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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서해랑길 95구간(선학역3번 출구~자유공원입구)

2026. 4. 26(일)

서해랑길 95코스는 선학역 3번 출입구에서 출발해 문학산을 오르고, 능허대를 지나 숭의역과 신포역을 거쳐 차이나타운을 지난 뒤, 황제계단을 올라 선린문이 있는 자유공원 입구까지 이어지는 약 17km로, 난이도는 어려움이다.

선학역 3번 출입구 앞에는 코리아둘레길 서해랑길 인천 95코스 안내 표지판이 서 있다. 코스와 주요 경로, 주변 관광지까지 한눈에 담겨 있어, 여정을 시작하기 전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길의 흐름을 그려보게 된다. 마치 앞으로 펼쳐질 하루를 미리 들여다보는 듯하다.

'선학(仙鶴)'이라는 이름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하다. 인근의 문학산은 예로부터 학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닮아 '학산(鶴山)'이라 불렸고, 산봉우리인 선유봉의 '선'과 옛 정자인 무학정(舞鶴亭)의 '학'을 더해 지금의 이름이 전해진다고 한다. 이름 하나에도 이곳의 시간과 풍경이 스며 있다.

도시의 일상 속에서 문을 나서듯 길 위에 선다.

서해랑길은 선학산 법주사 우측 담장옆으로 보인다. 선학산과 문학산은 능선과 연수둘레길로 연결되어 있어 사실상 하나의 산줄기처럼 이어진다.

등산로를 따라 문학산 선유봉을 오른다. 

문학산은 인천 미추홀구와 연수구의 경계에 자리한 해발 217m의 높지 않은 산으로잘 정비된 데크 계단과 부드러운 흙길 덕분에 부담 없이 오른다발걸음은 가볍고마음은 느긋해진다.

문학산에는 여러 갈래의 둘레길이 이어져 있고, 서해랑길 95코스 역시 그 길의 일부를 따라 이어진다. 

산길을 걷다 보면 문득 쉼터가 나타나 잠시 숨을 고르게 하고, 곳곳에 마련된 전망대에서는 인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천천히 걸으며 바람을 느끼고, 잠시 멈춰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 문학산은 그렇게, 서해랑길 95코스의 시작을 부드럽게 열어준다.

선유봉 전망대는 비교적 낮은 곳에 위치해 있지만, 주변이 트여 있어 도시와 자연이 어우러진 인천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선유봉 전망대에 서면, 문학경기장(SSG 랜더스 홈구장)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인천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선유봉 전망대에서 문학산 정상까지는 약 1km, 20분 남짓이다. 

서쪽으로 인천 시내와 바다까지 이어지는 스카이라인이 보이고, 특히 송도국제도시의 고층 빌딩들이 반짝이며 도시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가파른 오르막 대신 완만한 길이 이어져, 숨이 차오르기보다는 생각이 천천히 정리되는 구간이다.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문학산 정상은 한때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던 군사 보호구역이었다. 하지만 시민의 편의를 위해 2015년 개방된 이후, 이제는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어 많은 이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마침내 문학산 정상에 닿으면소박한 정상석과 함께 자리한 문학산 역사관이 눈에 들어온다잠시 걸음을 멈추고 둘러보며이 산이 품고 있는 시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문학산'이라는 이름은 산세가 마치 종이에 글을 써 내려간 듯 아름답다 하여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그 말처럼, 이곳의 풍경은 단순한 자연을 넘어 하나의 이야기처럼 펼쳐진다.

정상 전망대에 서면 인천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바다와 도시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길들이 한눈에 들어오고그 풍경 앞에서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유를 누려본다.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인천대교도 시야에 잡힌다.

문학산 역사관 옆 전망대에 서면, 조금 전까지 바라보던 풍경과는 또 다른 세상이 조용히 펼쳐진다. 같은 산 위에서도 시선의 방향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인천의 얼굴이 나타난다.

한쪽에는 도시의 윤곽이, 다른 한쪽에는 바다의 여운이 스며들며,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지금의 순간이 더욱 또렷하게 느껴진다.

서해랑길은 삼호현 고개를 향해 내려간다.

하산길에는 비류와 미추홀의 건국 이야기를 담은 만화가 이어진다. 발걸음은 내려가지만, 시선은 이야기를 따라 머물며 또 다른 재미를 더해준다.

비류와 미추홀의 이야기는 고대 백제 건국 설화에서 비롯된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아들 비류와 온조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왔고, 형인 비류는 바닷가 지역인 미추홀(지금의 인천 일대)을 선택해 나라를 세웠다.

하지만 미추홀은 물이 짜고 땅이 척박해 사람들이 살기에 어려운 환경이었고, 결국 비류의 세력은 점차 약해졌다. 반면 동생 온조는 한강 유역에 자리 잡아 안정적으로 나라를 다졌고, 이것이 훗날 백제로 발전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자연환경의 중요성과 선택의 결과를 보여주는 설화로, 지금의 인천 문학산 일대에 그 흔적과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예로부터 문학산은 인천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배꼽산'이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불렸다.

또, 문학산이 '배꼽산'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산 정상의 봉수대가 볼록하게 솟아 있는 모습이 마치 사람의 배꼽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문학산 곳곳에는 자연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상상과 믿음이 깃들어 있다. 길을 걷다 마주하는 이름 하나에도, 오래된 이야기의 흔적이 조용히 스며 있다. 

삼호현은 백제 시대부터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이 송도 능허대 한나루에서 배를 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했던 고개다.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들이 가족과 헤어진  고개에 올라, 아직도 멀리 보이는 가족들을 향해 애끓는 마음으로 '이름을   불렀다'는 데서 '삼호현(三呼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안관당(安官堂)은 문학산성 안에 있던 사당으로, 임진왜란 때 전사한 인천도호부사 김민선의 위패를 모시던 곳이다. 현재는 건물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 있다.

술바위는 이름처럼 술과 관련된 전설을 품고 있다. 술바위는 문학산에 얽힌 설화 속 바위로, 바위 틈에서 물이 솟아났는데, 그 맛이 마치 술처럼 달고 깊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효자의 효심과 약속, 그리고 욕심의 결과를 상징하는 교훈적 장소다.

문학산의 여운을 뒤로하고 비류(沸流)공원을 스쳐 지나 걸음을 옮기자, 길은 어느새 사람들의 삶 속으로 스며든다.

서해랑길은 자연스럽게 백제사신길로 이어진다. 백제사신길은 고대 백제 시대 사신들이 오가던 길을 모티프로 조성된 역사 테마 길로, 능허대 공원까지 비류와 미추홀의 건국 설화가 깃든 이 일대의 이야기를 따라 걷는 구간이다. 단순한 산책로를 넘어, 옛 사람들이 오갔을 시간을 상상하게 만드는 길이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 안내판과 이야기 요소들이 더해져 있어,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시선은 오래 머문다. 바람이 스치는 숲길 사이로, 오래된 전설과 역사가 조용히 겹쳐진다.

그렇게 한 걸음씩 옮기다 보면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시간 위를 따라 걷는 여정처럼 느껴진다.

옛 송도역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 송도역전시장 앞을 스치듯 지나간다.

자연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사람의 온기를 지나, 다시 또 다른 이야기의 길로 이어진다. 

능허대 공원이 가까워진다.

옥련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재래시장의 풍경이 펼쳐지고, 소박하지만 정겨운 모습이 시장 안 골목에 겹겹이 쌓여있다.

시장을 관통하여 막다른 곳에서 왼쪽 출구로 나와 능허대 공원으로 들어선다. 

능허대 해변 안쪽에 한나루(大津)가 있어 중국을 오가던 사신들의 나들목으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능허대 공원 정자에 자리를 잡고 점심상을 펼친다. 

방금 옥련시장에서 사 온 따뜻한 모듬전과 꿈틀꿈틀 산낙지에 싱싱한 쌈채소까지 진수성찬이다. 

오래된 길 위로 스며든 시간의 흔적과 바다로 향하던 옛길의 기억이 조용히 이어진다. 

번호판을 떼어난 차량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다. 오랫동안 방치된 차량은 관할 구청이나 경찰에 의해 견인된 뒤, 소유자에게 통지·공고 절차를 거쳐 폐차 또는 매각 처리되며, 번호판은 떼어내어 등록원부에서 말소 처리되고, 비용은 차량 소유자가 부담한다. 차량은 해체하여 고철, 부품, 폐유 등으로 분리 후 재활용하거나,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자동차 수요가 많은 지역으로 수출된다.

인천대교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아래를 지난다.

갯골 호수교에 붙어있는 인천 95코스 시점까지의 거리 1.3km 는 이해가 안된다.

용현 갯골 수문

왼편으로는 숲이, 오른편 용현갯골호수(유수지) 너머로는 송도 도심의 풍경을 바라보며 걷는다.

남항 근린공원은 하수처리시설을 지하에 설치하고 그 상부에 만들어진 공원이다.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멋진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반겨주는 구간이라 가벼운 걸음으로 걸을 수 있다.

남항 근린공원을 지나 인천 중구 도심속으로 들어간다

숭의역 출입구 옆 길가에 서 있는 인천광역시 중구 관광안내도에는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과 개항장 문화지구, 차이나타운, 송월동 동화마을 등 인천 중구의 주요 관광지가 잘 표시되어 있다. 서해랑길 95코스 중에서 인천 중구 구간은 7.6km다. 

모란(목단)

숭의역과 신포역 구간을 지나면

인천의 근대 역사 거리인 개항누리길이 펼쳐진다.

1884년 11월 18일, 서울에 우정총국이 설치된 다음 날 인천에도 우정총국 인천분국이 문을 열며 한국 최초의 지역 우체국이 되었으나, 갑신정변으로 불과 28일 만에 폐쇄되었다.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8호인 '옛 인천우체국'은 1923년에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 건물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근대 공공건축물이다. 리모델링을 통해 오는 2029년 ‘인천우정통신박물관’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라고 한다. 

등대경양식집은 무려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노포답게,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은 외관은 마치 1970년대 추억 속으로 걸어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한국근대문학관은 인천 개항장에 위치한 전국 유일의 공공 종합 문학관으로, 1890년대 근대계몽기부터 해방기까지 한국 근대문학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한중문학관은 인천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한국과 중국의 교류와 역사를 소개하는 대표적인 전시관이다. 본관과 별관으로 나뉘어 있으며, 별관에는 인천화교역사관이 자리해 화교들의 정착과 생활사를 보여준다.

인천은 우리나라 근대 우편 제도의 출발점으로, 최초의 우체국, 우편배달부, 우표 등 '최초' 기록이 많은 도시다. 서울과 함께 가장 먼저 우편물이 접수·배달된 곳이 바로 인천이다.

당시 우체부들은 '박주사댁', '김생원댁'처럼 부정확한 주소를 들고 직접 수소문해야 했던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은행 인천 지점(구 일본 제1은행 건물)은 1899년에 완공된 석조건물로, 현재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인천개항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후기 르네상스 양식을 본뜬 건축미와 근대 금융사의 흔적을 간직한 대표적 근대 건축물이다. 1900년 미국인 존스 박사가 Korea Review에서 "한국에서 가장 훌륭하고 견고한 석조 사옥"이라 소개했다.

조달청 인천지점, 법원등기소 등으로 활용되다가 2010년부터 인천 개항과 근대 금융·경제사를 전시하는 인천개항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태극기는 1882년 5월 22일 인천 제물포에서 열린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처음 게양되었으며, 고종의 명을 받은 역관 이응준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883년 3월 6일 정식 국기로 공포되며 조선의 국기를 상징하게 되었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1884년 인천 개항과 함께 형성된 우리나라 유일한 공식 차이나타운으로, 짜장면의 탄생지이자 다양한 중국 문화와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대표 관광지다.

인천 차이나타운에 들어선 '해운대 달맞이빵 베이커리'는 대형 규모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그리고 제빵 명인·기능장이 직접 만든 150여 종의 빵으로 유명한 디저트 맛집이다. 

연유식빵, 까눌레, 올리부 포카치아, 과일 크림 크로 풀 등 매대가 화려하다. 차이나타운에서 흔히   없는 현대적 베이커리 카페로, 빵지순례 필수 코스로 꼽힌다. 

트로피컬 크로와상, 팡도르, 까눌레, 연유식빵, 올리브 포카치아, 치즈수플레, 크로플 등 대한명인과 제과기능장이 직접 빵을 구워 퀄리티 보장되는 인천의 '성심당'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의 한중원(한중문화관)은 한국과 중국의 문화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꾸며진 공간인데, 그 중심에는 중국식 정원이 있다. 

중국식 정원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한중 교류의 상징적 공간이다. 붉은 기둥과 곡선형 지붕, 연못과 돌다리, 정자 등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 연출한다.

1884년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체결로 청나라 조계지(청나라 상인 거주지)로 조성되었다. 1882년 8월 조선과 청나라가 체결한 불평등 통상조약으로, 임오군란 직후 청군의 개입 아래 이루어졌다. 1950년대 이후 쇠퇴했으나,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다시 활성화되면서 인천을 대표하는 역사문화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공갈빵은 속이 텅 빈 독특한 빵이다. 바삭한 식감과 재미있는 이벤트로 유명하다.

과거 공화춘 건물을 활용하는 짜장면박물관은 짜장면의 탄생과 변천사를 전시한다.

중국 황실 분위기를 재현한 황제의 계단은 포토 명소다.

붉은 기둥과 황금 용을 장식한 패루(牌樓)가 전통 중국 거리 분위기 연출한다.

선린문(善隣門)은 인천 차이나타운을 대표하는 패루(牌樓) 중 하나로, 자유공원으로 오르는 길목에 위치한 제3패루다. 이름 그대로 '착한 이웃, 사이좋은 이웃' 의미를 담아 한국과 중국이 가까운 이웃으로 잘 어울려 살자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선린문을 지나면 삼국지 이야기를 담은 벽화가 길게 이어진다. 오른쪽은 유비·관우·장비 등 삼국지 인물 벽화가 그려진  삼국지 벽화거리로 야간 인기 포토존이다.

왼쪽은 초한지 벽화거리다. 송월동 동화마을로 연결된다.

인천항과 월미도를 조망할 수 있는 자유공원으로 연결되는 계단에 서해랑길 96코스 시작점을 알리는 팻말이 있다. 서해랑길 95코스의 종점이자, 서해랑길 96코스의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