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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61구간(깊은골버스정류장 ~ 충청수영성)

2024. 10. 27(일)

61구간(8.7km) 깊은골버스정류장 오포3리 마을회관 → 수정소류지 → 교성천 → 보령LNG터미널 → 중부교 →영보2리 → 갈매못 순교성지 → 오천항  → 충청수영성

 

두루누비 웹사이트에서 소개된 대로, 서행랑길 61구간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농촌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로, 깊은골 버스정류장을 출발하여 농촌풍경이 펼쳐지는 마을 길과 농로를 지나 갈매못 성지에 이르러서야 바다와 만나 오천항으로 이어지는 8.7km의 비교적 짧은 코스다.

 

서해랑길 보령 61코스는 보령 화력 발전소 앞의 깊은골 버스 정류장에서 시작한다.

버스정류장 옆에 설치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번듯한 서해랑길 61코스 안내판이 서 있다. 

 

국내 최대 규모 화력 발전소 중의 하나인 보령 화력 발전소 앞까지 올라온 서해랑길은 깊은골 골짜기를 내려가 오포리 마을길을 거쳐 북쪽 해안으로 올라간다.

 

지픈골 마을로 들어선다. ‘지픈’은 ‘깊은’의 충청도 사투리로, 수침골 서쪽 깊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전형적인 농촌풍경이 펼쳐지고 고요하다. 

 

12시. 사진찍고 기록하면서 여유를 부린 후미 일행은 공터에 자리를 잡고 점심상을 펼친다. 소박한 찬이지만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인 점심식사는 꿀맛이다.

 

오천면 오포리 마을을 지키며 수호신 역할을 하는 수령 3백년을 자랑하는 멋진 노송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고, 수정동 소류지를 지난다. 교성천을 따라간다.

 

지픈골 골짜기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태양광 발전 단지도 지난다. 

화력발전소의 굴뚝이 장난이 아니다. 30년가량 운영하고 이제는 유연탄 발전소에서 LNG  발전소로 전환 중이다. 모두 수입하는 자원으로 LNG가 발전 단가가 비싸다.

 

도로변을 따라서 띠아골을 지난 길은 보령시 오천면 오포리에서 영보리로 넘어간다. 진골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길을 이어간다.

둥근잎 유홍초
미국 쑥부쟁이-생태 교란식물
백일홍

 

거대한 LNG 탱크들도 보이기 시작하고, 보령LNG 터미널을 지나 지루한 도로변을 걷다보니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정표가 아리송(?)하다. 갈매못 순교성지를 후문으로 들어가 관람하고 정문으로 나와 그대로 직진하면 충청수영성에 도착한다.

바다 건너편은 보령시 천북면이다.

 

갈매못 순교성지에 도착한다

갈매못의 유래는 갈마연(渴馬淵)에서 온 이름으로 ‘목마른 말에게 물을 먹이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갈매못 순교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다섯 분의 성인이 순교한 곳이다.

프랑스 선교사를 비롯한 8천여 명의 신도들을 죽음으로 내몬 병인박해 (丙寅迫害) 당시 이곳 모래밭에서 5명을 처형했다고 한다병인박해는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병인양요 등과 연관되는 사건이다.

조선말 천주교 병인박해가 시작된 직후인 1866년 3월30일, 다섯 명의 천주교 성직자와 신자가 충청 수영성 근처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군문효수형을 당했다.

군문효수는 이미 처형된 사람의 목을 죽고 난 이후에도 군문의 장대 위에 매달아 두는 매우 극한 형벌이다.

순교한 프랑스 신부 세 분과 한국인 신자 두 분을 기리는 복자비와 성인비가 있다.

 

정문으로 나와 오천해안로를 따라서 계속 이동한다. 도미부인 솔바람길이다. 정면으로 오천항과 바다 건너편 천북항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오천면 소성리로 들어가면서 구세군 교회(오천 영문)가 있는 작은 고개를 하나 넘으면 바로 읍내로 진입한다.

 

읍내를 지나면 오천항이다. 주꾸미로 유명한 오천항은 휴일을 맞아 관광객들과 낚시꾼들로 북적인다.

오천항은 만의 깊숙한 곳에 위치해 방파제 등 별도의 피항시설이 필요 없을 정도로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며, 전국의 낚시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오천항은 백제시대부터 중국과 교역하던 항구로 회이포(回伊浦)라 불리었고, 이후로도 군사 요충지를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조선 중종 당시에 수군절도사가 석성을 쌓았다고 한다.

 

 

오천 읍내를 가로지른 길은 보령충청수영성 앞에서 서해랑길 61코스 여정을 마무리한다 

충청 수영성은 1509년, 서해로 침입해 오는 외적을 막기 위해 쌓은 길이 1,650m의 석성이다.

충청 수영성은 충청도 해안을 방어하는 최고 사령부 역할을 하였으며, 조운선의 보호와 안내 그리고 외적 방어 역할을 하다가 1896년 폐영되었다.

 

수영성 안에 있는 영보정은 우리나라 최고 절경의 정자였다. 1504년 수사 이량이 처음 짓고 계속 손질하여 고쳐 왔다. 

 

갈매성지와 충청수영성의 보다 자세한 소개는 갈매성지와 충청수영성을 가다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