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오로지 걷는 자만을 위한 길들이 만들어져왔다. 적게는 수천 킬로미터에서 많게는 십 수만 킬로미터까지 나라마다 제각각의 이름으로 다양한 색깔을 가진 길들을 찾아 조성하고 있다.
수많은 도보 여행자들은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독특한 지역의 문화에 매혹되기도 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도 한다.
우리에게도 오래 전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참 고운 옛길들이 많았다. 장돌뱅이들이 봇짐을 메고 무수히 넘나들던 고갯길과 들길, 마을 사람들이 장을 보러가던 길, 영남대로라 하여 한반도를 가로질러 한양으로 가던 길까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계량할 수 없는 삶의 길들이 지천이었다.
지금은 그런 길들이 거의 사라지고, 사람들도 잘 걷지 않게 되었다. 자동차를 위한 도로만이 전 국토를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다. 빠르게 가기위해 장소의 고유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현대인들은 점점 병들어가고 있다.
지리 산길은 지리산 둘레 3개 도(전남. 전북. 경남) 5개 시군(구례. 남원. 하동. 산청. 함양) 16개 읍면 80여개 마을을 이어주는 300여km 국내 최초의 장거리 도보길이다.
2008년 4월, 20여km 길이 열렸다.
이 길은 지리산북부 전라북도 남원과 경상남도 함양을 이어주는 옛 고갯길을 중심으로 지리산 천왕봉과 반야봉을 배경삼아 그림처럼 펼쳐진 다랑이 논과 산촌 마을들을 만나고 산사를 지나 강으로 이어지는 풍경 같은 길이다.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몸의 병은 치유될 것이며, 좋은 길과 다양한 문화자원을 가지고 있는 지역은 길을 걷는 사람들, 길 위에 머무르는 도보 여행자들로 인해 풍요로워 질 것이다.
마을의 자연과 고유한 문화를 파괴하지 않고도 이 길을 통해 잊혀 가던 지역은 사람 냄새나는, 도시와 지역을 이어주는, 사람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살맛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지리산길에서 펌-
지리산생명연대 부설 사단법인 "숲길(이사장 도법 스님)"이 지난해 4월 산림청 녹색자금을 지원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전체 예산은 100억 원.
지리산 일대의 각종 자원 조사와 정비를 병행해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마을길을 둥글게 연결한다. 2011년 완공 예정.
전체 트레일 노선의 고도는 구례군 토지면이 50m로 가장 낮고 하동군 악양면 형제봉이 1100m로 제일 높다.
가는길 : 대전-통영 고속도로→ 함양 분기점 → 88고속도로 지리산 나들목 → 인월 → 일성콘도 방향 → 매동마을(일성콘도에서 약 20m거리)
이번에 귀연산꾼들이 찾은 길은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매동마을과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세동마을 구간 20.78km다. 이 길은 남원과 함양을 잇는 옛 고갯길인 등구재를 중심으로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할 수 있고 주변에는 넓게 펼쳐진 다랑논과 11개의 산촌마을, 절 등이 있다.
매동(梅洞)이란 이름은 마을의 생긴 모양이 매화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산사람길(10.1km)이 빨치산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숲길이라면, 다랭이길(10.68km)은 마을과 다랑논 사이를 걸어가도록 이어져있는 옛사람들의 삶의 길이다.
사람 손이 떠난 논밭, 묵답
산업화의 물결 따라 농부는 논밭을 버리고 도시로 떠났다. 한때 고추가 익고, 벼가 고개 숙이던 논밭은 농부의 발걸음이 끊기자 나무가 들어서 이제는 숲으로 거듭나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땅의 본능을 볼 수 있다. -안내판에서-
규모는 작지만 올 초 네팔의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면서 수없이 보았던 산비탈 다랑 논을 연상시키는 풍경이 정겹다. 마치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는 듯하다.
▲다랑이논.
풍성한 가을걷이가 끝난 평온한 들녘, 선선한 바람을 접하면 눈과 귀를 비롯해 오감이 즐겁다.
▲중황마을 주막
▲중황리 사방댐 - 산사태등 산림재해 예방을 위하여 설치한 다목적댐
"지리산길은 도시와 농촌, 자연과 사람을 잇고 수직의 문화를 수평의 문화로, 빠름의 문화를 느림의 문화로 바꾸는 길"이라고 한다.
도보여행은 때로 잠들어 있던 시간을 깨워 일으켜 잊었던 기억을 다시 찾고,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유를 갖는 기회이다. 주가 폭락, 환율 급등, 경제위기 같은 세상살이 시름도 털어낼 수 있다.
전북 상황마을과 경남 창원마을 사이를 잇는 등구재( 해발 700m)를 넘을 때는 약간 숨이 가쁘다. 등구재를 오르는 길목에 시골 아낙이 구절초 막걸리를 권한다.
거북등을 닮아 이름 붙여진 등구(登龜)재.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이 나무 하고 장에 가느라 하도 넘어다녀서 자연스럽게 생긴 등구재는 서쪽 지리산 만복대에 노을이 깔릴 때, 동쪽 법화산 마루엔 달이 떠올라 노을과 달빛이 어우러지는 고갯길이라 한다.
▲동물들의오아시스
논에 댈 물을 얻기 위해 만들어졌던 저수지가 야생돌물이 물을 마시고 목욕도 하는 또 다른 생명의 옹달샘이 되었다.
등구재를 내려서자 주막 하나가 나그네들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막걸리와 묵을 시켰더니 시골 어머니 같은 주인아주머니가 부침개며, 시래기 국까지 덤으로 내놓는다.
'마을의 수호신 나무'라는 뜻의 당산나무는 새 길이 나면서 많이 사라졌는데, 창원 마을엔 커다란 당산나무가 다섯 그루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크고 늠름한 600년 된 느티나무를 마을 사람들은 '윗당산'이라고 부르는데 나무 앞에 서면 고요한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인다.
네팔을 여행하다 보면 만나는 사람마다 두 손을 합장하고 "나마스테"라고 한다. 이 말은 '당신안의 신께 경배를(당신 안에 신에게 문안드립니다)'이란 뜻으로, '당신을 존경합니다' 라는 의미의 좋은 인사말이다.
▲금계마을 폐교에서의 점심식사 - 언제나 남실장의 요리는 인기가 식을줄 모른다.
의탄교를 건너서부터 벽송사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의중마을
고려시대 의탄소(義灘所)라는 지방특산물 탄(숯, 灘)을 중앙에 공납하기위해 만들어진 특수행정구역인 소(所)였다는 유래에서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 의중이라는 이름의 내역을 갖고 있다. 마을 어귀에는 의중, 의평, 추성마을을 지키고 이어주는 600년 묵은 느티나무 당산목이 있고, 마을 안에는 당산 느티나무 신목이 든든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마을 뒤 산 쪽으로는 서암과 벽송사로 가는 숲길이 있다. 지금은 계곡을 따라 도로가 나있어 발길이 뜸해졌지만 절로 가는 숲길로서 옛길의 정취와 그리움이 듬뿍 묻어있는 고즈넉한 길이다.
대나무의 일종인 시누대 숲과 만난다. '시누대는 키가 작지만 빽빽하게 자라 동물이 몸을 숨기기에 좋은 곳이다. 낮에는 동물이 몸을 숨긴 채 있다가 밤이 되면 활동한다.' - 안내 표지판에서-
나무꾼들이 자주 이용했을 법한 고불고불한 옛길과 오솔길, 숲길, 고갯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 마을길 등 넓거나 좁은 다양한 형태의 길과 만날 수 있어 지겨운 줄 모른다. 밟는 재미가 쏠쏠한 낙엽길이 있는가 하면 평탄한 흙길과 오르막이나 내리막길, 나무계단도 반갑게 다가와 걷는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겨우살이는 가장 강력한 항암식물의 하나로 알려졌으며, 고혈압, 동맥경화, 협심증 치료제로 이용되고 신경쇠약, 신경통, 관절염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절로 가는 길
칠선계곡과 엄천강 둘레의 마을은 절에 기대어 살았던 사하촌(寺下村)이다. 이 길은 절을 찾아가던 옛길로, 추성 마을가는 새 길이 생기면서 이제 흔적만 남아있다. 불공을 드리러, 산나물이랑 약초를 캐러, 땔감을 하러 산을 오르기 위해 석축을 쌓고, 바위를 쪼아 계단을 만들었다. 오래된 숲과 화전민의 흔적, 돌계단까지 옛길에서 만나는 오랜 정취가 더욱 향기롭다.
▲서암정사 입구
서암정사는 인근 벽송사의 주지였던 원응 스님이 6·25전쟁 때 지리산에서 죽어간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1989년부터 조성했다고 한다. 이 산중의 정원은 기존의 절에 대한 생각을 일시에 바꾸어 버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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