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해랑길

8-9구간(20km 돈지백구테마센터~윤고산사당)

일시 : 2022년 10월 23일(일)

8구간(16.2km 돈지백구테마센터 ~ 국립남도국악원)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호세아 113)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고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걷기 운동의 창시자인 대한 걷기연맹 이사장 이강옥 박사는 말합니다.

자연은 종합병원이고 당신의 두 다리는 의사다.

 

약을 통해 혈압을 낮출 수 있다. 혈당을 정상으로 만들 수 있다. 심장을 보호할 수 있다.

콜레스테롤을 정상으로 만들 수 있다. 관절을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고치는 약은 없다. 오직 하나가 있다.

그것은 걷기이다.

 

태어나서 금방 걷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사람은 태어나면 걷지 못하고

눕기-뒤집기-배밀기-기기-앉기-붙잡고 서기-옆으로 걸음마-아장아장 걷기까지 보통 1년 정도 걸린다.

그리고 그때부터 정수리가 하늘을 보고 말을 배우기 시작한다.

두 발을 교차하며 팔을 전후로 흔들며 걸음다운 걸음을 걷기까지 약 3년 정도 시간이 걸린다.

 

창조주 하나님이 걸작품인 인간을 그렇게 만든 이유가 있다.

인간은 걸어야만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루에 최소한 7km(1만보), 조금 더해서 10km(2시간)를 걸어야 한다.

 

동물은 성장기의 5배를 산다고 한다. 개는 성장기가 3년이므로 평균 수명이 15년이다.

인간은 성장기는 25년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약 120년을 살도록 창조되었지만 걷지 않기 때문에 각종 질병에 의해 100세도 살지 못한다.

 

오직 걷기 위하여 선택한 서해랑 트레킹은 나에겐 치유다.

 

아침 6시에 집을  떠나 11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지난번 걸음을 멈춘 돈지리 백구테마센터에 도착한다.

 

의신면의 소재지인 ‘돈지’란 지명은 옛날 이곳에 돈대(墩臺)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마을 앞 들녘은 고려시대 삼별초의 최후 싸움터이기도 했다. 그만큼 요충지였다는 것이다.

 

16명의 단촐한 일행이 단체 기념 사진을 남기고 걷기 시작한다. 

 

약 10분 정도 걷고 삼별초 ‘궁녀둠벙’과 만난다. 김통정과 함께 퇴각하여 피난길에 오른 삼별초의 여기(女妓)등 궁녀들과 삼별초 군(軍) 부녀들이 만길재의 여몽 토벌군을 피해 이곳에서 몸을 던져 절개를 지킨 연못이라고 한다.

여인들의 절개가 돋보이는 역사의 현장이다.

 

'만길재'를 넘는다. 삼별초의 궁녀들이 넘지 못했다는 마음 아픈 사연이 있는고개이다.

이 고개 너머에는 '부녀동'(현재는 '신정마을') 이란 지명이 있다.

여인들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삼별초군이 함께 데려갈 수 없는 부녀자들을 남겨놓고 갔다는 곳이다.  

만길마을과 원두리 마을을 차례로 지난다.

 

송정저수지를 지나 차도를 가로질러 송정마을로 들어선다. 인적이 거의 없어 조용하다.

 

봉호산의 무지개재를 넘으니 눈 앞에 펼쳐지는 다도해 절경이 눈을 즐겁게 한다.

죽림리 강계마을은 죽림 어촌체험 마을로 썰물 때 넓은 갯벌이 드러나는 해변 마을로 유명하다. 

마을 동쪽은 봉호산이 남쪽으로 늘어뜨린 산줄기가 바다로 이어지고, 그 능선은 임회면과 의신면을 경계한다. 

그 동쪽에는 의신면 금갑리 금갑 포구(金甲浦口)가 있다. 

이곳은 여몽 토벌군에 완패한 삼별초가 남은 70명의 군을 이끌고 제주도로 떠날 때까지 머물던 곳이다.

 

양지바른 곳에 식탁을 차리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점심식사를 한다.

 

죽림 마을 해변에는 흙집으로 아담하게 지은 '작은갤러리' 카페가 있다.

지나는 길에 들러 차나 간단히 맥주 한 잔 하기에 괜찮은 분위기다. 

메뉴에 의외로 수제비와 파전이 있어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트레킹 길은 정코스와 우회코스로 나누어진다. 날씨가 아주 안좋은 경우가 아니라면 정코스를 권한다.

깃대봉 해안 절벽길은 약간 위험하지만 풍광이 충분히 보상한다.

서해랑 1코스부터 이곳까지 오는 동안 가장 멋진 풍광을 선사한다. 

 

길은 탑립마을을 지나 아리랑 마을관광지로 이어진다.

 

탑립 버스정류장부터는 아주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탑립’이란 지명은 탑립마을의 주산인 여귀산의 좌우에 두 개의 돌탑이 있어 생겼다고 한다.

 

여귀산 자락 아래쪽에는 북을  두 개 연결한 장구 모양의 독특한 건물이 시선을 끈다. 아리랑 체험관이다.

진도에는 동석산 등 등산인들이 찾는 산이 제법 여러 개 있지만, 여귀산(女貴山 457m)은 진도군이 첨찰산과 더불어 진도의 3대 명산으로 꼽는 산이다.

계집 여 자에 귀할 귀 자를 쓴 산명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이름이 주는 어감 그대로 산이 예쁘다.


남도국악원은 국립국악원 소속 예술기관이다. 진도는 진도아리랑과 진도 씻김굿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그런 연유로 이곳에 남도국악원이 생겼을 것으로 짐작된다.


서해랑길 8구간은 국립남도국악원이 종점이다.

9구간(3.8km 국립남도국악원 ~ 윤고산사당)

18번 국도가 지나는 귀성삼거리에는 아리랑 마을을 알리는 조형물이 나그네들을 반긴다.

 

나절로 미술관을 지난다. 폐교를 개조해서 만든 미술관이라고 한다. 

'나절로'는  미술관을 지은 이상은 화가의 호로 '스스로 흥에 겨워 즐거움'이란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18번 국도를 따라 걷다가 이정표를 따라 왼쪽 농로로 들어선다.

 

진도에는 미르길이 있다. 미르는 용을 일컫는 우리말이다. 헌복동에서 서망항까지 19.7km 길이다.

바다를 옆에 끼고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하는 오솔길이 마치 하늘로 오르는 용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미르길 여섯 구간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코스인 4코스는 윤고산사당(尹孤山祠堂)이 있는 굴포 바닷가에서 시작한다. 

사당 앞에는 고산 윤선도가 바닷물을 막기 위해 만든 윤고산둑이 있다.

그곳을 가운데 두고 짝별방파제와 굴포방파제가 양옆에서 감싼다. 

 

윤고산 사당이 있는 이곳은 배중손사당이 있었다.

2021년, 용장성에 삼별초 추모관이 생겨 이곳에 있던 배중손 장군 동상과 항몽순의비가 추모관 앞으로 옮겨지고

이곳은 다시 윤고산사당이 되었다.

 

고산(孤山 尹善道. 1587~1671)은 처가(妻家)가 있는 이곳 바닷가에 방조제(고산 둑)를 쌓고 간척지를 만들어

주민들이 농사를 짓게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민간 간척 1호다. 

 

전설에 의하면 고산은 바다를 메우려고 둑을 쌓았다. 몇 번이나 쌓았지만 무너졌다. 어느 날 밤, 구렁이 꿈을 꾸었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구렁이가 기어가던 자리에 서리가 내려있었다.

 

그 자리를 따라 둑을 쌓았더니 무너지지 않았다고 한다.

농사지을 땅 30만여 평이 생겼고, 고산은 마을 사람들에게 농사를 짓게 하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고산선생에게 감사제를 지낸다고 한다.

 

이번 트레킹은 이곳에서 끝을 맺는다.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갈증을 달래고 5시가 조금 넘어 귀갓길에 오른다.

 

아침에는 운림산방을 들리고, 귀갓길에는 용장성을 들렀다 오는 관계로 다른 날보다 1시간 정도 귀가가 늦어져

10시가 넘어 집에 도착한다. 귀가하자마자 샤워하고 곧바로 곯아떨어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