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2년 8월28(일)
4구간(14.5 km 산소 버스정류장~원문 버스 정류장)
지난 주 선배들뿐만 아니라 생일이 조금 빠른 동기들은 정년 퇴직을 했다.
나는 코로나로 퇴직해도 마땅한 계획이 없어 명예퇴직을 포기했다. 요즈음 정년을 코 앞두고 생각이 많아진다.
어느덧 팔월도 끝자락이다.
아침에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서는데 반팔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공기가 차다.
일기예보에는 역대 8월 중 가장 선선한 아침이라고 한다.
서해랑길은 아직도 해남땅을 벗어나지 못해 버스로 4시간이 넘는 먼길이다. 그러나 소풍 가는 기분으로 트레킹을 떠난다.
또 약 한 달 만이다. 지난달 걸음을 멈춘 3-4구간 안내표지판 앞에서 이번 4구간이 시작된다.
곧바로 주렁주렁 탐스러운 석류 열매가 눈을 즐겁게 한다.
삼복더위에 발악하면서 울어 대든 매미들의 울음이 사라져가고, 처서가 지나니 가을 들녘에는 곡식 익는 소리가 들린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기온, 살랑살랑 부는 바람, 트레킹하기 딱 좋은 날씨다.
행복은 참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손 뼘만 했던 벼가 허리춤까지 키가 컸다. 이미 누렇게 변한 나락도 보인다.
도톰한 나락도 햇볕을 받아 실하다. 내 마음도 노랗게 익어가는 가을 들판처럼 넉넉한 파도가 출렁이는 기분이다.
탁트인 들녘과 숲길의 바람 결은 도시와는 완연히 다르게 가슴까지 시원하다.
인적 없는 해변을 지나면서 파도 소리에 마음을 맡긴다. 파도가 내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탐욕을 이제는 내려놓으라 한다.
사람들이 지나가면 길이 되기도 하지만 길을 만들면 사람들이 지나간다. 걷기 여행은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걸으면서 스쳐 지나온 곳에는 자연과 문화, 그리고 그 터를 지켜온 사람이 산다.
이곳 해남은 수확을 끝낸 고추밭과 들깨 밭에 가을 김장배추를 심기 위한 비닐 작업으로 분주하다.
누군가는 이런 길을 두고 지루하다 하기도 하고 볼거리가 없어 재미 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이런 길도 그저 좋다.
길을 걸으면서 평범한 모든 것들이 가장 소중한 순간임을 깨닫게 된다.
송정마을회관 담장에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가 눈길을 끌고, 난생 처음 보는 담배 꽃과 부추 꽃이 잠시 걸음을 멈추게한다.
친구가 알려 주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살았던 친구는 간직한 추억을 끄집어 내어 재미있게 나눠준다.
친구와 함께 걸으니 무얼 봐도 즐겁고, 어떤 것이든 이야깃거리가 된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시간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되겠지.
앞으로 남은 인생을 더 즐겁게 긍정적으로 살아갈 힘과 추억을 얻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4구간과 5구간 절반을 걷는 21km의 조금 긴 거리지만 걷다보니 4시간 30분만에 오늘 트레킹의 종착지에 도착한다.
간단한 뒷풀이를 하고 귀가길에 오른다.
오늘도 자연의 풍광 앞에 마음의 짐을 하나 내려놓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에너지를 얻는다.
@담배꽃
5구간(6.2km 원문 버스 정류장~장포 마을회관)
@부추꽃
@ 종착점 : 해남군 문내면 장포리 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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