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08년 4월 6일(일) -27명
산행코스 : 쌍봉초교-두리실-대야리산-망이산-황색골산-도솔산(비로봉-보현봉)-걸미고개-3정맥분기점-칠장산-칠장사(약 8시간)
어느덧 한남금북정맥 마지막 구간이다.
8시 30분 지난 구간 산행을 종료했던 583번 지방도로 “쌍봉1리” 입구 도로에 하차하여 기념사진을 찍고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들어가다가 쌍봉초등학교 후문쪽으로 방향을 잡고 진행한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100여m 진행하면 만나는 삼거리에서 오른쪽 시멘트 도로를 따라가면 583번 도로로 다시 나가게 되고, 도로를 건너 산으로 올라 한 바퀴 돌아 나온다.
583번 도로에서 전문걸설공제조합 교육원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따른다. 전문건설공제조합 교육원 정문을 지나면서 비포장으로 바뀐다. ‘삼아물산’ 을 오른쪽에 끼고 진행한다. 연두색 철망 담을 따라 가면 만나는 사거리에서는 그대로 직진 한다. 다시 583번 도로와 만난다.
인삼밭이 전개된다. ‘에코 인조목재’를 지나 직진 길로 한동안 진행하면 두리실이다. 정신없이 진행하다 보면 2번 지방도로와 만나는데 이곳이 아랫대실이다.
도로를 건너 오른다. 조림지다. 앞이 확 트이는 언덕에 서니 윗대실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얕은 봉을 넘어, 재를 지나 치고 오르면 396m봉이다. 돌 축대를 쌓은 듯 한 성터 흔적이 나타난다. 그 위에 올라서면 “망이산성 남문터”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망이산성 내성 안내판“을 지나면 왼쪽 아래에 약수터가 있다. 쉴 수 있는 쉼터와 간단한 운동시설도 있다. 내려가서 약수 한바가지 마시고, 정면의 길로 올라서니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와 망이산 정상석이 반긴다. 충북 음성군 삼성면과 경기 안성시 일죽면의 경계다. 삼각점이 박혀있다.
봉수대 안내판을 지나 조금 가니 헬기장이 나온다. 20여m 떨어져 또 다른 정상석(472m)이 보이고, 이곳에도 ”망이산성 안내판“이 서 있다.
진달래가 화사한 자태를 뽐내는 내리막길이 길게 이어진다. 길은 순해 지고, 긴 나무 의자 2개가 놓여있다. 참호시설을 지나면 중부고속도로와 그 위를 583번 도로가 가로지르는 화봉육교가 내려다보인다.
화봉육교로 내려선다.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과 충북 음성군 삼성면의 경계다. 육교를 건너, 육교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힘들게 능선에 붙으면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되고 왼쪽으로 꺾여 진행한다.
삼각점이 박혀있는 황색골산 정상이다. 정맥 길은 정상에서 왼쪽으로 이어진다. 점심식사를 위해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펼친다. 남실장님의 해물(전복, 해삼, 낙지 등)을 넣은 라면이 일행의 입을 즐겁게한다.
식사 후 천천히 걸음을 옮겨 길게 내려가면 저티고개에 닿는다. 서낭당 흔적도 남아있는 이 고개의 좌우로 길 자욱이 있는데, 왼쪽은 골프장으로, 오른쪽은 저수지로 이어진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 356m봉 정상을 밟은 후 서서히 내려서 능선을 따른다. 오른쪽 아래에 임도가 마루금과 나란히 가고, 멀리 9번 지방도로가 보인다.
도로에 내려선다. 왼쪽으로는 ‘도하 낚시터’ 간판이 보이고, 오른쪽 언덕위에 멋진 하얀 집이 보인다. 마루금과 나란히 내려온 임도 입구는 철문을 잠가 놓았다.
도로를 건너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어간다. 임도와 만나 10여m 진행하다 왼쪽 숲으로 들어선다.
‘도솔산 비로봉입니다’라 쓴 작은 표지판이 보인다. 한동안 내려서니 재가 나오고 ‘보현봉 가는 길’ 팻말이 나무에 걸려있다. 재를 지나 100여m 오르면 능선 삼거리에 ‘도솔산 보현봉입니다’라고 쓴 표지판이 걸려있다. 길은 구불구불 오르고 왼편으로 확 꺾여 내려선다.
한동안 내려서면 골프장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차들이 보인다. 왼편의 수원지 인 듯 한 시설의 철망을 잡고 걸미고개 절개지를 조심조심 내려선다. 도로 양쪽에 식당이 보인다. 바닥난 식수를 보충하고 도로를 건너 골프장 정문 앞 잔디밭에 앉아 시원한 맥주로 갈증을 달래고 휴식을 취한다. 후미일행의 모습이 보인다.
골프장 정문으로 들어서 주차장 왼쪽으로 붙어 능선으로 오른다. 잘록한 재가 나온다. 오른쪽 골프장 도로와는 지척이다. 재를 지나 가파르게 올라가면 10여분 후 산불초소가 높게 서있다. 산불방지 기간이지만 근무자는 없다. 재를 지난 후 경사를 올라 봉에 이른다. 봉에서 내려서면 칠장사에서 올라온 길과 만나는 재이다.
한동안 오르막길을 서서히 그리고 조금 급하게 오르면 3정맥 분기점이다. 부산 건건산악회가 세운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옆에 까만 대리석 표지석도 있다.
칠장산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정맥분기점까지 되짚어 내려와, 칠장사로 내려선다.
보물 3점(보물488호 혜소국사비, 보물1256호 삼불회쾌불탱, 보물983호 석불입상)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칠장사는 생각보다 큰 절이다.
칠현산(七賢山) 칠장사는 세운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0세기경에도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 현종 5년(1014)에는 혜소국사(慧炤國師; 972-1054)가 왕명으로 넓혀 세웠다.
혜소국사가 머물던 무렵, 이 근처에는 포악한 도적 일곱이 있었단다. 어느 날 도적 하나가 이 절에 물을 마시러 갔다가 물바가지가 순금인 것을 발견하고 슬쩍 품에 숨기고 돌아왔다.
두 번째, 세 번째, 일곱 번째 도적까지 다 제각각 물을 마시러 갔다가 금 바가지 하나씩을 숨겨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숨겨온 금 바가지가 온데 간데없는 것이다. 한 도적이 조심스럽게 이 사실을 고백하니 다른 여섯 도적이 모두 똑 같은 사실을 실토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곧 혜소국사의 신통력에 의한 것임을 알아채고 그의 제도를 받아 모두 도를 이루었으며, 이때부터 뒷산을 칠현산, 절 이름을 칠장사라고 했다고 한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인조 원년(1623)에 인목대비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의 명복을 비는 절로 삼아서 크게 된 곳이기도 하다. 이후 세도가들이 이곳을 장지(葬地)로 쓰기 위해 불태운 것을 초견대사가 다시 세웠으나 숙종 20년(1694) 세도가들이 또 다시 절을 불태웠다. 숙종30년(1704)에 대법당과 대청루를 고쳐 짓고 영조 원년(1725)에 선지대사가 원통전을 세웠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과 원통전을 비롯한 12동의 건물과 혜소국사탑과 탑비, 철제당간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절 구경을 하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한남금북 정맥을 끝낸다.
졸업은 또 하나의 시작을 의미한다. 귀연의 정맥 종주는 구정맥이 끝나는 날 까지 계속될 것이다.
산에가자님이 찬조한 오리훈제 30인분을 비롯하여 산행대장님의 동동주 반말, 허여사님 중국전통주, 백제의 미소님 맛있는 김치까지 푸짐한 뒤풀이가 한남금북정맥을 졸업한 산꾼들의 기쁨을 배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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