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5(일)
대위리마을회관- 칠만암- 오덕리- 무당소- 직탕폭포- 태봉대교(번지점프장)- 송대소- 은하수교-마당바위- 고석정
아직 어둠이 물러가지 않은 아침에 대전을 출발할 때는 영하의 날씨에 눈까지 내려 마음이 심란했는데, 버스로 4시간을 달려 철원에 도착하자 바람은 차갑지만 날씨는 쾌청하다.
한반도 배꼽이라 부르는 철원은, 드넓은 평야를 끼고 있는 내륙 너른 분지다. 한 나라 도읍으로 손색없는 배후지를 갖고 있지만, 철원은 분단의 상징이다. 땅 한 가운데를 동서로 잘라 남북으로 갈라 놓았다.
전쟁 후 옛 철원 땅 약 40%가 북한에 속했다.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땅이다. 북한에서 발원해 남으로 흐르는 한탄강이, 파주 전곡에서 임진강과 합류한다. 북한에서부터 강화바다까지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이다. 흐르는 강물은 절대 나뉘지 않는다.
지난번 DMZ평화의길 15코스를 걸으면서 지나간 대위리 마을회관앞에서 하차하여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15코스와 만나는 대위리 갈림길에서 고석정을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철원을 순우리말로 표현한 ‘쇠둘레’.
한탄강을 따라 걷는 철원 한여울길과 과거 금강산 가는 철길을 따라가는 ‘금강산 가는 길’ 두 길을 합쳐 ‘쇠둘레 평화누리길’이라 한다. 쇠둘레평화누리길은 철원을 대표하는 길이다.
DMZ평화의 길 16-1코스는 평화누리길 13코스(쇠둘레길)와 일부 겹친다. 한여울길 1코스(주상절리길)에도 해당하는데, ‘큰 강’이란 뜻의 ‘한여울’처럼 한탄강과 주변의 경치를 담은 길이다.
한여울길 1코스 시작은 (구) 양지리 통제소에서 시작하여 칠만암- 오덕리- 무당소- 직탕폭포- 태봉대교(번지점프장)- 송대소- 마당바위- 고석정을 거쳐 승일공원이 있는 승일교에서 마치는 길이 11km이다.
금월동 마을 옛터를 지난다.
철원평야는 6.25전쟁으로 허리가 동강 났다. 또 그 남은 벌판마저 한탄강이 남북을 가르며 흐른다.
한탄강은 한자로 漢(은하수 한) 灘(여울 탄)을 쓴다. '은하수처럼 큰 여울'이다. 혹자는 궁예가 태봉(泰封)이란 나라를 세웠으나 왕건에게 빼앗긴 한이 서렸다 해서, 혹은 남북분단을 탄식하는 상징으로, '恨歎(한탄)'이라 부르기도 한다.
강 동쪽은 산악이고, 서쪽은 들판이다. 강은 평평한 들판을 마치 ‘대못으로 깊게 후벼 판 듯’ 흐른다. 양쪽 둑이 깎아지른 기암절벽이다.
20여m가 넘는 검은 절벽의 현무암을 품은 한탄강은 용암이 지나간 길에 물이 생긴 지형이라 경치가 기가 막히다. 한탄강유역은 유네스코(UNESCO)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되었다.
걷는 동안 오른쪽으로 내내 보이는 걸출한 산은 금학산이다. 철원평야 끝에 벽처럼 솟아 산세가 험해 보인다. 그래서 산행도 947m 산높이보다 더 힘들다.
옛날 철원이 도읍이었던 궁예의 태봉국 시절 산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도선국사가 금학산을 태봉국의 주산으로 삼으라고 건의했으나 궁예왕은 이를 묵살하고 고암산을 주산으로 정해 왕조가 단명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철원 전 지역은 궁예와 태봉국 전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직탕폭포로 내려선다. 탐방안내소와 식당에는 관광객들이 많다.
한탄강은 용암과 물 그리고 시간이 빚어낸 절벽으로 이뤄진 강이다. 화산활동이 일어난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지질학적 형상이 다 담겨있다.
직탕폭포(直湯瀑布)는 편평한 현무암 위에 형성되어 우리나라의 다른 폭포들과는 달리 하천면을 따라 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용암이 겹겹이 식어 굳어진 현무암 위로 오랫동안 물이 흐르면서 풍화와 침식작용을 받는 과정에서 현무암의 주상절리를 따라 떨어져 나감으로써 계단 모양의 폭포가 형성된 것으로 높이는 약 3m에 불과하지만, 너비는 약 80m 로 폭포가 떨어지는 모습이 볼만하다.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라는 별칭이 있지만 너무 과장이다.
현무암 돌다리를 건너간다. 생거 진천의 농다리를 연상시킨다.
한탄강 물윗길을 걸으며 철원 9경 중 3경(직탕폭포, 송대소, 고석정)이나 만날 기대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한탄강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송대소 주상절리는 수직절벽을 자랑하고 한탄강과 주변의 풍경이 어우러져 비경을 자랑한다.
물윗길을 걸으려면 입장료 만 원(65세 이상 경로 할인 5천 원)을 내야 한다. 입장료를 내면 지역 상품권(5천 원, 경로 2천 원)을 주는데, 그것을 카페나 식당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한탄강 물윗길
•태봉대교-은하수교-고석정-순담계곡, 총 8km
•개방시간 동절기 09:00 ~ 17:00 (입장은 09:00~16:00)
물윗길은 매년 10월에서 3월까지만 운영된다.
약 52만 년 전, DMZ 너머 평강에 자리한 오리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철원을 지나 한탄강을 따라 포천과 연천까지 흘렀다.
용암이 식어 바위가 될 때 바위가 오그라들면서 기둥 모양으로 굳는 것이 주상절리(柱狀節理)다. 오랜 세월이 지나 각 절리의 틈이 벌어져 바위가 갈라지거나 떨어져 나가 폭포와 강, 절벽이 되었고, 그런 현상은 한탄강 곳곳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탄강에서도 대표적인 현무암 협곡지대로서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 유일의 현무암지대와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주상절리를 한눈에 담아볼 수 있다. 총길이는 약 1.5km이며, 협곡의 높이는 20~30m이다. 그중에서도 주상절리가 부채모양으로 형성된 방사상 절리가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대교천 협곡에는 과거 무당들이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 무당소가 있으며, 이는 예부터 이 지역을 신성시했음을 알 수 있다.
한탄강에서 가장 깊다는 송대소(松臺沼)의 기암절벽과 주상절리는 한탄강에서도 최고의 비경을 자랑한다.
송대소는 오랜 세월 물과 바람에 깎인 현무암이 절단면을 따라 덩어리째 수직으로 떨어져 나가 30여m 높이의 기암절벽을 이룬다. 소나무가 병풍처럼 서 있고 수심이 깊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자연의 힘으로 바위들이 만들어낸 기묘한 모양과 그 배경으로 펼쳐진 겨울 하늘은 마치 그림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그곳에서 한참을 멈춰서 아름다운 풍경에 취한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송도 사람 삼 형제가 이곳에서 이무기와 싸우다가 두 사람은 이무기에게 물려 죽고 나머지 한사람이 이무기를 잡았다고 하여 ‘송도포’라 불리다가 이후 ‘송대소’가 되었다고 한다.
한탄강의 새 명소인 은하수교는 철원 9경 중의 하나인 송대소 주상절리 협곡을 가로지르는 길이 180m, 폭 3m, 높이 50m로 1주탑 비대칭 현수교(보도교)다. 주탑은 높이 54m로 철원군의 상징인 두루미를 형상화해 했으며,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모습이다.
은하수 중앙은 유리로 되어 있어서 한탄강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밤에 유리로 된 부분에 조명이 들어오면 마치 하늘의 은하수처럼 보인다고 한다.
은하수를 건너기 전 언덕에 보이는 횃불전망대의 높이는 45m, 전체 높이(조형물 포함)는 53m이다.
45m의 높이는 철원이 도내에서 3.1 만세운동이 가장 먼저 일어난 지역임을 알리는 동시에 1945년 광복의 기쁨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53m의 높이는 6.25 전쟁 후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의 의미를 담고 있다.
횃불 전망대를 내려와 은하수교를 건넌다.
은하수 카페에서 지역상품권에 현금을 조금 보태 빵과 커피를 주문하여 점심을 대신하면서 잠시 쉬어간다. 커피(5천원)가 조금 비싸지만 맛이 좋다.
고석정을 향해 부교를 걷는다. 송대소를 지나자 현무암과 화강암이 강 양쪽으로 선명히 갈라진다. 오른쪽은 시커먼 색깔을 띠고 왼쪽은 밝은 빛깔이다.
조금 진행하자 아치교 3개가 나란히 한곳에 서 있다. 하나는 승일교(昇日橋), 나머지 둘은 상·하행선으로 나눠진 한탄대교(漢灘大橋)다. 승일교와 한탄대교 하행선은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아치, 한탄대교 상행선은 강재(鋼材)로 지은 아치다.
아치형의 독특한 모양새에 제법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승일교는 남한과 북한이 의도치 않게 합작해 만든 다리다. 1948년 북측 통치하에 있을 때 소련공법으로 공사를 시작했으나 6·25 전쟁 발발로 중단된다. 이것을 1952년 미군 공병대가 완공했다. 미군 공병대의 주관이었으나 실제 공사에는 철원 주민들이 동원되었다.
이후 1990년대까지 주민들의 교두보 역할을 하던 승일교는 1999년 철골 아치로 만든 한탄대교가 개통되면서 지금은 차량 출입을 금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승’ 자와 김‘일’ 성의 이름을 따서 승일교라 이름 지어졌다고 설과 6·25 전쟁 당시 전공을 세우고 산화한 박승일 대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승일교’라 했다는 설이 있다.
한탄대교 상행선 강재 아치는 길이 166.8m, 폭 9,5m로 1999년에 지방도 선형개설 때, 하행선 철근콘크리트 아치는 길이 166.8m, 폭 12m로 2015년(2019년 준공)에 지방도를 4차선으로 확장하면서 만들어진다. 두 다리 길이가 같은 이유는, 한탄강의 특이한 형성과정과 지형 때문이다.
협곡 아래의 섬처럼 서있는 거대한 바위가 눈길을 끈다. 고석바위다. 고석(孤石)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온통 현무암 지대에 화강암이 홀로 우뚝 솟아 있는 모양새를 가리켜 이름 붙여졌다.
바위 위에는 소나무 군락이 자라는 데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물씬 풍긴다. 정자에서 왼편 계곡 쪽으로 내려와 바라보면 정자와 협곡, 바위의 조화가 마치 한 폭의 한국화를 보는 듯하다.
서기 610년 신라 진평왕 때 고석바위 맞은편에 10평 규모의 2층 누각을 짓고 고석정이라 명명했다하며 누각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던 것을 1971년 복원하였고, 그 뒤 1989년 개축 정비하였다. 유명한 것에 비하면 콘크리트로 세운 정자라 정자 자체는 감흥이 없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고석정(孤石亭) 관광단지다. 왼쪽으로 세종강무정이 보인다.
서기 1560년 조선조 명종 때는 의적 임꺽정(林巨正)이 정자 건너편에 석성(石城)을 쌓고 웅거하였다 한다. 관군에게 쫓기면 바위 뒤 동굴에 숨거나 물고기(꺽지)로 둔갑해 강물에 숨곤 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고석정유원지 광장에 칼 한 자루를 등에 비껴 멘 임꺽정 동상이 세워져 있다. 임꺽정이 땅 위에 버티고 서서 양 옆으로 팔을 뻗어 좌우에 서 있는 두 개의 돌기둥을 있는 힘껏 밀어내고 있다. 지배계급의 억압과 신분상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그런데 그 돌기둥이 한쪽만 무너진 형상을 하고 있다. 아마도 임꺽정이 살아서 제 뜻을 다 이루지 못한 걸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고석정에는 임꺽정과 관련해 홍길동 뺨치는 믿기 어려운 전설도 전해져 내려온다. 한 도적이 전설로 남았다는 건, 사실 그 도적이 출몰하던 시절엔 도적 아닌 자가 더 도적 같았다는 걸 의미한다. 고석정이라는 이름의 양반들 놀이터가 사라진 곳에 그 양반들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다니던 한 도적의 동상이 서 있는 광경이 의미심장하다. [펀글]
먼저 도착하여 뒷풀이를 즐기는 일행들과 만나 든든히 배를 채우고 대전으로 귀가를 서두른다.
버스에서는 금학산뿐만 아니라 궁예 부하들이 슬피 울었다는 포천의 울음산(명성산) 멀리 시야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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