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10. 05(일)
▶ 코스 : 화방재-수리봉-만항재-함백산(1572.9m)-중함백-은대봉-싸리재(두문동재)-금대봉-쑤아밭령-비단봉-매봉산(천의봉)-피재 (소요시간 약 7시간30분)
일요일 새벽 3시 반에 알람 소리에 침대에서 살며시 일어나 어젯밤에 챙겨놓은 산행 준비물을 배낭에 담는다. 대전 평송 청소년 수련원 주차장에서 4시 정각에 출발하는 산악회 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선다.
4시에 출발한 버스는 대전T/G를 빠져 나갈 때까지 시내를 돌면서 산악회 회원들을 태운다. 4시 45분 대전 T/G를 빠져 나간 버스는 청원, 증평, 충주, 제천을 거쳐 7시경 충청북도와 강원도의 도계인 느릅재터널을 지나고 있다. 이곳부터 영월까지 자욱한 안개 때문에 버스는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7시 20분 버스는 선돌 주차장에 잠시 쉰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서이다.
25분간의 짧은 아침식사와 커피 한잔의 여유를 뒤로 한 채 버스는 다시 31번 국도를 따라 태백을 향해 달린다. 9시에 화방재(어평휴게소)에 도착한 버스는 28명의 남녀를 내려 놓은채 휑하니 가버린다. 이제부터 산행이 시작된다.
주유소 건너 민가 마당으로 들어서 오른쪽 장독대를 돌아 뒤 텃밭을 가로질러 등산로로 오른다. 산은 숨돌릴 틈조차 주지않고 30분간 오르기만을 강요한다. 숨이 차다. 수리봉(1214m)에서 물 한모금 마실 짬을 낸다. 호흡은 가쁘지만 땀은 그다지 많이 나지 않는다.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산죽나무 군락 오솔길을 따라 산행이 계속된다. 창옥봉을 지나면 가파르던 산은 숨고를 여유를 주며 조금씩 고도를 높여간다. 전형적인 잡목 숲을 헤치며 지나가다 보면 넓은 공터 앞에 철조망이 보인다. 지도에는 국가시설물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으로 철조망을 돌면 군부대 정문이 보인다. 잰걸음으로 5분 정도 비포장 산판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도로 입구에 쇠줄이 쳐져있다. 공군 8231부대 군사시설이므로 통행을 금지한다는 안내판이 서 있고 만항재(1330m)와 만난다. 만항재는 404번 지방도이며 2차선으로 포장되어 있다. 함백산 등산로 안내판을 따라 길을 재촉한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돌밭길에 경사가 가파라진다. 11시 정각 함백산(1572.9m)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 서서 사방을 둘러본다. 확트인 시야가 기분을 좋게한다. 오른쪽으로 중계소 같은 건물이 보이고 왼쪽 산아래로 고한읍이 보인다. 정상 표지 옆에 서서 자랑스러운 포즈로 사진 한 장 남기고 산행을 계속한다.
보호수로 지정된 아름드리 주목도 보이고 산림자원 유전자 보호를 위해 쳐진 철조망 왼쪽으로 10분을 내려가면 싸리재로 향하는 표지판이 나오고 이후 20분 정도 치고 오르면 정상인 듯한 봉우리에 닿게 된다. 중함백이다. 이곳부터 제 3쉼터까지는 약간 내리막길이다.
낙옆이 뒤덮은 뒤 아무에게도 내주지 않은 산길을 호젓한 분위기를 느끼며 맑은 물로 목을 축이고 또 그 물로 흐릿해진 정신을 가다듬고 걷고 또 걸었다. 이런 길이라면 마음을 줄 수 있는 이와는 하루종일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11시 45분 제 2쉼터을 통과해서 12시 정각에 제 1쉼터에 도착한다. 제1쉼터 밑에 대한민국에서 제일 긴 정암 터널이 지나간다. 길이가 4505미터라고 한다.
약간 경사진 오르막길을 30분 정도 오르면 은대봉(1442.3m)이다.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 마지막 일행이 도착하자 선두는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내준다. 아무 생각없이 따라나선 산행인데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이 팀이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점심을 마치고 경사진 내리막 길을 20여분 내려서면 싸리재(두문동재)이다. 오른쪽으로는 태백시 삼수동 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대덕산 금대봉으로 가는 길이다.
금대봉 대덕산 자연생태보전지역이라는 대형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방화선 따라 15분 정도를 걷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좁은 산길을 오르다 보면 헬기장을 지나 한국청소년연맹 한강탐사대가 세운 양강발원봉 1418.1미터라는 나무 팻말과 그 옆에 돌무더기가 있고 철탑 위의 산불 감시 초소가 보인다. 대덕산 금대봉이다. 물 한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쑤아밭령을 향해서 빠른 걸음을 옮긴다. 2시 10분 쑤아밭령에 도달한다. 작년에 이곳을 지난 목원대학교 학생이 비단봉까지는 30분, 마지막 목적지인 피재까지는 2시간이라는 문구를 표지판에 남겨 놓은 것이 보인다.
5시간을 걸었는데 아직도 2시간이 남았다. 오르락 내리락 걷는 길, 그렇다, 우리들은 걷는 것이다. 가다가 다리가 쉬자면 쉬고 목이 타면 물 한 모금으로 달래면서 걸을 수 있는 힘이 남아있는 한 걸어야 한다. 그것이 산에 오르는 자들의 숙명인 것이다. 지금 내가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가. 한걸음 옮길 때마다 더욱 거치어지는 숨소리를 들으면서 30분간을 오른다. 급경사 오르막인데다 몸이 지친 상태라서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것이 쉽지 않다.
자그마한 바위 암봉을 오르니 멋진 전망대다. 비단봉이다.
태백시가 한눈에 다 보이며 능선과 능선이 겹겹히 포개져 흐르는 모습이 장엄 그 자체이다. 지나온 길이 눈 앞에 펼쳐진다. 참으로 많이도 걸었다. 왼쪽 산아래로 멀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추전역이 보인다. 구름 한 점 없는 쪽빛 하늘이 머리 위로 바짝 다가선다. 초록 잔치를 눈부시게 펼치던 여름 숲은 조금씩 퇴색해가고 가을과 자리를 바꾸려 준비하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눈과 마음이 즐겁다.
낯선 산에서 간간이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 백두대간 종주 코스라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는 않는다. 배추밭 사이로 매봉산 능선이 이어진다. 고랭지 채소밭길 사이로 매봉산(천의봉)에 오른다. 3시 30분 매봉산을 뒤로 하고 지친 발걸음을 옮긴다. 여기서 산판길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피재이나 궂이 능선길을 고집한다. 분수령 목장에서 쳐놓은 가축 탈선 방지용 철조망을 따라 내려오니 임도와 만난다. 임도 따라 내려서니 2차선 포장도로인 35번 국도이다. 드디어 피재(삼수령 해발 920m)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낙동강, 한강, 오십천의 발원지여서 삼수령이라고 한다.
7시간 30분간의 백두대간 19구간 종주에 마침표를 찍는다. 늘 그랬듯이 나처럼 약한 존재가 거대한 자연 속에서 무사히 산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이 도왔기 때문이다. 이번 산행 중, 생활에 찌들었던 내 오감(五感)은 그저 감탄을 자아낼 뿐이었다. 오후 5시 버스는 다시 대전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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