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06년 10월 22일(일)
산행코스 : 백무동~첫나들이폭포~가내소폭포~한신지계곡~무명폭포~천령폭포~내림폭포~장군바위~제석봉~제석단~장터목대피소~유암폭포~중산리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보다 못하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처음에는 '높은 산'을 찾아다녔다. 그래서 정상이 목표였다. 꼭 정상표지석을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남겼다. 언제부턴가 '깊은 산'을 찾기 시작했다. 이제 정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숨겨진 보물들과 역사의 흔적들 그리고 비경들을 찾아 눈과 마음에 담는 것이 산행 목표가 되었다.
비를 맞으며 산에 오르는 사람은 그 까닭을 압니다.
물에 젖어 안으로 불붙는 외로운 사람은 그 까닭을 압니다.
외로움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라는 사실을.
이번 산행은 2006년 지리를 향한 열 번째 발걸음이다. 백무동에서 한신지계곡을 따라 장터목으로 올라 제석단과 제석봉을 확인하고 천왕봉에서 통신골로 내려설 계획이었으나 가을 단비로 통신골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한신계곡의 들머리인 백무동은 산신인 마고할미가 딸 100명을 무당으로 만들어 각지로 내보냈다는 전설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임진왜란 때 100명의 무사가 은둔해 훈련한 곳이라는 이야기 등이 전해 내려온다.
백무동에서 5분 정도 오르면 왼쪽으로 하동바위, 참샘을 거쳐 장터목으로 오르는 길과 직진하여 계류를 따라 오르면 첫나들이폭포를 지나 가내소폭포, 오층폭포, 한신폭포 등을 지나 세석으로 오르는 길이 갈라진다. 울창한 숲 속에 잘 다듬어 놓은 넓은 산길은 경사가 완만하다.
2개의 출렁다리를 지나 첫나들이폭포부터는 한신골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이 폭포가 제일 먼저 사람들을 맞이하기 때문에 첫나들이폭포라 불렀을 것이다. 폭포 위로는 다리가 계곡을 가로지른다. 가뭄으로 고운 단풍은 볼 수 없지만 산자락은 수채화 물감을 뿌려 놓은 듯하다.
'깊고 넓다'고 해서 이름 붙어진 한신계곡은 옛날 한신이란 사람이 농악대를 이끌고 세석으로 가다가 급류에 휩쓸려 죽었는데 그 뒤 비가 오는 날이면 계곡에서 꽹과리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한신계곡이라고 불리게 됐다는 주장도 있다.
백무동에서 1.9km 거리인 가내소폭포에서 두 계곡으로 나뉜다. 다리를 건너 계속 올라가면 세석산장으로 갈 수 있고 왼쪽으로 난 숲 속 길로 들어가면 한신지계곡으로 해서 장터목산장으로 갈 수 있다.
가내소폭포를 보려면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가내소폭포는 12년 간 도를 닦던 도인이 반라로 나타난 마고할미의 딸을 보고 득도에 실패한 뒤 '나는 가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색이 바랜 낙엽 덮인 암반을 쏟아져 내려오는 옥계수와 끝없이 이어지는 소(沼)와 담(潭)과 폭포들의 향연에서 부서지는 포말(泡沫)이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만추의 서정을 빚어내면서 깊어 가는 가을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나그네들을 맞는다.
누가 그랬던가. 높은 산은 반드시 깊은 계곡을 가지고 있다고. 가없이 깊은 계곡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산은 더욱 명산이 된다고.
다른 산 다른 골짜기에 있었더라면 멋진 이름이 붙었을 법한 폭포도 이곳에서는 무명폭포다.
▲무명폭포
천령폭포도 무명폭포였는데 함양 사람들로부터 천령폭포라는 이름을 얻었다. 비록 깊은 소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20여m 높이에서 쏟아져 내리는 2단 폭포의 위용을 느낄 수 있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천령폭포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계곡의 왼쪽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다.
45도 경사의 암반에 홈을 타고 흐르는 내림폭포의 물줄기는 세월의 흔적이 담긴 할머니의 얼굴 잔주름 같은 느낌이다. 흐르는 물이 미풍에 너울거리는 비단결같이 아름답다 하여 내림폭포라고 부른단다.
계곡물로 식수통에 식수를 보충하고 발소리를 죽인 채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커다란 주목이 눈에 띄고 길이 갈라진다. 장터목산장으로 향하는 오른쪽 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올라 백무동에서 하동바위를 거쳐 장터목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붙자 천령폭포를 지나면서 한두 방울씩 떨어지던 빗줄기가 굵어진다. 배낭커버를 씌우고 우비를 입는다.
일부는 직접 장터목으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하고 유암폭포를 거쳐 중산리로 하산하기로 하고 일부는 제석봉에 올랐다가 제석단을 거쳐 장터목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금줄을 넘어 제석봉으로 오르는 길목마다 버티고 서 있는 고사목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헬기장 위쪽 커다란 바위가 제석봉이다. 아무런 표시가 없다.
제석단으로 향한다. 제석봉에서 장터목방향으로 10여분 이동하면 제석단에 닿는다.
안내한 곽고문님의 설명에 의하면 예전 장터목 대피소가 생기기전 제석봉을 거쳐 천왕봉에 오르는 길목이었던 제석단은 지리산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당터가 있었던 곳이기에 '제석당터'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지금은 지리 산꾼들에게만 알려져 있는 곳으로, 널찍한 공터와 샘터까지 있어 최고의 비박터로 손꼽힌단다.
맑은 날에는 지리 최고의 전망대인 삼정산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 펼쳐지고, 그 너머로 반야봉의 풍성한 여인의 둔부, 그 뒤로 만복대에서 바래봉까지의 서북능선이 한 눈에 바라다 보인다고 하는데 자욱한 안개 때문에 아쉽게도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 서둘러 장터목 대피소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장터목 대피소 취사장은 비를 피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몰려든 산행객들로 장터를 연상시킨다. 겨우 자리를 잡고 선 채로 점심식사를 해결한다. 빗줄기가 더욱 굵어진다.
유암폭포를 거쳐 칼바위를 지나 중산리로 하산하기로 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비에 젖은 형형색색의 낙엽이 돌길에 떨어져 마치 꽃길을 걷는 듯하다. 쉼 없이 1시간 30분 정도를 치고 내려와 두류동매표소를 빠져나와 중산리주차장으로 향한다.
높은 산, 넓은 산, 깊은 산을 합쳐놓은 지리산. 아흔아홉 골짜기를 자랑하는 지리의 품에 안기어 나 자신을 일탈시키는 행복했던 시간들은 소중한 추억이 되어 문득문득 미소 짓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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