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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조각맞추기

4. 피재-댓재

2004년 6월 13일 (일)

꿈은 가진 자만이 이룰 수 있다. 과거의 꿈과 희망이 오늘의 현실이 되고 내일의 추억이 된다. 젊은이는 희망에 살고 늙은이는 추억에 산다고 한다. 희망이란 누구나 다 가질 수는 있지만 그러나 그 희망을 추억으로는 누구나 다 만들 수는 없다. 명산 100산을 목표로 산행을 시작한지 어느덧 1년이 흐른다. 시계종주를 하면서 하나의 욕망이 살아 꿈틀댄다. 민족의 정기가 살아 숨쉬는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산줄기 백두대간. 한반도의 정기의 대동맥(척추)을 직접 발로 밟아 보고 싶은 욕망은 등대사모팀과 밤머리재에서 성삼재까지 종주를 하면서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하고 조각 맞추기에 나선다.


0시를 막 지나며 대전요금소로 진입한 버스는 어둠을 헤치며 30분을 달려 중부고속도로 오창휴게소에서 10분간 정차한다. 0시 45분 오창요금소를 빠져나와 좌회전하여 510번 지방도로를 타고 10분 정도 진행하다 36번 국도로 갈아 타고 충주방면으로 달린다. 차내는 고요하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38번 국도를 달리던 버스는 2시 15분 남면주유소에서 10분간 정차한다. 날씨가 차다. 3시 40분 운전기사가 졸음을 물리치기 위해 정선군 멀미에서 잠시 정차하여 담배 한 대를 피고 사북을 향해 달린다. 3시 50분 강원랜드로 유명해진 사북을 지나고 4시 5분 두문동재 터널을 통과한다. 4시 25분 피재에 도착한다. 해발 920m의 피재는 삼척쪽에서 난리를 피해 넘어오던 고개라는 데서 지명이 유래했다 하는데, 일명 삼수령이라고도 한다. 즉 낙동강과 한강, 그리고 오십천이 발원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빗물의 운명"이란 내용을 새겨 놓은 조형탑이 눈길을 끈다.


빗물의 운명
하늘이 열리고, 우주가 재편된 아득한 옛날 옥황상제의 命으로 빗물 한가족이 大地로 내려와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겠노라고 굳게 약속을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 빗물 한가족은 한반도의 등마루인 이곳 三水嶺으로 내려오면서 아빠는 낙동강으로 엄마는 한강으로 아들은 오십천강으로 헤어지는 운명이 되었다. 한반도 그 어느 곳에 내려도 행복했으리라 이곳에서 헤어져 바다에 가서나 만날 수밖에 없는 빗물가족의 기구한 운명을 이곳 三水嶺만이 전해주고 있다.

차내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한다. 그 사이 어두움이 물러난다. 4시 55분 계단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삼수정 정자를 뒤로하고 피재를 출발한다.


5분 정도 비포장 경운기 길을 따라 가면 길이 갈라진다. 이곳이 노루메기다.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노루메기에서 경운기 길을 버리고 숲으로 들어선다. 서서히 경사를 더해가며 오름길을 5-6분 정도 오르고 곧이어 2분 정도 내려서면 부드러운 길이 이어지고 목장울타리를 통과한다. 싱그러운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상쾌함을 준다. 5시 45분 오름길이 조금씩 경사를 더한다. 6시 정각 960.2봉에 도착하여 10분간 휴식한다. 6시 25분 공터(가짜건의령)을 지나자 왼쪽으로 멎진 풍경이 펼쳐진다.


잡목이 성가시게 한다. 오른쪽은 가파른 절벽으로 동고서저 지형이다. 10분을 더 지나 임도와 만나는 곳이 건의령이다. 상사미에서 삼척시 도계읍 방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삼척 육백산 기슭 마읍(馬泣)의 궁터에 유배와 있을 때 고려의 충신들이 그를 배알하고 돌아 오면서 이 고갯마루에 이르러 복건과 관복을 벗어 걸어 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불사이군(不事二君)하겠다고 하였기에 그들이 입던 복건과 관복을 벗어 건 고개라 하여 건의령(巾衣嶺)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건의령 아래에는 정승터라고 하여 고려 정승이 살던 터가 있고 건의령 동쪽 산언덕 육백산이 보이는 곳을 향해 아침 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하였다고 한다. 노루메기를 지나 작은 봉우리를 아홉 번 정도 오르내려야 닿는다. 비포장도로가 뚫려 있는 건의령에는 돌무더기가 있고 오른쪽으로 비바람에 시달린 당집이 있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지 초라한 모습이다. 닫힌 문을 열자 '백인교군자당'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있다.


도로 건너 돌무더기 쪽으로 표지기가 보인다. 잡목 숲을 서서히 올라 902m봉을 지나면 편안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동쪽은 절벽이고 서쪽은 완만하게 뻗으며 내려서는 완벽한 동고서저형의 지형으로 영동과 영서를 가로지르는 백두대간의 등줄기를 타고 오른다. 6시 55분 푯대봉삼거리에 도착한다. 배낭을 벗어 내려놓고 푯대봉으로 향한다. 50m 정도 가면 푯대봉(1009.9m)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통신탑과 삼각점이 박혀있고 멀리 동해바다가 조망된다.


다시 삼거리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후미를 기다리며 휴식한다. 7시 10분 오른쪽(동쪽)으로 급회전하여 급경사를 내려가면 곧 잘록이에 닿는다. 7시 35분 밋밋한 봉을 지나면 삼밭골의 목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어 능선은 잡목이 우거져 있고 간간이 눈에 띄는 백두대간종주팀들의 리본이 길을 안내한다. 삼밭골목장 울타리를 지나면 무명봉이 앞을 막는다. 표고차가 150m나 되는 급경사 구간이다. 어느 대간꾼의 표현을 빌리면 다람쥐도 눈물을 흘릴 만큼 힘든 곳이라 한다. 가뿐숨 토해내며 10분 정도 오른다. 물 한 모금으로 목마름을 달랜다. 간식을 나누며 10분간 휴식한다. 잠깐 내려서고 이어지는 부드러운 길을 걸어간다.


8시 1,016m봉에 올라선다. 북서 방향으로 능선 날등의 참나무군락을 지나 뾰족한 997.4m봉에서 오른쪽으로 급회전하며 잘루목으로 내려서면 능선은 서서히 북동으로 방향을 틀며 완만한 길로 이어진다. 물 한 모금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8시 40분 급히 내려서면 산판 흔적이 있는 삼밭골 상단 잘루목에 닿는다. 8시 45분 가파른 오름길이다. 턱 밑까지 차 오르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한 발 한 발 천천히 내 딛는다. 8시 55분 1055봉에 도착하여 10분간 쉬어간다. 5분 정도 내려서 하늘을 덮은 나무터널을 지난다. 9시 15분 평평한 숲 속에 자그마한 돌무더기가 자리잡고 있는 구부시령에 도착한다. 외나무골 하산로가 보인다. 옛날 대기리에서 주막을 하던 여인이 지아비들이 계속 요절하는 바람에 지아비 아홉명을 모시고 살았다. 그 때부터 이 재를 아홉 구, 지아비 부, 모실 시, 재 령을 써서 구부시령[九夫侍嶺]이라고 부른다.


9시 20분 1007봉을 지난다. 1,007m봉은 부드러운 길에 휘파람이 절로 나지만, 갑자기 절벽이 나타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왼쪽으로 돌아 내려서면 초원지대인 새목이 나타난다. 산나물이 많이 나는 곳이다. 9시 30분 서서히 오름길이다. 참나무군락 사이로 고도를 높이면서 7-8분 정도 오르면 참나무를 베어 낸 자리에 초록색 철제로 만든 누각형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는 덕항산 정상(1070.7m)에 도착한다.


덕항산은 동양 최대의 동굴인 환선굴이 자리잡고 있어 삼척시에서 군립공원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덕항산정상 표지판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고 간식을 나누며 쉬어간다.


9시 55분 쉼터 갈림길이다. 왼쪽은 예수원 하산길이고 직진하면 지각산 가는 길이다. 대간길은 직진이다.


3분 정도 올라서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서서히 5분 정도 내려서면 대이계곡 환선굴 주차장이 조망된다. 대이계곡은 수많은 동굴이 산재해 있는 동굴지대이며 참나무 껍질을 겹쳐 얹어 지은 굴피집이 오랜 세월 동안 썩지도 않고 버티고 있는 산골중의 산골이다.


10시 30분 오름길이다. 중턱에서 환선굴 주차장이 가림 없이 조망되고 조금 더 오르면 지각산에 도착한다. 자암재까지 1.8km 라 쓰인 예쁜 이정표가 반긴다. 지각산(地角山·890m)은「찌걱산」이라고도 한다. 삼척시 하장면에 있는 오지의 산이다. 광동댐이 건설되기 전 이 부근은 대단히 수려한 계곡이었다. 경치도 경치지만 개울가로 난 길을 따라서 걷다가 바로 이 지각산 아래서 남녀가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그냥 가지 못하고 꼭 일이 생겼다고 한다.


광동 고랭지채소밭과 멀리 검푸른 동해가 시원하게 수평선을 그어 놓은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환선굴이 있는 골말을 내려다보니 절경을 이루고 있다. 마주 보이는 산줄기를 타고 등뼈처럼 삐져 나와 있는 돌출된 바위들도 예사롭지 않다.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면서 후미를 기다린다. 30분 정도 지나 후미가 도착하고 빙 둘러앉아 점심 도시락을 펼친다. 11시 30분 웃음이 있고 정겨움이 묻어나는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길을 서두른다.


선두 그룹을 따라 천천히 내림길로 걸음을 옮긴다. 11시 45분 넓은 풀밭 큰가래골 안부를 지나 홀로 호젓한 오솔길을 걷는다. 선두는 빠른 걸음으로 치고 나가고 후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11시 55분 오른쪽 발 밑의 절벽을 조심하면서 봉우리 하나를 내려서면 자암재에 도착한다. 오른쪽으로 환선굴로 하산하는 길이 이어지고 이정표에는 0.5km 떨어진 곳에 약수터가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매님이 도착한다. 대간길은 직진한다. 서서히 경사가 더해지면서 가파라진다. 숨이 턱 밑까지 차 오를 즈음 숨 고를 수 있는 부드러운 길이 이어진다. 12시 15분 능선을 따라 걸으면 왼쪽으로 고랭지 채소밭이 시야에 들어온다. 광동댐 이주 마을의 그림 같은 집들이 바라보인다. 맑은 하늘과 고운 햇살 퍼지는 마을의 풍경이 더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삼척시 하장면에 광동댐을 만들면서 수몰지역 주민들을 이주시킨 곳으로 산을 개간해 만든 수십만 평의 배추밭이 인상적이다.


밭으로 내려 선 다음 농로를 따르다가 귀네미계곡 끝을 빙 돌아 왼쪽(동쪽)으로 방향을 튼다. 12시 35분 포장 된 농로를 계속 따라간다. 머리 위로 내리 쬐는 한낮의 태양은 그 열기를 점점 더하고 타는 목마름을 물 한 모금으로 달랜다.


왼쪽으로 조용한 산골 마을이 평온해 보인다.


오른쪽 고랭지 채소밭 사이 넓은 길을 따라 1058봉을 오른다. 후미 그룹이 밭을 가로질러 오른다.


1058봉에는 커다란 물탱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멀리 동해바다가 조망된다. 표시기를 살피며 밭과 숲의 경계를 따라 내려가면 다시 산판로를 만난다. 길 가 나무그늘의 유혹을 뿌리치고 농로를 따라 걷는다.


12시 55분 갈림길이다. 잠시 물 한 모금으로 타는 목마름을 달래고 직진한다. 시야가 확 트이며 멀리 동해바다가 시원스럽게 조망된다. 13시 5분 넓은 길을 따라 넓은 초원지대인 큰재에 도착한다.


땅이 꺼져 버린 큰재를 지나면 억새 언덕으로, 동쪽으로 동해바다가 바라보인다.


13시 35분 야생화가 활짝 웃으며 나그네를 반기는 밋밋한 능선을 따라 1,059m봉에 오른다.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후 너댓개의 조그만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한다. 14시 20분 황장목이 간간이 나타나며 황장산(1,059m) 에 도착한다. 동해바다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기념촬영을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가파른 길을 10분 정도 내려서 산죽밭을 통과하면 댓재에 도착한다. 조형탑이 보이고 건너편에 산신각이 낯설지 않다.


댓재(竹峴 810m)는 삼척과 정선을 연결하는 424번 지방도로가 나 있으며,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일명 죽현, 죽치령이라고 불린다.


14시 35분 버스에 오르면서 백두대간 조각 맞추기 한 조각을 끼운다. 15시 후미가 도착한다. 댓재휴게소(T. 033-554-1123)에서 두부와 김치찌개를 안주 삼아 옥수수 막걸리로 하산주를 하고 열무김치 국수로 저녁식사까지 마친다. 음식 맛이 좋고 주인장의 인심도 후하다. 16시 25분 대전을 향해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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