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 2010년 7월 4일(일)
산행코스 : 석개재-북도봉(묘봉 갈림길)-용인등봉-997.7봉-삿갓재-임도삼거리-1130봉-934.5봉-한나무재-진조산-굴전고개-답운치
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약 24km, 소요시간 : 9시간 10분
동행 : 귀연산우회 22명
자정이 넘어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 '잘 다녀와요'라는 아내의 배웅을 뒤로하고 집을 나선다. 20명의 귀연 정맥꾼들을 태운 버스는 청원 - 상주간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들어선다. 흔들거림 속에 토막잠 속으로 빠져든다. 두세 번 국도변 작은 휴게소에서 잠깐씩 정차하고 5시간 정도 진행하여 석포역에 도착한다.
어제 낙동정맥 1구간 산행을 하고 석포역 근처 여관에서 자고 오늘 3구간 산행에 합류하기로 한 칸님과 늘초보님이 동승하고 버스는 석개재로 이동한다.
말이 경상북도이지 태백에 가까운 봉화군 소천면과 석포면은 여느 강원도 땅 못지않게 산골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곳을 지나는 차량은 골짜기를 굽이굽이 돌아가고, 산비탈을 헉헉거리며 올라야 한다. 2주일 만에 다시 찾은 석개재는 짙은안개가 신비로움을 더하며 아침을 맞고 있다.
지난 구간 산행종료 후 뒤풀이하던 정자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임도를 따라 정맥길로 들어선다.
사방으로 농무 커튼을 드리운 선계에서 신선이 되어 새소리 벗 삼아 9시간의 긴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숲속 길로 들어서자 나뭇잎에 묻어있던 물기가 바지를 적시고, 싱그러운 풀향이 코끝을 간질이며 기분 좋게 한다.
조난자 위치추적 표지판이 보이는 북도봉(묘봉 삼거리)에 도착한다. 묘봉은 풍곡리 쪽의 문지골에 고양이가 많이 살았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문지골 막장에는 고양이 형상의 바위가 있어 묘(猫)봉으로 불린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모든 사물이 안개 뒤로 숨어 있어 묘봉을 들리지 않고 그냥 진행한다.
△북도봉(묘봉삼거리)-삼척시에서 설치한 조난자 위치 추적 표지판이 보인다.
용인등봉(龍仁登峰)은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덕풍마을에서 볼 때 문지골과 괭이골 사이에 솟아 오른 산릉의 최고봉으로 착한(어진)용이란 뜻을 담고 있다.
용인등봉의 시발점인 산봉우리는 515m봉으로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개족발봉으로 통한다. 산세가 마치 수캐의 생식기처럼 보여 개족발봉이라 부르는데 한자로 구신암(拘腎岩)이라고도 한다. 개족발봉 동쪽 아래에서 문지골과 용소골의 물이 합수되는데 이곳에 패어든 용소골안 제 1용소는 옛부터 제를 지내는 신성한 구역이었다.
제를 올릴 때는 여느 제처럼 돼지를 올리지 않고 개를 제물 삼아 개의 피를 용소에 뿌렸다는 것이 특이하다. 제 1용소까지 돼지를 끌고 들어가기가 어려워서 재물로 개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이곳에 용이라는 이름의 착한 사람이 살다가 이사를 가면서 목안(木雁)을 만들어 묻어두고 갔는데 얼마 후 나무 기러기는 소리개가 되어 날아갔다고 한다. 그 사람의 이름을 따서 용인등(龍仁燈) 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가끔씩 멀리서 또는 가까이서 산새들이 부르고 답하는 소리가 정겹기 그지없다. 허물없는 동행들과 길을 함께 걸으며 나누는 대화들도 정겹다. 지금 이 순간 그것을 추억하는 것도 삶을 풍요롭게 한다.
지금까지 너무 옹졸하고 잔일에 얽매여 살지는 않았는지, 별것 아닌 일에 지나친 욕심을 부리며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며 살아오지 않았는지, 지나치게 몰두해서 살지는 않았는지, 이런 것이 산을 오르고 봉우리를 돌아서 내려올 때면 그리 쫓아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하는 깨달음이 생긴다. 두 다리로 걸으며 온 몸으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진혁진님을 만난 기념으로 한 컷.
문지골 6폭포로 이어지는 갈림길이다. 바로 발아래가 응봉산의 깊고 깊은 골짜기인 문지골, 그 산등 너머가 비경의 용소골이다.
선두를 따라 가려고 빠른 걸음을 재촉하지도 후미에 쳐져 시간에 쫓기지 않고 중간에 혼자 걷는 길이 편안하고 행복하다.
차단기가 있는 삿갓재 임도와 만난다.
삿갓재에서 희미한 능선 길을 따라 삿갓봉(1119.1m)으로 올라선다. 삿갓봉으로 오르는 길은 뚜렷하지 않아 임도를 따라 그대로 지나버린다. 우리 일행 중에도 대부분이 지나쳐 버렸다. 임도를 따라 1-2분 정도 진행하다 커다란 안테나가 보이면 다시 왼쪽 숲속 길로 들어서야 삼각점이 있는 삿갓봉을 만날 수 있다.
먼 옛날에 큰 홍수로 침수되어 삿갓 모양만큼 남겨두고 인근 모두가 물에 잠겼다 하여 삿갓봉이라 했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전한다. 삿갓봉은 아구지맥이 갈라지는 갈림봉으로 의미 있는 봉우리다. 아구지맥은 낙동정맥 삿갓봉에서 분기하여 아구산(652.9m)을 일으키고 울진 앞바다 비래봉산(20m)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1km의 산줄기다.
[봄여름가을겨울님 촬영]
J3 클럽에서 불영사환종주를 하면서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삿갓재 표지판이 눈에 띤다. 임도를 따라 편안하게 진행해도 되고 정맥 마루금을 따라 진행해도 된다. 숲 속으로 이어지는 정맥 마루금이 지름길이다.
임도는 능선과 나란히 나 있어 임도를 따르다가 능선 길을 걷기를 반복한다. 물론 임도만 따라가도 되지만 희미하게나마 능선길이 있으면 능선을 고집하며 걷는다. 산봉우리들이 겹쳐지면서 예쁜 산 그림을 보여준다.
깊은 산죽 길 오르내린 후 반야골 임도 따라 삿갓재를 지나며 강원도 삼척 땅을 이별한다.
임도를 따라 걷다보니 빛바랜 표지목이 서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봉화 석포, 소광리(대광천), 전곡리로 통하는 임도 갈림길이다. 여기에는 바리게이트가 설치되어 있다.
점차 아름드리 금강송이 많아진다. 흔히 소광리 금강송으로 이름난 이곳 소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질이 좋은 적송으로 알려져 있다. 삿갓봉과 1130봉, 백병산과 낙동정맥 동쪽 비탈인 소광리 일대의 광활한 지역에서 자라고 있는 금강송은 보통 수령이 80년을 넘었다.
소광리 금강송은 키가 크고 곧으며 위아래의 크기가 일정한 편이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모습은 비뚤어짐이 없고, 몸통 속이 황금색을 띠고 있어 고급스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금강송은 주로 궁궐을 짓는데 사용되었다. 숭례문이 불탄 이후 이곳 소광리 금강송을 이용하여 재건축하기로 한 것만 보아도 소광리 금강송의 가치를 알 만하다.
금강송은 명성만큼이나 불리는 이름도 다양하다. 여느 소나무에 비하여 줄기가 유난히 붉다고 하여 적송이라 부르고, 속이 누렇게 황금빛을 띤다고 하여 황장목이라 했다. 철로가 놓인 후 금강송이 봉화군 춘양역에 집하되어 서울로 운송되었기에 상인들 사이에서는 춘양목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좀처럼 바닥날 것 같지 않은 에너지를 품고 있는 자연. 그래서일까? 삶의 무게에 지쳐 에너지가 바닥나는 순간, 우리의 자연 회귀 욕망은 더욱 커진다. 높다란 빌딩 대신 울창한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이 그리워진다.
△우기에는 식수를 보충할 수 있는 곳
임도를 버리고 숲길로 들어서 낙엽 깔린 푹신한 양탄자 길을 20여분 걸으면 헬기장에 닿는다. 점심식사를 위해 자리를 잡는다. 남실장이 순식간에 펼쳐놓은 점심상에는 삶은 문어 야채 무침을 비롯하여 계란말이, 생선스테이크와 마른 밑반찬으로 진수성찬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후미일행이 도착한다.
고개마루는 모든 문물과 생활과 역사가 넘어가는 정점이다. 동해에서 서해내륙으로 넘나드는 12령의 여섯 번째 고개인 '새넓재'는
적은 늪과 재가 있다하여 적은 늛재라고 부른다. 일명 '한나무재'라고도 하는데 춘양에서 울진으로 소달구지 타고 방물장수, 보부상, 시집가는 새색시가 넘고 넘었던 유서 깊은 길 고개 이었다고 한다.
십이령은 울진과 봉화 사이를 왕래하는 동안 넘어야 했던 열두 고개를 말한다. 열두 고개를 넘어야 울진이든 봉화든 닿을 수 있었으니 이 고장 사람들에게 십이령 그 자체가 울진과 봉화를 잇는 옛길 이름으로 정착돼버린 것이다.
울진의 보부상 옛길 『십이嶺』
십이령이란 옛 보부상들이 흥부장에서 해산물을 구입하여 봉화의 소천, 영주 등 내륙지방으로 행상을 할 때 넘나들던 열두 고개를 말한다. 보부상이란 보자기 싸서 머리에 이고 다니는 보상(褓商)과 짊어지고 다니는 부상(負商)을 합친 말이다.
울진에서 줄곧 서남방면으로 달리는 십이령은 울진쪽에서 바릿재(두천리)→새재(서면 소광리)→느삼밭재→저진치→한나무재→넓재(서면 광회리)에 이른 다음 봉화땅에 들어 고채비재→멧재→배나들재→노루재 등으로 이어졌다. 36번 국도가 훼방놓는 봉화쪽과는 달리 울진의 십이령 옛길은 지금도 호젓하게 남아 있다.
보부상들이 한숨 지며 즐겨 부르던 노동요 〈십이령 바지게꾼 노래〉
"미역 소금 어물 지고 춘양장을 언제 가노 (후렴)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한 평생을 넘는 고개 이 고개를 넘는구나/서울 가는 선비들도 이 고개를 쉬어넘고/꼬불 꼬불 열두 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
"대마 담배 곡물 지고 흥부장을 언제 가노/오나 가나 바지게는 한 평생에 내 지겐가/오고 가는 원님들도 이 고개를 쉬어 넘고/꼬불 꼬불 열두 고개 언제 넘어 고향 가노."
한나무재에서 진조산으로 오르는 길은 잣나무들이 많다. 진조산 또한 정맥에서 약간 비켜 서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그냥 지나친다.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2분 정도만 올라가면 진조산(908.4m)이다.
참새들의 산, 진조산(眞鳥山)은 다른 한편으로는 진짜 조은 산의 줄임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조산 정상은 쌍무덤이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가장자리에 있는 삼각점은 416 재설. 재설연도는 깨져 알아볼 수 없다. 그 옆 나뭇가지에 여러 산행표지기와 정상 표지판이 걸려있다.
진조산 무덤을 뒤돌아 내려 급한 내림길로 굴전 고개에 내려선다.
굴전고개는 울진군 서면 쌍전리와 굴전리를 연결하는 임도가 지난다. 1:25,000 지형도에는 오른쪽 아래에 있는 마을 이름이 "굴전(屈田)"이다.
굴전고개를 넘으니 또 다시 하늘 높이 솟은 금강송이 펼쳐진다. 감탄사의 연발이다. 금강송림지대를 지나자 정갈하게 솟은 낙엽송이 눈길을 끈다. 고압선 송전탑을 지나면서 자동차소리가 들려오고 답운치로 오르는 구불구불한 도로도 시야에 들어온다.
△인동초(금은화)
답운치(踏雲峙)로 내려서면서 3구간 산행은 종료된다. 답운치(踏雲峙)는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쌍전리와 광회리의 경계에 있는 해발 619.8m 고개마루로 늘 안개가 끼어 있어 마치 구름을 밟고 넘는 듯한 고개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동쪽은 통고산 자연휴양림과 접하고 있고, 서쪽은 옥방천(玉房川)을 사이에 두고 봉화군과 접경을 이루며, 36번 국도가 동서로 관통한다.
빗물의 운명은 이곳에서 서쪽으로 떨어지면 광비천을 이루어 안동댐상류로 흘러 들어가 다시 낙동강으로 합류되고, 동쪽으로 떨어지면 불영계곡을 따라 흘러 내려가 동해바다에서 합수 된다.
△4구간 들머리
△뒤풀이-마시리표 돼지고기 고추장 볶음을 안주삼아 맥주와 막걸리로 갈증을 달래고 네발 달린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나를 위해 갓바위회장님이 준비한 초코파이로 정을 나눈다.
△쌍전리 산촌마을 계곡에서의 알탕-온몸의 찌든 땀을 씻어낸 후 찾아오는 개운하고 상쾌한 기분은 여름 산행의 큰 즐거움중 하나다.
△속리산 휴게소에서 바라본 충북알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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