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 2010년 6월 20일(일)
산행코스 :통리역~고비덕재~백병산~육백지맥분기점~덕거리봉(휴양림삼거리)~토산령~구랄산~면산~1009.3봉~석개재
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약 18km(도상거리 약 20km), 8시간 10분
동행 : 귀연산우회 24명
자정이 넘은 시간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선다. 방금 전까지 세차게 퍼붓던 빗줄기가 잠시 소강상태다. 세상을 감춰 버린 어둠 속에서 이런 저런 상념들이 일어난다. 낙동종주의 의미는 무엇일까? 떠남의 이유를 다시 되묻는다.
새벽1시. 차내는 고요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다. 조용히 해달라고 요청한 사람도 없다. 다만 다른 모든 할 일보다 잠이 필요할 뿐이다. 긴 여행을 견디는 데는 잠이 최고다.
전조등으로 어둠을 밀어내고 빗속을 달린 버스는 태백의 어느 해장국집 앞에서 멈춘다. 버스안에서 잠이 덜 깬 상태로 바둑이님이 건네는 쑥개떡과 커피로 간단히 허기만 속이고 배낭 커버를 씌운다. 2주만에 다시 찾은 통리역은 훨씬 친근한 느낌이다.
통리(桶里)는 내륙과 바다로 통한다고해서 이름 붙여진 원통골에서 그 지명이 유래한다는데 소금을 구하기 위하여 넘나들던 소금 길이라 한다. 또한 사방에 산이 높고 그 가운데로 길게 골짜기가 형성되어 흡사 구유처럼 생긴 곳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통리라 부른다.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철도 건널목을 건너 통리재(해발 720m)로 걸음을 옮긴다. 다행히 비는 멈추었다.
38번 국도가 지나는 통리삼거리를 통리재(해발720m)라고 한다.
1090봉 초입은 제법 급경사 오름길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파고드는 눈부신 아침햇살이 곱게 퍼지며 신록과 어우러져 신비스러움을 연출한다.
▽잡초에 묻힌 헬기장
온몸을 간질이며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상쾌함을 전해준다. 잠 못 자고 먼 길을 밤새 달려 와 자연의 품에 안긴 자들만이 누리는 자연의 선물이다.
백병산 정상가기 전 15분 거리에 있는 고비덕재는 고사리가 많이 자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비덕재는 옛날, 지금의 태백 황지사람들이 소금을 구하기 위하여 넘나들던 소금 길이라 한다. 우리의 옛사람들은 그 귀중한 소금을 구하기 위하여 이 높고 험한 길을 오르내렸다.
▽태백시 황연동에서 올라오는 길
고비덕재에서 백병산 3거리까지의 오름길 약 200m는 경사가 가파르며 계단 길로 만들어져 있고, 길 양 쪽에 밧줄을 손잡이처럼 묶어 놓았다. 고비덕재에서 약 20분 이면 마루금과 백병산 길과의 갈림길인 3거리에 닿는다.
백병산 정상은 마루금에서 약 400m 서쪽으로 조금 비켜서 있지만 낙동정맥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오늘 이 구간도 산군으로 분류할 때 백병산군으로 분류한다.
낙동정맥의 최고봉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배낭을 벗어놓고 잠깐 다녀온다. 태백 동편으로 삼척 도계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백병산(白屛山·1259m)은 정상부근에 병풍을 펼친 듯 장관을 이루는 바위절벽(병풍바위)이 있어 갈수기에는 흰빛으로 보이고 비가 올 때는 검은 빛을 낸다고 하여 백산(白山) 또는 백병산으로 불린다. 서쪽 가지자락으로 마고할멈바위, 병풍바위 등 주능선의 흙길과는 다른 바위길이 열려져 있다.
백병산 정상을 다녀와 삼거리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갈증을 달래고 후미 일행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한다.
낙엽 양탄자 깔린 부드러운 길과 무릎정도의 산죽이 제법 운치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육백지맥 능선분기점을 지나고 40여분 후 대형철탑(86번)이 나타나면서 가야할 능선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금강송은 명성만큼이나 불리는 이름도 다양하다. 여느 소나무에 비하여 줄기가 유난히 붉다고 하여 적송이라 부르고, 속이 누렇게 황금빛을 띤다고 하여 황장목이라 했다. 철로가 놓인 후 금강송이 봉화군 춘양역에 집하되어 서울로 운송되었기에 상인들 사이에서는 춘양목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주변은 원시림으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산밖에 없다. 사방에서 출렁이는 산의 물결이 산 공화국을 이룬다. 산 공화국에는 수많은 사물이 보이지 않는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그 모습도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평탄한 등반을 20여분 하다보면 토산령(950m)을 알리는 돌석을 만나게 된다. 양쪽으로 하산하는 길이 나 있다. 표지석에는 '백병산 5.2㎞, 면산 3.3㎞'라고 씌여있다. 산죽길을 지나쳐 50분 가량 오르면 구랄산(1071m) 정상에 도착한다. 구랄산의 맞은편에 솟아있는 봉우리가 면산 정상이다.
토산령(兎山嶺) : 삼척시 가곡면 땜골과 태백시 철암면 매상골로 연결되는 해발1,000m 옛 고개로 현재는 잡목으로 우거져 땜골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지만 옛날에는 큰 길이었다. 兎는「卯」와 같은 뜻으로 12지(十二支)에서 동쪽을 의미한다. 「兎山」은 「卯山」이니 「東山」이요 「兎山嶺」은 동쪽으로 넘어가는 고개라는 뜻이다. 철암이나 태백(上長面)에서 동쪽에 있는 고개라는 뜻이다. 어떤 지도에 「土山」으로 표기된 것이 있으나 잘못 기재된 것이다. (자료 발췌-태백문화원)
구랄산은 바위 절벽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간에 굴이 하나 있어 예전에 굴알산으로 부르다가 말하기 편하게 구랄산이 되었다고 하며 한자표기로는 堀謁山 으로 표기한다. 사람들의 구전으로 전해 오는 지명이라 정확하지 않다.
구랄산은 옛날 산삼을 캐러 많은 사람들이 오르던 산이었다고 한다. 동점 사시랭이 가사에도 "구랄산 삼 캐고" 라는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이른 아침부터 계속되는 산행으로 몸이 많이 지쳐있어 급경사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몹시 힘이 든다. 힘겹게 오르막길을 올랐지만 아직 면산은 멀기만 하고 아침식사를 일찍 한 탓에 허기가 밀려온다. 작은 공터에 빙 둘러 앉아 점심도시락을 펼친다. 오늘도 변함없는 남실장의 명품요리에 과식을 한다.
정상을 코 앞에 두고 취밭목이라 부르는 너른 숲지대가 나온다. 취밭목을 지나면 다소 경사진 오르막길 사이로 산죽밭이 펼쳐져 있다. 금방 나올 것은 같은 면산은 급경사 오르막을 몇 번 오르고 나서야 면산(1245m)의 정상석이 반긴다.
태백시 동점동과 철암동을 둘러싸고 있는 면산은 낙동정맥 2구간 종주코스로 경북 봉화와 경계를 이루는 태백의 끝자락이다.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면산(綿山)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마을주민들은 화전을 일궈 난을 면했다 하여 면산(免山)이라고 부른다. 정상 부분이 마루처럼 평평해 두리봉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상에서 바라본 전경은 숲으로 둘러싸여 여느 산에서 느낄 수 있는 널찍한 풍경을 기대할 수 없다. 면산 삼거리 오른쪽 길에도 리본이 여럿 달려있어 자칫 직진하기가 쉽지만 정맥길은 왼쪽 산죽길로 내려간다.
면산을 경계로 강원도 태백과 경상북도 봉화 땅이 갈린다. 아름드리 적송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군락지가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활엽수림이 많은 부드러운 산줄기가 이어진다. 강원도 삼척과 경상북도 봉화 땅이 등을 기대고 있는 산줄기가 석개재로 이어진다.
야생대나무인 산죽이 꽃을 피웠다. 60~100년 에 한 번 피고 죽는다는 귀한 꽃이다.
[자료사진]
금방 석개재가 나타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오르락내리락 하는 작은 봉우리를 수없이 넘고 또 넘는다. 왼쪽이 급경사를 이룬 완만한 능선 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마지막 봉우리인 1009봉에 닿는다.
▽삼각점(429재설, 78.6 건설부)이 있는 1009.3봉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시멘트 불록으로 지은 심마니 신당을 지나 423번 도로가 지나는 석개재에 닿는다. 삼척시에서 세워놓은 '하늘이 내린 살아 숨 쉬는 땅 강원도'라 쓰인 대형 표지석이 반긴다. 석개재를 넘어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로 가는, 산비탈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가 눈물겹다.
삼척시 가곡면과 봉화군 석포면의 낙동정맥 경계인 석개(石開)재는 "돌문이 열린다." 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석개는 석포의 옛 이름으로써 고갯마루 주변에 돌이 많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많은 돌들로 이루어진 산들로 막혀있는 고갯마루에 돌문이 열리면 이곳에 1만 가구 이상이 살게 될 것이다.' 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고개를 나타내는 지명은 한자어로 령(嶺), 현(峴), 치(峙) 천(遷) 등이 있고 우리말은 재, 고개 등이 있다. 이들 용어의 뚜렷한 사용 기준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각 용어들이 혼재되어 사용되는 경향이 많다. 이는 지명의 부침이 강했던 이유와 역사의 격변이 잦았던 이유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령(嶺)은 규모나 통행량의 면에서 큰 지역을 나타내며 지역 간 통행의 중요한 통로를 형성하고 일찍부터 군사 요지로 주목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우리나라 백두대간 상의 큰 고개는 령이라는 지명이 우세하다 (예 : 대관령, 조령, 죽령, 추풍령).
현(峴)은 령보다는 한 단계 아래의 고개를 나타낸다. 즉 규모나 유통량에서 령보다는 낮은 급이며 지방 중소 산지의 고갯길을 나타내는 것으로 추측된다. (예 : 우수현, 갈현)
치(峙)는 고개가 통과하는 산지가 다소 험준한 느낌을 주는 곳이며, 이는 꼭 산지가 높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지막한 산이면서도 우뚝 솟은 듯한 산을 경유하는 경우 치의 지명이 붙여질 가능성이 있다. (예 : 지리산의 정령치, 소백산의 마당치, 미내치).
"재"라는 이름으로 새재, 빼재 등으로 불리는 곳이 있는데 이는 순수 우리말이라고 한다.
재(岾)와 고개(古介)는 우리말 지명으로 민간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재와 고개 중 재가 시기적으로 다소 앞서 사용된 듯하고 고개는 그 이후에 표준어로 정착되었을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추측된다.
'정맥 길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동정맥4(답운치-애미랑재) (0) | 2010.07.19 |
---|---|
낙동정맥3(석개재-답운재) (0) | 2010.07.05 |
낙동정맥1(천의봉-통리) (0) | 2010.06.07 |
낙남정맥 2-14:졸업(은하사-매리) (0) | 2010.05.20 |
낙남정맥2-2(청학동-고운동재) (0) | 2009.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