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8일 (일)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을 끼고 있는 칠선 계곡은 천왕봉 정상에서 마천면 의탄까지 장장 18km에 이르는 유장한 계곡이다.
천왕봉에서부터 마폭포까지는 원시림이 뒤덮고 있는 데다 전나무, 잣나무 등의 침엽수에 희귀 수목인 주목도 많아 청정한 느낌을 안겨 준다.
형형색색의 단풍물결은 완연한 가을의 서정을 빚어내며 나그네들을 감동시킨다. 작년 여름 오를 때는 코가 땅에 닿을 정도의 된비알이었는데 지금은 내림길이라 편안한 걸음이다.
한라산 탐라계곡, 설악산 천불동 계곡과 함께 폭포가 가장 아름다운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손꼽히는 지리산 칠선계곡은 명성에 걸맞게 7개의 폭포와 수많은 소들이 모여 빼어난 계곡미를 자랑한다.
천왕봉에서 1시간 정도 내려서면 마폭포의 비경과 만나게 된다. 중봉과 천왕봉 안부에서 흘러내린 두 갈래의 계곡 물이 합쳐지는 곳에 비경의 폭포가 걸려 있다. 마지막 폭포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지어졌다고 한다. 마폭포의 오른쪽 계곡은 천왕봉을 오르기 전에 만나게 되는 통천문 옆으로 오르는 제석봉골이고, 마폭포의 물줄기를 계속 치고 오르면 중봉의 산사태가 난 곳으로 오르는 마폭골이다.
칠선폭포까지 이어지는 칠선계곡길은 이른바 '폭포수골'이라고도 불릴 만큼 폭포들의 향연이다. 폭포와 그 아래로 깊은 소가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마폭골을 내려서면 쏟아져 내려오는 옥계수가 너무도 멋진 마폭골의 백미 3층의 폭포를 만날 수 있다. 울창한 숲과 단풍이 함께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한다.
마폭포에서 때묻지 않은 원시미의 계곡길을 따라 1시간 30분 정도 내려서면 대륙폭포 이정표가 눈에 띤다. 오른쪽으로 50m정도 들어가면 대륙폭포가 위용을 그 드러낸다. 예전에는 이름 없는 폭포였지만, 지리산행 개척의 대표적 역할을 담당했던 부산 대륙산악회가 자신들의 이름을 따서 '대륙폭포'라 이름지은 후에 지금까지 그 이름이 붙어 있다. 폭포의 위용으로 따지자면 칠선계곡에서 가장 위풍당당해 보인다.
다시 10여분 내려서면 칠선계곡의 대표격인 칠선폭포와 만난다. 선녀와 나무꾼의 애틋한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곱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이곳 선녀탕에서 목욕을 할 때 선녀들에게 연정을 품고 있던 곰이 선녀들이 옷을 찾아 헤맬 때 사향노루가 자기의 뿔에 걸려 있는 선녀들의 옷을 가져다주어 일곱 선녀는 무사히 하늘나라에 되돌아갔다. 선녀들은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노루를 칠선계곡으로 집단 이주시켜 살게 하고, 곰은 이웃 국골로 내쫓아버렸다고 한다.
2008년 개방을 앞두고 공단 측에서 비선담, 옥녀탕, 선녀탕의 안전시설(목재 교량) 및 보완 공사를 해 놓았지만 개방이 될지는 미지수다. 이 곳은 야생곰과 노루, 삵 등 대형 야생 포유류의 최후 근거지이자, 다양한 고산 희귀 식물종이 사는 '한국 토착 동식물의 씨앗 저장고'라는 이유로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들이 개방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심 3∼4m, 넓이 100여 평 남짓한 옥녀탕은 칠선계곡에서 가장 넓고 빼어난 소(沼)이다. 이곳에는 넓적한 반석도 있어 휴식하기에 적당하다. 족탕을 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몇 걸음 옮기자 선녀탕이 반긴다.
출입금지 구역이 시작되는 선녀탕에 도착하면 하산이 다 끝난 줄 알지만 추성리까지 1시간 넘는 지루한 길이 이어진다. 계곡과 멀어지면서 하늘을 가린 숲길을 한동안 오르내리면 두지터에 닿는다.
두지터란 이름은 이곳 지형이 쌀뒤주를 닮았다고 하여 부른다고도 하나, 옛날 가락국 어느 임금이 국골에서 진을 치고 있을 때 식량창고로 이용한데서 유래한다는 설이 유력하다. 지금도 이곳에선 불에 탄 쌀이 발견된다고 한다.
이 일대의 지명과 관련된 야사가 여러 가지 전해온다. 추성리 주위로는 신라가 가락국을 침범할 때 양왕이 군마를 이끌고 이곳에 들어와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피난처로 이용했다는 성터가 남아 있는 '성안' 마을이 있고, 칠선계곡 옆으로 양왕이 진을 쳤다는 '국(國)골'이 있다. 국골 옆의 어름터는 석빙고로 쓰였다고 한다.
추성리 매표소를 나오자 직원이 이상한 눈빛으로 물끄러미 쳐다본다. 애써 시야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먼저 하산한 일행이 기다리는 식당으로 향한다. 옻닭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서암정사로 향한다.
여행이 남기는 무형의 재산이 있다면 아마도 고생스러웠던 장면들을 기쁨에 찬 장면으로 치환해서 간직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함양으로 가기 위해 오도재를 넘는다. 변강쇠와 옹녀가 지리산으로 들어갈 때 올랐다는 전설의 고갯길 오도재에는 지리산전망공원이 있다. 이곳에서는 지리산이 한눈에 잡힌다. 조망안내도를 따라 하봉, 중봉, 천왕봉, 백소령, 형제봉, 반야봉 등이 저마다 위용을 가슴에 담아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지리산전망공원인데 안타깝게도 운무로 시야가 가려 다음을 기약한다.
마치 먹이를 포착한 뱀이 재빠르게 움직이는 듯한 급커브길 지안재. 그러나 이 길은 속도와의 경쟁을 불허한다. 이유는 바로 길의 모습 때문. 생긴 모양이 마치 뱀이 기어가는 듯하다. 길은 지난 2003년 11월 30일 새로 개통됐다. 그 옛날 사람들이 괴나리봇짐을 지고 울고 넘었던 험한 길이 자동차로도 쉽게 다닐 수 있는 길로 바뀐 것이다.
지안재의 매력은 밤에 더욱 발한다. 자동차 불빛이 그려내는 궤적이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면 황홀할 지경이다. 지안재의 교통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보통 10분에 한두 대가 지날까 말까 할 정도. 그래서 야경을 담는 일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지안재 정상에서 함양 방향으로 내려가는 차의 불빛은 노랗고 마천 방향으로 올라오는 차의 불빛은 빨갛다. 그 두 가지 색깔의 불빛이 서로 교차하면서 지안재의 야경은 완성된다.
'지리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 당동마을-당동고개-고리봉-묘봉치-상위마을 (0) | 2008.07.22 |
---|---|
18. 한신지계곡 (0) | 2008.07.19 |
17-1. 천왕봉 일출 (0) | 2008.07.18 |
16. 대성골 (0) | 2008.07.18 |
15. 지리산종주(중산리-천왕봉-성삼재)(2006.09.03) (0) | 2008.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