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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서해랑길 100구간(대명항~곤릉버스정류장)

2026. 6. 28(일) 서해랑길 100구간(17km) : 대명항-(2km)-초지대교-(6km)-전등사 입구-(6km)-이규보 선생 묘-(3km)-곤릉 버스정류장

서해랑길 강화 100코스는 원래 99코스의 종점인 대명포구에서 시작되지만, 포구 주변이 혼잡하고 초지대교를 도보로 건너기에는 오늘 걸어야 길이 멀다. 그래서 초지대교를 건너 서해랑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초지진에서 하차해 초지진을 여유롭게 관람한 뒤, 이곳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서해랑길 트레킹을 시작하기로 한다.

발걸음마다 서려 있는 역사와 자연을 걷다

참고로, 서해랑길 본선 코스가 직접 통과하는 대표적인 섬들은 다음과 같다.

1. 전라남도 구간

  • 진도 (6코스 ~ 12코스): 섬 전체를 크게 도는 서해랑길의 대표적인 섬 구간이다. 진도대교를 건너 들어가며, 세방낙조 등 아름다운 다도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 지도 (25~26코스, 29~30코스): 신안군에 속한 섬으로, 무안군 해제반도와 다리(해제지도연육교)로 연결되어 있다. 사옥도, 증도로 가는 길목이다.
  • 사옥도 (26코스): 지도와 증도 사이에 위치한 섬으로, 사옥대교와 증도대교를 통해 도보 노선이 이어진다.
  • 증도 (26코스 ~ 29코스): '느림의 미학'을 가진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 섬이다. 태평염전, 우전해수욕장, 짱뚱어다리 등 증도의 주요 명소들을 걸어서 지난다.

2. 충청남도 & 경기도 구간

  • 안면도 (태안 68코스 ~ 71코스 등): 태안반도 아래쪽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6번째로 큰 섬으로, 꽃지해수욕장과 울창한 소나무 숲길(안면도 소나무 숲)을 따라 걷는 서해랑길의 핵심 해안 코스 중 하나다.
  • 대부도 (안산 91~92코스): 화성에서 탄도방조제를 거쳐 대부도로 진입한 뒤, 시화방조제를 통해 시흥·안산으로 빠져나가는 노선에 포함되어 있다.

3. 인천광역시 구간

  • 강화도 (100코스 ~ 103코스): 서해랑길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종착지다. 김포 대명항에서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도로 진입하며, 전등사, 외포항 등을 거쳐 북쪽의 강화평화전망대(103코스 종점)에서 서해랑길 전체 여정이 끝난다.

버스로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도로 들어간다.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와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를 잇는 길이 1.2km 초지대교는 1970년에 개통된 '강화대교'에 이어, 2002년에 개통된 강화도의 두 번째 연륙교다. 수도권 남부(인천, 김포 등)에서 강화도로 진입하는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주었다. 다리 이름은 인근의 역사적 유적지인 '초지진(草芝鎭)'에서 따왔으며, 다리를 건너자마자 강화도의 짙은 역사 속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본래 수많은 섬으로 나뉘어 있던 강화도는 고려 시대부터 지속된 간척 사업을 통해 오늘날 하나의 커다란 섬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이다. 5번째인 남해도와 거의 비슷하다.

초지대교

강화도는 고려 무신정권 시절에는 몽골에 대항해 40년간 임시 수도 역할을 하며 30여 개의 궁궐을 지어 수많은 유물을 남겼다. 1270년 개경 환도에 반발한 배중손과 노영희가 삼별초를 봉기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에는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피난을 시도했던 곳이며, 사면이 바다인 지형적 특성상 왕족의 유배지로도 활용되었다. 고려 희종과 조선의 임해군, 영창대군, 광해군 등이 유배를 겪었고, 연산군은 교동도에서 승하했다. 반면 철종은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이곳에서 생을 보냈다. 

초지진에서 바라본 대명항

초지진(草芝鎭)은 김포와 강화도 사이의 좁고 물살이 센 바다 길목(염하)을 지키며, 한양으로 진입하려는 외세를 막아내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곳을 지키던 옛사람들의 숨결이 아련하게 느껴지는 듯해 마음이 경건해진다.

400년의 오랜 세월을 버텨낸 늙은 소나무 두 그루가 일행들을 맞이한다. 이 소나무들의 몸통을 자세히 보면 신미양요나 운요호 사건 당시 맞은 실제 포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를 생생하게 증언해 주고 있다.

격전 당시 성벽과 시설이 모두 파괴되어 한동안 터만 남아 있었으나, 1973년에 초지돈대(포를 쏠 수 있게 성벽을 쌓은 곳)를 중심으로 성곽을 복원했다.

초지진을 나와 초지교차로에서 초지광장으로 들어선다. 84번 지방도 초지로 왼쪽 아래 농로를 따라 본격적으로 서해랑길 100코스를 걷는다. 

길상교차로에서 발걸음은 전등사로 향한다. 

조선 영조 15년(1739년)에 삼랑성(정족산성)을 다시 축조하면서 다른 문들과 달리 남문에는 화려한 형태의 문루를 만들고 '종해루 (宗海樓)'라는 이름을 붙였다.

종해루를 지나 천년고찰 전등사 경내로 들어서면, 발길 닿는 곳마다 기본 200~300년은 가뿐히 넘긴 고목들이 호위무사처럼 버티고 있어, 마치 비밀스러운 태고의 숲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마당 한편에 웅장하게 서 있는 수령 700년의 은행나무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역사다. 인간의 생로병사와 수많은 왕조의 흥망성쇠를 소리 없이 지켜보았을 그 거대한 밑동은 바위보다 단단해 보이고, 오랜 세월 동안 다져진 굵고 뒤틀린 줄기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세월의 아우라가 느껴지지만, 그 아래 넓게 드리워진 그늘은 찾아오는 이 누구에게나 아무런 대가 없이 아늑한 쉼터를 내어준다.

정족산 삼랑성(정족산성) 안에 자리 잡은 전등사는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사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고려 시대부터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원찰(願刹)로서 중히 여겨졌으며, 조선 시대인 1678년(숙종 4년)에는 나라의 가장 소중한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사찰로 지정되어 왕실의 특별한 보호를 받았다. 

비록 1909년 보관 중이던 실록이 서울로 옮겨지면서 사고(史庫)로서의 지위는 내려놓게 되었으나, 역사적 가치는 여전히 퇴색되지 않았다. 또한 전등사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침략했을 때 승려들이 직접 전투에 참전하여 나라를 지켜낸 대표적인 호국도량(護國道場)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색의 기록을 보면 고려 후기 정화궁주의 원찰(죽은 사람의 명복을 비는 절)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산성과 사고를 수호하는 임무를 지닌 중요한 사찰이었다. 전등사의 대웅전은 1621년에 다시 세워진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집이다. 공포 상부의 용머리 조각, 추녀 하부의 사람 모양의 조각상이 특이점이다.

전등사 대웅전은 그 자체도 보물이지만, 대웅전 안에 석가여래 삼불 좌상도 보물이다. 그밖에도 수미단, 업경대, 신중도 등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을 여러개 간직하고 있다.

걸음을 동문방향으로 향한다. 병인양요 때 프랑군을 무찌른 양헌수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승전비가 보인다.

동문을 나와 근처 편의점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 갈증을 달래고, '온수옛길 상그름' 으로 들어선다. 

삼랑성(정족산성)과 전등사 동문 주변 그리고 금풍양조장 인근과 성공회 온수리 한옥성당을 아우르는 길목을 '온수옛길 상그름'이라 부른다. 강화도 길상면 온수리의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는 고즈넉한 마을 안길이자 옛길이다. 

 

전등사 동문과 온수리성당으로 이어지는 고개와 골목길이다 보니, 옛날부터 강화 사투리로 '산기슭'이나 '산언덕'을 부르던 말(산기름/산그름)이 '상그름'으로 변형되어 지명처럼 쓰였다는 설이 있고, 동시에 강화도 방언으로 '참기름(상그름)'을 뜻하기도 해서, 마을 주민들과 지자체가 골목길을 정비하면서 "참기름처럼 고소하고 정겨운 향기가 나는 옛 동네 골목길"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아 위트 있고 정감 가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

홍성래 특허 김밥집 외부에 김밥을 주제로 그린 벽화와 작은 도자기 화분이 장식되어 있어서 눈길을 끈다.

길상면사무소 길상초등학교를 지난다.

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인 강화도 출신 최영섭 선생을 형상화한 조각상

금풍양조장은  1931년 일제강점기에 설립되어 오늘날까지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강화도 최초로 지역특산주 면허를 취득한 이곳은 1930년대 고유의 옛 목조건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건축학적·역사적 가치가 높다. 현재는 3대째 한결같은 정성과 전통 방식으로 막걸리를 빚어내며 강화도를 대표하는 전통 양조장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성공회 온수리 성당은 서해랑길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자칫하면 입구를 놓치기 쉽다. 금풍양조장을 지나 직진하지 말고 곧바로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야 한다.

온수리 성당의 출입구는 누각식 외삼문으로 종루를 겸하고 있다.

이 성당의 역사는 1898년 영국 출신인 로스(Ross) 의사가 진료소를 개설하고, 힐러리(Hillary) 사제(당시 부제)가 기도처를 마련해 전도를 시작하면서 싹을 틔웠다. 초기 작은 한옥 성당을 거쳐 1906년 지금의 한옥 성당이 건축되어 축성되었다. 

현재 온수리 성당 마당에는 전통 한옥 양식의 '성 안드레 성당'과 2004년 현대적 서양식 건물로 신축한 '성 베드로 성당'이 나란히 서 있어, 동서양의 아름다운 조화를 한눈에 보여준다.

성 안드레 성당
성 베드로 성당

길직1리 마을회관 주변은 참 평화로웠다. 

길은 다시 역사의 한 페이지로 연결된다. 서해랑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이규보 묘에 다녀온다. 

백운 이규보는 고려 무신정권시대의 문인이자 정치가로, 고구려 시조 주몽에 관한 영웅서사시인 '동명왕편'을 지었고, 그의 아들이 이규보의 시문을 모은 '동국이상국집'을 편찬했다.

이어 닿은 연등국제선원은 글로벌한 불교 문화의 정취가 묻어나는 독특한 공간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참선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자 설립된 국제적인 명상 수행 도량으로 내외국인들인 템플스테이를 하며 수양을 하는 곳이다.

고소한 이름이 인상적인 아트팩토리 참기름은 카페와 레스토랑, 전시관이 있는 복합문화시설이다. 진짜 참기름도 판다.

강화군 불은면 길직리 마을에는 약 300년이 넘는 기나긴 세월 동안 두 그루의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로를 다정하게 마주 보듯 나란히 서 있어 주민들과 여행자들 사이에서 ‘부부 느티나무’라는 다정한 이름으로 불린다.

 

오랜 시간만큼이나 사방으로 넓고 웅장하게 뻗어 나간 나뭇가지들이 싱그러운 초록빛 그늘막을 만들어 주며, 한적하고 아름다운 길직리 마을 풍경과 어우러져, 지나가는 도보 여행자들이 땀을 식히며 시골 마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휴식처가 되어준다.

 

카페 '보니시파오'는 걷기 여행자에게 오아시스 같은 아늑한 쉼표를 선물해 준다. 

고려왕릉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어느새 소나기 예보는 쏙 들어가고, 따스한 햇볕이 길 위에 가득 쏟아진다. 

 

뜨거워진 열기를 피해 고목나무 그늘 아래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길상 저수지의 낚시터 옆을 지나간다.

서해랑길 100코스 종점은 곤릉버스 정류장이다.

서해랑길 100코스 종점이자 101코스 시점 안내판이 보인다. 수많은 섬이 모여 하나의 강화도가 되었듯, 길 위에서 만난 조각 같은 풍경들이 모여 커다란 행복을 남겼다. 

이어서 101코스를 계속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