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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 길따라

금북정맥3(각원사-21번국도)

산행일시 : 2008년 5월 18일(일)-16명

산행코스 : 각원사-도라지고개-태조산-365봉-전망대-아홉싸리고개-유량리고개-취암산-21번국도

 

어진 사람은 길이 평탄하면 남을 앞서 가게 하고 뒤따라간다.

그러나 길이 험난하면 자신이 앞서 가고 남을 뒤따라오게 한다.

이로우면 남에게 주고 해로우면 자신이 감당한다.

그러니 어진 사람은 욕심이 없다.

욕심이 없으므로 만족한다.

어질어 만족하는 것을 현(賢)이라고 한다. 

- 윤재근의 <군자는 가슴에 꽃을 달지 않는다> 중에서-

 

천안 인터체인지를 벗어나 오른쪽으로 300 m 쯤 가면 호수가 나온다. 호수 오른쪽으로 포장된 도로를 따라 약 3 km 정도 가면 천안의 진산이라는 태조산이 나타나는데, 이 산 입구에 각원사 안내 표시가 있다.

 

 

 

각원사로 들어가려면 맨 먼저 거대한 太祖山樓(태조산루)를 지나는데 누각의 1층에는 불국사의 치미를 본뜬 대웅보전의 치미(지붕 용마루의 양 끝에 얹는 장식)가 전시되어 있으며 이 치미의 높이는 어른 키를 넘는다.

 

태조산루 이층에는 1990년에 만들어졌고 높이가 4.12m, 직경은 2.50m에 무게가 무려 20톤인 태양의 성종(聖鐘)이 있으며 거대한 목조건물인 각원사 대웅전 왼편 언덕에는 유명한 태조산청동좌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覺願寺(각원사)는 1977년 5월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뜻으로 건립되었고 전체 대지가 약 3만평에 달하는 거찰이다.

 

▲남북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만든 청동대불(좌불상).

이 좌불상은 앉아 있는 높이만 15 m이며, 귀의 길이만도 1.75 m, 손톱 길이는 30 cm나 된다.


 

 

▲무아에동산

 

 

▲태조산 각원사 관음도장 마애불

 

 

성불사 갈림길에서 야영장쪽으로 진행한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뎅그렁 울릴 제면 더 울릴까 맘 졸이고

끊일 젠 또 들릴까 소리 나기 기다려져

새도록 풍경 소리 데리고 잠 못 이뤄 하노라

- 노산 이은상의 < 성불사의 밤 >

 

성불사는 고려 초기 도선국사에 의해 세워진 사찰이라고 알려졌다. 태조 왕건(王建)은 왕위에 오른 후 도선국사에게 전국에 사찰을 짓게 하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이곳에 와보니 백학 세 마리가 날아와 천연 암벽에 부리로 불상을 쪼아 새기다가 완성을 하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결국 미완성 석불이 남겨졌다는 것이다.


이런 유래로 처음에는 '성불사'(成不寺)라 하였다 한다. 그 후 여러 차례 이름을 고쳐 지으면서 지금의 성불사(成佛寺)라 부르게 되었다. 창 너머 완성되지 않은 불입상(佛立像)을 모시고 있는 게 보통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었다.

▲도라지고개

도라지고개(320m)는 옛날에 목천 덕전리 마을 사람들이 천안 유량동을 오갔던 고개였다.

 

 

태조산(太祖山)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천안의 진산으로 표기한 왕자산의 주산(主山)이다.


태조 왕건이 삼국을 편안케 한 후 이곳을 지나다 천하가 안녕해졌다라고 해서 천안이라는 지명을 하사 하였으며 덕분에 이 산도 태조산이 되었다


좌측으로 성불사와 각원사 및 청동대불이 있고 우측으로는 천안시 공원관리사업소가 있으며 산 주변을 따라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독특한 모양의 정상표석에는 태조산에 대한 유래가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고

太祖山(태조산)의 유래 : 천안의 진산으로 고려 태조 왕건이 삼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친히 산에 올라 오룡쟁주 형국의 지세를 살핀 후 비로소 천안부를 설치하였다 하여 태조산이라 칭하였다.

철책 앞의 안내판에는 더욱 더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위치 : 천안시 유량동 산 50, 목천읍 덕전리 산 47번지

놓이 : 421.5m

<태조산>

줄기차게 내려온 백두대간(白頭大幹)이 용트림해 속리산에서 분기, 서진(分岐, 西進)하여 금북정맥(錦北正脈)을 만들고 돌연 남쪽으로 머리 돌려 힘을 모아 일으킨 산이 태조산이다. 고려 건군 이전에는 동, 서도솔(東, 西도率)로 불리었는데 서기 930년 고려 태조 왕건이 천안의 진산인 이곳 태조산에 올라 주위를 살펴보고 오룡쟁주지세(五龍爭珠地勢)로 군사적 요충지임을 판단하고 천안에 천안도독부(天安都督府)를 두고 민호(民戶)와 군사를 상주케 함으로써 천안과 태조산의 지명이 유래되었다. 남쪽으로는 취암산, 북으로는 국사봉이 청룡과 백호가 되어 저 멀리 경배(敬拜)하고있는 일봉산(日峯山)과 월봉산(月峯山)은 해와 달로써, 한복판에 여의주를 놓고(남산) 다섯용의 지형이 보이는 곳이 태조산이다.

<관련 지명 유래>

☉ 왕자산 : 태조산 서쪽에 있는 산으로 왕자(王字)모양을 하고 있으며 천안의 주산(主山)이다. 옛날에 왕자산성이 축성되어 있다고 지지(地誌)에 기록되어 있다.

☉ 장태산 : 고려 태조 왕건이 주둔할 때 장대(장군의 지휘대)를 설치하였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유려왕산, 유려왕사 : 태조산 북쪽에 있는 산으로 태조 왕건이 묵었던 절이 유려왕사이고 유려왕사가 있던 산이 유려왕산이다.

☉ 마점사 : 태조가 말을 매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사명(寺名)

☉ 유왕골 : 목천읍 덕전리 자연부락으로 고려태조가 천하를 살피고 머무른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 마을 입구에는 주민들이 세운 '유왕골 유래비'가 있다.

☉ 유량골(유량동) : 군사훈련장 및 군량창고가 있어 붙여진 지명임.

 

▲흑성산

흑성산의 본래 이름은 검은산인데 이 산을 중심으로 김시민, 이범석, 유관순, 조병욱 등 많은 구국열사가 배출되었으며 일제 때 ‘검다’라는 뜻을 그대로 옮겨서 흑성산으로 바뀐 것이다.

 

▲전망 좋은곳

 

 

▲전망 좋은곳에서 바라 본 천안시가지.

하늘아래 가장 편안한 곳이라는 천안. 일찍이 고려 개경, 조선 한양에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하는 교통의 요지로 많은 사람이 거쳐 간 만큼 이야기도 많고, 문화유산도 많은 곳이다.

 

정상에서 철책을 따라 내려서면 아홉싸리고개(270m)에 닿는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1.1km 내려서면 유량동 방향으로 하산로가 잘 나 있다. 곧장 4.1km 가면 취암산이 나온다.

 

아홉싸리고개에서 내려서면 우측에 만나는 샘물은 등산객들이 유일하게 산중에서 만나는 옹달샘이다.

 

 

 

 

▲경암산

 

 

 

▲취암산

산의 두 봉우리의 생긴 모양이 마치 수리처럼 생겼다 하여 취암산(鷲巖山)이라 부른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곳이 바다가 되어 사기를 실은 배가 넘어가다가 이 바위에 부딪쳐 파선이 되었다고 해서 '배넘어산' 이라고도 부른다. 지금도 이 산 부근에서는 사기그릇 조각이 뒹굴고 있다 한다.


취암산 산록에는 용혈이라 불리는 천연동굴이 있으며 조선시대까지 기우제를 지낸 제단이 있다. 바위 중턱의 용샘은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도 있다.


▲취암산 삼각점

 

 

 

야생화는 그 이름을 알고 독특한 색깔과 향기에 마음을 두면 친근해지고, 그 멋에 반하게 되는 것 같다.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아도 때를 알아서 꽃을 피우고 살아있음을 몸으로 말하는 들꽃이 아닌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삭막한 공간에 적은 양의 흙이라도 있으면 어김없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21번 국도

 

 

 

 

 

▲천안삼거리가구단지-왼쪽 경부고속도로 아래 지하통로(굴다리)로 정맥길이 이어진다.

 

 

산행종료...

 

 

 

 

 

 

▲뒤풀이-병천 아우내 순대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