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2일(일) - 29명
산경표에 따르면 속리산 천황봉에서 안성의 칠현산까지가 한남금북정맥이고, 칠현산에서 지령산까지가 금북정맥이다.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하면서 주로 이름난 명산을 찾아다녔다. 귀연을 따라서 금남정맥 몇 구간, 등사대모를 따라서 호남정맥 몇 구간, 대충산사를 통해서 낙남정맥 몇 구간을 동행했지만 무엇인가에 구속되지 않고 보다 자유롭게 산을 즐기기 위해 그 동안 정맥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한남금북정맥과 앞으로의 금북정맥은 내가 태어나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내 고장 충청도의 큰 산줄기를 밟는 것이어서 귀연과 동행을 하려고 한다.
한남금북정맥은 도상거리는 약 162km정도 되는데, 9구간으로 나누어 2007년 12월 2일 시작하여 매월 1, 3주 일요일 구간 종주를 하고, 칠장산까지 종주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칠현산에서 태안반도(泰安半島)의 안흥진(安興鎭)까지 금강의 서북쪽을 지나는 도상거리 약 240km 금북정맥을 이어서 종주할 계획이다.
자기가 바른 길을 걷고 있다면, 남들이 뛰어가든 날아가든 상관없이 한 발 한 발 앞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기록을 세우려는 것도 아니고, 누구와 경쟁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빨리빨리 갈 이유도 필요도 없다. 건강하게 모두 무사히 완주를 기원한다.
대전 - 청원 - (청원-상주간 고속도로) - 외속주유소 - (505지방도) - 서원계곡 - 삼가저수지- 만수계곡
대전요금소로 진입하여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진행하다 청원분기점에서 며칠 전 새로 개통한 중부내륙횡단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충북 청원과 경북 상주를 잇는 중부내륙횡단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 청원분기점(JCT)과 중부내륙고속도로 낙동분기점을 연결하는 것으로, 길이는 80.5km이며 6년의 공사 끝에 완성됐다.
시멘트 포장된 도로는 깨끗한 느낌이다. 말 그대로 신작로의 최고 제한속도는 시속 110km이다. 문의, 회인, 보은나들목을 지나 속리산나들목으로 빠져나가 좌회전하여 25번 국도를 타고 조금 진행하다 장내삼거리에서 505번 지방도로를 타고 서원계곡으로 들어간다.
오른쪽에 선병국고가가 보인다. 1900년대 초에 지어진 99칸 저택이다. 서원계곡은 속리산 천황봉이 발원지인 삼가천이 삼가저수지에 모였다가 내려온다.
금강 발원지 중 하나인 삼가저수지를 중심으로 상류의 만수리에 만수계곡, 하류 서원리에 서원 계곡이 위치한다.
서원계곡과 서원리라는 마을이름은 이곳에 위치한 상현서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현서원은 우암 송시열 선생을 비롯해서 성제원, 조헌, 그리고 춘암 김정선생을 모신 서원이다.
법주사 정이품송과 내외지간이라 하여 '정부인소나무'로 일컬어지는 천연기념물 352호 소나무(서원리소나무)가 이곳의 명물이다. 잠시 내려 소나무를 감상하고 기념사진도 촬영한다.
▲천연기념물 352호 서원리소나무
수령 6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서원리소나무는 높이 15m이며 지상 70cm높이에서 두 갈래로 갈라졌다. 정이품송이 곧게 자란데 비하여 밑에서 두 갈래로 갈라졌기 때문에 암소나무라고하며 정이품송과 내외지간이라 하여 정부인 소나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약 7km 떨어진 곳에 이 나무의 남편인 정이품송이 있는데 수령이 약 600년으로 추정되는 노송으로서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정이품송은 조선조 제7대 세조가 속리산에 행차할 때 임금이 타는 가마인 "연이 나무가지에 걸린다"라고 말하자 밑가지가 저절로 들려 무사히 통과하게 되매 이를 신기하게 여기고 왕이 그 자리에서 정이품이라는 벼슬이 내렸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삼가저수지를 왼쪽으로 끼고 돈 다음 1차로 포장도로를 따라 대목리로 들어선다. 만수계곡을 따라 아랫대목골과 윗대목골을 지난 다음 천황사에 도착을 한다.
1구간 : 대목리(천황사) ~ 천황봉(1057m) ~ 667봉(삼각점) ~ 불목이재 ~ 갈목재(505지방도로) ~ 541봉 ~ 희엄이재~ 말티재 (약 16.5km : 접속거리 3km + 구간거리 13.5km)
산행들머리는 윗대목리 마을이다. 8시 15분. 천황사 대웅전을 배경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종주의 첫 걸음을 내디딘다.
윗대목리 마을 초입에는 이정표(삼가리 3.9km 천황봉 2.7km)가 있으며,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여러 개 붙어있어 들머리임을 알려준다.
속리산은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하여 비로봉, 입석대, 문장대 등 빼어난 아홉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어 원래 이름은 구봉산(九峰山)이었다.
속리산(俗離山)이란 이름은 최치원이 이 산에 들어와서 도불원인인원도, 산비이속속이산[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 하려 하고, 산은 속세를 여의치 않는데 속세는 산을 여의려 하는구나)]이라 읊은 데서 유래한다.
천황봉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금새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재킷을 벗어 아무렇게나 배낭에 쑤셔 넣고 걸음을 옮긴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고 사방은 짙은 운무가 조망을 모두 삼켰다. 형제봉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곳에 안내도가 잠시 걸음을 멈춘다. 우리가 가야 할 정맥길은 표시조차 없다.
천황봉 아래에서 길이 갈라진다. 그러나 두 길 모두 천황봉으로 이어진다. 오른쪽 길은 직접 천황봉에 닿고 왼쪽 길은 정맥초입을 확인하고 천황봉에 닿는다.
경북 상주시 화북면,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에 위치한 천황봉(1,058m)에서 문장대로 이어지는 주능선은 백두대간의 허리를 이루고 있다.
천황봉은 삼파수, 즉 한강·금강·낙동강 수계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즉, 천황봉에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가 동쪽으로 흐르면 낙동강물, 북쪽이나 서쪽으로 흐르면 한강물, 남쪽으로 흐르면 금강물이 된다.
최근 뉴스에 의하면 보은군은 논란을 빚고 있는 속리산 천황봉을 천왕봉(天王峯)으로 개명키로 의결했다. 녹색연합이 천황봉이란 이름이 일제잔재라면서 천왕봉으로 명칭변명을 해달라고 최근 국토지리정보원에 청원서를 제출하고, 산림청도 ‘우리 산이름 바로찾기’ 캠페인을 벌이면서 천황봉의 개명을 요청했다.
녹색연합은 청원서에서 “당초 왕(王)이던 지명이 일본 천황을 뜻하는 ‘황(皇)’으로 바뀌었다.”면서 “일제에 의해 왜곡돼 지어진 봉우리 이름을 바로잡아 달라.”고 요구했다. 군지명위원회는 의결 후 “대동여지도와 팔도궁현도 등 옛 지도와 1930년 법주사 호영 스님이 그린 법주사도에 ‘천왕봉’으로 표기돼 있고 동국여지승람 등 고서에도 속리산 정상에 ‘천왕사’란 절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개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천황봉(1058m) 정상 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만 남기고 우비를 챙겨 입는다. 서둘러 올라온 길을 따라 약 20m 정도 내려가다가 오른쪽으로 들어선다. 출입금지판이 세워져 있다. 전국의 수많은 정맥종주자들이 찾는 한남금북정맥길인데 출입통제라니 국립공원관계자들은 개념이 있는 사람들인지 의심스럽다.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923봉 아래로 길은 이어진다. 수북이 낙엽이 쌓인 길은 산책로 같은 편안하고 좋은 길이다. 667.3봉에는 삼각점이 박혀 있다.
12시. 점심식사를 위해 자리를 잡고 빙 둘러 앉아 도시락을 펼친다.
갈목(葛目)재(390m)로 내려선다. 505번 지방도가 지나는 갈목재는 특이하게 '칡 갈(葛)' 자를 쓴다. 칡덩굴이 많이 났던 마을이라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하며, 마을이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목(目)에 자리하고 있다고 해 '갈목' 이라 부른다고도 전한다.
갈목재에서 진행방향 오른쪽으로 20~30m 아래에 왼편으로 길이 열려있다. KTF통신 중계기 옆에 커다란 무덤 3기가 눈길을 끈다. 쌍사자 석등까지 세워진 무덤은 국립묘지 대통령 묘를 연상시킨다.
우리나라의 장사문화는 오랜 전통으로 매장을 선호하지만 매장에 따른 묘지 확보, 경제적 부담, 국토의 훼손 등 커다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전국의 묘지가 차지하는 면적은 국토의 1%인 약 1천 평방킬로미터(서울시의 약 1.6배)에 이르며, 또한 해마다 20여만 기의 묘지가 새로 생겨나면서 산림훼손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매장을 고집해 나가다 보면 결국 우리의 터전은 온통 묘지로 바뀌게 될 것이다.
매장을 통해 조상 덕을 보려고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노력에 의해 스스로 각자의 삶을 헤쳐 나가는 것이 참으로 지혜 있는 행동이 아닐까.
갈목재에서 25분여를 오르자 545.7봉이다. 대충산사의 뫼꿈이님과 청록님 표지리본이 반갑다.
회엄이재는 서낭당 같은 돌무덤이 있다. 회엄이재는 갈목리에서 서원리로 넘나들던 고개로 옛날 속리절 중과 구병절 중이 이 고개에서 서로 만나게 되면 허행(헛걸음)하고 되돌아 갔다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오르내림이 반복되지만 고도차가 그리 크지 않다.
자그마한 봉우리들을 오르내리길 여러 번, 나그네들의 다리 쉼을 위한 긴 의자와 이정표가 반긴다. 숲속의 집 말티재휴양림에서 설치한 듯하다.
정상으로 표시된 봉우리에서 오른쪽 말티재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자 산불이 난 후 벌채로 인한 잔재물이 온통 널려있고, 사람들의 잘못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숲속에서는 검게 그을린 나무들의 원성이 들리는 듯하다.
오후 3시 50분 가파른 내리막을 조심스럽게 내려서 말티재(430m)에 도착하면서 1구간 산행은 끝을 맺는다.
37번 도로가 지나가는 말티재라는 이름은, 조선 세조가 속리산으로 행차할 때 타고 왔던 가마를 말로 갈아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말'의 어원은 '마루'로서 '높다'는 뜻이니, 말티재는 '높은 고개'라는 뜻이 된다.
말치고개의 다른 이름은 박석티다. 고려 태조가 속리산에 올 때 고갯길에 넓고 얇게 뜬 돌을 깔았으므로 '박석티'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말티재에는 돌장승과 말치고개 유래비가 세워져 있으며 정자와 간이화장실도 설치되어 있다.
눈발이 더 거세진다. 마지막 주자인 종수님이 도착하고 산행 뒤풀이를 위해서 버스는 말티재휴양림 숲속의 집으로 향한다. 자연산 버섯찌개와 막걸리 그리고 라면사리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언제나 그렇듯이 산꾼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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