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행복은
얼마나 많이 소유하느냐보다는 버려야 할 것을 제때 얼마나 잘 버리느냐에 있습니다.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선다. 택시를 타고 롯데백화점 앞에 내리니 청산님과 몇 분의 귀연산우회원님들이 반긴다. 잠시 후 509번 좌석버스를 타고 마전 버스 종점에서 하차한다. 오늘 산행에 참여하는 회원은 모두 14명. 4대의 택시에 분승하여 원흥사로 이동한다.
7시 55분 단체 기념 촬영을 마치고 산행 들머리인 원흥사로 들어선다.
엊그제 비가 온 탓인지 서대산의 신록이 더욱 싱그럽다.
서대산의 서편 기슭에 아늑하게 파묻힌 원흥사는 예전에 서대사가 있었으며, 고려 말의 고승 취운당의 부도 등 큼직한 청석부도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원흥사는 창건 연대는 알 수 없고 현재의 건물은 한 보살이 현대에 재건축한 것으로 경내에는 대웅전과 미륵불 그리고 요사채만 있다.
길가에 금낭화가 고운 자태를 뽐내고 목잘린 부도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50분 정도 지나 조망이 좋은 쉼터에 도착한다. 신록과 파란 하늘의 구름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멎진 풍광에 모두들 감탄하며 디카에 담느라 분주하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10여분 진행하여 직녀탄금대(織女彈琴臺) 지성단에 닿는다. 서대산에는 전설과 비경을 간직한 곳이 많은 게 특색인데 대장부가 오르면 소망이 성취된다는 견우 장연대바위와 여인이 올라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직녀 탄금대바위에는 견우 직녀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지성단은 자연 석굴을 이용하여 만든 기도처로 넓은 앞마당은 일명 타작마당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괴군 1개 대대 본부가 있던 곳으로 치열한 전쟁터였다고 전한다.
고무호스를 통하여 흐르는 탄금대 약수(영수)를 무지개님이 한바가지 떠서 건네준다. 처녀가 이 영천수를 일곱 번 이상 마시면 아름다운 미녀가 되어 혼인길이 열리고 첫 아들을 낳게 된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물맛이 시원하다. 7-8분 정도 진행하여 능선에 올라서자 정면으로 시야가 탁 트이면서 시원한 조망이 눈에 들어온다. 산그리매와 피어오르는 구름 그리고 저 멀리 백두대간 능선이 참으로 장쾌하게 펼쳐진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30m 정도 진행하면 서대산(西大山,또는 西臺山) 정상(해발 904m)에 닿는다. 충남의 최고봉하면 흔히 계룡산을 떠올리는데 계룡산보다 높은 산이 서대산으로 충남 금산군 추부면과 충북 옥천군 군북면 경계에 솟아 있으며 산맥을 이루지 않고 따로 떨어져 독립된 산(비래산)이다. 왼쪽으로 2-30m 떨어진 곳에서의 조망이 훨씬 좋다. 대전 시가지 및 금산, 충북 옥천땅이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정상 표지판을 배경으로 단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길을 이어간다.
장연대바위(일명 장군바위)를 지난다.
바위에 뿌리를 내린 꽃 한 송이가 눈길을 끈다. 코끼리 바위를 지난다.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에서도 창조주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손길이 느껴진다.
부드러운 능선길을 따라 진행하다가 조망이 좋은 바위에서 걸음을 멈추고 간식을 나누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취나물과 고사리가 지천이다. 조그만 봉우리를 지나면서 주황색 표지리본의 안내를 받으며 희미한 산길을 찾아 계속되는 내리막길은 내려간다. 찾는 사람이 드물어서인지 낙엽이 수북히 쌓인 오솔길은 미끄럽고 거미줄과 송충이가 성가시게 한다.
11시 10분 철탑을 지나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10분 정도 내려서자 금천계곡에 닿는다. 시원한 계곡물에 세수를 하고 얼굴에 흐른 땀을 씻어낸다.
바위 틈에 숨어있던 철쭉이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고 미소짓는다.
간식을 나누며 휴식을 취하고 계곡을 건넌다. 완만하게 산을 휘감아 돌던 오르막길은 점점 가팔라지며 된비알 오르막길로 바뀐다. 으아리가 발길을 잡는다.
턱 밑까지 차 오르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한발 한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금천계곡을 떠난 지 약 1시간. 헬기장에 도착하여 잠시 숨을 고른다. 되돌아보니 서대산의 우람한 모습이 봄의 푸르름을 자랑한다.
장룡산 정상까지는 조금 더 진행해야 한다. 박달령님이 제작하여 갈림길 곳곳에 매달이 놓은 표지판이 정겹다. 15분 정도 진행하여 장룡산(壯龍山 해발 645.5m)정상에 도착한다. 정상 표지석은 없고, 대신 산을 사랑하는 누군가 만들어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장룡산 656M' 라는 나무표지판이 반긴다.
정상에서 길이 갈라진다. 왼쪽은 가파르고 험한 하산길이고 오른쪽이 사목재를 거쳐 마성산으로 가는 길이다. 계백장군님이 건네는 참외 한 조각과 총무님이 따라주는 얼린 맥주 한 잔이 갈증을 단 번에 날려보낸다. 10여분 후 후미 일행이 도착하고 점심 식사를 위해 자리를 잡는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 그리고 잡곡밥에 산행 중 채취한 취까지 그 어떤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다.
후식으로 따끈한 차 한잔까지 곁들인 30분간의 점심식사를 마치고 길을 이어간다. 반가운 님의 표지기가 보인다.
평탄하고 부드러운 능선길을 따라 20분 정도 진행하면 전망대에 닿는다. 장룡산 (해발 650m) 정상 표지석이 이곳에 있다.
육각정자에 올라서니 옥천 일대의 마을과 들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완만한 내림길을 따라 내려간다. 조금 진행하자 암릉길이 나타난다. 길을 가로막은 암봉에 올라서니 전망이 좋아 옥천읍과 군서면 일대가 한 눈에 조망된다.
뒤돌아보니 산중턱에 바위 하나가 신록에 묻혀 눈길을 끈다.
조금 더 진행하면 거대한 바위덩이가 불쑥 솟아 있는데 왕관을 쓴 듯하여 왕관바위라 부른다. 왕관바위는 금산리 마을에서 올려다보면 뿔이 세 개가 있는 분명한 왕관처럼 멋지게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바위가 너무 커 엄청나게 큰 바위로만 보일 뿐이다. 이 왕관바위 사이에 좁은 침니를 비집고 통과하자 그 너머로 길이 다시 이어진다. 왼쪽으로 우회하는 길도 있다.
잠시 후 오른쪽 용암사로 내려가는 길과 왼쪽 마성산으로 가는 갈림길을 만나고 평탄하고 부드러운 능선길을 걷는 동안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땀을 날려버린다. 전망대에서 30분 정도 진행하여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접어들어 완만한 오름길을 1분 정도 오르면 475봉에 닿는다. 삼각점이 박혀있고 산불감시초소가 보이며 등로는 왼쪽으로 꺾어진다. 몇 걸음 옮기자 마성산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두개의 봉우리 중에 왼쪽이 마성산이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10분 정도 내려서자 사목재에 닿는다. 장룡산과 마성산 사이에 있는 사목재는 임도가 지나가는데 차량은 통행할 수 없다. 다리가 불편하신 청계님을 의리의 칸님이 모시고 탈출하고 나머지 일행은 완만한 오르막길을 치고 오른다.
3-4분 오르면 330봉에 도착하고 곧바로 3-4분 내려서면 몇 해 전 화마가 할퀴고 간 상처로 더 이상 생물들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할 수도 없게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황폐해진 지역이 나타난다. 야산을 가득 채웠던 나무들이 온통 새까맣게 숯이 되어 사지를 벌리고 있다. 그래도 곳곳에 풀과 새순들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고, 목숨을 건진 나무들도 싱그럽게 신록을 뽐내고 있다.
걸음을 멈추고 간식을 나누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길을 재촉한다.
3시 정각. 마성산 성터 돌탑이 먼저 반긴다. 마성산(馬城山 해발 410m)정상은 돌탑에서 왼쪽으로 30m 정도 떨어진 곳이다. 간이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다. 다시 돌탑으로 내려와 용봉으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성을 쌓은 돌들이 무너져 생긴 너덜을 지나면 이내 평탄하고 부드러운 길이 이어진다. 마성산 성터에서 20분 정도 지나 옥천읍 대천리와 군서면 동평리를 잇는 망지미고개를 통과하고 헬기장에 올라서면 산으로 빙둘러 쌓인 분지 안에 옥천시가지가 한 눈에 다 들어온다.
가파른 길을 3-4분 치고 오르면 동평성터(390봉)와 만난다. 길은 다시 부드러워지고 조그만 돌탑(케언)을 지난다. 산행을 시작한지 8시간 10분. 드디어 용봉(486m)에 도착한다. 조그만 표지석이 정상 한 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지체 없이 오른쪽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15분 정도 진행하여 310봉에서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랜다.
다시 15분 정도 진행하면 삼성산성터에 도착한다. 철봉 윗몸 일으키기 등 몇 가지 운동기구와 나무의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주변의 주민들이 많은 찾는 곳 같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가화 현대아파트로 내려서는 좋은 길을 버리고 왼쪽 숲속 길로 들어선다.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길이어서 흔적이 희미하다.
조선시대 감찰 벼슬을 지낸 남두화와 숙부인 양주허씨의 합장 묘를 지나 3분 정도 더 내려서면 대전-영동을 잇는 4번 국도가 지나가는 옥천군 삼양사거리에 도착하면서 9시간 10분 동안의 산행이 마무리된다.
오늘 산행의 가이드였던 고문님의 안내로 인근의 대원군 척화비를 둘러본다.
이 척화비(충북기념물 제6호 . 충북 옥천군 옥천읍 삼양리 산4-4)는 1866년 고종 3년의 병인양요와 1871년 고종 8년의 신미양요를 치른 뒤 흥선대원군이 국민들에게 양인을 배척하고 경고하기 위하여 1871년 4월에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요충지에 세운 많은 척화비 중의 하나이다. 화강암에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즉,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할 수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라고 큰 글자로 음각 되어 있다.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고리산 부소무니의 아름다운 간판이 인상적인 용궁(민물매운탕집)으로 이동하자 사목재에서 탈출하여 기다리시던 청계님과 칸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오늘 산행 뒤풀이는 청계님이 여혼 기념으로 회원들에게 한 턱 내는 자리이다. 푸짐한 송어회를 안주 삼아 정겨운 술잔을 주고받으며 흥겨운 이야기가 함께 오고간다. 뒤풀이를 마치고 640번 대전행 버스에 오른다. 곽고문님이 2차로 생맥주 한잔 사신다는 제의에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몇 분을 제외하고 모두 동의하여 대전역에서 하차한다. 으능정이 젊음의 거리에 있는 '이화주막'으로 이동한다. 과일안주와 마른안주 그리고 뼈 없는 닭발에 주인이 서비스로 내 놓은 골뱅이 무침까지 푸짐한 안주와 시원한 생맥주는 산행에 지친 회원들을 또 한 번 즐겁게 하고 다음 산행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한다. 술에 취하고 정에 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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