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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중국 곤유산

쉼표 없는 일상은, 대팻밥이나 톱밥처럼 인간을 본래의 삶에서 시나브로 깎여나가듯 부스러기로 만들 것이다. -어느 여행가-

 

2006년 12월 1일∼2006년 12월 4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AM트레킹]에서 주최한 '중국 곤유산/철차산 트레킹'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산악회 회장 또는 산악대장을 대상으로 한 팸투어(Familiarization Tour -여행사의 홍보용 사전답사 여행)였으며 직장 상사의 배려가 있어 연가를 얻어 다녀올 수 있었다.

 

2006년 12월 1일(금) 첫째 날.

13시 인천행 삼화 고속버스(우등요금 13600원)에 몸을 실었다. 인천종합터미널까지는 2시간 40분 소요. 시간 여유가 있어 인천종합터미널에서 제1국제 여객터미널까지는 연안부두행 36번 시내버스(약 40분 정도 소요. 요금은 900원)를 이용했다.

 

인천국제여객터미널 앞 마당은 따이꽁(代工)이라고 부르는 보따리 상인들이 중국으로 가져 갈 물품들을 포장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들은 한국에서 의류 생필품 등 공산품을 중국에 가져다 팔고 중국에서 참깨나 참기름, 고춧가루 등 농산물을 들여와 판다. 정식 수출입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인당 일정량 허용되는 수화물을 이용하기 때문에 '보따리무역'이라고 한다.

 

여객터미널 안으로 들어서 여행인솔자인 AM트레킹의 이팀장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여행일정표와 명찰을 받아 목에 건다.

 

오후 5시. 출국수속이 시작되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화동훼리호(동방명주호)에 승선한다. 화동훼리는 750명 정원의 1만8천 톤급 선박으로 인천과 중국의 산동성 석도 사이를 주 3회(월, 수, 금) 운항하며 식당, 사우나, 면세점과 잡화점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객실로 올라간다. 배정 받은 객실은 4인 1실 디럭스 룸으로 2층 침대 2개와 거실, 세면대와 텔레비전이 있고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한 잔의 술과 정겨운 대화가 이루어진다. 이게 훼리 여행의 낭만이지 않은가. 훼리는 교통 수단이 아니라 훼리에 승선하면서 여행은 시작된다.

 

일상의 탈출구로 여행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낯선 세계와의 만남이 불러오는 두려움도 잊은 채 장보고 대사가 개척한 해상실크로드를 지나면서 검푸르게 출렁이는 파도 위로 바다를 호령하던 그의 위용이 떠오르는 듯 했다.

 

침대는 편안했지만 들 뜬 기분에 쉽사리 잠이 오질 않았다. 게다가 파도가 심해 출발할 때와는 다르게 가만히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많이 흔들려 뱃멀미로 한참을 뒤척이다 새벽 1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12월 2일(토) 둘째 날.

인천항을 출발하여 밤새 황해를 가로질러 13시간의 긴 항해 끝에 이튿날 아침 산동성 석도항에 도착했다. 석도항은 1200년 전 해상왕 장보고의 무역선이 출입했던 바로 그 곳이다. 옛이름은 적산포.

 

한반도를 향해 툭 튀어나온 산둥반도 동쪽 끝의 작은 항구도시 석도(스다오 石島)는 인천에서 직선거리로 330km 밖에 안 된다. 산둥성에서 아침 닭이 울면 그 소리가 서해 연안마을에서도 들린다는 좀 과장된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과 가장 가까운 산동반도는 1990년 초 뱃길이 뚫리면서 한국인들이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석도는 조용하고 조그만 어촌으로 청해진을 근거로 동북아 바닷길을 장악했던 장보고대사의 자취가 아직 짙게 남아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신라인이 모여 살던 신라방 적산촌이 있었다. 석도는 예전에는 가난한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잘 사는 마을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하선하여 5분 거리에 있는 입국장까지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한 다음 입국수속을 했다. 입국수속 과정에서 과일을 지참한 일행은 과일을 모두 압수 당했다. 배에서 먹을 것이 아니라면 과일은 반입이 되지 않으니 주의해야한다.

 

입국장을 빠져나오니 풍경이 주는 낯섦은 설렘으로 다가온다. 해변가에 자리잡은 멋진 석도빈관(호텔)이 눈길을 끈다. 곧

 

바로 버스에 오르면서 중국에서의 첫날 여정이 시작된다. 가이드는 중국현지여행사인 해협국제여행사의 현광용부장(133-5698-6282)이 맡았다. 

 

곤유산이 있는 연대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이동한다. 도로는 차량통행이 적어 매우 한산하고 깨끗해 보였다. 석도를 지나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가이드의 설명을 요약하면...
현재 중국의 행정구역은 크게 성(省), 현(縣), 향진(鄕鎭)의 3급체제로 나뉘어 진다.

그 중에서 성급(省級)은 성(省) 자치구(自治區) 직할시(直轄市) 특별행정구를 포괄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는 대만성을 포함한 23개의 성과 5개의 자치구, 4개의 직할시, 2개의 특별행정구가 있다.

 

성과 자치구 아래에는 자치주(自治州) 현(縣) 자치현(自治縣) 시(市)로 나누어져 있고, 현과 자치현 아래에는 향(鄕)과 진(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향은 농촌의 말단단위이며 진은 도시의 말단단위이다.

 

직할시와 비교적 큰 시 아래에는 구(區)와 현(縣)으로 나누어져 있고, 자치주 아래에는 현과 자치현 시로 나누어져 있다.

자치구 자치주 자치현은 소수민족지구의 행정단위이다. 맹(盟)과 기(旗)는 각각 내몽고자치구의 지구와 현급(縣級) 행정단위이다.

 

산동성은 태산의 동쪽에 있다하여 이름 붙은 성으로 북위 34도-38도 사이(우리나라 중부이남 지방과 동일한 위도 상에 위치)에 있으며 북으로 하북성, 서로 하남성, 남으로 안휘성 및 강소성과 인접하고 있다. 총 면적은 약 15만 평방km로서 중국 전체 면적의 1.6%를 점하고 있으며, 남한의 대략 1.5배에 달한다. 인구는 약 9600만 명으로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많다.

 

산동성은 우측 황해와 접하고 있는 위해부터 내륙으로 연대, 청도, 유방, 일조, 동영, 치박, 임기, 내무, 빈주, 제남, 태안, 조장, 제녕, 덕주, 요성, 하택 등 17개 도시로 구획되어 있으며 성도(省都)는 제남이다.

 

중국 고대 문화의 중요한 발원지 중 한 곳. 특히 이곳은 공자와 맹자를 대표하는 유교문화 등으로 진귀한 문물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 곳이다.

 

산동성은 한반도와 인연이 많은 곳으로 현재 한국에 들어온 화교의 대부분이 산동성 사람이며 한국인들이 먹는 중국음식 가운데도 산동 음식이 많다. 특히 중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청도 맥주를 원산지에서 맛볼 수 있다.

신라시대인 9세기 장보고가 활약한 지역이 바로 산동지방이며, 신라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신라방(新羅坊)이 이곳에 형성돼 있었다.

 

지리산 자락 구례 산수유마을의 행정구역명이 바로 산동면이다. 샛노란 꽃물결로 상춘객을 맞는 산수유나무 역시 산둥성에 살던 한 처녀가 시집 올 때 가져와 심은 것이라는 말도 있으니 그 옛날 한반도와 산둥성 간 교류의 정도를 짐작케 한다.

 

문등시(文登市)를 지난다. BC219년 진시황이 동방 순행 길에 이 곳을 지나자 현인 재사가 산에 올라 그를 칭송했다고 해서 '문등(文登)'이라 했다고 한다. '문등학'이란 술이 유명하다.

 

이 지역은 3000년 전에는 동이족의 고향이었으며, 1500년 전 백제, 신라의 근거지였고, 1300년 전 고구려 유민 이정기가 개국한 왕조 제나라(齊國)의 발흥지다.

 

서기 668년 고구려의 멸망으로 보장왕과 함께 당으로 끌려온 고구려 유민의 후손 이정기는 서기 755년 '안사(안록산과 사사명)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평로에서 산동으로 건너간다.

 

'서기 761년부터 817년까지 4대 58년 간' 지금의 중국대륙의 청주(淸州)지방을 중심으로 "치청"이라는 나라를 건국하여 당나라와 맞서며 산동반도 일대를 장악했는데 바로 "평로치청왕국(제나라)"이다.

 

이정기의 나라는 형식상 당나라에 속했으나, 실제로는 조세, 법률 등을 독자적으로 시행하며 산동성(山東) 전체와 하북(河北), 하남(河南), 안휘성을 다스린 독립왕국이었다.

 

치청의 멸망 후, 당시 선정(善政)을 베푼 것을 기리어 지금도 이 지방사람들은 이정기를 기리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역사에 명백하게 기록된 치청. 우리가 강대국이라고 생각하던 당나라를 거의 멸망에 몰아넣었던 나라... 하지만, 우리의 역사에는 단 한 줄도 그 기록이 남아 있지가 않다.

 

역사 이야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버스는 우리나라의 시골길을 가는 듯한 착각이 드는 가로수가 늘어선 길로 접어들어 연태시 외곽에 위치한 곤유산국가삼림공원 구룡지경구에 닿는다. 눈발은 더욱 거세지더니 온 세상이 금새 하얗게 변했다. 첫눈이라는데 제법 많이 온다.

 

곤유산(昆兪山)
곤유산은 연태시 모평구(牟平區)에 있으며 정상인 태박정(泰 頂)은 해발 923m이다. 중국도교의 발원지며 구룡지경구(九龍池景區), 연하동경구(煙霞洞景區), 태박정경구(泰 頂景區), 악고전경구(岳姑殿景區), 무염사경구(无染寺景區) 등의 관광구역이 있다.

 

오늘 산행코스는 정상인 태박정 대신 암릉 릿지의 재미가 있고 아기자기한 봉우리를 넘는 구룡지경구의 창산봉(653m)코스를 택했다.

 

경구관리소 앞마당에서 하차하여 도시락과 생수 그리고 과일을 받아 배낭에 넣고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한 다음 설국 속으로 들어선다.

 

산을 오르면서 산 아래에 펼쳐지는 산봉우리의 모습이 장관이라는데 내리는 눈발에 사방이 흐려 조망은 별로다. 그저 가이드의 발자국만 따른다.

 

용왕각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구룡정으로 향한다. 구룡정에 도착하자 먼저 산에 오른 연태한인교회 교인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이곳까지는 돌계단이 있어 오르기가 수월하다.

 

조금 더 진행하자 쉬어가기 좋은 커다란 암반이 있다. 이곳에서 전망이 시원하다. 이곳부터 창산봉까지는 봉우리를 다섯 개 넘어야 한다.

 

첫 번째 봉우리에 도착한다. 미쳐 아이젠 등 겨울 산행 장비를 준비하지 못해 하산이 걱정인 가이드는 창산봉까지의 산행은 무리라고 한다. 일행은 하산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아쉬운 발걸음을 되돌린다.

 

구룡정에서 추위에 떨면서 김밥 도시락으로 허기를 속이고 오른쪽 돌계단을 따라 구룡지로 내려선다. 아홉 개의 연못이 연이어 있는 구룡지는 지금은 얼어있지만 여름철 물놀이 장소로 그만이란다.

 

난간을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조망정(眺望亭)에 닿는다. 산아래 펼쳐지는 경치가 겨울 풍경을 담은 그림엽서처럼 아름답다. 경구관리소에 도착하여 아쉬운 산행을 끝낸다.

 

일찍 산행이 끝이 나면서 예정에 없던 관광을 위해 연태시로 이동한다. 중국내 장보고 세력의 최대거점인 영성시 적산의 배후지역인 연대는 위해와 더불어 장보고와 신라인들이 신라방을 세우고 집단으로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연태(烟台)는 중국말로는 얀타이(Yantai)라고 발음한다. 중국 산동반도 북단에 위해와 나란히 있는 항구도시다. 정자로는 烟臺라고 써야 맞지만 중국의 간자체로 표기하면서 臺(대)를 台(태)로 쓴다. 台는 우리나라에서는 '대'로 읽지 않고 '태'로 읽는다. 연대는 우리말로 풀이한다면 봉화대(烽火臺)라는 의미다.

 

명나라 초기인 14세기 말엽, 왜구의 침범이 빈발하자, 이를 중앙정부에 쉽게 알리도록 하기 위해 산꼭대기에 봉화대를 설치했는데, 도시명이 거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연대는 경치가 아름다운 섬과 항만 등 자연 경관이 수려하고, 역사가 유구하여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다.

서구 열강은 중국을 누른 후, 경치 좋고 날씨 좋은 이곳에 자국의 영사관을 만들었다. 지금도 영사관 건물을 볼 수 있다. 곳곳에서 고층아파트 건설이 한창 진행중이다. 가장 비싼 아파트는 30평형대가 우리나라 돈 2억을 호가하는데 모두 팔렸다고 한다. 중국도 빈부의 격차가 심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가이드가 안내한 곳은 명품 짝퉁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우리나라 지하상가를 연상시키는 이곳은 명품시계를 비롯하여 가방, 의류, 등산장비와 골프용품까지 외국유명브랜드의 짝퉁들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자리하고 있다. 노스페이스 등산재킷과 배낭, 로렉스금장시계, 구찌명품가방 등을 2-3만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1시간 정도를 둘러보고 다시 장유와인박물관을 찾았다. 연대는 과일의 집산지로 유명하다. 연태의 기후와 토양은 포도를 재배하는데 매우 적합하다. 연대 포도주의 생산 역사는 100년이 넘으며, 장유 포도주는 1915년에 파나마 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하였다고 한다.

 

장유 양주 회사는 서기 1892년 연대에서 남양 화교 장필사에 의해 창립되었다. 현재 장유 양주 회사는 술 문화 박물관(張裕酒文化博物館)을 건립하여 관광객들에게 중국 포도주 백 년 역사를 소개한다.

 

포도나무 몇 그루와 곳곳에 와인통을 장식한 정원을 지나 박물관 내부로 들어선다. 1층 박물관의 역사관을 둘러보고 계단을 따라 지하저장고로 내려가자 포도주를 숙성시키는  수 백 개의 와인 통들이 저장되어 있다. 목재통의 크기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양하다.

 

이곳에서는 적포도주와 백포도주를 무료시음(실은 입장료에 포함)할 수 있다. 청도맥주가 유명하지만 장유 포도주도 고급 와인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가이드의 요청으로 실크점을 들렸다가 위해시로 이동한다.

 

위해시(威海市)는 산둥반도의 제일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바다를 마주하고 있다.

 

위해는 아름다운 해안 관광 도시로, 경치가 아름답고 깨끗하며 기후는 사람 살기에 적합하다. 이곳은 '화원 도시'의 이름에 걸맞게 중국에서 제일가는 위생 도시이며 UN으로부터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의 하나로 인정받은 피서, 휴양 및 관광의 최적지이다.

 

현재 위해는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도시로써, 한국어는 이미 위해의 제2외국어가 되었다고 한다.

 

저녁식사는 현지식이 제공되었다. 한국 관광객이 많아 음식에 향채를 빼고 요리를 하기 때문에 그런 대로 먹을 만 했다. 물 대신 차가 제공된다.

 

마사지는 중국 전통의 치료기법에서 시작된 유래 깊은 문화로 동남아 여행에서는 필수코스다. 잘만 받으면 여행의 피로가 싹 사라지는 시원한 느낌이 든다. 동남아 여행을 하면서 여러 번 마사지를 받은 경험이 있는데 이곳의 전신마사지는 별로였다. 요금은 1만5천원.

 

위해항 건너편 위승호텔에 여정을 풀고 인근 꼬치구이점으로 이동하여 양꼬치와 돼지갈비를 안주 삼아 청도맥주와 문등학(이 지방에서 생산되는 고량주)을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중국에서 첫날이자 마지막 날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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