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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14. 칠암자코스

산행일시 : 2006년 8월 20일(일)

지리산 심층산행(7암자 순례)코스 : 실상사-약수암-삼불사-문수암-상무주암-삼정산-영원사-도솔암-삼정리

 

지리산 국립공원 주능선상의 삼각고지(1462m)에서부터 시작하는 삼정산능선은 일명 중북부능선으로도 불려지는데, 이 산자락에는 크고 작은 절 집이 일곱 개나 깃들어 있다.

 

실상사를 들머리로 약수암 삼불사 문수암 상무주 영원사 도솔암 7개의 사찰과 암자를 둘러보는 코스로 지리산 심층산행을 떠난다.

 

20명의 귀연 식구들을 태운 애마는 대진고속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하다가 미처 아침식사를 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덕유산 휴게소에서 20분간 정차한다.
 
막바지로 치닫는 여름. 녹음과 어우러진 운무가 멋진 동양화를 그려내지만 차장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는 우중산행이 되지 않을까 마음이 무겁다.

차량이 거의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던 애마가 함양분기점에서 88고속도로로 접어들자 비가 약간 소강상태를 보인다.

지리산톨게이트를 빠져나가 직진하다가 인월방면으로 향한다. 지리산의 북쪽 관문인 인월에서 60번 지방도로로 들어서 심원, 달궁, 뱀사골 방면으로 향하다 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 마천방면으로 가다보면 만수천(萬壽川)변에 호국사찰로 천년의 세월을 버티고 지내온 실상사가 나타난다.

 

8시 5분 전라북도 남원군 산내면 백일리 실상사 입구에서 하차한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 매표소는 문이 닫혀있다. 20명의 입장료(실상사 문화재 관람료 1인당 1500원) 3만원이 굳어진다. ㅎㅎ

산행 들머리는 국보 석점과 보물 여덟 점을 품고 있는 신라고찰 실상사.
마을에서 실상사로 통하는 유일한 다리이자 만수천을 건너는 해탈교를 지나면 실상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해탈교를 건너기전 왼쪽으로 석장승이 먼저 반기고 해탈교를 건너면 목장승과 또 다른 석장승이 나그네들을 맞이한다. 둥그렇게 튀어나온 눈이 슬며시 웃음을 머금게 하는 석장승을 이 지방에서는 '벅수'라고 하는데, 각각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대장군'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실상사는 지리산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만수천을 끼고 풍성한 들판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며 동으로는 천왕봉과 마주하면서 남쪽에는 반야봉, 서쪽은 심원 달궁, 북쪽은 덕유산맥의 수청산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채 천년 세월을 지내오고 있다.

 

대부분 우리나라의 사찰이 깊은 산중에 자리 잡고 있는데 비해 실상사는 들판 한가운데 세워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지리산 사찰 중 평지에 자리한 절은 이곳 실상사와 단속사가 있는데 단속사는 폐허가 된 채 석탑만 남겨져 있는데 비해 실상사는 여전히 사찰 구실을 하고 있다.

 

3-4분 정도 논길로 걸음을 옮기면 구산선문 최초가람(九山禪門 最初伽藍) 실상사(實相寺)에 닿는다.

신라 흥덕왕 3년(828년) 흥척국사가 개창한 최초의 선종 가람이다. 창건 초에는 지실사(知實寺)였으나 구산선문이 분파 대립되던 시기에 하나의 종파 이름으로 홍척의 존칭인 '실상선정국사'의 앞머리를 따서 실상사라 부르게 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웅장하고 화려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대부분 불타고 요사 1채와 전각 3동만 남았다.

사천왕상이 두 눈을 부릅뜨고 위협적인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는 천왕문을 통해 야트막한 담장으로 둘러싸인 경내로 들어서면 잘 정돈된 절 집의 조용한 모습에서 역사 깊은 가람임을 느낄 수 있다. 정면으로 보물 제37호인 3층석탑 2기(基)가 보광전을 호위한다.

동, 서 삼층석탑은 거의 같은 규모와 수법으로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의 우아하고 섬세한 탑으로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상륜부가 가장 완벽하게 남아있다.

 

또한 8엽의 연꽃잎이 조각된 석등은 석등 앞에서 불을 켤 때 디딤돌로 사용했던 돌계단이 놓여 있는데 다른 석등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어서 특이하다.

실상사의 주법당(실상사는 대웅전이 없다)인 보광전은 고종 21년(1884년)에 월송대사가 세운 것으로 법당 한 쪽에 동종이 있다. 범종에는 일본 열도가 새겨져 있는데 예불을 할때마다 종을 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본열도를 두들기는 셈이 된다. 지금도 실상사에는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실상사가 흥한다' 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보광전 오른편에는 약사전이 자리하고 있다. 약사전은 통일신라시대에 철로 만든 철제여래좌상(鐵製如來坐像)을 봉안한 전각으로 중앙의 문 창살은 단청이 선명해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보물 제41호 철제여래좌상은 실상사 창건 당시인 9세기 중엽에 수철스님이 4천근이나 되는 철을 녹여 만든 높이 2.7m의 거대한 철불로, 약사전 문을 열면 지리산 천왕봉을 응시하고 있다.

 

이 철불상의 특징은 광배가 없고 좌대도 없다. 일설엔 일본으로 흘러가는 땅의 기운을 막기 위해 도선국사의 풍수지리설에 따라 일부러 맨땅에 불상을 세운 것이라고도 전해 오는데, 나라에 좋은 일이 있을 때면 땀을 흘린다고 한다.

보물 제36호인 부도(浮屠)는 해우소 뒤편에 있다. 국보가 보이지 않아 보살님에게 물어보니 백장암에 있다고 한다. 실상사 부속암자인 백장암은 실상사에서 남원 인월 방향 국도로 3km 정도 가다보면 백장휴게소가 나오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1km 올라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백장암에는 국보 제 10호인 삼층석탑과 석등(보물 제 40호), 청동은입사향로(보물 제 420호)등의 유물이 있다.

 

20분 정도의 관람을 마치고 약수암으로 향하는 산길로 접어들면 수십 개의 벌통이 놓여있고 싱그러운 풀 냄새가 코끝으로 전해진다.

양탄자 위를 걷는 것처럼 평탄하고 푹신하여 걷기 좋은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20분 정도 오르면 울창한 송림 숲을 지나 임도와 만나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임도를 따라 진행한다. 습도가 높아 매우 후텁지근하다.
 
멀리 운무에 쌓인 삼정산이 멋진 그림을 그려내더니 금새 그 모습을 감춘다.

 

임도를 따라서 걷기를 약 10분. 그 끝에 약수암이 있다. 약수암(藥水庵)은 1937년에 한 불자의 시주금으로 중수하였으며, 경내에는 항상 맑은 약수가 솟아나는 약수샘이 있어 약수암이라 했다고 한다. 나무로 조각하여 만든 보물 제 421호 약수암 목조탱화(藥水庵木彫幀畵)는 보광전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볼 수가 없다. 약수 한 바가지로 목을 축이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대나무 숲으로 들어서면 적송과 잣나무, 전나무, 그리고 대나무가 싱그러움을 뿜어내는 산책로 같은 매우 운치있는 예쁜 산길이 이어진다.

중간 중간 펼쳐지는 풍광이 고향을 연상시킨다. 수수밭을 지나 도마동마을로 내려선 다음 골목길을 오른쪽 오른쪽으로 돌아 도마1교 다리를 건너면 시멘트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결명자꽃

 

10시 20분. 갈림길이다. 왼쪽은 문수암 오른쪽 삼불사 가는 길이다. 삼불사까지 1km는 숨가쁘게 하는 매우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가랑비에 젖고 땀에 젖고 걸음은 더뎌만 진다. 흐르는 땀과 갈증으로 연신 물을 마셔대고 가다 쉬다를 반복한다. 턱밑까지 차 오르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마지막 돌계단을 오르면 삼불사에 개 짖는 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11시 정각. 비구니 사찰인 삼불사(三佛寺)에 도착한다. 토굴이라 불리는 토담집과 법당, 그리고 산신각이 있다. 조용한 산사에 불쑥 들어선 나그네들을 위해 비구니 스님이 선뜻 내놓은 삶은 감자가 꿀맛이다. 천왕봉은 운무에 가려 조망이 없음이 안타깝지만 오히려 시야를 어지럽히지 않아 좋다. 절 집을 지키는 사나운 개가 스님의 꾸중을 듣고 조용해진다.

10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문수암으로 향한다. 세월따라님이 따라주신 얼린 맥주 한 컵이 더위와 갈증을 단숨에 날려버린다. 20분쯤 능선을 가로질러 가면 문수암(文洙庵)에 닿는다.

문수암은 삼정산 자락 약 1100m 고지에 있으며, 토굴 같은 법당 뒤로는 임진왜란 당시 마을 주민 1,000명을 피난시켰다는 천인굴(일명 천용굴)과 샘이 있다. 예를 갖추자 도봉스님이 따뜻하게 맞아준다. 석간수 한 바가지로 거치러진 호흡을 가다듬고 주변 풍광을 렌즈에 담는다.

11시 45분. 문수암에서 50여m를 떨어진 곳에 점심식사하기 좋은 장소가 있어 자리를 잡고 점심도시락을 펼친다. 로즈마리님이 준비한 반찬은 단연 인기다. 배낭 무겁다고 여기저기서 후식으로 내놓은 푸짐한 과일에서 넘치는 귀연의 정이 느껴진다.

20분간의 짧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천천히 10분 정도 오르면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고개를 하나 넘으면 삼정리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안부 3거리이다. 커다란 나무 아래 나그네들의 다리 쉼을 위한 나무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수량이 풍부한 샘이 있는 상무주암이다. 보조국사 지눌이 오랫동안 수도했던 곳으로도 알려져있는 상무주암의 상(上)은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이고, 무주(無住)란 머무름이 없는 자리라 한다. 머물 곳도 없는 진리의 자리란 의미라고 한다. 상무주암은 수행하는 스님이 나그네들을 반기지 않아 문이 나뭇가지로 닫혀 있다.

잘 지어놓은 화장실을 지나 잠깐 올라서면 갈림길이다. 직진하면 영원사(1.7km)로 내려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삼정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가파른 길을 300m 정도 치고 오르면 헬기장에 닿는다. 삼정산 1210m 표지판이 서 있지만 정상은 이곳에서 다시 3분 정도 더 진행하여야 한다. 조그마한 공간에 함양군에서 세운 삼정산 정상석이 겨우 자리를 잡고 있다. 해발 1180m라고 적혀 있어 혼란스럽다.

산은 봉우리가 많이 모인 큰 덩치를 말하고, 봉은 하나 하나의 봉우리를 말한다.
천왕봉을 위시하여 중봉, 하봉, 제석봉, 연하봉, 촛대봉, 반야봉 등 지리산이 품고 있는 대부분의 봉우리는 '봉'으로 불리는데 삼정산(1,225m)과 세걸산(1,207m), 덕두산(1,115m), 창암산(923m), 황장산(942m) 만은 '봉'이 아닌 '산'으로 불린다.

 

삼정산은 천왕봉에서 동서로 길게 내리 뻗은 주능선과 만복대에서 바래봉을 지나 덕두산까지의 서북릉을 포함하여 지리산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북쪽 전망대인데 운무로 조망은 전무하다.

 

다시 헬기장을 지나 갈림길로 되돌아 내려와서 영원사방향으로 내려선다. 멈춰 서서 뒤돌아보니 운무가 살짝 걷히고 삼정산이 모습을 보여준다.

가지만 앙상한 고목 나무가 눈길을 끌고 모싯대, 금마타리, 꽃며느리발톱 등 이름도 특이한 야생화가 발걸음을 늦춘다.

▲모싯대

 

▲금마타리

 

▲꽃며느리발톱

 

비티재에서 왼쪽 영원사까지는 편안한 내리막길이다. 다 내려오고 보니 출입 통제 안내판이 되어 있다.

 

13시 40분 영원사에 도착한다.
해발 920m의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영원사는 한 때는 100칸이 넘는 9채의 건물이었으나 한국전쟁당시 소실되었다.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 진덕여왕 때 지었다고 하며 그 당시 고승이었던 영원(靈源)대사가 이룩했다고 하여 절 이름도 영원사라고 불렀다 한다.

 

전설에 의하면 영원이 이곳에서 8년 간이나 수도하였으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여 다른 곳으로 가려고 산을 내려가는데, 그 때 풀밭에서 물리지 않는 낚시로 육지에서 낚시를 즐기는 이상한 노인을 보았다. 그런데 그 노인이 풀밭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것도 이상한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지껄이고 있었다.


“2년만 더 낚시질을 하면 큰 고기가 낚일 터인데...” 꼭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낚싯대를 놓고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 순간 영원은 번득 뇌리를 스치는 깨달음이 있어 다시 2년 간 더 수도하여 큰 깨달음을 얻고 절을 지었는데, 그것이 영원사였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그 노인을 문수보살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였다.

여순사건 이후 반란군이 아군의 공격에 쫓겨 이 곳에까지 찾아와 절을 아지트로 삼고 주민들을 괴롭히자 아군이 작전상 불태워 없애버렸다. 지금의 건물은 그후 1971년에 중건한 것이다.

영원사는 유서 깊은 사찰과는 달리 재난 탓인지 경내에 청매스님의 '방광사리탑'만 있고, 등 너머 산마루에 조실스님들의 부도와 각운대사의 필단사리 3층 석탑만 있다.

뚱딴지(돼지감자)의 노란 꽃이 군락을 이루며 잘 가꾼 정원은 꽃동산이다.


영원사에서 포장길을 따라 내려서면 거대한 영원사 입석이 보이고 5분쯤 더 내려오면 오른쪽 큰 계곡을 건너 도솔암 가는 초입이 있다. 특별한 표지기가 없다. 도솔암 입구만 찾으면 도솔암까지는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

13시 50분 도솔암 들머리로 들어서 계곡을 건너면 넓은 산길이 나타난다. 숨가쁜 오르막길이다. 입구에서 약 50분쯤 걸린다. 도솔암으로 들어서기 직전 왼쪽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명선봉과 형제봉 사이의 삼각고지로 가는 길이다. 도솔암(道率庵)으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돌배나무가 벼락에 맞았는지 꺾인 채 땅바닥에 나뒹군다.

정돈된  마당을 가로질러 약수로 타는 목마름을 달래고 10분 정도 휴식을 취한다. 처마 끝에 매달려 있는 풍경 소리가 청아하다. 천왕봉이 정면에 들어온다는 산삼해님의 설명은 짙은 운무로 부질없다. 오던 길로 내려선다. 내리막길은 훨씬 수월하다. 30분 정도면 계곡입구에 닿는다.

15시 25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1-2분 내려서면 이정표가 서 있다. 포장도로를 버리고 오른쪽 두트굴(1km) 방향으로 들어선다. 길은 좋다. 오른쪽으로 계곡 물소리가 시원하게 전해온다. 15분 후 두트굴에 닿는다.

너덜지대를 지나 배낭을 벗어놓고 시원한 계곡 물에 발 담그고 탁족을 즐긴다. 탁족은 '탁영탁족(濯纓濯足)'이란 고사성어에서 나온 말로, 갓끈과 발을 물에 담가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겠다는 인격 수양의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16시 10분. 양정마을을 지나 60번 지방도로와 만난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다. 양정, 하정, 음정 세 개의 마을을 일컬어 삼정리(三丁里)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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