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적건 많건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꿈을 이루기 위해서 산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알뜰한 꿈을 가지고 키우는 삶은 아름답다.
세월은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삶을 충실하게 산 사람들에게 행복의 열매를 주는 데 그리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2007년 1월 25일부터 1월 29일까지 4박 5일 동안 아들(중2)과 동행하여 중국 산동성의 성도인 제남, 중국 5악 중 동악인 태산, 공자의 고향 곡부, 맹자의 고향 추성을 둘러보는 여행을 하였습니다.
여행 중 설레던 가슴이 서서히 제자리로 찾는 시간, 가장 가슴에 남는 건 미련입니다.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깝게 놓쳐 버린 시간에 대한, 그리고 보고도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이 글은 여행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추억을 오랫동안 남기기 위하여 여행 중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기억이 마르기 전에 더듬어가며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일기형식으로 쓴 것입니다.
사진을 찍느라 가이드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한 부분은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얻었습니다. 혹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꼬리글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07년 1월 25일 (목)
아침 6시.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도 않은 시각.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사랑하는 아들과 집을 나선다. 북경, 장가계, 황산, 백두산, 철차산에 이어 이번이 여섯 번째 중국여행으로 아들과는 두 번째 동행이다.
6시 10분. 버스 타는 곳에 도착하자 귀연의 산삼해 고문님이 커다란 배낭을 메고 반갑게 맞아준다. 인천공항까지 우리를 태워 줄 버스가 도착하고 이번 여행을 주관하는 일출트레킹의 회장님과 이재선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버스에 올랐다. 이번 여행은 송촌중학교 16분의 선생님들을 비롯하여 모두 30명이 함께 한다. 약간의 흥분과 설렘 속에 버스는 인천공항을 향해 달린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동 한 그릇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3시간이 지나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큰 여행용 가방을 붙이고 탑승권을 받아 출국수속을 받았다. 입출국카드 작성은 없어졌으나 테러의 위협 때문에 예전보다 보안검색은 훨씬 강화되었다. 두꺼운 점퍼나 등산화는 벗고 검색대를 지나야했다.
11시 25분에 37번 게이트에서 제남으로 가는 산동항공(SDA) 4096기에 탑승하기로 되어 있던 것이 제남 공항의 일기관계로 50여분이 지연되었고 게이트도 35번으로 변경되어 탑승이 시작되었다.
12시 40분. 드디어 인천공항을 이륙한다. 얼마 후 빵과 과자 그리고 소시지 조각으로 구성된 기내식이 제공된다.
현지시각 13시 30분(중국과의 시차는 -1시간). 약 2시간의 비행을 한 여객기는 제남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하였다. 일행 중 탁송한 여행용 가방이 파손되어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항공사에서 교환하느라 약간 지체된다. 여행 중 항공사의 실수로 탁송한 물품이 파손되면 변상해 준다는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현지기온은 섭씨 3도로 그리 춥지는 않았지만 뿌연 날씨와 타국의 낯섦 때문에 약간 을씨년스럽다. 이번 여행의 가이드는 이름이 남용천으로 연변출신의 조선족 총각이 맡았다. 기사는 40대 초반의 당씨.
버스는 제청(제남-청도간)고속도로를 타고 제남시로 향한다. 길가에 가로수는 제남시의 상징 나무인 버드나무가 늘어져 있고, 겨울 들판은 돋아난 밀 새싹으로 녹색의 물결이다.
현재 중국의 행정구역은 대만성을 포함하여 23개의 성(省)과 5개의 자치구(自治區), 4개의 직할시(直轄市), 2개의 특별행정구가 있다.
[산동성 개략]
북위 34도-38도 사이(우리나라 중부이남 지방과 동일한 위도 상에 위치)에 있으며 북으로 하북성, 서로 하남성, 남으로 안휘성 및 강소성과 인접하고 있다. 중국 전체 면적의 1.6%를 차지하고 있으며, 남한의 대략 1.5배에 달한다.
산동성은 하천과 호수가 많은 지역으로 길이가 100km 이상인 강이 18개로서 내륙 운수가 발달되어 있다. 산동성의 기후는 난온대 계절풍 기후에 속하며 사계절이 분명하다. 봄은 건조한 편이며 바람이심하고 여름에는 고온 다습하고 가을에는 맑은 날이 많은 편이며 겨울에는 한냉 건조하여 한국과 비슷한 기후이다.
지리적 위치는 황하 하류를 중심으로 동쪽은 바다로서 한반도 서해안을 마주보고 있으며, 서쪽은 내륙지방과 맞닿아 있어 반도와 내륙이 반반씩 자리 잡고 있고, 동쪽의 반도부분은 황해와 발해만 사이에 돌출된 형상이다.
산동과 한국 간의 교통조건은 전국에서 가장 좋으며, 현재 제남, 청도, 연대와 한국의 서울, 부산, 대구는 항공편을 개통하여 운행하고 있으며, 청도, 연대, 위해와 한국의 부산, 인천, 군산, 평택은 해상 항로를 개통하여 운행하고 있다.
산동성은 우측 황해와 접하고 있는 위해부터 내륙으로 연대, 청도, 유방, 일조, 동영, 치박, 임기, 내무, 빈주, 제남, 태안, 조장, 제녕, 덕주, 요성, 하택 등 17개 도시로 구획되어 있으며 성도(省都)는 제남이다.
여기서 잠깐 산동의 약사의 살펴보면,
서주(西周) 시대 (기원전 11세기~기원전 771년)
약 40여개 제후국이 있었으며, 그 중 제(霽)나라와 노(魯)나라는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중국 고대 중국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노(魯)나라는 주공에게 봉한 제후국으로 곡부(曲阜)에 도읍을 정하였으며, 제(霽)나라는 강태공에게 봉한 제후국으로 임치(臨淄)에 도읍을 정하였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 (기원전 770년~기원전 221년)
제나라와 노나라를 중심으로 여러 제후국이 공존하여 오다가 전국시대 말기 노나라가 초나라에 의해 멸망되고 제나라의 세력이 강화되었고, 제자백가(諸子百家)중 공자, 맹자, 손자, 묵자, 관자 등이 산동성 출신이다.
진(秦)시대 (기원전 221년~기원전 207년)
제나라도 진시황에 의해 멸망되고 중국이 통일된다.
한(漢)시대부터 북송(北宋)이전 (기원전 26~1127년)
이때까지도 산동성은 독립적인 행정구역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금대(金代) (1115년~1234년)
전국이 19개로(路)분할되어 산동동로(山東東路)와 산동서로(山東西路)가 설치되면서 산동성이 최초로 행정구역으로서 인정받는다.
560만의 인구를 가진 제남(濟南, 지난)은 3000년의 유규한 역사를 가진 산동성의 성도로써 산동성 중서부에 위치해 있으며, 남쪽에는 태산, 북쪽에는 황하가 있다. 면적은 서울의 13배 정도이며 산동성의 정치,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이다.
제남은 봄에는 건조하고 비가 적으며, 여름에는 무덥고 비가 많다. 가을에는 날씨가 맑고 서늘하며, 겨울에는 춥고 건조하다. 중경, 남경, 무안과 더불어 중국 4대 화로(火爐-무더워 붙어진 별칭)에 속할 정도로 여름에는 찜통더위로 유명하다고 한다.
제남은 전통과 현대적인 면이 잘 융합된 도시로써, 시내의 고층 빌딩 속에서도 여전히 옛 제남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그윽하고 한적한 골목이 있는가하면 혼잡한 번화가도 갖추고 있다.
황태(黃台)호텔 식당에서 중국식으로 제공된 점심식사는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산동성은 一水, 一山, 一聖으로 유명한 도시다. 일수는 황하, 일산은 태산, 일성은 공자를 일컫는다.
점심식사 후 맨 먼저 고대문명의 발상지, 황하(黃河 : 황허)를 찾았다.
양쯔강에 이어 중국에서 2번째로 큰 강인 황하는 중국 북부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강으로 총 길이가 장장 5,464km이며 칭하이성(靑海省) 바옌카라산맥(巴顔喀拉山脈)의 야허라다쩌산(雅合拉達澤山: 5,442m)에서 발원하여 사천성․감숙성․영하회족자치구․내몽고․산서성․섬서성․하남성․산동성 등의 9개의 성과 자치구를 거쳐 마지막에 발해(渤海灣 보하이만)로 흘러 들어간다.
황하강 중․하류는 중국문명의 발상지로서 중화민족의 요람이라고 불린다. 유역에는 산시성 란톈현(藍田縣)에서 발견된 란톈원인(藍田原人)의 유적을 비롯한 채도(彩陶)․흑도기(黑陶期)와 은(殷)나라의 유물이 다량으로 발견되었고 그 밖에 역대 왕조의 사적도 무수히 남아 있다.
중국 지형은 서고동저의 형태로 동부지역의 평원은 수로가 지면보다 높아 매년 홍수의 위험 속에 있다. 과거 3,000년 동안 범람과 제방의 파괴는 1,500회 이상, 물길(河道)의 변천은 26회에 이르고, 특히 큰 하도 변화도 9회나 되어 그 피해가 막대하였다. 그러나 이곳은 토지가 비옥하고 풍부한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다.
길이 2.5km의 황하대교(통행료를 징수한다)를 버스로 왕복하면서 차창을 통해 구경한다. 황하는 이름 그대로 누렇다. 일찍이 ‘십년구한(十年九旱: 10년 중 9년은 가물다)’이라고 할 정도로 물과 가뭄의 피해가 격심하였는데 5년 전부터 계속된 가뭄으로 수량이 많이 줄어 명성에 걸맞지 않는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자동차 번호판을 보면 맨 앞에 산동성을 뜻하는 한자 魯(노)가 표기되어 있고 그다음에 영어 알파벳이 붙어있다. 서주 시대와 춘추전국시기(기원전770년-기원전221년)에 가장 큰 분봉국인 제나라와 노나라는 현재의 산동 지역에 있었다.
제․노 두 나라의 경제, 문화, 정치의 발달은 중국 역사상 커다란 영향을 끼쳐, 산동을 “제노”라고 일컫게 되었고 ‘노’라는 글자가 산동성의 약칭이 되었다. 알파벳은 도시의 규모를 나타낸다. A는 산동성에서 제일 큰 도시, 즉 성도인 제남시를 의미하고, B는 두 번째 큰 도시인 청도시를, C는 3번째 큰 도시인 치박시를 의미한다고 한다. 태안이 H, 제녕이 J로 제녕시에 속하는 곡부와 추성은 J를 사용한다.
제남은 자연 경치가 매우 아름답고, 샘이 많아 ‘샘의 도시’라고 할 정도이다. 도시 전역에는 크고 작은 72개의 샘이 있으며, 그중 포돌천은 세계 제일의 샘물이라고 일컫는 정도로 유명하다.
대명호(大明湖)를 찾았다.
제남 구성(久城)의 북쪽에 넓게 펼쳐져 있는 대명호는 시내의 많은 샘물들이 유입되어 이루어진 넓은 호수인데, 깊이는 약 5~6m이고 지금도 곳곳에서 샘이 솟는다. 주변에 공원을 형성해 시민들의 쉼터로 사용되고 있다. 청나라의 한 시인은 '사면의 연꽃에 삼면의 버들이요, 한성의 산색에 반성의 호수로다' 라고 묘사했다.
전설에 따르면 고대 대명사라는 절의 화상이 여자를 겁탈하자 갑자기 천지가 진동을 하면서 땅이 갈라지고 대명사가 가라앉았는데, 그 자리에 물이 채워져 호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곳을 방문한 모택동의 친필 글씨가 눈길을 끈다.
둘레가 약 5km인 호수에서는 뱃놀이도 할 수 있으며, 호반에는 이백(李白)이나 두보(杜甫) 같은 시인이 술을 마시며 시를 읊었다고 하는 역하정(歷下亭)과 북급각(北扱閣)이 있고, 구곡정과 창랑정 등도 만들어져 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깨끗한 샘물의 공원 표돌천(趵突泉)이다.
72개의 샘 가운데 가장 유명한 샘으로 춘추전국시대에는 녹수라고 불러 옛날부터 천하 제일천이라고 불렸던 곳이다. 송(宋)나라 때 세워진 녹원당의 남쪽에 있는 것은 지금도 매초 1,600리터의 샘물이 솟아나온다. 청대의 건륭황제가 강남으로 왔을 때도 이곳의 물을 즐겼다고 한다. 표돌천의 수온은 약 15~20℃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동전을 넣어서 그 넣은 동전의 뜸과 가라앉음으로 점을 치기도 하는 수옥천(漱玉泉)과 그 외의 마포천 등 16개의 샘은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하여 키우는 관상어의 사료 때문에 더럽다. 명․청 때의 고건축물, 화랑 등이 아기자기한 공원의 모습은 매우 편안한 느낌이 든다.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자 물에 비추는 조명이 아름답다.
제청고속도로를 타고 유명한 도자기의 도시이며, 실크의 고향인 치박시로 향한다.
제남에서 동쪽으로 약 110km 떨어진 곳에 있는 인구 120만의 작은 도시인 치박시(淄博市)는 공업도시이며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치박시 임치구(臨淄區)는 제나라의 옛 도읍지였으며, 국가급 역사․문화 도시로 동주 때의 순마갱과 고차박물관이 있다.
제청고속도로를 타고 2시간을 달려 치박시 임치구에 있는 제도호텔(齊都大酒店)에 도착하여 첫날 여정을 풀고 곧바로 저녁식사를 한다. 밥과 양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두부, 청경채볶음 등 음식은 한국사람 입맛에도 잘 맞는다. 맨 마지막은 탕이 제공된다.
산동성은 한반도와 인연이 많은 곳으로 현재 한국에 들어온 화교의 대부분이 산동성 사람이며 한국인들이 먹는 중국음식 가운데도 산동 음식이 많다.
저녁 식사 후 동행한 귀연식구들과 호텔 인근의 작은 식당에서 중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칭다오(청도) 맥주(600mL 한 병에 5위엔-6위엔 정도)를 마시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중국어로 된 메뉴판을 보고 땅콩인줄 알고 시킨 토두(土豆)는 감자를 채 썰어 기름에 살짝 볶은 것(한 접시 4위엔으로 한국 돈 약 500원)인데 그런대로 맛이 있었다. 다음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땅콩은 화생(化生)이었다. 여행의 첫날밤은 그렇게 무르익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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