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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립공원

조계산

산행일시 : 2006년 10월 1일(일)

산행코스 : 선암사 - 대각암 - 비로암 - 작은굴목재 - 장군봉 - 장박골몬당 - 연산봉 - 송광굴목재 - 송광사 (약 12km, 5시간 30분소요)


일상의 무게 잠시 잊고 山寺의 품에 안겨볼 요량으로 산사가 있는 테마산행에 따라 나섰다. 산행지는 선암사와 송광사라는 두 거찰을 끼고 있는 전남 순천의 조계산.


호남고속도로 광주, 동광주를 지나 승주 나들목을 빠져나와 857번 도로를 타고 선암사(仙巖寺)로 간다. 승주 나들목(061-754-6371)에서 약 7km, 선암사까지는 10분 거리다.


선암사 주차장에서 하차하여 시골 아낙들이 펼친 길가의 정겨운 장터를 기웃거리고 선암사 매표소를 지나 녹음이 우거진 산책로를 걷는다. 부도 밭과 계곡위에 아름답게 걸쳐있는 보물 제 400호 승선교와 강선루를 차례로 지난다.


삼인당(三印塘) 연못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에는 꽃무릇이 가득 피어있다. 삼인당을 한 바퀴 돌아보고 선암사로 향한다.


선암사는 태고종 유일의 총림(많은 승려가 모여 수행하는 곳)인 ‘태고총림(太古叢林)’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와 쌍벽을 이루는 수련도량. 강원(講院)과 선원(禪院)에서 많은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다.


신라 문무왕15년(675)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선암사의 처음 이름은 견강사(見江寺)였는데 뒷산 절벽 바위에서 신라의 국선 화랑도들이 수련하였다하여 "선암사"로 부르게 되었다.


선암사가 위치한 당감(堂甘)은 본디 제의를 올리는 신성한 곳으로, 당은 신이 내리는 신성한 나무를 모시는 집이고 감은 감로수를 뜻하는 말이다. 선암사 약수가 유명한 것도 그로부터 연유한다.


선암사는 태고총림 고찰이라기보다 정감 넘치는 산장으로 접어드는 느낌을 준다. 사찰 안의 분위기도 소박하면서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전통미를 간직한 크고 작은 전각들, 돌담과 담쟁이의 조화, 주변 경관을 압도하지 않는 조형미는 찬사를 받을 만하다. 산사(山寺)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일주문에 들어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문화재로 지정된 뒤간(측간)이다. 맞배지붕에 특이한 건축구조를 가진 선암사의 대변소로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적어도 1920년 이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입구에 들어서면 남자와 여자가 사용하는 칸이 양 옆으로 나뉘어 있다.


하얀 꽃에서 풍기는 향기가 경내를 진동한다.  물푸레나뭇과에 속하는 “은목서”라고 한다. 사찰 곳곳에는 붉은 꽃무릇이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며  꽃의 절, 선암사를 빛나게 한다.


선암사중수비를 찾았다. 조선 숙종 33년(1707)에 건립된 높이 5m의 중수비에는 정유재란으로 불탄 선암사를 약휴대사가 중심이 되어 다시 세웠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극락전, 관음전, 명부전, 조사전, 칠성각, 산신각, 요사채와 종각이 배치되어 있는 극락정토 도량이며 석축 위 동백나무가 매우 수려하다.


대웅전 앞 좌우에 서 있는 두 개의 석탑은 보물 395호 선암사 3층 석탑이다. 탑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불교의 상징적인 예배의 대상이다. 두 개의 석탑은 양식과 건립시기(신라시대 후기인 9세기경으로 추정)가 같다.


대웅전에서 피어오르는 향과 은은한 목탁 소리, 낭랑한 독경, 찬란한 고찰의 승맥을 이어가고 있는 스님들의 모습에서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단체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선암사를 나와 마애여래입상이 있는 왼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평평한 암벽 위에 조각된 높이 5m의 거대한 입상으로 얼굴모습은 원만하고 이마에는 백호가 뚜렷하며 눈, 코, 입이 대체로 균형 잡힌 모습이다. 대각암쪽으로 올라간다.


산정부터 서서히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산록, 가을을 구가해보지도 못한 채 땅 위를 뒹구는 낙엽,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스님의 독경 소리. 가을 분위기 물씬 풍기는 산사를 거쳐 산길로 접어든다. 조계산은 해발 884m의 그다지 낮지 않은 산이다. 하지만 바위투성이로 악명이 높은 호남의 산과 달리 아늑한 품을 가진 육산이다.


11시 30분. 대각암 삼거리에서 비로암으로 방향을 틀어 40분 정도 오르자 비누까지 갖춰놓은 샘이 반긴다. 샘 위쪽에는 비로암이 위치하고 있고 심우당이란 현액이 붙은 요사채가 붙어있다. 전혀 암자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삼거리를 지나 10여분 정도 진행하면 작은굴목재에 닿는다. 사방으로 길이 나뉘는 교통의 요충지로 쉼터 역할을 하는 곳이다. 추억의 아이스케키(1개 천원)를 파는 장사가 눈길을 끈다. 장군봉까지는 0.8km


잠시 숨을 고른 후 일행과 헤어져 5명만 장군봉 쪽으로 치고 올라간다. 20분 후 배바위에 닿는다. 옛날 이 바위에 배를 묶었다는 유래에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전해오는 전설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와 비슷하다. 배바위에 올라서니 조망이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숲속에 파묻힌 선암사도 눈에 들어온다. 멀리 주암호도 보인다.


배바위에서 15분 정도면 장군봉 정상(해발 884m)에 닿는다. 선암사와 송광사라는 두 거찰을 끼고 있는 조계산은 전남 순천시 승주읍과 송광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세가 부드럽고 아늑하다.


정상 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20여 분간 점심 식사를 한 후 장밭골로 걸음을 옮긴다.


20여분 진행(1.8km)하면 장밭골 몬당(해발 787m)에 닿는다. ‘몬당’이란 마루 즉, 높은 곳을 뜻하는 이 지방 사투리라고 한다. 오른쪽으로 접치를 지나 오성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갈라지는 곳이다. 그대로 직진한다.


산죽나무 숲 사이로 편안하고 푹신한 흙길이 이어진다. 10분 정도 내려서면 장밭골 삼거리에 닿는다.

장군봉에서 1.8km거리. 왼쪽으로 작은 굴목재에서 장군봉을 거치지 않고 이곳으로 직접 이어지는 산길이 있고 오른쪽은 직접 송광사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사거리다. 계속 직진하여 20분(1.2km)을 진행하면 연산봉사거리다.

다시 직진하여 10분을 진행하면 연산봉정상에 닿는다. 지도상에는 장밭골 몬당이 연산봉으로 표기되어 있어 혼돈스럽다.


연산봉 정상(해발 851m)에 서면 장군봉과 배바위가 확연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조계산의 주봉인 장군봉과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연산봉은 한 때 여러 봉우리들을 거느린 어엿한 한 산의 주봉이었다. 송광사(당시는 수선사)측은 연산봉을 수십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많아 ‘솔뫼’라 불렀으며, 솔 松 넓을 광 廣 즉 소나무가 널리 많은 산에서 송광산이란 이름으로, 선암사측은 장군봉을 주봉으로 한 천량산이란 이름으로 각각 주장하였으나 고려말 조계산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분을 내려서면 장군봉에서 4.4km 떨어진 송광굴목재(굴목이재)에 도착한다. 굴목이재는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고개. 선암사에서 오르는 길의 고갯마루는 선암 굴목이재라 부르고, 송광사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고갯마루는 송광 굴목이재라 부른다. 직진하면 유명한 쌍향수가 있는 천자암으로 가는 길이다.


곱향나무로 불리는 송광사의 명물 쌍향수는 조계산 마루 천자암 뒤뜰에 있다. 두 그루 향나무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쌍향수란 이름이 붙었는데, 나무 전체가 엿가락처럼 꼬였고, 가지가 모두 땅을 향하고 있다.


보조국사 지눌스님과  제자인 금나라 왕자 담당스님이 짚고 있던 지팡이를 꽂았더니 가지가 나고 잎이 피었다고 전해진다. 높이 12m, 수령 800년으로 항상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아쉽지만 먼저 하산한 일행들이 기다릴 것을 염려해 천자암으로 향하지 못하고 오른쪽 송광사(2.5km)로 향하는 계단길로 내려서 홍골로 접어든다. 활엽수가 만든 숲 그늘 속으로 산길은 이어진다.


무슨 용도 사용했는지 아리송한 대피소를 지나서 보리밥집을 향해 진행한 일행과 만나 함께 걷는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목재 교량을 건너면 피아골입구다. 하늘을 찌를 듯 뻗어 오른 왕대숲과 편백나무 숲을 지나자 송광사가 지척이다.


송광굴목재에서 약 50분. 침계루(枕溪樓)의 붉은 나무기둥과 창문이 주변의 초록빛깔과 어우러지면서 수려한 풍광을 만들고 있다.

우화각 아래쪽 징검다리에 서서 아름다운 홍예교(무지개다리)와 우화각에 취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잔잔한 개울에 비친 우화각의 모습이 정말로 고즈넉하다.

 

조계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은 송광사는 합천 해인사(법보사찰), 양산 통도사(불보사찰)와 더불어 한국 삼보사찰(三寶寺刹)로 불리고 있다. 신라 말엽 혜린선사(慧璘禪師)가 작은 암자를 짓고 길상사라 부르던 것을 시작으로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정혜결사(고려후기 불교계의 정풍운동으로 선종과 교종이 서로 갈등하자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으로 결론)를 일으켜 수도, 참선의 도량으로 삼은 뒤부터 국사 16명을 배출한 승보사찰이다.

 

개울을 건너 절 마당으로 들어서자 넓은 공간 사방으로 대웅보전과 승보전, 지장전 등의 건물이 둘러서 있다. 거대한 불상이 모셔진 대웅보전 안에서는 무언가를 기원하는지 모를 이들이 부처를 향해 합장을 하고 있다.

 

16 국사의 진영을 봉안한 국사전 왼쪽에 있는 비사리구시가 눈길을 끈다. 송광사의 3가지 명물 중 하나인 비사리구시는 1742년 남원 세전골에 있었던 큰 싸리나무가 쓰러지자 이것을 가공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대중의 밥을 담아 두었던 것으로 쌀 7가마 분(4천 명분)의 밥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단청 빛깔이 퇴색한 관음전을 돌아 뒤쪽에 이르자 경사가 급한 계단이 언덕 위까지 이어져 있다. 계단을 오르자 송광사 경내가 내려다보인다. 날 듯 한 지붕들이 고즈넉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언덕 위에는 비석과 함께 작은 탑이 놓여있다. 보조국사 지눌의 감로탑이다.

지나가는 스님에게 국보와 보물의 위치를 묻자 스님들의 수행 정진하는 곳이어서 일반인은 그곳의 출입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문화재 관람료까지 받으면서 문화재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천왕문을 나온다. 사천왕상은 부라린 눈과 애써 우락부락 찌푸린 표정에 오히려 익살이 가득하다. 순천 송광사 사천왕상은 보물 제1467호(2006.04.28.)로 지정되었으며 지정명칭은 ‘순천 송광사 소조 사천왕상’ 이다.

 

 

송광사 일주문 앞 오른쪽 축대 위 넓게 정돈된 잔디밭에 고승들의 불도의 성취를 새겨 놓은 비림으로 향한다. 말 그대로 비석의 숲이다.

 


일주문을 나와 계곡의 경쾌한 물소리를 따라 걸어 내려가 주차장에 닿는다. 10월의 문턱에서 하루를 보낸 행복이 물감처럼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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