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마치고 오후 3시에 떠나는 홍도행 쾌속선에 몸을 실었다.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홍도리에 위치하고 있는 홍도는 목포항에서 서남쪽으로 72마일(115km) 떨어져 있다. 흑산도의 부속 도서로서 면소재인 흑산면에서는 14마일(22km)이 떨어진 곳에 있다.
30분의 항해 후 쾌속선은 홍도항 선착장에 닿는다. 계곡물처럼 맑은 바닷물이 해안가 몽돌과 살을 섞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훅하며 단내 비슷한 섬 특유의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배에서 내리자 홍도장 주인이 반갑게 맞는다.
홍도
한국 해벽미(海壁美)의 백미 홍도는 해방 전에는 매화꽃보다 더 아름답다 하여 ''매가도(梅加島)''로 불렸으나 해방 후 해질녘에 노을에 물든 섬 전체가 붉게 보인다 하여 `홍도(紅島)''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홍도의 절경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홍도의 낙조'이다. 서해의 국토 끄트머리에서 하루를 마감한다는 의미도 있거니와 해가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기 직전, 진홍빛에 잠기는 바다와 그 속에 점점이 박힌 바위섬들의 아름다움은 홍도만의 절경으로 꼽힌다.
해넘이를 보기 위해 깃대봉전망대로 오른다. 깃대봉은 이름 그대로 깃대처럼 생긴 암봉이며, 홍도의 최고봉이다.
홍도 초등학교 후면으로 난 길을 따라 등로에는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산책을 하는 느낌으로 천천히 오른다. 홍도 1구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홍도는 두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1구에는 길이 1,200m, 폭 100m의 해수욕장이 있고, 2구에는 해안의 전망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등대가 있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제170호)로 지정돼 있으며 어미섬의 주봉인 깃대봉 주변에는 아름드리 동백나무 숲, 후박나무, 식나무 등 희귀식물 5백여 종이 있고, 2백여 종의 동물과 곤충이 함께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을 보호를 위해 깃대봉 정상은 입산을 통제한다. 산중턱에 만들어 놓은 전망대에서 능선 뒤로 숨는 해를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랜다.
바닷가 횟집에 자리를 잡고 흑산도에서 떠온 값비싼 홍어회와 이곳 홍도의 광어 우럭 모듬회를 안주삼아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정을 나눈다. 여운이 남는 사람들끼리는 부둣가 포장마차에서 해녀들이 직접 재취한 전복과 해삼 멍게를 안주삼아 2차, 3차로 이어지며 홍도의 밤은 깊어만 간다.
새벽 6시 기상. 숙소의 주인장은 어젯밤 과음으로 쓰린 속을 달래라며 시원한 국을 아침상에 올린다. 아침식사를 하고 유람선을 타기 위해 숙소를 나와 부둣가로 나선다.
홍도는 본섬을 비롯하여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20여개의 부속 섬이 절경을 이루어 남해의 소금강으로 불린다. 그 중에서 파도와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가운데 해가 떠오르는 광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홍도 아름다움의 정수(精髓)는 섬을 두르고 있는 해안이다. 검푸른 파도 위에 솟아있는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홍도의 해벽미는 바다에서 바라봐야만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홍도 해상을 한 바퀴 도는 해상유람선을 타면 홍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맘껏 감상할 수 있다. 현재 4대의 유람선이 운항 중이며 1인당 요금은 17000원이다.
유람선은 섬 구석구석 숨어 있는 속살을 보여 준다. 아무 생각 없이 스쳐 간다면 바윗덩이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이름을 붙이고 갖가지 전설과 사연을 불어넣어 재미를 더한다.
홍도가 관광지로 각광받으면서 만들어진 이야기이겠지만 가이드의 구수한 입담을 듣다 보면 2시간 30분이 화살처럼 지나간다.
홍도에는 ''홍도 33경''이라는 절경이 있다. 그중에서도 남문바위, 실금리굴, 석화굴, 탑섬, 만물상, 슬픈여, 부부탑, 독립문바위, 거북바위, 공작새바위 등은 홍도 10경(十景)으로 꼽힌다.
홍도 33경 중 관광객들을 처음 맞는 것은 남문바위다. 일명 ''애국가 바위''라고도 불리는데, TV 방송 시작과 끝에 나오는 애국가 배경화면 속 바위가 바로 이 남문바위기 때문이다.
흑갈색과 흑색을 띠는 홍도 바위는 풍화를 거쳐 쌓인 것으로 전체적으로 붉은 색조를 띤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절경 뿐 아니라 바위틈에 빽빽이 자라는 나무들 또한 마치 정성스럽게 분재를 해놓은 양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홍도 2구 마을 옆에 있는 홍도등대는 마치 외국의 사원 지붕처럼 돔형의 하얗고 예쁜 모습으로 섬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홍갈색의 규암으로 된 누에 모양의 홍도는 남쪽의 양상봉(해발 236m)과 북쪽의 깃대봉(해발 367.4m)이 섬의 주인 행세를 하며 대목이라는 좁은 바닥으로 연결되어 있다. 남북의 길이가 6km 밖에 안 되지만 해안선 일대의 산재한 홍갈색의 크고 작은 무인도와 깎아지른 듯 한 절벽들은 오랜 세월의 풍파로 형언할 수 없는 절경을 이루고 있다.
남문에서 슬금리굴까지는 높이 100m에 이르는 깎아지른 해안들이 사열하듯 늘어서 있고 사람들의 손이 미치지 않는 벼랑 등에는 아직도 유명한 풍란과 분재 같은 노송들이 마치 일부러 꾸며놓은 분재마냥 위태롭게 자리를 잡고 있다.
눈길 닿는 곳마다 비경이요 승경이다. 따스한 아침햇살과 스쳐지나는 바람이 기분을 더욱 들뜨게 한다.
“으메~ 징한거 안거 안거”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청산유수 말솜씨로 승객을 휘어잡는 가이드(홍도오빠)가 쉬는 사이 뽕짝이 뱃전을 울린다.
유람선 일주에 따라붙는 바다의 맛도 별미다. 섬 일주 도중 슬픈여바위에서 유람선이 잠시 선 사이 어디선가 조그만 어선 한 척이 잽싸게 나타나 팔딱거리는 횟감을 선보인다.
자연스레 소주 한 잔이 곁들여진다. 술맛마저 달게 느껴진다. 절경에 취하고, 그 위에 술기운까지 더해지면서 상큼한 바닷바람까지 분다. 보면 볼수록 가면 갈수록 여행의 참맛을 느끼게 하는 곳이 바로 홍도다.
이제 돌아가야 한다. 홍도에서 목포까지는 남해 프린스호가 실어다 준다. 쾌속선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시키자 스쳐 지나가는 섬들과 부서지는 고운 햇살이 눈에 들어온다. 유람선이나 페리호와는 달리 쾌속선은 운항중 외부 출입이 안된다. 안좌도가 보이고 점점 목포에 가까워진다.
여행에서 만난 인연이란 잠깐의 만남으로 오랜 기억이 남겨지는 법이고, 고마운 인연들로 뇌리에 영원히 인식되기 마련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잊고 있더라도 추억의 장소로 돌아가면 생명력을 발휘하는 인연이 여행에서 만난 인연이 아닐까.
1박 2일의 섬 여행은 행복과 오랫동안 기억될 추억을 가득 담고 다시 일상으로 전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