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 2007년 6월 23일(토)
산행코스 : 반선-뱀사골-제승대-이끼폭포-묘향대-무명암자-폭포수골-뱀사골-간장소-반선
지리산은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의 3개도에 걸쳐있으며 남원시, 구례군, 함양군, 산청군, 하동군을 거느린 우리나라 최대의 명산으로 1967년 우리나라 처음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골짜기만 무려 99개로 지리 99라 부른다. 오늘도 지리산 골짜기를 찾는 심층산행을 위해 새벽 단잠의 유혹을 뿌리친다.
새벽 3시 30분. 배낭을 챙겨 조용히 집을 나선다. 머털님을 태우고 약속장소에 도착했지만 타잔님의 늦잠 때문에 예정보다 40여분 늦게 남대전톨게이트로 들어선다. 전경버스 3대가 톨게이트 입구를 막고 FTA 시위에 대비하고 있다.
덕유산휴게소를 지나자 녹음이 짙은 산허리를 휘감은 운해가 장관이다. 함양분기점에서 88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지리산톨게이트로 빠져나가 인월방향으로 진행하다 60번 지방도로로 접어든다. 산내면소재지 직전 갈림길에서 뱀사골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하여 861번 지방도로를 따라간다. 왼쪽은 실상사를 지나 마천면 추성리 칠선계곡 가는 길이다.
남대전에서 1시간 30분 만에 남원시 산내면 반선에 도착한다. 반선(半仙)은 반은 신선이 된다는 의미일 텐데 새벽에 이곳에 오니 신선이 된 느낌이다.
일출산채식당(063-626-5071 이춘식)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몇 가지 산채나물과 시원한 맛의 된장찌개는 딱 내 입맛이다. 밥 한공기를 게눈 감추듯 해치우자 주인 아저씨가 자판기 커피를 주신다. 커피향이 좋다.
예전 매표소를 통과하여 석실(빨치산이 신문과 기관지를 인쇄하던 장소)을 지나 용이 머리를 흔들며 승천하는 모습과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요룡대(搖龍臺)에 하차한다. 반선 2.2km 뱀사골대피소 6.8km 이정표가 서 있다.
와운교 건너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는 와운마을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뱀사골길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시설이 낡고 이용객이 적은 데다 계곡을 오염시킬 우려가 있어 지난 3월에 뱀사골대피소를 폐쇄했는데 이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반야봉, 삼도봉, 토끼봉, 명선봉 사이의 울창한 원시림 지대에서 발원된 물줄기가 기암괴석을 감돌아 흐르면서 절경을 일구어 놓은 뱀사골은 길이만 9km(반선-화개재)로, 지리산 골짜기 중에서 가장 깊고 계곡미 또한 장관이다.
뱀이 죽은 골짜기라 하여 뱀사골이라 불리지만 전설이고, 배암사(背岩寺)라는 사찰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배암사는 석실 조금 못 미친 곳에서 보이는 맞은편 산기슭 위에 있던 절로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려 흔적조차 없다.
6시 50분. 산행들머리로 들어서자 계곡을 따라 흐르는 장쾌한 물줄기가 나그네들을 압도한다. 5-6분 정도 진행하면 탁용소와 만난다. 큰 뱀이 목욕을 한 후 허물을 벗고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다 암반 위에 떨어진 곳으로, 100여m 되는 자국 위로 흐르는 물줄기가 용의 승천하는 모습과 같다하여 탁용소(濯龍沼)라 부른다.
요룡대, 탁용소, 병소, 제승대, 간장소 등 등 물길이 담을 이루고 멈춰 선 곳마다 전설이 가득하다.
금포교를 건너 10여 분 진행하면 용이 못된 이무기가 살던 곳이라는 뱀소와, 모양이 마치 병과 같다하여 이름 붙여진 병소(甁沼)가 나타난다.
반야교, 금포교, 병풍교, 천정이 아치형인 명선교, 옥류교(玉流橋), 대응교, 재승교등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이름이다.
병풍 같은 바위 사이에 물이 흘러내리는 병풍소도 절경이지만 곧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제승대(祭僧臺)는 오랫동안 걸음을 멈추게 한다. 1300여 년 전 송림사 고승인 정진 스님이 불자의 애환과 시름을 대신하여 제를 올렸던 장소라고 한다.
계곡 왼쪽에 붙은 긴 다리를 지난다. 매끄러운 바위와 푸른 소(沼)들은 물길이 만들어낸 예술작품이다.
재승교(再承橋)를 건너 7-8분 진행하면 오른쪽으로 출입을 금지하는 표지판(잠깐! 자연도 조용히 쉬고 싶어 합니다.)이 눈에 띤다. 이끼폭포로 가는 초입이다. 산행들머리에서 약 1시간.
이끼폭포가 있는 계곡은 마천 사람들이 함지박을 만들던 곳이라 ‘마천함박골’ 이라 부른다.
30분 동안 작은 폭포들을 감상하며 인적이 거의 없는 산길을 따라가면 사진으로만 보던 이끼폭포와 만난다. 물이 적어 사진으로 보는 것 보다 못하다. 배낭을 벗어놓고 카메라에 이끼폭포의 모습을 담는다. 이끼폭포에 가려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왼쪽에 멋진 폭포가 또 하나 있다. 바위가 미끄러워 시혁님이 물에 빠졌지만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간식을 먹으며 15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묘향대로 향한다. 차례대로 모습을 드러내는 폭포들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뒤에 쳐진 일행들을 위해 천천히 진행한다. 이름 모르는 식물이 커다란 바위를 뒤덮고 있는데 동행한 지설님 설명에 의하면 이름이 석이치(?)로 정력에 좋다고 한다. 위험구간에서 후미가 지체된다.
돌탑을 지나서 2분 정도 진행하면 묘향대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화엄사의 말사에 해당하며 한국 불교의 마지막 전설로 뱀사골을 모두 발아래 두고 멀리 천왕봉이 눈에 들어오는 장대한 풍광을 간직한 절집 묘향대(妙香臺)는 수도처답게 해발 1500m 지리산 깊숙한 곳에 위치한다. 설악산 봉정암이 1224m이니 묘향대는 남한에서 현존하는 사찰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지리산에서 가장 기가 센 곳 중의 하나이며 기도발이 좋다고 전해온다.
1970년대 초반 화엄사의 도광 스님이 토굴이었던 암자를 절집 모습으로 가꾸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수도승들이 토굴을 파고 기거하면서 수양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토굴대신 깊은 산중에 한 칸의 암자를 지어 수행하게 되었는데 불가에서는 암자와 구분하여 대(臺)라 칭한다.
대에 대부분 바위가 있는 것은 바위가 기가 모이는 힘이 대단하여 기도의 효험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절집 왼편 커다란 바위벽 아래 석간수로 목을 축이고 빈 물통을 가득 채운 다음 천왕봉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한다. 토끼봉을 휘감은 운해가 신비로움을 더한다. 후미가 늦어진다.
후미가 도착하는 것을 보고 중봉 아래 어딘가 있다는 무명암자를 찾아 걸음을 옮긴다. 이때부터 후미와 헤어져 다른 산행을 하게 된다.
중봉으로 오르는 길에 뚜렷한 삼거리(고도 1620m 지점)에서 왼쪽으로 들어선다. 간간히 보이는 표지리본을 따라 희미한 길을 헤쳐 나가면 바위굴에 작은 기도터가 보이고 약 5-6분 더 진행하면 무명 암자에 도착한다. 암자라기 보단 누군가 기도하기 위해 지은 토담집으로 겨울철 지리산 산꾼들의 비박 장소로 이용된다고 한다.
산라일락이 진한 꽃향기를 전해주고 천삼이 군락을 이룬다. 인터넷 검색에 의하면 ‘땃두릅’이라 불리는 천삼은 해발 100고지 이상에서 자생하며 잎이 다섯 개로 갈라져 천삼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줄기에 잔가시가 많아 수신토종오가피라는 이름도 얻었지만 삼도 아니요 오가피도 아니라고 한다. 확인된 성분과 효능은 없지만 항암효과가 뛰어나고 노화방지나 성인병에 좋다고 알려졌으며 예부터 맛과 향이 뛰어나 귀한 산나물로 취급받아 왔다고 한다.
30여분 정도 진행하면 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 중봉 올라가는 길과 왼쪽으로 폭포수골이 갈라지는 곳에서 잠시 후미와 통화를 하고 폭포수골로 내려선다.
묘향대 아래 큰 사거리 안부에 도착한다. 오른쪽은 화개재 가는 길이고 왼쪽은 묘향대 석간수쪽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그대로 직진하여 폭포수골로 내려선다. 길은 매우 가파르고 험하다.
폭포가 많아 이름 붙여진 폭포수골은 명성에 걸맞게 폭포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서너 개의 폭포를 지나 와폭에서 표지기의 안내를 받으며 오른쪽으로 치고 오르니 커다란 바위 아래 구멍이 보이며 반야비트가 그 신비한 모습을 드러낸다.
지리산은 6.25직후 1955년 5월 빨치산이 완전 섬멸되기 전까지 남로당의 전북 전남 경남 도당과 통신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이곳은 빨치산 전남 도당 위원장 박영발을 비롯하여 여비서, 무전사, 주치의 등 8명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보급투쟁으로 이곳을 수시로 출입하다 후에 전향한 박남진옹의 증언에 의해 이 비트가 알려졌다고 한다.
입구에는 병바닥에 별이 그려진 낯선 맥주병이 궁금증을 더한다. 비트로 올라설 수 있게 나무 사다리가 놓여있다.
전에 알지 못했던 사실들과 풍경들을 받아들이며 마냥 신기하고 행복하다.
14시 정각. 흐르는 계곡물에 세수를 하고 바위에 걸터앉아 간단하게 늦은 점심식사를 마친다. 식사가 끝날 즈음 날이 흐려지면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걸음을 재촉한다. 계곡을 이리저리 건너다니며 이어지던 길을 놓쳤다. 이제부터는 빨치산 산행이다.
긴 암반 위로 흐르는 물줄기와 포말음을 토해내는 작은 폭포들이 장관이다. 암반을 따라 이어지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만들어진 인공미가 아니라 원시 자연미를 한껏 뽐낸다.
쌍폭에서 다시 계곡을 따라 내려선다. 비에 젖은 돌이 미끄럽다. 최대한 몸을 낮추고 조심조심 내려선다. 사고는 한순간이므로 항상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빗줄기가 굵어진다. 배낭커버를 씌우고 우비를 입는다.
폭포수골은 유유교에서 뱀사골과 합수 될 때까지 길게 이어지지만 수많은 폭포들이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게 한다.
빨치산 산행을 한지 약 1시간. 반선 7.2km 이정표가 서 있는 지점에서 뱀사골 등산로와 만난다.
약 7분 정도 내려서면 간장소다. 옛날 보부상들이 하동에서 화개재로 넘어오다가 이 소에 빠져 소금이 녹았다하고 그 빛이 간장 빛과 같다하여 간장소라 부른다.
재승교부터 반선까지는 아침에 걸어 온 길이다. 어느덧 비가 그쳤다. 병풍교에서 헤어졌던 일행과 반가운 조우를 한다.
오후 4시 20분 와운교에 도착하여 9시간 30분간의 산행은 무사히 끝이 난다. 차에 오르자 다시 세찬 빗줄기가 차창을 때린다.
일출식당에서 묵무침과 산채나물 안주 삼아 맥주로 건배하고 대전으로 향한다.
함양으로 가기 위해 오도재를 넘는다. 변강쇠와 옹녀가 지리산으로 들어갈 때 올랐다는 전설의 고갯길 오도재에는 지리산전망공원이 있다. 이곳에서는 지리산이 한눈에 잡힌다. 조망안내도를 따라 하봉, 중봉, 천왕봉, 백소령, 형제봉, 반야봉 등이 저마다 위용을 가슴에 담아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지리산전망공원인데 안타깝게도 운무로 시야가 가려 다음을 기약한다.
마치 먹이를 포착한 뱀이 재빠르게 움직이는 듯한 급커브길 지안재. 그러나 이 길은 속도와의 경쟁을 불허한다. 이유는 바로 길의 모습 때문. 생긴 모양이 마치 뱀이 기어가는 듯하다. 길은 지난 2003년 11월 30일 새로 개통됐다. 그 옛날 사람들이 괴나리봇짐을 지고 울고 넘었던 험한 길이 자동차로도 쉽게 다닐 수 있는 길로 바뀐 것이다.
지안재의 매력은 밤에 더욱 발한다. 자동차 불빛이 그려내는 궤적이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면 황홀할 지경이다. 지안재의 교통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보통 10분에 한두 대가 지날까 말까 할 정도. 그래서 야경을 담는 일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지안재 정상에서 함양 방향으로 내려가는 차의 불빛은 노랗고 마천 방향으로 올라오는 차의 불빛은 빨갛다. 그 두 가지 색깔의 불빛이 서로 교차하면서 지안재의 야경은 완성된다.
여행이 남기는 무형의 재산이 있다면 아마도 고생스러웠던 장면들을 기쁨에 찬 장면으로 치환해서 간직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지리산 심층산행은 오랫동안 추억의 창고에서 숙성될 것이다. 산행 안내해 주신 한지설님과 산삼해님 감사드립니다. 함께 동행한 타잔님, 머털님 그리고 시혁님과 유앤미님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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