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산행일지

공작산

2005년 6월 5일 (일)

오래전부터 약속된 지리산 종주 산행이 취소되고 설악산 산행도 좌석이 없어 안내 산행을 따라 나선다. 대전톨게이트로 진입하여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남이분기점에서 중부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음성휴게소에서 15분간 정차하고 호법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어 얼마 가지 못해 도로는 나들이 차량으로 정체되어 느리게 진행한다. 원주휴게소에서 정차하였다가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홍천요금소를 빠져나가 44번 국도가 갈라지는 지점에서 왼쪽 속초 방향으로 향한다.



11시 25분. 산행기점인 굴운리에 도착하여 간단한 산행채비를 갖추고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지루하게 진행한다. 계곡에는 물놀이 나온 사람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계곡에 솥을 걸고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히 움직인다. 드디어 숲으로 들어선다. 굴운리에서 올라가는 능선길은 쉬운 길은 아니다. 능선에는 하늘로 죽죽 뻗어 올라간 시원스런 송림이 있어서 공작산은 기품 있는 산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탓에 등로는 희미하고 표지리본도 없다. 흔적을 따라 오르고 또 오른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공작산 정상에 도착한다.



공작산은 높이 887m로 꼭대기에서부터 뻗어나간 능선이 마치 공작의 날개처럼 펼쳐져있다 하여 공작산(孔雀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군업리에서 오르는길과 만나는 조그만 암봉에 볼품 없는 정상 표지판이 서 있고 실제 공작산 정상은 산불감시시스템이 차지하고 있다.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숲 속 공터 그늘에서 자리를 잡고 점심 도시락을 펼친다. 40분간의 점심식사를 마치고 수타사로 하산을 시작한다.




뒤돌아보니 공작산 정상이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고 왼쪽으로 굴운리에서 올라온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600m를 내려서면 안부가 나타나고 여럿이 앉을 수 있는 벤치도 있다. 안공작재다. 이곳 안공작재를 공작골 주민들은 '옹기재'라 부른다. 옛날 옹기장수가 재를 넘다가 호랑이에게 물려가고 옹기 지게만 남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 전한다. 안공작재 남쪽 바로 아래에는 지왕동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횡성군 탑산으로 피난했다가 이 마을을 지나 재를 넘어 인재로 갔다하여 '지왕동' 또는 '금왕동', '기왕동' 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정표가 있고 갈림길이다. 왼쪽은 공작골로 내려가는 하산길이고 오른쪽은 굴운리에 내려가는 길이다. 수타사(6.5km)는 그대로 직진한다.





정상에서 30분 정도 내려와서 헬기장을 통과하고 다시 한 시간 정도를 내려서면 작은골고개에 닿는다. 갈림길이다. 그대로 직진하여도 능선을 타고 수타사로 간다. 왼쪽 약수봉(1.3km)쪽으로 방향을 잡고 조금 내려서자 임도와 만난다.



오른쪽은 군업리 44번 국도(4.8km)로 향하는 길이고 왼쪽은 수타사(2.9km)로 향하는 길이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공작의 날개 능선이 보이는 임도가 휘어지는 부분에서 오른쪽 숲 속으로 들어선다.



오랫동안 인적이 끊겨 낙엽이 발목까지 빠진다.
작은골 고개를 떠난 지 30분. 시멘트 포장 마을길로 내려서며 민가가 한 채 보인다. 용운문씨 집(홍천군 동면 신봉리)이다. 시원한 지하수로 갈증을 달래고 바닥난 물병을 보충한 다음 세수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 신봉마을을 지난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동봉사는 수많은 돌탑이 인상적이다.




멎진 전원주택을 지나자 약수봉등산안내도가 보이고 신봉계곡이 길을 가로막는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향한다. 인적이 없는 별장을 가로질러 계곡을 끼고 호젓한 산길을 걷는다.
공작산에서 발원 신봉리를 거쳐 덕치리로 이어 흐르는 계곡에는 맑고 깨끗한 옥수가 흐르고 크고 작은 소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계곡을 따라 맑은 물을 벗삼고 산새 소리를 들으며 때묻지 않은 경관에 도취된다. "궝소" 이정표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약수봉으로 오르는 길이 이어진다.



수타사(1.6km)는 계속 직진하여 절벽 아래부분에 붙은 철다리를 건넌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특이한 것은 계곡에 모래사장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해수욕장처럼 모래사장이 넓거나 길지는 않지만 모래사장이 있어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특히 많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용담 조금 못미처 너른 바위에 앉아 계곡물에 발 담그고 잠시 산행의 피로를 잊으며 휴식을 취한다.



주차장 0.5km 이정표가 보이고 왼쪽 공작교를 건너서 도착한 수타사는 명성에 비해 자그마한 사찰이다. 수타사에는 일주문이 없고 바로 천왕문과 비슷한 봉황문으로 접어든다. 



봉황문 좌우에 분노하는 듯한 얼굴과 갑옷을 입은 모습으로 모두 악귀를 거느리고 있는 사천왕상(소조사천왕상)은 기록에 의하면 현종 15년(1674)에 법륜이 봉황문을 세우고, 2년 후인 숙종 3년(1676)에 요담이 사천왕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세조 4년(1458년)에 간행된 월인석보 2권이 사천왕상안에서 발견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봉황문으로 들어서자 사천왕상이 말하는 듯하다.
"이제 버리면서 살 나이가 되었는 데 아직도 부족한가"라고....
홍천군 동면 덕치리에 위치한 수타사는 신라 성덕왕 7년(708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로 처음에는 산세가 아름답다하여 일월
사라 하였는데 선조 2년(1569년)에 옮겨짓고 옆에 큰 냇물이 흘렀다 하여 수타사라 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17호인 대적광전은 규모는 크기 않지만 균형이 잘 잡혀 있는 조선 후기 불전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수타사를 돌아보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공작교를 다시 건너와 주차장으로 향한다. 수타사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짧지만 울창한 소나무 숲과 계곡이 어우러져 있고 길 왼편 우거진 송림 사이로 보이는 부도 밭에는 여러기의 부도와 2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중에는 8각원당현의 부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의 많은 스님들이 이곳에서 수도를 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부도들 중에서 이름을 판독할 수 있는 홍우당, 서곡당, 중봉당, 청송당, 기허당 등은 부도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17시 25분 수타사 주차장에 도착하면서 6시간의 산행은 끝이 난다.

'나의 산행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봉산-금원산  (0) 2008.07.17
금수산  (0) 2008.07.17
서장마용(서대산-장룡산-마성산-용봉)  (0) 2008.07.17
주작산-덕룡산 종주  (0) 2008.07.17
문덕봉에서 고리봉까지  (0) 2008.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