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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중국 철차산

12월 3일(일) 셋째 날.
어젯밤 호텔로 돌아와 샤워 후 새벽 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는데 모닝콜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
세수를 하고 혼자 산책을 나섰다. 눈발이 흩날리는 숙소 근처 바닷가는 아직 먼 통이 트기 전이라 조용하고, 어젯밤 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던 이태원꼬치구이점은 문이 굳게 닫혀있다.
아침식사는 호텔에서 간단한 뷔페로 제공되었는데 계란후라이와 꽃빵으로 허기만 속이고 버스에 올라 철차산으로 이동한다.
 
철차산(청량정 鐵差山 539.8m)
철차산은 영성시 남부 황해 해안가에 있으며 주봉인 청량정(淸凉頂)은 해발 539.8m이다.
 
청량정을 비롯하여 다엽정(茶葉頂), 봉황정(鳳凰頂), 향로정(香爐頂), 대도정(大刀頂), 홍화정(紅花頂), 용정정(龍井頂), 낭호정(狼虎頂), 탁자정( 子頂)등 9개 산봉우리들이 해안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어서 해무(海霧)가 끼면 마치 망망대해에 조각배(뗏목)가 떠있는 형상이므로 구정철차산(九頂鐵差山)이라 부른다. "差"(차)는 배를 의미한다.
 
인근 어촌마을에 오징어 덕장이 있어 비린내가 코를 자극한다. 암릉에서 바라본 바위들이 한 폭의 산수화 같다. 능선 너머엔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거대한 암릉이 설악산 울산바위를 연상시킨다. 바위산으로 정상까지는 약 1시간 30분 소요된다.
 
정상에 오르자 드넓은 평야지대와 황해가 한눈에 잡히고 붉은색 지붕 일색의 마을은 평화롭게 느껴진다. 마치 사량도 지리망산에 온 느낌이다.
 
눈이 녹지 않은 바위가 미끄러워 위험하기 때문에 하산은 릿지코스 대신 오던 길로 내려선다.
 
중턱에 자리잡은 '차산천불사'라는 절은 관리인이 입장료 천원을 요구한다. 신기하게도 마당에 우물이 있고, 바위 동굴 벽에는 수천 개의 손바닥만한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2시간 30분간의 산행을 마치고 점심식사는 석도 시내에서 현지식으로 제공되었는데 산행 뒤라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음식이 우리 입맛에 잘 맞아 모두들 과식을 했다.
 
마지막 여행코스인 적산법화원으로 향했다.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
산동성 영성시 석도진에서 약 4km 떨어진 적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적산법화원은, 서기 820년 신라인들을 위해 장보고가 세운 절로 당시 산동에서 규모가 제일 큰 불교 사원이었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먼 옛날에 적산은 온통 붉은 것으로 뒤 덮여 있었는데 여기에 사는 적산신이 오가는 선박들의 안전을 지켜 준다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언덕 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거대한 명신(明神)상이 눈길을 끈다. 양옆으로  즐비한 붉은 색 집들은, 그 옛날 신라인들이 모여 살았던 '신라방' 즉 신라촌이었다. 바다를 업으로 활기차게 살았을 신라인의 숨결을 느껴지는 듯하다.
 
박물관 앞마당에는 높이 8m 무게 6톤의 거대한 장보고 동상이 위용을 자랑한다.

역사서에는 당조 전성시기에 신라인 장보고가 출세를 위해 당으로 불법이민을 하였다. 무예가 능하고 전쟁에 용감하였기에 그는 당시 산동성 서주 절도사 휘하 주력부대 무령군의 군중소장(1000명 병사를 지휘하는 장교)으로 있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동상은 중국풍 갑옷을 입은 당나라 장군의 모습이다. 동상에는 중국어와 한국어로 “장보고는 한민족의 영웅, 평화의 사자일 뿐 아니라 해상 무역왕으로서 영예로운 그 이름을 널리 떨쳤다”고 새겼다.
 
흥덕왕 3년에 신라로 귀국하여 청해진을 창설하고 대사를 봉해 받음으로써 한·중·일 삼국의 해상 무역을 독점하고 한·중·일간의 '해상실크로드'를 개척하여 해상무역왕으로 불렸다. 그는 해상운송사업이 번영하기를 기원하면서 적산에 불교사찰을 지어 많은 스님들을 모셔와 <법화경>을 읽어 <적산법화원>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적산 법화원의 북쪽에 있는 장보고기념탑은 1991년 세계한민족연합회가 한민족의 선각자 장보고 대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인데 1994년 7월 24일에 준공되었으며, <장보고기념탑>여섯 글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친필휘호이다. 탑의 설계가 특이할 뿐 만 아니라 그 의미(한·중 양국의 친선이 영원함)가 더욱 깊다.
 
오전 오후로 하루에 두 번 진행되는 분수 쇼는 관광객들에게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당국자들은 '한·중 간의 교류와 우의’를 강조하고 있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한국인 관광객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유적지 복원이라기보다는 관광객을 위한 역사테마공원 성격이 짙다.
 
장수석에 손바닥을 대고 법화원입구에 들어서니 나뭇가지마다 붉은 끈이 다닥다닥 매달려 있다. 중국에서는 복을 상징하는 색이 붉은 색이란다. 붉은 끈 위에 원하고 소망하는 내용을 적어 매달아 놓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진다.
적산법화원의 주요건물인 <대웅보전>에는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정교한 석가모니 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뒤에 있는 건물은 <삼불전>으로 2000년에 새로 건축한 대법당이다.
 
법화원 안쪽에는 장우석 화백이 그린 장보고 영정이 모셔져 있는데, 유난히 문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한 번 들어온 재산이나 돈이 쉽게 밖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면서 동시에 강시가 접근할 수 없도록 문턱을 높게 했다고 한다.
 
붉은 빛이 감도는 적산기슭에 5백 명의 승려가 법회를 열었고, 5백석이 넘는 쌀을 생산하는 장전을 소유했던 풍요로움이 가득했던 법화원.
 
타국에서 중국어가 아닌 신라어로 불경을 외우고 합장을 했던 신라인들의 당당함 뒤에 말없이 서있었을 수장 장보고의 모습이 그려진다. 잠시 머물렀던 일본의 승려 엔닌이 장보고를 ‘대사’라 칭하면서 존경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적산법화원을 ‘엔닌의 절’이라 칭한다니 안타까운 노릇일 수밖에 없다.
 
언제나 이쯤에서 해야 하는 일은 돌아가야 하는 일이다. 석도 시내 슈퍼마켓에 들려 훼리에서 먹을 청도맥주와 과일을 사고 석도항으로 이동한다. 이때쯤이면 현지 가이드가 농산물(콩, 깨, 잣 등)을 주문 받는다. 저렴한 편이므로 필요하다면 선물용으로 구입해도 무방하다.
 
참고로 농산물은 25kg, 중국 술은 3병까지 국내반입이 허용된다. 단, 국내반입시 농산물은 신고하고 검역을 받아야 한다. 과일이나 축산물은 반입이 되지 않으니 만일 구입했다면 훼리에서 모두 소비해야 한다.
 
뱃멀미를 하는 사람은 인솔자나 안내데스크에서 배 멀미약을 구할 수 있다. 객실은 올 때 사용하던 그 디럭스 룸을 배정 받았다.
 
저녁식사 후 삼삼오오 모여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눈다. 수평선 너머에 기다리는 또 다른 일상을 향해 화동훼리호는 묵직한 뱃고동을 울린다.
 
12월 4일(월) 넷째 날.
아침식사를 끝내고 대충 짐을 정리한 후 갑판으로 나갔다. 선상일출을 보기 위함이다. 드디어 수평선 위에 불덩이가 올라온다. 처음엔 수줍은 듯 차츰 오르더니 이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다. 바다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해돋이가 장관이다.
 
라운지 소파에 몸을 깊숙이 맡긴 채 시간을 정지시키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을 바라보며 여유를 만끽한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싶어한다. 남과 나를 나누고 서로를 선과 악으로 나누고자 하며 남이 나와 틀린 것에 대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너무 많은 느낌들을 가지고 돌아온다. 그래서 돌아올 때의 가방은 더 무거워진다. ‘그곳’이‘여기’가 아닌 이유 때문이다.
 
여정이란 낯선 길에서 길로, 무딘 걸음에서 걸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설렌 마음에서 마음으로, 그리운 이름에서 또 누군가의 이름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언제쯤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일까.
 

흐르는 곡 : 삼포가는 길 (대금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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