 옛날 사람들이 괴나리봇짐을 지고 울고 넘었던 험한 길이 자동차로도 쉽게 다닐 수 있는 길로 바뀐 것이다. 이 길은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뽑히기도 했다.


함양톨게이트로 진입하여 대전으로 향한다. 덕유산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하고 북대전톨게이트로 빠져나간다. 살얼음 동동 띄운 청석골칡냉면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sda 둔산학원교회 6월 정기 산행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