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20일(일) - 22명
대안리고개(19번 국도) - 쌍암재(571번 도로) - 604봉- 살티재 - 국사봉(586.5m)-추정재(32번 도로) (13km, 5시간 30분 소요)
9시 15분. 대안리 고개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산용님을 선두로 완만한 오르막을 오른다.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십자로 안부(법주리와 아곡리를 넘나들던 옛 고갯길)를 통과한다.
오르막길은 코가 땅에 닿을 정도의 된비알로 바뀐다. 숨 가쁘게 20여분을 치고 오르면 가파른 바위지대가 나타나는데 그 바위지대를 오르면 비로소 급한 오르막길이 끝나면서 능선은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2분 정도 더 진행하면 참호가 있는 475봉이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곧바로 내리막길로 곤두 박친다.
문든 우리네 인생도 이럴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올라갈 수는 없지 않은가. 언젠가는 내려와야 한다. 오르락내리락 반복되는 정맥 길을 걸으면서 인생을 배운다.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다스리며 여유를 배운다.
금적지맥 분기점에 닿는다. 금적지맥은 한남금북정맥이 구룡산 직전의 분기점에서 남쪽으로 가지를 쳐 충청북도 옥천군 청성면 합금리로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45.5km의 산줄기로, 450m봉 부근에서 시작하여 함금리에서 그 맥을 금강에 넘기고 있다.
이 산줄기를 따라가면 구룡산, 노성산, 국사봉, 거멍산, 덕대산, 금적산, 국사봉 등을 만날 수가 있고, 이 산줄기의 동쪽에는 불로천과 항건천, 거현천, 오덕천, 보청천 등이 금강으로 흐르고 있으며, 이 산줄기의 서남쪽에는 대청호가 있다.
내리막길은 눈이 살짝 덮인 깨어진 판석 조각들로 미끄럽고 겨울 숲은 을씨년스럽다. 철조망이 가로막고 정맥꾼들의 표지리본이 바람에 나부낀다. 표지기가 잔뜩 매달려 있어 반대편에서 진행하는 이들에게도 들머리를 확실하게 안내하고 있다.
밭 가장자리로 내려서 쌍암재에 닿는다. 1914년 행정구역 조정시 능암리(能岩里)와 계암리(桂岩里)를 병합하면서 능암과 계암의 이름에서 쌍암리(雙岩里)라 하였다.
보은군 내북면 법주리와 회북면 쌍암리를 잇는 571번 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에는 통행주의 지역이란 교통 표지판과 “쌍암재 해발290m”라는 표지판이 서있다.
도로를 가로질러 오른다. 무덤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오른쪽 아래에 있는 마을이 법주리 양지말이다.
버드나무가 많아 버드리(柳洞)라고 부르고 구룡산(九龍山) 밑의 큰 골짜기가 되므로 법줄 또는 법주(法主)라 하였다. 양지말은 중뜸(中村 중간에 있는 마을)북서쪽 양지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
▽참호 속에 웬 무덤이...
잘 단장한 밀양박씨판관공파 종중 묘지위로 정맥 길이 열려있다.
새터(음지말 북쪽에 새로 생긴 마을)고개는 회북면 쌍암리 지바우로 가는 고개다. 오르막길이다.
피반령분기점인 514봉에 오르면 '단군지맥'이라 적힌 표지석이 있고 나뭇가지엔 팔봉지맥분기점이라 적힌 표지판도 있다. 왼쪽능선은 25번 국도상의 피반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이고, 정맥 마루금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단군지맥은 팔봉지맥의 다른 이름으로 보은 구룡산에서 가지 친 두 지맥(금적, 팔봉) 중 삼면경계봉-피반령-봉화봉-모재고개-용덕산-팔봉산-은적산-망덕산-출동산-황우산-미호천까지 47.4km의 산줄기다.
우리의 옛지도는 지형의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나라 땅의 미약한 하나의 능선일망정 그 줄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연결되어 어디로 이어졌는지 뚜렷하고 명쾌하게 일러주고 있다.
아울러 산줄기와 어우른 물줄기도 그 시작부터 지나치는 고을과 고을을 일러주고, 어디로 흘러가는가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 옛지도에 나타난 산맥을 글로 정리한 것이 산경표이다. 그 내용은 전국의 산줄기는 1대간(백두대간) 1정간(장백정간) 13정맥으로 규정하고, 여기에서 다시 가지 쳐 뻗은 기맥을 기록했다.
대간, 정맥, 기맥을 제외한 모든 산줄기를 지맥이라 한다. 명칭은 지맥 가운데 산줄기가 길이 30km이상을 대상으로 명명 하는데 이 경우 그 지역의 산 이름을 따른다. 단 반도 등 육지의 끝으로 가는 산줄기는 두 지역을 연결하는 산줄기의 경우 지역이나 반도 이름을 사용한다. [펌 충북일보에서]
성황당터가 있는 작은 고개를 지나 목장 철조망을 따라 오른다. 녹슨 목장 철조망은 590봉까지 계속된다. 중부지방에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대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점심도시락을 펼친다.
남실장이 준비한 점심 메뉴는 어묵, 삶은 계란, 조개, 냉이, 귀한 뿔소라에 비싼 전복까지 육수에 데쳐 소스에 찍어 먹고 마지막은 생우동으로 마무리한다.
덕분에 내 도시락은 뚜껑도 열지 못했다. 남실장의 초청에도 친분이 없는 다른 일행들은 선뜻 수저를 들이대지 못한다. 하산 후 뒤풀이를 하면서 친분이 쌓인 일행들로 다음 구간부터는 내 몫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ㅎㅎ...
살티재 도착. 살-티(사흘티, 三日峙)는 염둔에서 청원군 가덕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교통이 발달하기 이전 대안리→말구리 고개→살티→미티고개→청주에 이르는 길목이었다. 옛날에 노인이 고개를 넘는데 고개가 길어 사흘이 걸려 넘었다고 한다.
옛 성황당 돌무더기가 있어서 예전에 이곳을 넘었던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그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찬바람만 맴도는 돌탑 오른쪽으로 오름길에 아름드리 소나무와 참나무가 늘어서 있다.
하산 후 뒤풀이 준비를 위해 선두로 진행하신 산용님 일행을 제외하고 16명은 점심 식사 후부터 정고문님(청계)을 앞장 세워 일렬로 진행한다.
국사봉은 여러 개의 봉을 지나서야 그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선 곳이 국사봉 아래 헬기장이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거치러진 숨을 고른다.
30m 올라서면 청원군 낭성면 추정리와 보은군 내북면 도원리 사이에 솟아있는 586.7m의 국사봉이다. 정상에는 삼각점(미원 433, 79. 8. 재설)이 있다.
이제 하산길이다.
낙엽송 군락지 숲길을 내려서면 절골(관정사)로 이어지는 시멘트도로와 만난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시멘트도로를 따라 2분 정도 내려서면 조각 공예품을 판매하는 “용창공예”건물이 보인다.
용창공예 건물 앞에 나무를 이용하여 다양한 장승들을 조각하여 진열해 놓았다. 도열한 장송들의 모습에서 해학이 묻어나 웃음을 자아낸다.
추정재 도착하여 4구간 산행은 종료된다. 32번국도 4차선도로 길 건너로는 미원석물과 낭사주유소가 있고, 주유소 앞에 '추정재 해발 260m'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예전에는 머구미고개라고 부르던 곳이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뒤풀이는 산용님이 준비한신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가야곡 왕주는 술통이 바닥나면서 끝이 난다.
보너스
낭사주유소 뒤편 관정리 마을에는 묵정영당과 신중엄신도비가 있다.
△묵정영당
묵정영당은 조선 순조 30년(1830)에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공신 1등으로 책록되고 고령부원군에 봉해진 영의정 보한재 신숙주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이다.
지금의 영당은 1984년에 중건하고 1989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0칸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인데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쌍문을 달고 좌우에 툇간을 두고 앞마루를 놓았으며 ‘묵정영당’이란 편액을 걸었고 마당 앞에 삼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 - 출처 : 청원군청<http://puru.net/> -
△신중엄신도비
신도비는 정삼품이상 벼슬한 분의 무덤 앞에 남쪽을 향하여 세운 비석으로 왕명에 의해 세워진다.
신중엄은 조선 선조때의 문신으로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계모와 동생을 성(誠)과 효(孝)로써 극진히 받들어 그 효행이 널리 알려졌다. 벼슬길에 올라 주부(主簿), 감찰직(監察職)에 있을 때는 군민을 교화로 인도하였고, 임진왜란(壬辰倭亂)때는 군량미 부족으로 어려움이 많은 것을 알고 자신의 재산으로 군량미를 조달하는 등 국난대처에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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