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립공원

가을의 길목에 찾은 속리산

산행일 : 2008년 9월 7일(일)

산행코스 : 매표소-세심정휴게소-복천암-문장대-신선대-경업대-세심정휴게소-법주사-주차장


7시가 조금 지난 시각. 12명의 교우를 태운 봉고는 교회 앞을 출발한다. 신탄진나들목으로 진입하여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진행하다 죽암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위해 정차한다. 메뉴는 송편, 삶은 옥수수와 삼육두유 등 건강식이다.


청원분기점에서 새로 개통한 중부내륙횡단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충북 청원과 경북 상주를 잇는 중부내륙횡단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 청원분기점과 중부내륙고속도로 낙동분기점을 연결하는 것으로, 길이는 80.5km이며 6년의 공사 끝에 2007년 완공됐다.


시멘트 포장된 도로는 깨끗한 느낌이다. 말 그대로 신작로의 최고 제한속도는 시속 110km이다. 산을 감싸고 흐르는 운무가 선경을 연출한다. 문의, 회인, 보은을 지나 속리산나들목으로 빠져나가 좌회전하여 25번 국도를 타고 조금 진행하다 장내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505번 지방도로를 타고 서원계곡으로 들어간다.


오른쪽에 선병국고가가 보인다. 1900년대 초에 지어진 99칸 저택이다. 서원계곡은 속리산 천황봉이 발원지인 삼가천이 삼가저수지에 모였다가 내려온다. 금강 발원지 중 하나인 삼가저수지를 중심으로 상류의 만수리에 만수계곡, 하류 서원리에 서원 계곡이 위치한다.


서원계곡과 서원리라는 마을이름은 이곳에 위치한 상현서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현서원은 우암 송시열 선생을 비롯해서 성제원, 조헌, 그리고 춘암 김정선생을 모신 서원이다.


▲ (서원리소나무)법주사 정이품송과 내외지간이라 하여 '정부인소나무'로 일컬어지는 천연기념물 352호 소나무


수령 6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서원리소나무는 높이 15m이며 지상 70cm높이에서 두 갈래로 갈라졌다. 정이품송이 곧게 자란데 비하여 밑에서 두 갈래로 갈라졌기 때문에 암소나무라고하며 정이품송과 내외지간이라 하여 정부인 소나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삼가터널을 통과하면 삼거리다. 오른쪽은 한남금북정맥의 출발점인 천황사 가는 길이고 왼쪽이 법주사 가는 길이다. 좌회전하여 갈목재를 지그재그로 내려서면 25번 국도와 다시 만난다.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목인 내속리로 들어서자 천연기념물 103호인 정이품송이 길손을 맞는다. 정이품송은 수령 600년 정도가 된 소나무로, 마치 우산을 펼쳐든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세조가 신병 치료를 위해 법주사를 찾아가는데 축 늘어진 소나무 가지에 수레가 걸릴 것을 염려해 '「연」걸린다'고 말하자 신기하게 가지가 번쩍 들렸다 한다. 세조가 이를 기특히 여겨 「정2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전한다. 세월 탓인지 공해 탓이지 지금은 우아한 옛 모습 대신 철 기둥으로 떠받쳐서 몸을 지탱하고 있는 안쓰러운 모습이다.


차에서 내려 산행 준비를 갖추고 상점들이 즐비한 상가지구를 지나 매표소로 향한다. 길가에는 시골 아낙들이 산나물, 잡곡, 견과류 들을 파는 노점을 펼치고 등산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

 

조각공원을 지나자 멀리 문장대가 아련히 눈에 들어온다. 1997년에 조성된 조각공원에는 조각 작품들과 커다란 비빔밥그릇이 눈길을 끈다.


매표소에 도착한다. 성인 1인당 3천 원 하는 입장료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문장대를 오르려면 화북을 들머리로, 천황봉을 오르려면 천황사나 서원리 충북알프스 출발점을 들머리로, 서북능선을 타려면 운흥리를 들머리로 산행을 시작하면 법주사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지만 멋모르고 법주사를 들머리로 하는 산행객들은 꼼짝없이 3천원의 거액을 입장료로 지불해야 한다.


정부가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했는데 사찰이 문화재 관람료란 명목으로 다시 징수하는 사찰의 횡포가 짜증스럽고 중들이 기거하는 사찰은 포교가 목적인지 돈벌이가 목적인지 의심스럽다.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립공원을 찾는 사람 중 사찰 땅을 일부 밟는다고 해도 돈을 받을 필요까지는 없다. 만약에 문화재 관람료를 꼭 받아야 한다면 사찰 경내에 있는 문화재에 한정해야 한다.


불교의 기본 교리는 ‘무소유’다. 특정 종단이 지나치게 많은 땅을 소유한 것은 교리에도 어긋난다. 수행과 신행 공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불교계에 토지를 불하했다. 사실상 친일의 대가다. 이런 점에서 보면 땅의 소유권에 대한 정통성이 없다.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에 걸쳐 있는 속리산은 우리나라 대찰 가운데 하나인 법주사를 품고 있다. 산세가 수려하여 한국 8경 중의 하나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속리산은 봄에는 산 벚꽃, 여름에는 푸른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가을엔 단풍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지고, 겨울의 설경은 마치 묵 향기 그윽한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등 4계절 경관이 모두 수려하다.


 '호서제일가람(湖西弟一伽藍)'이라고 쓰인 법주사 일주문을 지나면 법주사까지 이어지는 '5리 숲길'은 아름드리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낭만적인 산책로이다.




경내는 하산 길에 잠시 둘러보기로 하고 문장대를 향해 시멘트 도로를 따라 발길을 옮긴다. 왼쪽 계곡은 상수원보호를 위해 녹색 철조망이 쳐 있다. 


태평교를 건너자 태평휴게소가 나오고, 왼쪽에 있던 계곡도 오른쪽으로 자리를 바꾸어서 용바위골 계곡이 시작된다. 노송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운치있는 길이다.


 

세심정 조금 못 미쳐 목욕소 안내판이 보인다. 조선조 7대왕 세조가 국운의 번창을 기원하기 위해 법주사에서 대법회를 연후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목욕을 한 후 몸의 종기가 깨끗이 없어 졌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목욕소)


세심정휴게소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한다.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경업대와 입석대를 거쳐 천황봉에 오르는 길이고 직진하면 문장대로 오르는 길이다.


이뭣고다리를 건너자 오른쪽 언덕위에 복천암이 보인다. 신라 성덕왕때 창건된 암자로, 조선 세조 임금이 이곳에 와서 국운의 융성과 왕후의 쾌차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이곳부터 문장대까지는 2.7km는 가파른 산길이 이어진다.


5분 정도 오르면 용바위골 휴게소이고, 나무계단을 지나 오름길을 15분 정도 올라서면 보현재 휴게소이다. 갈림길이다. 안내표시판은 왼쪽은 중사자암으로 오른쪽은 문장대(1.3km)로 가는 길임을 알려준다.


 


 

도시의 길이 무엇을 얻기 위해 걷는 길이라면 산길은 무엇인가를 비우기 위해 걷는 길이다.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인생길이다. 인생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자신의 방식대로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울퉁불퉁한 돌길을 20분 정도 올라 냉천골 휴게소에서 잠깐 길을 멈추고 물 한 모금 마신다. 길을 재촉하여 다시 20분 정도를 오르면 정상 휴게소이다. 정상 휴게소 바로 아래에는 69개의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왼쪽으로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치 중국 황산에서 가장 유명한 소나무인 영객송(迎客松-손님을 맞이하는 소나무)을 연상시킨다.


경상북도 표지석이 반긴다. 법주사는 충북 보은군이지만 문장대는 경상북도 상주군에 속한다.




 

바위위에 올라 끝없이 펼쳐지는 산그리매를 감상하며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린다. 일행들이 도착하고 바위 아래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도시락을 펼친다. 와! 말 그대로 진수성찬이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문장대로 오르는 길에 정상휴게소에서 귀연의 이원장님을 만났다. 지난 6월 지리산 종주 때도 세석대피소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또 우연한 만남이 반갑다. 친구 한 분과 동행하여 화북에서 올라왔다고 한다.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헤어져 문장대를 오른다.


올 봄만 해도 극도로 체력이 약해져 한방병원에 입원할 정도였던 아내가 그다지 힘들어하지 않고 묵묵히 잘 따라온다. 매일 걷기와 줄넘기를 하며 꾸준히 운동한 효과를 본 것이다.



 

문장대 오르는 길은 어지럽게 널려있는 보수 공사 자재가 사람들의 걸음을 방해한다. 기지국 중계탑이 보이고 오른쪽 바위에 붙은 가파른 첫 번째 철계단을 오르자 오른쪽 산 아래 절경이 절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두 번째 철계단을 오르면 문장대이다. 문장대는 해발 1,033m높이로 속리산의 절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정상인 천황봉(1,058m), 비로봉(1,032m), 문장대(1,033m), 관음봉(982m), 입석대 등 아홉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능선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관음봉이 팔을 뻗으면 잡힐 듯하고 비로봉과 천황봉도 가까이서 한 눈에 들어온다.


문장대는 바위가 하늘 높이 치솟아 흰 구름과 맞닿은 듯한 절경을 이루고 있어 일명 운장대라고도 한다. 문장대 안내판에는 문장대를 세 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설을 전하고 있다.








다시 정상휴게소로 내려와 신선대로 향한다. 청법대에 올라서서 뒤돌아보면 멀리 문장대가 보인다. 약간 험한 내리막길을 내려섰다가 돌계단을 힘겹게 올라 신선대(해발 1026m)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한다.




휴식을 끝내고 산죽 나무 흙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으면 갈림길이다. 왼쪽은 천왕봉으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가파른 철계단을 내려서면 잘 정비된 돌계단이 이어지고 법주사까지는 5.2km이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살이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발길을 잡는다. 가야할 길은 아직 멀지만 주변 풍광 때문에 느긋해진다. 왼편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버티고 서 있는 입석대가 다음에 다시 오라고 손짓한다. 지워지지 않는 풍경을 눈에 담고 경업대(해발 902m)에 도착한다. 임경업장군이 독보대사를 모시고 심신을 단련 수도하던 곳이라 전해오는 곳이다.








철계단을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50m 지점에 자칫 놓치기 쉬운 관음암이 자리 잡고 있다. 관음암 가는 길은 바위 틈 사이로 난 길을 통과해서 돌계단을 오른다.


금강굴휴게소를 지나 왼쪽 상고암과 오른쪽 법주사 갈림길에서 5분을 더 가면 비로산장이다.


시원한 계곡물에 탁족을 하며 발의 피로를 푼다.

 






10분 정도 내려가면 상환암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법주사까지는 아직도 2.6km이다. 곧바로 오름길에 잠시 휴식을 취하던 세심정 휴게소와 만난다.

▲(세심정 절구) 이 절구가 실제로 사용되었던 시기는 13C-14C로 추정되며 물레방아 형태로 곡식을 빻아서 밥과 떡과 곡주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제공하였는데, 나라의 중대사를 논하다 가는 곳이기도 하여 곡식은 국가에서 제공되었다고 한다.



아침에 걸었던 지루한 길을 따라 법주사에 도착한다. 법주사는 속리산을 대표하는 사찰로 천오백년의 역사에 걸맞게 수많은 보물과 국보를 간직하고 있다.

▲(법주사 벽암대사비) 조선 현종 5년(1664)에 건립된 벽암대사의 비로 자연석 암반 위에 홈을 파서 세운 것이다.


경내 및 주변에는 팔상전(국보 제55호),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 석연지(국보 제 64호)의 국보와 사천왕석등, 대웅전, 원통보전, 마애여래의상, 신법천문도병풍의 보물 등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일주문을 지나 벽암대사비,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2002년 개금불사한 100척(33m)의 금동미륵대불과 오른쪽으로 철확이 눈에 띤다. 철확은 3000명 승려의 밥을 지었다는 무쇠로 만든 솥으로 높이 1.2m, 둘레 1080cm, 두께 10cm 되는 우리나라에 전래되는 솥 중에서 가장 큰솥이라고 한다.

▲(통일호국 금동미륵대불) 신라 혜공왕 12년(776)에 진표율사가 7년간의 노력 끝에 정성한 것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개최와 세계평화를 발원하며 청동녹을 벗겨내고 개금불사 하여 본래의 금동미륵부처로 복원했다.


빛바랜 목탑이 시야에 들어온다. 국보 제 55호 목탑 팔상전이다.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장면에서부터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하는 장면까지 부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필상도를 사방 각 면에 두 폭씩 그려 놓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팔상전은 5층 목조탑으로 높이 22.7m 로 현존하는 한국의 탑 중에 제일 높다고 한다.


사찰 창건 당시 의신대사가 조창 했다고 전하며, 신라 혜공왕12년에 진표율사가 중창했으나 정유재란때 불타 없어졌던 것을 다시 1602년 사명대사와 벽암대사에 의해 인조 2년(1642년) 복원된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다고 1968년 팔상전 하체 중수 공사 중 거대한 심주 밑에 사리장치가 발견되어 건립 경위를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법주사 팔상전(국보 55호)


                       ▲쌍사자 석등(국보5호)

신라 성덕왕 19년(720)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 석등 중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다. 현존하는 석탑, 석등에 조각된 사자상 중 가장 뛰어난 솜씨를 드러내고 있다.

 

불을 밝히는 석등 집 위를 보면 사각형의 우물정자로 되어있는데 그것은 불이나지 않도록 우물정자를 만들어 쌍사자석등을 보호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법주사 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

신라의 전형적인 팔각 석등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혜공왕대에 진표율사가 법주사를 고쳐지으며 만든 작품으로 추정된다.


사천왕이란 불교에서 수미산을 중심으로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동쪽의 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북쪽의 다문천왕을 뜻한다.


대웅보전(보물 제915호)

신라 진흥왕 14년(553) 의신조사가 창건하고, 인조 2년(1624)에 벽암대사가 중창한 대규모의 건축물이다. 대웅보전에 모셔진 부처는 실내 안존불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불상이다.


법당 가운데 부처는 마음을, 왼쪽 부처는 덕을, 오른쪽 부처는 육신을 뜻하는 것으로 원래 부처는 하나이지만 중생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 세 몸으로 나눈 것이라고 한다.


▲법주사 희견보살상(보물 제1417호)

모루돌 위에 다기(茶器)모양의 그릇을 머리에 이고 부처 앞에 나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희견보살은 성불의 큰 서원을 가지고 몸과 뼈를 태우면서까지 아미타불 앞에 공양하는 보살로서 사람에게 어떠한 어려운 일이 있어도 강한 의지를 배양하라는 뜻으로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원통보전(보물 제916호)






▲석조(충북 유형문화재 제70호)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되는 물통이다, 높이 94cm, 길이 446cm, 폭 240cm로 물을 저장하여 법주사의 3000승려가 사용하였다고 한다.



                   ▲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마애불(암벽에 새겨진 불상)로 높이 6m나 되는 큼직한 바위에 볼록 새겨진 여래좌상이다. 보기 드물게 의자에 앉아 있는 조각상으로 옆에 조각된 지장보살과 함께 법주사의 성격을 알려주는 미륵보살 불상이다.


며느리 밑씻개

 

[며느리 밑씻개의 전설]

옛날 어느 산골에 한 시어미가 여름에 밭에 나가서 땡볕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김을 매는데, 며느리는 때가 다되도록 새참을 갖고 오지 않았다.


잠시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변이 마려워 밭두렁 근처에서 일을 보게 되었다. 볼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손을 뻗어 옆에 있던 애호박 이파리를 한 움큼 쥐고  뒤를  훔쳤는데... 순간 앗! 따거... 눈앞이 노래지는 게 아닌가? 얼른 손을 펴보니 호박잎 말고도 이파리에 잔가시들이 송송 난 이상한 풀잎이 눈에 띄었다.


그때 시어미 왈,

"이놈의 이파리 며느리 년 똥 눌 때나 걸려들지 하필 내가 일볼 때 손에 잡히다니".....   

해서 이후 이 풀꽃의 이름이 며느리밑씻개가 되었다는 전설이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상리지역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쑥부쟁이

 

물봉선

 

 

꽃며느리밥풀

 

                         ▲어수리 
 

매표소를 빠져나와 터벅터벅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산행은 끝을 맺는다.


'국립공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7월의 덕유산  (0) 2009.07.31
덕유산 눈꽃산행  (0) 2008.12.08
덕유산 옛길 찾아서  (0) 2008.09.01
소백산 둥지봉  (0) 2008.08.28
덕유의 봄  (0) 2008.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