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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누리길+DMZ평화의길

DMZ평화의 길 16-2코스(고석정~남대천교)

2025. 1. 5(일)

DMZ평화의길 16-2코스 : 고석정-(1.2KM)-승일교-(2.3KM)-철원소방소-(9.3KM)-남대천교

 

DMZ평화의 길 16-2코스는 신라 진평왕과 고려 충숙왕이 즐겨 찾았고,  ‘외로운 돌’이라는 뜻을 가진 고석정에서 시작한다. 참고로, QR코드는 철원 관광 정보센터 건물 정면 왼쪽, “고석정 시설 안내도” 기둥에 붙어있다.

고석바위는 조선 명종 때 의적 임꺽정이 숨어 활동했던 곳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승일교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누군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떨어지는 눈을 바라보며, 그 속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지만 잊고 지냈던 꿈이 떠오른 듯 미소를 짓는다. 흰 눈 속 철원 들녘을 걷는 이들은 눈 내리는 순간의 평화와 고요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한다.

 

고석정에서 승일교까지는 1.2km다.

 

철원 한탄강을 가로지르며 갈말읍과 문혜리를 잇는 승일교는 6.25 한국전쟁 이후 반으로 갈라진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대변해 주는 다리다. 분단과 전쟁, 수복 지구라는 역사적 특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품고 있다. 

 

철원군은 6·25전쟁 전 북한 땅이었다가 전쟁 후에 남한에 편입된 수복 지구이다. 

다리 건설을 김일성이 시작하고 이승만이 끝냈다고 하여 이승만의 '승(承)'자와 김일성의 '일(日)'자를 한자씩 따서 승일교(承日橋)라 했다는 설과 '김일성을 이기자'고 해서 승일교(勝日橋)라고 했다는 설도 있지만,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한국전쟁 중 큰 공적을 세우고 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혀간 연대장 박승일(朴昇日, 1920년 ~ 몰년 미상) 대령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승일교(昇日橋)라고 지어졌다는 것이다

 

​국가등록 문화재로 지정된 이 다리는 총길이 120m, 높이 35m, 폭 8m로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로 불리기도 한다. 1948년 이 지역이 북한에 속했을 때 북한이 공사를 시작했으나 한국전쟁 발발로 인해 공사가 중단됐다가 휴전 후 한국이 이 지역을 차지하면서 1958년 한국 정부가 이 다리를 완성했다. 북한은 처음 설계 당시 구소련의 유럽공법을 사용했으나 남한은 이와는 다른 공법을 사용하면서 3개의 교각 위에 설치한 아치의 모양이 북과 남이 다르게 생겼다.

 

승일교 위에서 마주한 한탄강의 설경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소복이 내려앉은 흰 눈이 주변을 둘러싼 절벽을 더욱 장엄하게 만든다. 절벽 위로 쌓인 눈은 자연의 붓질처럼 부드럽고 섬세하다. 거친 암벽의 틈새를 따라 늘어진 고드름들은 자연이 만들어낸 겨울 조각품이다. 복잡한 마음을 비워내고그 자리에 겨울의 고요한 위로를 채워준다. 


한탄대교 아래를 묵묵히 흐르는 강물과 겨울 풍경은 단순히 차가운 모습이 아니다그것은 강이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낸 흔적겨울이 조용히 남긴 손길그리고 자연이 들려주는 무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연의 위대함과 겸손함을 동시에 느낀다.

 

승일교를 건너면 '승일공원'이다.

승일공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태봉구문(泰封九門)이라는 조형물이다. 천년의 꿈 태봉국에서 통일 한국의 밝은 미래로 가는 9개의 문이라는 뜻이다. 하나의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단단한 바위를 뚫듯이 방문하는 한 사람, 한 사람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이 모여 9개의 문을 통과하면 머지않아 통일 한국의 문도 열릴 것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구문을 통해 들어가면 한탄강 주상절리를 표현한 조형물과 한탄강 풍경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승일정이 있다.

 

승일공원 에는 철원지역 6.25참전기념비, 베트남전참전기념비와 맹호부대장송덕비, 매그루더장군 송덕탑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맹호’ 마크가 있는 비가 눈길을 끈다. 전면에 한자로 ‘맹호부대장 송덕비’라고 쓰여 있다. 주인공은 한신(韓信) 장군이다.

 

한신 장군은 사단장 재임 동안, 폭넓은 대민 지원 활동을 펼쳤다. 장군이 사단을 떠난 뒤 당시 지역주민들이 기념비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주한미군 1군단장으로 수복 후 철원 주민들의 정착에 도움을 준 매그루더장군 송덕탑은 원래 ‘매장군송덕탑’으로 새겨져 있으나 그 위에 누가 정으로 쪼아 매그루더라고 새겨놓았다. 

 

마그루드(Carter B. Magruder)[1900~1988]는 1900년 4월 3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1953년 한국에 파견되어 휴전협정 이후 미 8군 제9군단장으로 복무하며 미군 장병들과 중장비를 동원하여 철원 지역 주민들의 생활 안정 및 정착을 도왔다.

 

당시 미군부대가 사용하던 대규모 시설에 철원군청과 철원경찰서가 들어서는 등 지포리가 행정의 중심이 되어 신철원이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다. 마그루드는 1959년 주한미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을 역임하였으며, 1988년 3월 14일 사망하였다.

 

승일공원을 나와 도로를 따라 문고개 교차로를 지난다.

흰 눈이 펑펑 내리는 철원하얀 눈송이들이 하늘에서 춤추듯 내려와 온 세상을 덮는다일행들은 조용히 걸음을 옮기며 풍경 속으로 스며든다눈밭 위로 들리는 발걸음 소리는 마치 고요 속의 노래 같다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칠 때마다 자연의 순수함이 온몸에 스며드는 듯하다.

 

문혜마을로 들어선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갈말면 문현리(文峴里)[문고개]의 ‘문(文)’과 지혜리(芝惠里) ‘혜(惠)’를 합쳐 명명되었다. 다른 유래로는 문고개에 강원도 김화군과 함경도 방면으로 통하는 관문이 있어서 통행하는 이에게 문을 열어주었다고 하여 문열이[문여리]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한 지명이라는 주장도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간식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잠시 쉬어간다. 갈말성당 문혜공소와 문혜초등학교를 차례로 지나간다.

천주교 춘천교구 갈말성당 소속 공소로 군인 선교를 위한 미사와 지역 공동체 섬김을 주 업무로 하는 문혜 공소.
문혜초등학교

철원소방소에서 다시 버스에 오른다. 철원소방소에서 불당천 버스정류장까지는 인도가 없고, 도로에 눈까지 쌓여 미끄러워 매우 위험하다. 시내 버스로 이동을 권장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철원소방서

불당천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하여 다시 걸음을 이어간다. 불당천을 지나 지경리에 도착한다. 꽤 큰 동네다. 철원이 병력과 장비가 통과하기 쉬운 넓은 벌판이라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군부대가 밀집해 있는 것 같다. 분단과 끝나지 않은 현실이다.

 

세상은 고요한 설원의 품에 안겼다. 눈부신 순백의 옷으로 갈아입은 철원 평야는 마치 신비로운 겨울 동화 속 한 장면처럼 평온하게 펼쳐져 있다. 얼어붙은 대지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은 눈송이들이 대지를 포근히 감싸안은 가운데, 갑작스레 하늘 위로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손님들이 나타난다.

 

긴 목을 뽐내며 유유히 날아오르는 철새들은 마치 겨울의 화가가 그린 한 폭의 그림처럼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삭막한 겨울 풍경 속에서도 이들의 날갯짓은 따스한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대지와 하늘 사이를 잇는 다리처럼 신비로운 조화를 이룬다.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철새들은 철원 평야의 겨울을 가장 아름답게 장식하는 주인공들이다. 하늘을 수놓은 그들의 선율은 고요한 대지에 생명의 노래를 들려주고, 차가운 겨울 속에서도 따스한 희망을 속삭인다.

 

코스를 따라 왼쪽 도창 검문소 방향으로 향한다토성리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도창리로 향한다.

 

저 멀리 끝없이 펼쳐진 들녘은 눈으로 덮인 캔버스처럼 보인다사람들은 이 캔버스 위를 조심스럽게 걷는다발자국이 하나둘 새겨질 때마다그들의 존재가 이 하얀 풍경 속에 작게나마 흔적으로 남는다.

 

눈부시게 하얀 세상 속에서, 그들은 자연의 품 안에 온전히 안겨 있는 듯하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마음은 잔잔해진다. 하얗게 뒤덮인 들녘 위에서, 그들의 존재는 한겨울 풍경의 일부가 된다.

 

'화강'을 만난다. 한때는 남대천이라고 불렸고 다리도 남대천교이지만 최근에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남대천(南大川)은 북한의 강원도 김화군에서 발원하여 강원도 철원군 근동면과 김화읍을 지나 한탄강에 합류하는 지방 하천으로 김화읍 남쪽의 대하천이라는 뜻이다.

 

남대천은 『김화읍지』 등 옛 문헌에서 원래 이름인 ‘화강(花江)’을 발견하면서 이름이 변경되었다. 화강이란 이름은 김화의 별호(別號)로서 조선 세종 조에 김화현에 지어진 객사(客舍) 화강관(花江館)에서 찾을 수 있다. ‘꽃강’이라는 뜻의 화강은 수려한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면서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녔기에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화강이 흘러 한탄강으로 합쳐지고, 한탄강이 흘러 임진강에 합류하며, 임진강이 흘러 한강과 하나가 되어 조강이라는 이름으로 서해로 흘러간다. 강화에서 출발한 평화 누리길은 이런 강들을 거슬러 올라온 여정이다.

 

이래서 식당에서 뒤풀이겸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버스가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 수리하는 동안  토성민속마을 동네 구경을 나선다.

덕령산 아래에 있는 토성리에는 철원 지석묘군이 있다. 

토성리의 동쪽 농경지 한가운데에 삼한 시대 축성된 토성이 있어 토성리 또는 토세이라고 불렸다. 덕령산 밑에 위치하여서 덕촌이라고도 불렸다.

 

강원도 철원군의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인돌, 지석묘(支石墓)라고 부르고 있으며, 고인돌이라는 명칭은 굄돌 또는 고임돌에서 유래하였다.

 

고인돌은 부족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거석문화(巨石文化)의 산물로 당시 철원군 일대에 존재하였던 정치체의 성격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토성민속마을에는 농경지 한가운데 토성이 있는데, 철원 갈말읍 토성(鐵原葛末邑土城)이다.  철원토성갈말읍 토성토성리 토성으로도 불린다 점토로 축성된 정사각형의 성이었다고 한다. 현재 성벽의 삼면은 없어졌으나 한 면의 성곽이 남아 있다. 방형의 평지성이라는 점에서 원삼국 시대 및 삼국 시대에 축조된 토성으로 보이나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농경지 한가운데 있는 철원 갈말읍 토성(鐵原葛末邑土城)
토성 위에올라 기년사진 한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