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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서해랑길101구간(곤릉 버스정류장~능내리 마을회관)

2026. 6. 28(일) 서해랑길 101구간 조각(6.7km) : 곤릉 버스정류장-(4.9km : 곤릉, 석릉)-(1km)강화가릉-(0.8km)-능내리 마을회관

 

100코스에 이어 101코스를 절반 정도 걷는다. 고려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곤릉과 석릉, 능내리 석실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주한 가릉에 이르기까지 이 길은 마치 거대한 지붕 없는 박물관이었다.

강화 곤릉은 서해랑길 코스에서 약간 벗어난 위치에 있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다시 올지 몰라 기꺼이 다녀오기로 한다.

그러나 곤릉으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정확히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는 데다, 무성하게 자라난 넝쿨풀이 길을 꽉 가로막고 있어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참고로, 길정리 새마을 회관에서 약 400m 정도 떨어져있다.

아래 표지판에서 숲길로 약 200m 떨어져 있다. 

강화곤릉(江華坤陵)은 46년 간 재위하고 몽고에 끝까지 항전하다 승하한 고종의 어머니이며 고려 22대 왕 강종의 두 번째 왕비인 원덕태후(~1239)의 능이다. 희종이 쫓겨난 자리에 세워진 임금은 희종의 사촌 형인 강종이었고, 그의 부인이 바로 원덕태후(元德太后) 유씨다. 원덕태후는 사평왕후가 대궐에서 쫓겨난 뒤 태자비에 책봉되면서 입궁한다. 현종 5세손인  신안후 왕성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시아버지 명종이 최충헌에게 폐위되어 당시 태자였던 남편과 함께 14년째 강화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희종의 최충헌 암살 시도 실패가 그녀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이다.

강화곤릉은 순경태후의 강화가릉과 함께 남한 지역에 남아있는 단 2기의 고려 시대 왕비 능으로 고려 왕실의 묘지를 직접 보고 연구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크다. 2011년 곤릉에서 강화곤릉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서해랑길을 따라 석릉으로 향한다. 길가에서 만난 곤릉마을을 수호하는 장승은 천하대장군 위에 지하여장군이 있는 남녀한몸이다. 특이하다. 

고려 제21대 희종이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강화도와 교동도, 영종도를 전전하며 유배 생활을 했다. 1219년에 최충헌과 사돈을 맺고 유배에서 풀려 개경에 돌아왔으나, 1227년 복위 운동에 휘말려 또다시 강화도로 유배돼 고종 24년(1237) 57세로 죽자, 덕정산 남쪽에서 장례를 지내고 그 무덤을 석릉(碩陵)이라고 하였다. 다른 왕릉에 비해 규모가 작고 소박한 편이다. 

800년의 세월 온갖 풍상을 겪은 무덤은 말이 없다. 조선 현종 때에 강화 유수 조복양(趙復陽)이 찾아내어 다시 무덤을 쌓았으나, 이후에 무너진 무덤을 1974년에 손질하여 고쳤다.

강화나들길 3코스와 일부 공유하는 길이다. 인천 가톨릭대학교의 캠퍼스 뒷길은 조금은 쓸쓸하다. 도장리 공동묘지를 지나며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교차하는 기분이 들었다. 

서해랑길은 계명 수련원 방향이다.

'가릉'에서 북동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화려한 능이 하나 있다. 진강산 능선이 부드럽게 뻗어내린 곳에 위치한 '능내리석실분'이다. 아직 누구의 묘인지 확인되지 않지만, 가릉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사학자들은 보고 있다.

 

역사학계에서는 능내리 석실분(陵內里 石室墳)을 실제 '곤릉(順敬太后 崑陵)'의 진짜 자리이거나, 혹은 왕실의 최고위급 인물의 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강화에 남아 있는 고려왕릉은 석실의 규모가 개성의 것들과 비슷하지만, 봉분은 규모가 작은 편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호젓하게 자리 잡은 왕릉들의 부드러운 능선을 바라보며, 권력의 무상함과 흐르는 세월에 대해 짧은 사색에 잠긴다. 

잘 다듬은 거대한 돌판(판석)을 상자 모양으로 짜 맞추어 무덤방을 만들었다. 고려 왕실 및 최고 권력층의 무덤 양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고고학적 자료다.

 

강화가릉(江華嘉陵)은 고려 24대왕 원종의 부인이자 충렬왕의 어머니인 순경태후의 묘이다. 순경태후는 무신정권 최고 권력자인 최우의 외손녀로 외증조부는 최충헌이다. 원종과 결혼한 이듬해 아들 충렬왕을 낳은 뒤 16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왕비의 무덤은 석릉, 곤릉과는 다른 모습이다. '밀짚모자'처럼 보였다. 정면에서 볼 때는 '가마', 혹은 전사들의 '투구' 같기도 했다.

강화가릉에서 서해랑길 트레킹을 멈추고 능내리 마을회관 방향으로 이동한 뒤, 뒤풀이 장소인 '강화 손칼국수' 식당으로 향한다.

먹음직한 부추전과 칼제비(칼국수+수제비)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지친 일행들을 위해 맛있는 뒷풀이 장소까지 수소문해 주신 총무님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세심하게 배려해 주신 덕분에 모두가 행복하고 즐겁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늘 모임을 위해 묵묵히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