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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7-8구간(20.1km 용장성~백구문화센터)

일시 : 2022년 10월 9일(일)

7구간(12.2 km 용장성 ~ 운림산방)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아침 6. 아직 어두움이 남아있는 시각에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선다.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린다.

 

여느 때처럼 7시 진잠체육관 앞에서 마지막 동행을 태운다.

한글날 연휴에 비가 내리는 탓인지 오늘은 참여 인원이 가장 적다. 18명 단출하다.

덕분에 2좌석을 차지하고 편안하게 간다.

 

서대전 요금소로 진입한 버스는 호남고속도로를 30분 정도 달려 730분에 여산 휴게소에 멈춘다.

비가 내린다. 춥다. 주차장 정자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잡곡 찰밥에 뜨끈한 된장국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후식으로 달달한 커피 믹스를 한 잔 마시니 부러운 것 없다.

 

8시에 다시 출발한 버스는 남쪽을 향해 계속 달려간다

호남고속도로 양옆으로 펼쳐지는 넓은 들판에는 황금물결이 풍요롭다.

차장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가을 운치를 더하고 왠지 마음도 차분해 지는 듯하다. 토막잠에 빠져든다.

 

버스는 광주 광산에서 무안 공항까지 이어지는 12번 광주 무안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함평 나비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곧바로 서해안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서해안고속도로의 남쪽 끝 목포까지 쉼 없이 달린다. 목포나들목을 나와 영산호 하구둑을 건너자마자 우회전, 대불공단을 가로질러가서는 좌회전해 영암방조제, 이어 금호방조제 건너 77번 국도로 곧장 20km쯤 남하하여 진도대교를 건너 진도로 들어간다.

목포에서도 거의 1시간을 더 달린 버스는 지난번 트레킹을 멈춘 용장성 주차장에 도착한다. 간단하게 출발 전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트레킹을 시작한다.

 

진도하면 진도아리랑, 진돗개, 홍주, 삼별초, 세월호 등과 트로트 열풍으로 가수 송가인도 떠오른다. 

 

아침이슬 같았던 왕조의 숨결이 남아 있는 땅 전남 진도는 당시 세계 최강의 정복자인 몽고군에 맞서 싸웠던 왕조의 한이 깃든 땅이다. 진도 서행랑길 7코스는 아침이슬 같았던 삼별초의 숨결이 서려 있는 용장성에서 출발한다.

고려 배중손 장군이 1270년 왕온(王溫)을 내세워 고려 정통정부의 진도 천도를 선포하고 항몽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 용장성이다.

용장성의 삼별초는 일본에 국서를 보내고 전라도와 경상도 연안의 내륙까지 세력을 떨쳤으나 여몽 연합군에 의해 진도 벽파항에 도착한 지 8개월여 만에 최후를 맞는다.

 

하늘은 화가 잔뜩 난 듯 먹구름으로 뒤덮였지만 비는그쳤다.

비가 온다고 해도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비가 멎어주니 반가움이 앞선다.

걸음이 빨라진다. 나는 그저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 있다.

 

이번 구간은 점찰산을 오르는 코스라 서해랑 트레킹 코스에서 난이도가 높은 코스중 하나다.

1시간 정도 걸어 오일시에 접어든다.  

진도에는 시(市)가 두 군데 있다. 이 곳 고군면 오일시와 임회면 십일시다.

오일시장이 열리면서 닷새장터라 불리다가 시장이름이 마을이름이 된 지명이다.

오일시는 우시장까지 열릴 만큼 큰 시장이었으나 지금은 여느 전통시장과 다를 바 없이 쇠락, 명맥만 이어가고 있다.

 

친구(용진)와 길가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트롯 가수 송가인 사진이 보여 커피를 내리는 여주인에게 말을 건네니 송가인 자랑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한다.

 

농로길을 걸어 고성리를 지나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첨찰산은 정상 건너편에 진도 기상대가 있어 거의 정상 아래까지 시멘트 포장이 되어있다. 비가 그쳤다.

서해랑길은 기상대 삼거리에서 오른쪽 점찰산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100m 진행하고 다시 왼쪽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 첨찰산(尖察山·485m) 정상은 트레킹 코스에서 100m 벗어나 있지만, 반드시 들려야 한다.

 

첨찰산의 정상에는 조선초부터 남해에서 서해로 침입하는 적들의 침입을 한눈에 감시하는 봉화대가 있어서,

진도의 수호산(守護山) 역할을 했던 산이다.

봉화대에서 왜적의 선단을 발견하면 봉홧불을 피워 인근의 해남의 관두산과 일성산에 알렸다고 한다.

정상에 서면 360도 파노라마 조망이 환상적이다.

정상 조망을 마음껏 즐기고 기념 사진도 남기고 다시 100m를 내려와 간단하게 점심을 먹는다.

버스 한 차 정도의 등산객이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하느라 왁자지껄하다. 

 

내리막길이 가파르다. 비에 젖어 돌길이 미끄럽다. 등산객 한 무리리가  앞길을 막고 세월아 네월아 내려간다.

숯가마터가 여러군데 보인다.

 

진도 아리랑비를 지나 진도의 대표적인 문화유산(국가 명승 제 80호) 운림산방(雲林山房)에 도착한다.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강진과 해남을 남도 답사 1번지로 꼽았다.

진도야말로 노른자다. ((((무속의 곳간이기 때문이다. 진도에서도 운림산방(雲林山房)은 으뜸이다.

 

첨찰산 남쪽의 울창한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 107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운림산방은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지 100선에 선정된곳으로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 소치 허련(小癡 許鍊, 1809~1892)이 여생을 보냈던 곳으로, 5대에 걸친 그의 직계 화맥(畵脈)이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입장료 3,000(65세 이상은 무료). 

운림산방 앞에 있는 연못 중심에는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둥근 섬이 있고 소치가 심었다는 배롱나무 한 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운림산방 주차장 바로 뒤에 쌍계사 일주문이 보인다.

쌍계사는 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여 오며 이 절은 절 양편으로 계곡이 흐른다 하여 쌍계사라 이름하였다고 전한다.

 

서해랑길 7코스 종점과 8코스 시점 안내판은 일주문 뒤에 있다.

편의점에서 울금 막걸리 한 병을 사서 배낭에 넣고 8코스를 이어간다.

울금(蔚金)’은 생강과에 속하는 뿌리채소. 혈관 청소와 염증 치료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국산 생산량의 70%가 이곳 진도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8구간(7.9 km 운림산방 ~ 백구문화센터)

누구나 그렇듯 가까운 곳의 가치는 쉽게 깨닫지 못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마을과 골목길, 오래된 집들도 우리 곁에 있을 땐 그저 퀴퀴한 일상일 뿐이다.

그러나 한번 사라진 풍경은 다시 살려낼 수 없게 되고 자취를 감추고 나서야 비로소 소중함이 느껴진다.

 

곳곳에 흉물로 방치된 폐가는 왠지 모르게 가슴 한편에 저려옴이 느껴진다.

인구가 급감하는 농촌의 경우 빈집 증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출생률 감소와 고령화 가속화 등 현재 흐름을 생각하면, 빈집은 농촌뿐만 아니라 지방 소도시에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지난 7코스에 이은 8코스에서도 삼별초 유적지들을 알리는 이정표들이 많이 눈에 띤다.

 

트레킹 코스는 운림예술촌을 한 바퀴 돌아 아스팔트 도로를 건너 중리마을을 지나면

길은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마을' 옥대리로 이어진다.

 

비가 그쳤다 내리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내리는 비의 양이 많지 않아 우산을 쓰고 걷기에 큰 불편은 없다.

빗속에서도 밭에 쪼그려 앉아 구기자를 수확하는 아낙네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4시가 조금 지나 의신면사무소 소재지 돈지리 백구 문화센터에서 오늘의 트레킹은 끝이 난다.

 

1993년 이곳 진도에서 대전으로 팔려 갔다가 7개월 만에 앙상한 뼈와 가죽만 남은 채로 돌아온 진돗개가 있었다.

길러준 주인을 잊지 못해 대전에서 진도까지 팔백리 길을 산 넘고 물 건너 찾아온 것이다.

백구테마센터는 이를 기리기 위해 세운 일종의 기념관으로 백구(白狗) 상이 세워져 있다.

 

진도의 삼보(三寶)로 지정된 진돗개는 천성이 영민하고 충직스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토종견으로

오늘날은 세계적인 명견(名犬)으로까지 자리매김하고 있다.

 

주어진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후미까지 도착한다. 간단하게 뒤풀이를 마치고 5시 정각 대전으로 향한다.

어두움이 사방을 집어 삼키고 추적추적 비까지 내린다.

함평천지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버스는 대전을 향해 전조등으로 어두움을 밀어내고 힘차게 내달린다.

비를 핑계로 이번 트레킹에 나서지 않았으면 후회로 남았을 오늘 하루를 나름 의미있게 보낸 것에 감사하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게으름은 매 순간의 선택이 낳은 습관이다.  그러니까 게으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라 게으름도 선택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