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12(일) 서해랑길 102구간 (11.0km) : 외포항 강화파출소-(1.8km)-삼암돈대-(1.3km)-황천포구 삼거리(1.5km)-계룡돈대-(2.8km)-망월돈대-(3.6km)-창후항

서해랑길 102코스는 101코스가 끝나는 인천해양경찰서 강화파출소앞에서 시작된다.



원래 서해랑길은 외포2리 마을회관을 지나 해안서로를 따라 걷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바다를 가까이 느끼고 싶어 외포항에서 횟집들이 늘어선 골목 뒤쪽, 잔잔한 파도가 찰랑이는 바닷가 길로 접어들었다.

때로는 정해진 길을 살짝 벗어날 때, 여행의 진짜 묘미를 발견한다. 뜻밖의 장소에서 발길을 붙잡는 특별한 공간을 만났다. 고려 시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삼별초 원정길을 기리는 조형물들이다. 몽골의 침략에 끝까지 항거하며 붉은 기개를 뿜었던 삼별초의 호국정신이 이 고요한 바다에 고스란히 서려 있는 듯했다.

그 길 위에는 참 다정하고도 의미 있는 상징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강화를 대표하는 묵직한 고인돌, 먼 길을 용맹하게 달려온 듯한 진도의 진돗개, 그리고 먼 남쪽 바다 건너 제주의 바람을 품고 온 인자한 미소의 돌하르방까지. 삼별초의 발자취를 따라 긴밀한 역사적 인연을 맺은 강화군, 진도군, 제주시가 그 호국정신을 함께 계승하자는 의미로 세워둔 자매결연 조형물들이 푸른 서해를 배경으로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시공간을 초월한 오랜 연대감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선착장 끝에 삼별초군호국항몽유허비가 있다. 역사책의 한 줄로만 기억되던 삼별초의 숨결을 이렇게 바닷가 길목에서 마주하니,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이 평화로운 풍경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푸른 서해를 배경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항쟁비를 바라보며, 시대를 넘어 전해지는 숭고한 마음을 가슴 한구석에 깊이 담는다.

고려 시대, 거대한 몽골의 침략에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자주독립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삼별초. 13세기 초 친몽정책(親蒙政策)을 펴던 고려 원종 (元宗. 24대. 재위 1260~1274)이 개경 환도(開京還都)를 결정하자 배중손(裵中孫.?~1271) 장군 등이 고려 무신정권 친위대인 삼별초군(三別抄軍)을 이끌고 진도(珍島)를 향해 강화도를 탈출하던 곳이다. 그들은 이곳 강화도 외포항 바다를 뒤로하고 진도와 제주도로 이어지는 길고도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거친 풍랑보다 더 두려운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들이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단순한 목숨이 아닌 나라의 자존심이자 호국의 정신이었을 것이다.

나지막한 언덕 위, 오랜 세월 동안 강화의 바다를 지켜온 망양돈대에 올랐다. 세월의 이끼를 머금은 거친 돌벽들이 정갈하게 둘러앉아 있는 곳, 이곳에 서면 가슴이 탁 트이는 서해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과거에는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국경을 지키던 삼엄한 초소였겠지만, 지금은 그저 찾아오는 이들에게 너른 바다와 평온한 쉼을 내어주는 고마운 전망대가 되어 준다.


길을 벗어났기에 만날 수 있었던, 작지만 소중한 길 위의 이야기들.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삼별초의 옛 흔적을 마음에 담으며, 망양돈대에서 다시 해안서로로 내려와 황청포구를 향해 기분 좋은 발걸음을 다시 이어 간다.

조금 걷다 보니 길은 이내 삼거리 갈림길이다.

원래 서해랑길은 이곳에서 오른쪽, 강화유스호스텔 방면으로 들어가 국수산 능선을 넘고 황철저수지 쪽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선답자의 후기를 보니 강화나들길 16코스인 '서해 황금 들녘길'의 일부이기도 한데, 조금 단조롭고 볼거리가 적은 편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원래 코스 대신, 푸른 바다를 조금 더 길게 곁에 두고 싶어 해안서로를 따라 곧장 계속 걷기로 했다. 길을 바꾸자 기다렸다는 듯 강화의 오랜 숨결이 다가온다.

해안을 따라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암돈대에 들른다.


거친 해안서로 길가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암돈대는 마치 오랜 세월 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묵언수행을 이어온 수행자처럼 고요히 서 있다. 빛바랜 돌벽들이 참 정겹고도 아늑하게 다가온다.



눈앞으로 서해바다를 가로지르는 웅장한 실루엣, 석모대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면 황청리와 삼산면 석모리를 이어주는 연륙교다.

정갈하게 가꾸어진 강화 해누리공원 앞을 지나치며 평화로운 풍경을 눈에 담는다.

해누리공원 한 켠에는 하늘을 향해 당당하게 솟아오른 횃불 모양의 조형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추모공원이라는 공간의 특성과 맞물려, 이 횃불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이곳에 영면하신 분들의 고귀한 희생과 넋을 기리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보훈의 불꽃'을 의미한다.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횃불처럼, 그분들이 남기신 숭고한 발자취가 지워지지 않고 후대에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정해진 길을 잠시 접어두고 발길 닿는 대로 걸을 때, 바다는 더 넓고 다정한 풍경을 아낌없이 열어보여 준다. 잔잔한 파도 소리를 길동무 삼아 걷는 이 길이 참 여유롭고 좋다.


석모대교는 길이 1.41km, 폭 11m의 그리 넓지 않은 왕복 2차선 다리이지만, 이 길이 품고 있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지난 2017년 정식으로 개통되기 전까지, 석모도는 오직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아득한 섬이었다. 거친 물살과 바람을 가르던 카페리의 낭만도 좋았지만, 이제는 이 단단한 대교 덕분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섬이 허락하는 고요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황청포구 입구 삼거리에 다다라 잠시 숨을 고른 뒤, 왼쪽 황청포구가 아니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서해랑길 코스가 아니어서 안내 리본은 없다. 이 길은 ‘서해 황금 들녘길’이라는 다정한 이름을 가진 강화나들길 16코스다. 황청리 마을에서 시작해 창후리 선착장까지 이어지는 길로, 한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서해바다를 두고, 다른 한쪽으로는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넉넉한 들판을 곁에 두며 걸을 수 있는 매력적인 길이다.

황청2리 마을회관에서 다시 서해랑길과 만난다.

서해랑길 이정표를 따라 걷다보면 길은 자연스럽게 바닷가로 이어진다. 창후항까지 남은거리는 7.5km다.

둑길과 들길로 이어지는 나들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음마저 이 넓은 풍경을 닮아 넉넉해지는 기분이 든다.


작렬하는 태양을 우산으로 가리고 지루한 제방길을 걸어간다.


1km 쯤 걷자 계룡돈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유난히 길게 뻗은 성벽이 푸른 바다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듯한 포근함이 느껴진다. 해안가 나지막한 터에 자리 잡은 이 정갈한 돈대는, 강화의 수많은 돈대 중에서도 유독 고즈넉한 멋을 풍기는 곳이다.


단단하게 맞물린 돌벽을 따라 가만히 걸음을 옮긴다. 성벽의 네모난 총안(銃眼) 너머로 빼꼼히 내다보이는 바다는 마치 액자 속에 담긴 한 폭의 수묵화 같다. 한때는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긴장을 가장 먼저 마주했을 삼엄한 곳이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잔잔한 숨소리만이 돈대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스치듯 지나는 바람마저 아늑하게 머물다 가는 곳, 계룡돈대에서 마음의 쉼표 하나를 묵직하게 남겨둔다.

바다를 품은 드넓은 간척지 너머, 나지막한 언덕 위에 단아하게 자리한 망월돈대를 만났다. 이름에 '바라볼 망(望)'과 '달 월(月)'을 품고 있어서일까, 돈대로 향하는 발걸음에서부터 왠지 모를 서정적인 떨림이 전해져 온다.


성벽 안으로 들어서면 네모반듯하고 정갈하게 쌓아 올린 돌벽들이 아늑한 안마당처럼 포근하게 감싸 안아 준다. 성벽 위로 조심스레 올라서면 탁 트인 서해바다와 함께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때는 거친 바다를 경계하던 긴장 어린 공간이었겠지만, 지금은 들바람과 바닷바람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평화로운 노래만이 가득할 뿐이다.

한반도 횡단 울트라 마라톤 대회출발점 표지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대회는 이곳 강화도 창후리 선착장(서해)에서 출발하여 경기도, 강원도 대관령을 거쳐 강릉 경포대 해변(동해)에 도착하는 코스로, 총 거리는 약 308km에 달하며,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2박 3일 동안 꼬박 달려, 64시간 이내에 완주해야 기록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 대표 메이저 울트라 마라톤 대회 중 하나다.
대한민국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한반도의 허리를 두 발로 순수하게 달려 횡단하는 대회다. 많은 고개와 한계령·대관령 같은 험난한 산악 지형을 통과해야 한다. 육체적 한계는 물론, 수면 부족과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인간 한계 도전의 무대로 꼽힌다.

창후항(倉後港)은 그 이름에 조선 시대의 아득한 역사와 삶의 숨결을 그대로 품고 있는 포구다. 창후(倉後)라는 이름은 글자 그대로 ‘창고의 뒤쪽’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조선 시대 대동법이 실시되면서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보관하고 운송하던 세곡창고인 ‘창후창(倉後倉)’이 이곳에 있었는데, 이 창고의 뒤편에 자리한 포구 마을이라 하여 '창후리', '창후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때는 강화도와 교동도를 연결하는 가장 활발한 관문이자 여객선착장으로 사람들의 온기와 활기가 가득했던 곳이다.

비록 교동대교가 개통되면서 여객선은 멈추어 섰지만, 여전히 포구 특유의 고즈넉한 정취와 서해바다의 붉은 낙조를 보러 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드디어 서해랑길 103코스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판이 반갑게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 창후항이 열심히 걸어온 102코스의 종점이자, 서해랑길 마지막 여정이 다시 시작되는 경계선이다.

마침내 오늘 여정의 종착지이자 뒤풀이 장소인 해동식당에 들어선다. 각자의 입맛과 취향에 따라 누구는 얼큰하고 칼칼한 김치찌개를, 또 누군가는 얼음 동동 띄운 진하고 고소한 콩국수를 선택한다. 복잡한 마음은 비우고 든든한 음식으로 속을 가득 채우며, 길 위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안주 삼아 술 한잔 나누며 오늘 하루의 멋진 여정을 행복하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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