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 2010년 3월 14일(일)
산행코스 : 철원여중고-매바위-금학산-보개봉-고대산-삼각봉-대광봉-신탄리역(약 6시간소요)
궁예가 태봉(泰封)국을 세우고 도성을 쌓았다는 철원. 한국전쟁 전까지는 북한에 속해 있었던 땅. 그곳으로 간다.
이번 산행은 철원여중고를 들머리로 매바위 능선을 경유해 금학산 정상에 오른 후 비상도로로 내려서 다시 고대산을 올랐다가 신탄리역에서 마치는 종주코스다.
약수터 좌측의 금학정이라는 국궁장이 있고 오른쪽으로 10분정도 포장된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금학체육공원이 나온다. 팔각정 과 체육시설 등이 있으며, 그 사이로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다.
나무를 이용해 계단을 만들어 놓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등산로는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다.
이정표가 서 있는 비상도로에서 직진한다. 오른쪽으로 가면 담터계곡 왼쪽은 마애불 가는 길이다.
매바위에 올라서면 넓은 철원평야와 철원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북녘의 풍경도 한 눈에 들어온다.
헬기장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정승바위는 궁예의 책사였던 종간의 모습을 닮았다고도 하는데, 옆에서 보면 사람의 형상이라는데 잘 모르겠다. 여기서 궁예가 재기를 기원했다고 전해진다.
군부대가 눈앞에 보이고, 길은 타이어로 만든 참호로 이어진다.
정상에 오르면 직사각형의 콘크리트로 된 헬기장이 있으며, 주변에 나무도 없이 완전히 개방된 공간을 만들어 삭막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특이한 광경이다.
강원도의 산은 깊은 겨울인양 소복히 눈이불을 덮고 있다. 겹겹이 이어진 산그리매와 하얀 눈이불을 덮은 봉우리 사이로 흐르는 골짜기들의 모습이 멋진 장관을 연출한다. 덕분에 나태하고 지루했던 일상의 찌꺼기들을 훌훌 털어버린다.
옆으로 내려가서 계단을 오르면 정상 표지석이 있다. 그러나 실제 정상은 군 초소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초소쪽 동남방향으로 호랑이가 포효하는 형상의 호랑이 바위가 있는데 현재는 민간인의 출입이 불가능한 지역이다.
금학산은 해발 947.3m에 이르는 철원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학이 막 내려앉은 산형을 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기 901년 후삼국 때 궁예가 송악(개성)에서 철원으로 도읍을 옮길 당시 도선국사가 『궁전을 짓되 금학산을 진산으로 정하면 이 산의 정기를 받아 앞으로 나라를 300년 동안 통치할 것이요, 만일 금학산이 아닌 산으로 정하면 국운이 30년밖에 못 갈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그러나 궁예는 도선국사의 예언을 무시하고 고암산 (철원평야 북쪽)을 진산으로 정했고 국운은 18년 밖에 못 갔다. 그 후 금학산의 수목들은 죽지 않았음에도 3년 동안 나무에 잎이 나지 않았고, 곰취는 써서 못 먹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금학산 정상에서 휘둘러보는 조망은 한 마리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주변에 시야를 어지럽히는 고층건물이나 공장 하나 없어 매바위 능선 뒤로 백마고지와 그 오른쪽으로 학저수지가 철원평야와 함께 시야에 들어오고, 멀리 휴전선 너머 북녘 땅까지 보이는 탁 트인 조망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고대산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비상도로로 내려선다.
이 도로는 군 작전도로로 사용되는 도로다.
점심 식사를 위해 일부는 벙커 위에 또 일부는 벙커 사이에서 자리를 잡는다. 어묵과 라면을 끓이고 즉석에서 홍어회를 무쳐 금세 푸짐한 점심상이 차려진다. 송주와 맥주가 한 잔씩 돌아가고 왁자지껄 잔칫집 분위기다.
커피와 과일을 후식으로 점심식사를 마무리하고 보개산을 오른다. 봄을 시샘하던 폭설이 그대로 남아있어 겨울산행의 느낌이다.
두 팔을 벌려 철원평야를 안으며 정상에 오른다. 고대산(高臺山·832m)은 연천군과 철원군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출입이 통제됐던 군사지역이었다. 2001년 9월 1일부터 일반인에게 개방하였는데,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산의 정상에 오르면 북녘 산하는 말할 것도 없고 남측 최전방 지역인 백마고지・노동당사・철원 전망대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원한 조망을 제공한다.
사방에 축대를 쌓아 만들어진 고대봉은 헬리콥터 착륙장으로 널따랗게 자리를 내주고, 남쪽 끝 표지석에 "고대봉"이라는 글씨가 음각돼 있다. 이곳에서도 철원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대산은 남한에서는 등산이 허용된 산 중 민통선에 가장 가까운 산이다.
고대산의 이름은 유래가 분명하게 전해지지는 않는다. 연천군지(漣川郡誌)는 "신탄리 지역에서는 이 산을 '큰고래'라고 부르고 있으나, 유래는 자세하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고대산 등산로 입구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한다. '큰고래'라는 이름이 인근의 신탄리 지명과 연계된 것으로 풀이한다. '방고래'(온돌방 구들장 밑으로 불길과 연기가 통하여 나가는 고랑)처럼 골이 깊고 높다고 해서 고대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 '높은 별자리와 같다'는 뜻을 담아 '고태(高台)'라고 표기한 사례도 있다.
고대산은 예부터 산림이 울창했다. 신탄리도 고대산의 풍부한 임산자원을 목재와 숯으로 가공해 생계를 유지했던 마을이었다. 그래서 신탄리 일대를 '새숯막(新炭幕)'으로 불렀고, 조선 영조 당시에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신탄(新炭)'으로 표기하고 있다.
고대산 정상인 고대봉(832m)에서 삼각봉(830m)까지는 약 300m 떨어져 있다. 삼각봉에는 별다른 표지석이 없고, 폐참호 하나가 남아 있다. 삼각봉을 지나면서 뒤돌아보니 지나온 금학산 전경이 한눈에 조망되고, 남쪽으로 지장봉이 꿈틀거린다. 다시 300m거리에 대광봉(827m)이 자리한다.
8부 능선에서 암릉길이 시작된다. 암릉길이 뾰족하게 나 있어 붙여진 칼바위 능선은 멋들어지게 휘어진 소나무와 어울려 멋진 풍경을 뽐낸다. 길이가 200m 정도지만 이름만큼 위험하지는 않고, 양쪽으로 툭 트인 전망이 시원하게 열려 있어 전망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날머리에서 시멘트 길을 따라 10분쯤 걸어가면 신탄리역이 나온다.
서울에서 함경도 원산까지 이어지는 경원선의 남쪽 최북단 종착역인 신탄리역에서 기차는 더 이상 북쪽으로 갈 수 없다.
신탄리역은 일반인들에게 더 알려진 경의선의 도라산역 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해 있다. 역을 조금 벗어나 철길이 끊기는 곳에 이르면 북측까지 연결됐던 철도노선의 남측 중단점에 '"철마는 달리고 싶다(we want to back on track)"는 문구가 걸려 있고 폐선로 위 곳곳에 쓰인 통일을 염원하는 낙서들이 분단의 아픔을 말해준다.
이념과 이데올로기 시대가 종식된 지 한참이 지났건만 아직도 곳곳에서 '좌파', '빨갱이'라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이것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우리 아픈 역사로 인한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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