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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선유도


 

풍광이 아름다워 신선들이 노닐다 간다는 섬 선유도(仙遊島)
















아침 7시. 유성요금소로 들어선 버스는 호남고속도로를 20여 분간 힘차게 달려 여산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위해 20여분을 정차한다.


전주나들목으로 빠져나가 갈림길에서 오른쪽 시내방향으로 들어서 21번 국도를 타고 군산을 향해 간다. 전주-군산간 21번 국도는 중앙분리대가 설치되어 있고, 최고속도가 시속 90km로 고속도로 같은 착각이 든다.


25분 정도 지나 군산 공항쪽으로 후회전하여 26번 국도를 타고 내항으로 향한다. 소룡사거리에서 좌회전 하여 다시 21번 국도를 타고 진행하면 국제, 연안여객터미널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한다. 유성나들목에서 2시간 30분이면 군산항 연안여객선터미널에 닿는다.


 

금강하구에 자리한 군산항은 일제강점기 당시 호남지방에서 수탈한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던 장소다. 지금도 내항 주변을 비롯한 군산시내에는 유럽풍으로 지어진 옛 군산세관 본관,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일본 무사의 투구 모양인 옛 조선은행, 군산시내와 내항을 연결하기 위한 해망굴, 일제강점기 크게 번성했던 째보선창 등 식민지 시절의 유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9시 20분부터 승선이 시작되고 9시 40분 드디어 출항한다. 참고로 운항시간은 매달 변동된다고 한다.

 

연안여객선터미널 왼편에 국제여객선터미널(군산-칭다오)이 나란히 위치해 있다. 국제여객선 운항 선사인 창명라이너스㈜ 소속 1만6천 톤급 ‘뉴칭다오호(750명 정원)’가 군산 -청도간을 주3회 운항하고 있다.

 

비응도 앞바다에는 바람에 쉼 없이 돌아가는 10기의 풍력발전기가 시선을 끈다.


 

출항한 지 1시간 정도 지나면 선유도가 가까워지면서 망주봉이 시야에 잡히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새만금방조제 끝에 신시도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신라시대부터 주변에 풍성한 청어를 잡기 위하여 김해김씨가 처음으로 입주하여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는 신시도는 신라초기에는 문장현 심리, 또는 신시로 불리어 오던 것을 일제 때에 신시도라 개칭하였다. 고군산 군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섬으로 최고 상봉인 월영봉 옆에는 해발 187m의 대각산이 있다.


 

신선이 노닐던 섬 선유도(仙遊島)는 군산항에서 서쪽으로 45km 떨어진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전북 군산시 옥도면)의 맏이섬이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옛날엔 수군들이 머물던 군산진”이었다. 고려시대 수군진영을 두고 군산진이라 불렀다. 조선 세종때 진영이 인근의 육지로 옮기면서 지명까지 가져 갖고 이 섬들에게는 옛군산이란 뜻으로 옛 고(古)자를 앞에 넣은 새 이름이 붙여졌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고군산군도". 선유도를 비롯해 야미도 신시도 대장도 장자도 무녀도 방축도 말도 횡경도 비안도 등 무려 63개의 섬이 모여 고군산군도를 이룬다. 바다에 무리 지어 있는 섬들의 모습에서 산이 무리 지어 있다는 뜻의 군산(群山)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섬들이 워낙 많다 보니 바다가 섬을 에워싼 게 아니라 섬들이 바다를 껴안은 듯하다. 섬과 섬 사이에 드리운 바다도 산중의 호수처럼 잔잔하고 아늑하다.


이름처럼 고군산군도의 모습은 ‘섬의 무리’라기보다는 ‘산의 무리’에 가깝다. 높은 산은 없다. 그러나 멀리서 바라보면 상어의 이빨처럼 날카롭고, 다가가면 사람의 기를 죽이는 어마어마한 바위 덩어리이다. 그 사이사이에 바닷물이 드나들면서 모래와 진흙을 쌓아놓았다.


마치 등대처럼 서 있는 거대한 2개의 바위 봉우리 아래 모래톱에 고깃배들이 밑둥을 기대고 누워 있는 모습이 그림엽서 같다.


 

옛날 유배되어 온 충신이 매일 산봉우리에 올라 한양 땅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하였다는 망주봉(152m)은 선유도의 상징이 됐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망주봉에서 7개의 물줄기를 가진 폭포가 생긴다고 한다.


 

이 망주봉은 천년 도읍을 이루기 위하여 왕이 되실 분이 북쪽에서 선유도로 온다는 말에 젊은 부부가 나란히 서서 북쪽 방향을 바라보고 기다리다 지쳐 굳어져서 바위산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큰 봉우리는 남편 봉우리이고 작은 봉우리는 아내 봉우리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이씨 조선 다음에는 정씨가 계룡산에서 나라를 다스린다고 기록된 [정감록]의  내용 중에 황당하게도 범씨가 고군산(선유도)에서 천년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다스린다는 믿을 수 없는 예언을 기록하고 있는데, 망주봉 두 부부가 기다린 왕은 고군산에 도읍을 정한다는 범씨 왕이었던 것이다.


선유도는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명량해전에서 크게 승첩을 거두고 이곳 고군산도에 찾아와 열하루동안(1597 9.21∼10.3) 머물면서 명량해전의 승첩을 조정에 보고하기 위한 장계를 초안하여 서울로 보냈고, 왜란 중에 아산 본댁이 왜적들에게 분탕질을 당해 잿더미가 되어 버리고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는 비보를 전해 듣는 등 충무공의 통한이 서린 유서 깊은 고장이기도 하다.


선유도에는 자동차를 갖고 들어갈 수 없다. 차량통행이 자유로울 정도로 넓은 도로가 별로 없어 섬 안에 선착장과 민박집을 오가는 승합차 몇 대만 눈에 띈다. 대신 전동카트, 삼발이 오토바이, 자전거 등 교통수단이 갖춰져 있다.


 

행정구역상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에 속하는 섬으로 인근의 무녀도와 장자도 그리고 대장도까지 자전거나 전기자동차 등으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연육교가 놓여 있다.

 

선착장에서 망주봉 가는 길에는 왼쪽으로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있다. 해변의 풍광은 조용하고 평화롭다.


명사십리란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 십리(4km)는 되지 않는다. 해수욕장 길이는 1.5km. 모래해변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밧줄을 잡고 암봉인 망주봉 정상에 서면 멀리 무녀도가 보이고 손을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 대장도와 그 옆에 장자도가 바라보이고 포구 앞의 모래톱인 ‘평사낙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원하게 펼쳐진 조망에 넋을 잃고 있다가 점심도시락을 펼친다. 라면과 찌개를 끓이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먹는 점심은 꿀맛이다. 따스한 햇볕이 마치 봄 소풍 나온 기분이다.


 

올라온 길로 하산하여 선유봉코스로 이동한다. 선유봉 정상에 서면 망주봉정상에서 펼쳐지는 풍광보다 훨씬 아름다운 풍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장자도와 선유도를 잇는 길이 268m 폭 3m 높이 30m의 장자교는 차는 다닐 수 없고 사람만 건널 수 있는 다리로 1986년 12월31일 개통됐다.


 

장자교에서 바라보는 주변 섬의 모습은 가히 선경이라 할 수 있으며 봉긋봉긋 솟아있는 섬들은 아름다움과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신선이 노닐 정도로 풍광 빼어난 선유도의 전경을 조망하려면 대장도의 대장봉(143m)에 올라야 한다. 선유도에서 장자교를 징검다리 삼아 건너가는 대장도에는 서울로 떠난 지아비를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할매바위와 길이 30m의 작은 몽돌해변도 있다.


마을에서 약 20분 만에 올라서는 대장봉 정상에서는 고군산군도의 숱한 섬들과 변산반도, 새만금방조제까지도 한눈에 들어온다. 문자 그대로 일망무애(一望無涯)의 장쾌한 조망이 온갖 시름을 날려주는 듯하다.


 

'사자바위(일명 장자할머니바위)'

마을 서쪽 바닷가에 우뚝하게 솟은 사자모양의 바위가 있어 '사자바위(일명 장자할머니바위)'라 부르는데 이 사자 바위는 서해를 바라보는 형태를 하고 있어 먼 바다로부터 오는 동네 액운을 막아주는 파수역할을 하고 있다고 마을 사람들은 믿고 있다.

 

옛날 장자섬에 선비 한사람이 부인과 아들 하나를 두고 살았는데 어느 해 서울로 과거를 보러 선비가 떠나자 그 부인이 매일 산에 올라가 남편의 금의환향을 기다리며 세월을 보냈다.


하루는 남편이 장원급제하여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을 등에 업은 채 산마루로 달려 올라가 남편이 타고 오는 배가 빨리 와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남편이 나타났지만 그 남편은 등과도 하지 못하고 그간 새 부인을 맞아 아들까지 낳아서 데리고 왔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 크게 상심하여 돌아서는 순간 등에 업고 있던 아기가 힘을 쓰는 바람에 선채로 돌로 변했다고 한다.


무녀도로 이어지는 선유교 역시 1986년 말 장자교와 함께 개통됐다. 선유도와 대장도, 장자도, 무녀도는 모두 다리로 연결되어 하나의 섬으로 되어 있으며 주변에 삼도귀범(장구도)가 있다.


 

선유도는 앞으로 연륙교로 뭍과 연결될 것이다. 선유도 바로 앞 신시도까지 새만금방조제 둑방이 이어진 뒤 다시 신시도와 무녀도가 다리로 이어지면 신시도~무녀도~선유도~장자도가 모두 이어지게 된다.

 

여행이란 어디 가서 무엇을 얻어 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내 자신에게 잠시나마 여유를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얻어 오는 여행보다 비우고 오는 여행이 차라리 더 나을 수 있다.

 


 

선유8경


(1) 선유낙조(仙遊落照)

서해바다 한가운데 점점이 떠있는 조그만 섬과 섬 사이의 수평선으로 해가 질 때, 선유도의 하늘과 바다는 온통 불바다를 이루어 황홀경을 연출하는데, 여름철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낙조의 아름다움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2) 삼도귀범(三島歸帆)

섬 주민들에게 항상 만선의 꿈과 기대를 안겨주는 것은 물론 3개의 섬이 줄지어 있어 모습마저 아름답다. 3개의  섬은 무인도로 무녀도에 속해 있으나 선유도 앞마을을 돌아서는 어귀에 서 있고 갈매기와 물오리 등 바닷새의 천국이기도 하다. 주민들은 만선을 이룬 돛배가 깃발을 휘날리며 돌아온다 하여 삼도귀범이라 했다.

<자료사진>


 

(3) 월영단풍(月影丹楓)

신시도에는 해발 199m의 월영봉이 있어 또 하나의 절경을 이루고 있는데 가을철에 신시도 앞 바다를 지날 때면 월영봉의 단풍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답다. 특히 월영봉은 신라시대의 대학자 최치원 선생이 절경에 반하여 바다를 건너와 이곳에 머물며 글을 읽으며 잠시 살았다는 곳이다.

                     

(4) 평사낙안(平沙落雁)

선유도 마을 뒷산에서 망주봉을 바라보면 은빛의 모래사장이 보이며, 가운데에 잔디밭이 있고 수령을 알 수 없는 팽나무 한 그루가 자리 잡고 있는데, 4개의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있고 모래 위에 내려앉은 기러기 형상과 같다 하여 평사낙안이라 불리면서 선유 8경의 하나가 되었다.


 

(5) 명사십리(名沙十里)

선유도 해수욕장의 방조제 둑에는 해당화가 만발하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무수히 많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투명하고 유리알처럼 고운 모래가 십리에 걸쳐 깔려있는 모습을 달이 밝은 밤에 바라보면 세상의 시름을 잊을 만한 아름다움이 서린다.


 

(6) 망주폭포(望主瀑布)

망주봉은 바위로만 이루어진 2개의 산봉우리가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북 쪽을 향해 서 있다. 젊은 남녀부부가 임금님을 기다리다 그만 굳어져 바위산이 되고 말았다는 전설이 있는데, 해발 152m의 이 봉우리가 여름철에 큰비가 내리면  망주봉에서 7∼8개의 물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장관을 이룬다.

 

(7) 장자어화(壯子漁火)

장자어화는 고군산도민의 자랑이었고, 이곳이 황금어장임을 말해주는 상징이다. 과거에는 선유도 마을 뒤에 있는 장자도를 중심으로 이곳에서 많이 나던 조기를 잡기 위해 수백 척의 고깃배들이 밤에 불을 켜고 작업을 하면 주변의 바다는 온통 불빛에 일렁거려 장관을 이루었으며 지금도 주변에 어장이 형성되면 볼 수 있다.


 

(8) 무산십이봉(舞山十二峰)

고군산의 방벽역할을 하는 방축도와 말도 등 12개 섬의 산봉우리가 마치 투구를 쓴 병사들이 도열하여 있는 모습이라 하여 무산십이봉이라 했으며, 선유봉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면 하나의 병풍 또는 적을 막기 위해 배치된 무사들로 보인다. (자료 : 한국관광공사)


‘선유 8경'의 섬 선유도. 신선이 노니는 섬이란 뜻을 지닌 아름다운 섬. 지금도 선유도의 그림 같은 풍광이 눈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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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항에서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금강하구둑으로 이동한다. 20여분 소요.

 

전북 군산시와 충남 서천군의 경계를 이루는 ‘금강하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겨울철새도래지 가운데 하나다. 청둥오리 기러기 고방오리 쇠오리 가창오리 고니 개리 등을 비롯해 40여 종, 70여만 마리의 겨울철새가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


 

‘철새로 가득 찬 바다’를 상상하기 쉽지만, 금강하구의 수면 면적이 워낙 넓은 데다 철새들의 이동이 빈번해 철새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운이 좋아 수만 마리 가창오리가 펼치는 군무(群舞)를 볼 수 있었지만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이어서 카메라에 담을 수 없어 아쉬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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