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 3일-지리산 종주
지난 6월 25일 귀연팀과 함께 한 지리산 종주 길에서 도중에 폭우를 만나 쓰린 맘으로 벽소령에서 음정으로 하산을 해야 했던 지리산종주에 다시 나선다. 이번엔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올라 천왕일출을 보고 성삼재까지 가는 코스다.
대진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덕유산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한 사이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눈다.
지리산은 누구에게나 품을 열어주어도, 천왕봉은 아무나 오를 수는 없다고 했던가!
새벽 3시 10분. 중산리매표소를 출발.
지리산 종주 대장정을 축하하듯이 하늘에는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별들이 보석처럼 영롱한 빛을 발한다. 별빛을 벗 삼아 랜턴 불빛으로 짙은 어둠을 밝히며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새벽바람이 상쾌하다.
매표소에서 1시간. 망바위를 지나면서 지리산 제1경이라는 천왕일출을 보기 위해 속도를 낸다. 로터리산장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법계사 왼쪽으로 스쳐 지난다. 법계사에서 천왕봉까지 이정표상 거리로는 2km밖에 되지 않지만 매우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개선문을 지난다. 어느새 밤하늘을 곱게 수놓은 별들은 자취를 감추고 서서히 어둠이 걷히더니 동쪽하늘에는 붉은 선이 가로지른다. 걸음은 더 빨라진다.
천왕샘(해발 1850m)이 보인다. 천왕봉 밑의 옹달샘, 바위틈에서 흐르는 물이 고여 있는 곳. 누군가 이곳 샘물 맛이 물맛이라기보다는 이슬 맛이라고 한다. 갈증 난 목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샘물 맛이 정말 짜릿하다.
5시 45분. 해발 1,915m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에 닿는다.
남명 선생이 "하늘이 울어도 아니 우는 뫼(萬古天王峰 天鳴有不鳴)" 라고 지리산 영봉의 장엄함을 찬탄했듯 천왕봉은 여전히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우리 민족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이곳 정상에는 아득한 옛날부터 지리산 신령을 봉안 했던 성모사가 자리해 있었으나 속인들의 끊임없는 욕심으로 자취를 감추고 빈자리만 덩그렇게 남아 있다. 성모상은 훼손된 채 사라졌다가 한 스님이 찾아 중산리 천왕사에 모셔져 있으나 제자리로 돌아오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보아도 거칠 것 하나 없는 천왕봉 정상에서의 전망은 장엄하기 이를 데 없으며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천왕봉의 해돋이는 천지개벽을 보는 것 같은 천하의 장관으로 지리산 10경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천왕봉 정상은 언제나 구름에 쌓여 있어 맑은 날을 보기가 어려워 예로부터 3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속설이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일출을 맞이하기 위한 등산객들로 천왕봉은 발 디딜 틈없이 붐빈다. 발아래 하얀 운해(雲海)가 바다를 만들고 산을 섬으로 만들었다. 탁 트인 시야가 온갖 잡념을 날려버리고 시원한 바람이 온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정상에 올라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느끼는 그 기분, 자연이란 그 어느 것보다 우리를 감동시키고 우리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재주를 가진 마법사인 듯 하다.
6시. 드디어 운해를 뚫고 기다리던 붉은 불덩이가 솟아오른다. 수없이 올랐던 천왕봉에서 처음 맞는 일출이다.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장관에 넋을 잃고 바라본다.
천왕봉의 감격을 뒤로하고 장터목으로 향한다. 깎아지른 벼랑 속으로 작은 통로를 비집고 철다리를 타고 갈지자로 내려선다. 신선들까지도 이 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통천문이다.
천왕봉은 동쪽에 중봉을, 서쪽에 제석봉을 나란히 거느리고 있다. 제석봉은 높이가 1,806m로 지리산에선 중봉 다음으로 세 번째 높은 봉우리이다.
제석봉 일대를 뒤덮고 있는 고사목군락을 지난다. 10만 여 평의 완만한 비탈에 고사목들이 서 있고 바닥은 풀밭뿐이다. 6. 25전 세력가에 의해 벌목되었으며, 그 증거를 없애려고 방화했다고 하니 고사목이 아니라 실은 횡사목인 셈이다. 길 왼쪽은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가득하다.
이미 중천에 뜬 태양이 머리위에서 이글거린다. 제석봉에서 강산에와 풍선님을 만나 잠시 동행한다.
옛날 시천 주민들과 마천 주민들이 매년 봄·가을 이곳에 모여 장을 열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을 했다는 장터목은 그 이름처럼 사람들로 붐빈다. 나무로 만든 빨간 우체통이 정겹다.
7시. 장터목산장에서 찰떡과 두유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라면을 끓이는 두 사람과 헤어져 걸음을 재촉한다. 지리산 주능선 길은 이어가는 태극종주 길이기도 하다.
연하선경(烟霞仙境)으로 유명한 연하봉을 지나 세석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친숙한 길이다.
아고산대 특유의 황량함이 감도는 촛대봉을 지나면 세석평전과 영신봉을 배경삼은 세석산장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엽서처럼 평온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잘디잔 돌이 10만여 평에 걸쳐 광활한 평원을 이루고 있다 해서 세석(細石)평전이다. 지리산 주능선에 자리 잡고 있는 최대의 평원지대다. 이 평원은 신라 때는 화랑의 수련도장으로, 한국전쟁 시절에는 빨치산의 활동 무대였던 곳이다.
이곳에서 벽소령산장 (6.3km) 백무동(6.5km) 거림(6km) 장터목산장(3.4km)으로 갈린다. 식수를 보충할 필요가 없어 산장 뒤쪽 오솔길을 따라 영신봉으로 향한다.
가을이 코앞에 왔음을 알리는 구절초와 보랏빛 투구꽃 등 야생화가 눈을 즐겁게 하며 걸음을 늦춘다.
우리 인간만이 생존경쟁을 넘어서서 남을 무시하고 제 잘난 맛에 빠져 자연의 향기를 잃고 있다.
남과 나를 비교하여 나만이 옳고 잘났다고 뻐기는 인간들은 크고 작건 못생겼건 잘 생겼건
타고난 제 모습의 꽃만 피워내는 야생초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많다.
-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 중에서-
둘레에 7개의 암봉이 기묘한 조화로 우뚝 서 있는 칠선봉은 일곱 선녀가 노닐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선비샘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얼굴의 땀을 씻어낸다. 옛날 선비샘 아래 상덕평마을에는 평생 동안 가난하고 천대받으며 살아온 한 노인이 살았는데 이 노인의 유언이 죽어서라도 사람대접 한번 받아보는 것이었다. 결국 아들들이 이 샘터 위에 무덤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샘에서 물을 뜰 때면 반드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므로 결과적으로 이 노인의 무덤에 절하는 격이 되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무덤도 안보이고 샘도 파이프로 연결하여 서서 받도록 조처하였기 때문에 이 씁쓸한 전설은 잊혀져 가고 있다.
벽소령 2.4km 이정표가 있다. 음정(마천)가는 길이 갈라지고 벽소령까지 1.1km는 산책로 같은 부드러운 길이 이어진다.
벽소령은 지리산 중심부의 허리처럼 잘록한 고개로 높이가 1,350m이다. 벽소령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높고 푸른 산들이 겹겹이 쌓여 깊은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희고 맑아 오히려 푸르스름해 보이기까지 하여 벽소명월은 지리산 10경중의 하나로 꼽힌다.
지난번 성삼재에서 출발한 종주 길에 폭우로 탈출하던 아픈 기억이 잠시 뇌리를 스친다.
형제봉 아래 연하굴이 있다. 해발 1,115m의 형제봉은 높이가 10m가 넘는 두 개의 바위이며 우뚝 솟은 봉우리가 우애 깊은 형제와 흡사하다해 붙여진 이름이다.
형제바위는 언 듯 보기에는 한 개의 큰 석상으로 보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두 개의 석상이다. 이 석상에 얽힌 전설이 전해져 온다. 지리산에서 두 형제가 수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들에 반한 지리산요정이 두 형제를 유혹하였으나 형제는 유혹을 물리치고 득도하였다. 그러나 성불한 후에도 집요한 지리산요정의 유혹을 경계해 형제가 서로 등을 맞대고 너무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서 있었기 때문에 그만 몸이 굳어 그대로 두 개의 석불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전망대에 올라 뒤돌아보니 형제봉 바위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눈길을 끌고 끝없이 이어지며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지리의 장대한 산줄기가 꿈틀거린다.
11시 40분. 연하천 산장에 도착한다.
해발 1,480m에 위치한 연하천은 벽소령에서 6km 남짓한 거리며 토끼봉에서도 6km 거리에 있다.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마치 구름 속에서 흐르고 있는 것 같다 하여 연하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아담한 연하천 산장은 5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초미니 산장이다. 2004년 여름 종주 길에서 갈증을 날려버린 시원한 캔 맥주(1캔 3500원)는 지금은 판매하지 않고 청량음료(1캔 2천원)와 라면(1봉지 천원)만 판매한다.
아내가 싸 준 정성스런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하며 폭우 속에서 아침식사를 하던 기억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음 짓는다. 흐르는 물에 탁족하는 여유까지 부리고 새 양말로 갈아 신으니 발이 한결 가볍다.
12시 정각에 연하천을 출발한지 40여분 지나 토끼봉 오르는 길을 만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5분 정도 올라 토끼봉에 닿는다. 연하천산장에서 3km.
토끼봉이란 명칭은 주변에 토끼가 많다거나 봉우리가 토끼 모양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되는 묘방(卯方)이라 해서 토끼봉(卯峯)으로 부르는 것이다.
나무 그늘에 앉아 물 한 모금으로 타는 목마름을 달래고 화개재로 내려선다. 멀리 여성의 둔부처럼 솟구친 반야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화개재는 옛날에 뱀사골 사람들이 화개장을 보기 위해 넘던 고개라고 한다.
나무 그늘아래 쉼터에는 지친 나그네들의 다리쉼을 위해 긴 나무가 놓여있다. 의자에 누워 10분 정도 눈을 붙인다. 뱀사골대피소 쪽 운해가 멋진 조망을 선사한다.
내려올 때도 끝없이 느껴지던 551개의 나무계단은 올라갈 때는 더욱 괴롭다. 나무계단을 다 올라 2-3분 더 오르막길을 오르면 삼도봉에 닿는다.
해발 1,550m 삼도봉(三道峯)은 지리산을 삼도로 구분하는 기점이다. 봉우리에 황동으로 만든 삼도를 상징하는 삼각뿔이 세워져 있고 각 방향에 3도(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전라북도)의 이름이 적혀 있다.
원래 이 봉우리는 정상 부분의 바위가 낫의 날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해 낫날봉으로 불렸다한다. 낫날이란 표현의 발음이 어려운 탓에 등산객들 사이에선 '낫날봉'이 '날라리봉' 또는 '늴리리봉' 등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조금 천박한 느낌의 날라리봉 등보다 삼도의 경계기점이란 뜻의 삼도봉이 훨씬 어울린다.
반야봉으로 오르는 삼거리 갈림길을 지나면 노루목이다. 반야봉의 지세가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암두(岩頭)를 이루고 있는듯하다 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피아골로 빠지는 임걸령삼거리에서 숲 터널을 이룬 오솔길을 따라 임걸령 샘터에 닿는다.
해발 1,320m의 높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노고단의 능선이 동남풍을 가려주어 산속깊이 자리한 아늑하고 조용한 천혜의 요지이며 샘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물이 솟고 물맛 또한 좋기로 유명하다. 임걸령이란 이름은 조선 명종 때의 초적두목 임걸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단다.
샘물 한바가지 목 줄기를 따라 시원하게 흘려보내고 나무로 만든 물통에 발 담그고 잠시 여유를 부린다.
임걸령에서 노고단까지 3km는 옛날 화랑들이 말을 타고 달려 화살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는 과장된 전설이 있을 만큼 순탄한 편이다.
돼지평전으로 올라선다. 멧돼지들이 종종 출몰한다고 일명 돼지령이란다. 노고단까지는 평탄한 돌길이지만 이미 지친 발걸음은 점점 더디기만 하다.
노고단은 천왕봉, 반야봉과 더불어 지리산 3대 주봉 중에 하나로 해발 1,507 m이다. 노고단 정상은 길상봉이라 불리며 정상에서부터 서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30만평의 넓은 고원이 있다.
신라시대 때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셔 매년 봄, 가을 제사를 올렸던 곳이다. 이런 연유로 해서 선도성모의 높임말인 노고와 제사를 올리던 신단이 있었던 곳이라는 뜻으로 '노고단'이라 부르게 되었다.
거대한 호롱불 형상의 돌탑이 맞이한다. 뒤돌아보면 높이 솟아있는 반야봉의 밋밋한 정상능선이 병풍처럼 가로막아 섰고, 멀리 천왕봉이 아스라하게 보인다.
돌 박힌 길을 따라 300m 내려서면 노고단 대피소다. 일제 강점기에는 외국의 선교사들이 피서용 별장을 50여 채나 건립하고 이곳에서 여름을 났다. 6․25동란을 거치며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돌로 지은 담벼락과 집터가 남아 있다고 해서 노고단대피소에서 지름길인 돌계단 길을 버리고 돌아가는 길을 택했지만 별장 흔적을 찾지 못했다.
성삼재까지 이어지는 약 2.5km 돌길과 시멘트 포장길은 지루한 내림길이다.
16시 10분. 성삼재주차장 도착하면서 13시간 대장정은 막을 내린다.
하루 동안 일상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행복하다. 어느 산악인은 '왜 산에 오르느냐'는 우문(愚問)에 '등산은 나의 고독을 밟고 지나가는 실존의 행위라는 말처럼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라고 답했단다.
힘들었던 여정을 통해 인내와 고통을 위해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아울러 ‘살아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이구나! 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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