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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조각맞추기

2. 댓재-두타산-청옥산-백복령

2003. 11. 02(일)

지루한 장마와 태풍 매미가 할퀴고 지나가면서 엄청난 상처를 남긴 여름이 닫히고 계절의 수레바퀴는 돌아 어김없이 가을이 시작되는가 싶더니 벌써 가을의 끝자락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이제 11월 겨울의 옷깃이 보이는 길목에서 백두대간 종주 코스 중 댓재에서 백복령까지 27km구간 종주에 나섰다. 이 구간에는 두타산(1404m)과 청옥산(1354m)이 무릉계곡을 중심으로 쌍둥이처럼 우뚝 서 있는 구간이다.

산행을 통해서 그 어떤 탐욕도 욕망도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떠남과 돌아옴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발견하고 내가 나로 되돌아오기 위해서 산행을 떠난다.

☞ 참고 [종주코스 및 소요시간] 댓재-(80)-목통령-(40)-두타산-(45)-박달령-(40)-청옥산-(25)-연칠성령-(25)-고적대-(50)-갈미봉-(55)-이기령-(45)-상월산-(80)-원방재-(50)-1022봉-(100)-백봉령 ---→10시간 35분 식사 및 간식 시간 빼고. 가을 날씨 좋고 약간 빠른 걸음.

밤 10시 45분 아내와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집을 나선다. 11시 8분 평송청소년수련원 주차장에서 출발한 한겨레산악회 버스에 대전 산꾼들의 집합 장소인 시민회관 뒤에서 한 무리의 대간꾼들이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차에 오른다. 11시 55분 동대전톨게이트 앞에서 마지막 대간꾼을 태운 뒤 12시 정각에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경부→중부→영동고속도로를 2시간 반 동안 쉬지 않고 달린 뒤 강릉(대관령)휴게소에서 20분간 정차한다. 

새벽3시 정각 강릉톨게이트를 빠져나간 버스는 국도를 조금 달린 뒤 동해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동해까지 달린다. 3시 25분 옥계톨게이트를 빠져나와 7번 국도와 38번 국도를 이용 삼척을 지나서 10여km 달린 뒤 424번 지방도로로 진입 정선 방향으로 향한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잘못 들어 40여분을 헤맨 뒤 4시 50분 댓재에서 버스는 대간꾼들을 내려놓는다. 모든 것을 날려 버릴 듯한 기세로 엄청난 바람이 분다.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댓재 4: 55
산행 기점인 댓재는 424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개 마루이다. 댓재에는 넓게 잘 정비된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산신각과 공원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산신각 오른쪽으로 대간길에 들어선다. 잡목 숲을 헤치며 헤드램프 불빛으로 어둠을 밀어내고 앞사람 발걸음 따라 한 걸음 한 걸음씩 내 딛으며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산길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다. 15분 동안을 숨가쁘게 오르자 "두타산 3시간"이라는 표지석이 보이고 정상에서 왼쪽 계곡 쪽으로 숨어있는 대간 길을 찾아 급경사를 오른 만큼 내려선다. 내려서자 다시 길은 오를 것을 강요한다. 바람은 지칠 줄 모르고 불어내고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초롱초롱 영롱한 빛을 내면서 길동무를 한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속초 시내를 밝히는 불빛이 마치 보석처럼 빛난다.

목통령 6: 15
"두타산 정상 2.1km" 표지가 보인다. 어느 순간 어둠이 걷히며 뿌옇게 날이 밝아온다. 삶이란 이렇듯 태어나면서 먼 곳으로의 끝없는 여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햇살이 안개를 뚫고 힘없이 비친다. 목통령을 지나니 운해를 휘감고 두타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커다란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구름바다는 한마디로 장관이다. 일출을 볼 욕심으로 오르는 속도를 낸다. 6시 45분 정상 1km (나무 표지판은 숲 속 나무 가지 사이에 끼워져 있다) 못 미친 곳에 이르자 태양은 커다란 불덩이를 밀며 솟구쳐 오르기 시작한다. 아침해의 아름다움에 취한다. 

두타산 6: 55
선두로 나선 대간꾼의 야호 소리가 들리고 조금 오르자 두타산 정상이다. 정상에 도착해서 나는 보았다. 어디에서 어디까지인지도 모르게 펼쳐진 산줄기의 바다를. 두타산 정상은 쉬어갈 수 있는 넓은 공터로 중앙에 묘지와 헬기장이 있고 한쪽으로 정상석이 보인다. 주변을 두루 조망할 수 있어서 전망 또한 아주 좋다. 멀리보이는 동해시 삼화동과 삼척시 미로면의 경계에 있는 이 산은 백두대간이 동해안을 따라 뻗어 내려오다가 삼척 해안가에서 크게 한 번 용트림하여 세워진 산으로 무릉계곡을 중심으로 청옥산(1404m)과 쌍둥이처럼 서 있다.

⊙두타산
두타산과 청옥산은 4km 거리를 두고 거의 연결되어 매우 대조적인 형상이다. 두타산은 정상부가 첨봉을 이루고 주변은 급경사면이어서 날렵한 산새를 자랑하고, 청옥산은 완만하고 묵직한 형상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청옥산보다 두타산이 50미터정도 낮은데도 불구하고 이 산 전체를 일컬어 두타산이라고 부른다.
산스크리트어의 '두타(Dhuta)'에서 유래되었고 그것을 다시 한자음으로 표기된 두타에는 의식주에 대한 탐욕과 세상의 모든 번뇌와 망상을 버리고 수행, 정진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한다.

따듯한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정상 표지석에서 기념 사진 한 장을 촬영한다. 

구름은 어느새 산정을 감싸고 내 마음 속으로도 스며든다. 

구름 자욱한 산길은 가파르다. 산자락마다 우뚝우뚝 선 바위들이 기립한 채 달려오고 건너편의 청옥산이 한 폭의 그림이다. 묘지와 정상석 사이로 난 대간길로 가파른 내리막길을 20여분 내려서고 산죽밭을 지나 바쁜 걸음으로 다시 20여분 내려서니 박달령정상 이정표가 보인다.

박달령 7: 40
"청옥산 3.0km 소요시간 50분" 표지가 서 있다. 

선두 대간꾼들의 과거 산행 잡담을 들으며 청옥산을 행해 걷는다. 왼쪽으로 묘지가 보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샘터 팻말이 보인다. 선두를 보내고 팻말이 가리키는 곳으로 2분 정도 내려가자 샘터가 나타나는데, 물이 겨우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물 한 병을 다 받으려면 1시간 정도는 걸릴 것 같다. 가을 산행에서는 샘터를 믿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 받는 것을 포기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 청옥산으로 향한다. 약초를 캐는 심마니들이 보인다.

청옥산 8: 20
높이 1403.7m. 두타산과 백봉령 사이에 있는 산으로 정상 주변의 넓은 언덕에는 청옥과 약초가 많이 난다하여 청옥산이라 한다. 정상은 넓고 평평하며 헬기장이 있고 중계탑 같은 것이 서 있다. 사방이 참나무로 갇혀 있어 답답하다. 정상 표지석 옆에서 기념 사진 한 장 촬영하고 세찬 바람에 등 떠밀려 곧장 연칠성령으로 향한다. 

연칠성령 8: 45
갈림길 표지판과 돌탑이 보인다. 표지판에는 고적대 2.3km. 

마침 선두가 따뜻한 양지 바른 곳에 자리잡고 늦은 아침 식사를 한다. 서둘러 함께 식사를 마치고 고적대로 향한다. 망군대에서 산허리를 돌면서 능선을 따라 조금 걸으면 급경사 고개가 나오고 바위투성이의 가파른 경사를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올라서야 고적대에 다다른다.

고적대 9: 25
보통 산의 정상을 봉, 산, 정상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은 특이하게 '대'라고 한다. 조그만 돌탑과 정상석이 반갑게 맞아준다. 동쪽으로 내려가면 무릉계곡이다. 정상은 두 세 명이 앉기에도 협소한 바위로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급경사 내리막 험한 흙길 돌길 너덜길을 지나자 커다란 산봉우리 하나가 눈앞에 나타난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잡목 가지가 이리 할퀴고 저리 할퀴면서 길을 방해한다. 산허리를 감싸고돌면서 조금씩 고도를 높이며 능선길을 지루하게 걷는다. 커다란 바위가 길을 막는다. 소나무 숲이 제법 울창한 곳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배낭을 벗었다. 그렇게 세차게 불던 바람이 멎었다. 아무것도 흔들리는 것은 없다. 물 한 모금이 목줄기를 타고 시원하게 흘러내린다. 어디에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저 산들이 어느 산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산들을 바라본다. 무릎까지 쌓인 낙엽을 밟으며 급한 오르막길을 한 발 한 발 오르자 갈미봉이다.

갈미봉 10: 30
나무 가지에 어느 산악회에서 붙인 갈미봉 표지만이 바람에 흔들린다. 정상에 서서 뒤돌아 보니 지나온 고적대, 청옥산과 두타산이 잡힐 듯 보이고 앞쪽으로 내려다보이는 계곡은 장관이다. 

갈미봉을 내려오면 또 다른 봉우리가 올라서길 강요한다. 동행한 여자 대간꾼이 건네는 배 한조각을 고맙게 받아먹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제 반은 지나온 셈이다. 이기령으로 향한다.

이기령 11: 35
갈미봉을 지나면 지루한 내리막길 능선길이 계속 이어진다. 산죽나무 군락지 습지길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여 이기령에 내려서면 철탑이 보이고 임도와 만난다. 이기령 이정표가 세워진 임도를 따라 걸으면 상월산을 거치지 않고 원방재까지 30분 정도 걸리지만 이 길은 대간길이 아니다. 대간길은 철탑 오른쪽으로 난 상월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상월산 12: 00
상월산은 오르내림이 힘든 길이다. 해발 975m 상월산 정상에는 헬기장뿐이다. 안내표지판에는 반대쪽에서 오르는 대간꾼들을 위해 이기령 0.95km라고 적혀 있다. 전망이 좋아 앞으로 가야 할 길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배낭을 맨 채로 서서 물 한 모금 마시면서 가쁜 숨을 고르고 다시 내리막길을 10여분 내려오다 다음 봉우리를 향해 오르막길을 숨차게 천근만근 무거워진 다리를 옮긴다. 힘들게 산을 오르다보면 내가 왜 왔는가 후회하고 간신히 정상에 오른 후엔 잘왔다고 생각하고는 또 다시 산에 오른다. 삶이란 어차피 반복이 아니던가. 정상에 오르면 고사나무가 하늘을 이고 버티고 서 있다. 털썩 주저앉아 마지막 남은 물 한 모금을 털어 넣는다.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한데 수통에 물이 떨어져 걱정이다. 원방재로 내려선다. 

원방재 13: 25
이기령에서 이어진 임도 옆에 작년(2002년)에 백두대간을 종주한 목원대학교국어교육과 표언복 군이 걸어놓은 원방재 표시판이 보인다. 이 표시판에 쓰여진 백봉령까지 2시간 30분. "물! 왼쪽 임도로 나가면 됩니다."라는 글귀에 혼미해진 정신이 번쩍 든다. 

임도로 나가자 정말로 계곡에서 맑은 물이 시원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한 컵 떠서 벌컥벌컥 들이키고 빈 수통 두 개에 가득 차게 담는다. 계곡 물에 발 담그고 여유라도 부려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고 다시 원방재로 돌아온다. 종주하는 대간꾼들이 자랑이라도 하듯 나뭇가지마다 이름 적힌 형형색색의 리본들이 굿당처럼 걸려있다. 때로는 이 표시기가 대간꾼들의 길잡이가 되기도 하지만....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백봉령으로 향한다.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며 산죽나무 숲길과 잡목 숲길을 걷는다. 인생이란 이렇듯 굽이굽이 넘어가는 산등성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한 굽이만 넘어가면 내려가는 길이 있을 법도 한데 또 한 굽이가 나타나고 그렇게 알면서도 속으며 걷는다. 힘들게 오르다보면 오른쪽으로 깎아질 듯이 서 있는 봉이 보인다. 조금 전 지나온 상월산이다. 그 절벽 능선을 밟고 내려온 것이다. 아찔하다.

1022봉 14: 15
마지막 오름길이구나 생각하고 따사로운 햇살을 등지고 힘차게 오른다. 1022봉 헬기장에서 간식거리로 점심을 대신한다. 물 한 병을 다 비우고 1022봉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고 편안한 마음으로 내려서는데 자그마한 봉우리(987봉)가 또 기다리고 있다. 산과 산들이 구름 속에 몸을 숙인 채 건네는 무언의 말을 들으며, 잡힐 듯이 다가오다 달아나는 그 구름 속에 내 마음을 맡긴다. 424번 지방도로에 차들이 오고가는 것이 오른쪽으로 보이자 마지막 아껴둔 물 한 모금을 입어 털어 넣는다. 내려서는 길은 헬기장이 있는 산 정상까지 오른 후 뒤쪽으로 내려선다. 헬기장에서 내려다보니 채석장으로 황폐화 된 자병산 일대가 흉측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안타까운 마음을 접고 내려서니 백봉령 표지판이 보인다.

백봉령 15: 55
11시간의 산행 끝에 드디어 백봉령에 도착해서 산행은 끝이 난다. 백봉령은 해발 780m로 삼척과 정선을 잇는 424번 지방도로에 위치한 고개 마루이다. 간이 휴게소(음식점)에서 칡즙 한잔으로 마지막 갈증을 달랜다. 

고희를 넘긴 연세에 노익장을 과시하며 함께 산행한 어느 어르신이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산행을 통해서 배운다.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산에 오를 수 없고 그 산행에서 느끼는 고통과 기쁨, 그리고 환희 역시 그 누구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이라는 것을... 산행은 철저히 모든 것을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지독하게 외로운 게임이라는 것을... 아직도 올라야 할 산들이 많고 내 발길을 기다리는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이 많이 있다는 것에 그리고 나에게 건강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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