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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16. 대성골

산행일시 : 2006년 9월 10일(일)


코스 : 의신마을(40분)-대성동(45분)-첫 번째 철다리(20분)-두 번째 철다리(20분)-삼신봉 이정표(30분)-음양수(20분)-세석대피소(20분)-촛대봉-장터목-제석봉-천왕봉-중산리(총 8시간 30분)

 

한라산 탐라계곡 그리고 설악산 천불동 계곡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계곡 중 하나인 지리산 칠선계곡을 산행하려던 계획은 지리산 국립공원의 통제구간 집중 단속예고 때문에 다음 기회로 미루고 대성골에서 세석을 거쳐 천왕봉을 올라 중산리로 하산하는 코스로 변경한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버스는 함양분기점에서 88고속도로로 갈아타고 함양휴게소에서 10여분 간 정차한 다음 남원요금소를 빠져나간다. 곧바로 좌회전하여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방면으로 진행한다. 구례를 거쳐 섬진강 줄기 따라 하동을 향해 달린다.

 

 

쌍계사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화개천을 따라 북으로 뻗어 오른 포장도로를 따라가다 의신마을에서 하차한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의신마을은 임진왜란을 피해 모여든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로 옛날 의산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산행은 의신마을에서 시작하여 대성마을을 지나 남부능선과 음양수샘을 거쳐 주능선의 세석고원으로 이어진다.

 

 

9시 20분 등산화 끈을 고쳐 매고 산행들머리로 들어선다.‘벽소령 민박집’이라는 간판이 붙은 들머리로 들어서면 국립공원 의신 통제소라는 조그마한 건물이 보인다. 산비탈을 일궈 만든 밤나무 단지에는 입벌린 밤송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결실의 계절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끼게 한다.

 

 

지리산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아우르며 품어주는 곳이라 해서 예로부터 ‘어머니의 산’으로 일컬어져 왔다. 그러나 50여년 전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과 토벌군의 최대 격전지 중의 한 곳인 지리산 대성골은 이념이라는 굴레에 옥죄어진 수많은 생명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공포와 절망의 나락에 빠지며 쓰러져간 곳이다.

 

이태의 저서 <남부군>을 보면 당시 토벌군은 대성골에 집결한 빨치산들을 빙 둘러 포위한 상태에서 비행기로 기름이 담긴 드럼통들을 골짜기에 투하한 뒤 폭격을 하여 불바다를 만들었다고 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40여분 대성마을에 닿는다. 2가구가 살고 있는 대성마을은 민박집을 겸한 대성골 휴게소(김기식씨집 전화 (055)883-0835)를 운영한다. 콸콸 쏟아지는 시원한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물통을 가득 채운 다음 걸음을 재촉한다.

 

 

대성마을에서 20분 정도 진행하면 작은세개골을 가로지르는 다리(의신 3.9km 세석 5.2km이정표)와 만난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계속 왼쪽 골짜기 길로 가면 작은세개골을 타고 칠선봉으로 올라선다.

 

 

다리를 건너 계곡 물소리를 벗삼아 걷다 보면 큰세개골 다리를 건너면서 짙은 그늘의 공간으로 들어선다. 다리 밑 편편한 암반에서 나들이 나온 아주머니들이 마시는 진한 커피 향에서 가을이 전해온다.

 

 

때묻지 않은 계곡은 점점 좁아지며 협곡의 형태로 변하고 바위 사이를 흐른 계류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물길을 만든다. 두 줄기 물길이 한데 모여 쏟아져 내리며 수려한 자태를 뽐내는 무명 폭포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한다.

 

 

계곡이 점점 멀어지고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12시 정각. 세석 2.2km 이정표가 서 있는 능선삼거리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오른쪽 삼신봉 가는 길은 영신봉에서 시작하여 낙동강에서 산줄기를 마감하는 낙남정맥 마루금이다.

 

 

능선에 접어들면 길이 비교적 수월하다. 세석까지 이어지는 숲길을 따라가다 전망 좋은 바위에 서면 부드럽게 흘러내린 산비탈에 촛대봉이 당당한 위용을 뽐내고, 남부능선과 동부능선이 교차되면서 파란 하늘과 맞닿아 하늘금을 그린다. 지리 연봉 그 어느 봉우리 못지 않게 지리의 너른 품을 실감할 수 있는 풍광이 펼쳐진다. 왼쪽의 영신봉이 가까워지고 그 사이 세석대피소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세석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능선 삼거리에서 20분이면 음양수(해발 1450m)에 닿는다. 산꾼들에게 감로수를 제공하는 음양수는 거대한 돌출 바위 밑에서 두 줄기로 흘러나온다. 신비한 느낌이 드는 석간수샘인데 햇볕이 드는 곳이 양수(陽水), 그늘진 곳이 음수(陰水)라고 한다. 예로부터 자식이 없는 사람이 이 물을 마시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소문 때문에 천막을 치고 기원을 드렸는데 국립공원이 들어서고 모두 철거되었다고 한다.

 

 

음양수에는 ‘호야와 연진’의 슬픈 전설이 전한다.
옛날에‘호야’라는 남자와‘연진’이라는 여자가 슬하에 자녀가 없이 지리산 대성계곡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없는 사이 근처에 살고 있는 곰이 연진을 찾아와 말하기를 세석평전에는 아들, 딸을 낳을 수 있는 음양수라는 신비의 샘이 있다고 알려 주자 연진은 기뻐하며 남편과 상의 없이 음양수 샘터로 달려가 기적의 물을 실컷 마셨다.

 

 

그런데 평소 곰과 사이가 좋지 못한 호랑이가 곰과 연진이 주고받던 이야기를 엿듣고 이를 그대로 지리산 신령님께 고해바치고 산신령은 대노하여 음양수의 신비를 인간에게 발설한 곰을 토굴 속에 가두고 호랑이는 그 공으로 백수의 왕이 되게 했다.

 

또 음양수를 훔쳐먹은 연진에게도 무거운 벌을 내려 세석평전의 돌밭에서 평생토록 혼자서 외로이 철쭉을 가꾸게 하였다. 그 날부터 연진은 스스로의 불행한 운명을 저주하며 슬픔에 젖어 세석평전에서 날마다 눈물을 흘렸고 닳아 터진 다섯 손가락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꽃밭에 뿌리고 꽃밭을 가꾸어 철쭉나무는 무럭무럭 자라서 아름다운 꽃이 피고 졌다.

 

그래서 세석에 피는 철쭉은 연진의 한과 슬픔이 어려 있어 애련하다고 한다. 그 후 연진은 촛대봉에서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 산신령께 죄를 빌다가 돌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음양수를 반반씩 섞어 식수통을 채우고 점심식사를 위해 자리를 잡는다. 함께 한 일행이 준비한 장어구이, 똥돼지된장찌개, 홍탁 등 산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메뉴에 선뜻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점심식사 시간 40분.

 

 

이제는 바람이 차다. 추위에 떠밀려 세석을 향해 먼저 발걸음을 옮긴다. 음양수샘을 지나 세석까지 1.2km(20분 소요)는 편안한 숲속길이 이어진다. 거림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를 지나 곧바로 세석대피소에 닿는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곳이다.

 

등로 양쪽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운 자태를 뽐내는 구절초를 비롯한 야생화가 지천이다. 촛대봉을 오르면서 뒤돌아본 모습은 알프스를 연상시키는 한 장의 그림엽서다.

 

 

촛대봉에 오르자 천왕봉의 웅장한 자태가 한 눈에 빨려 들어온다.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을 이고 있는 천왕봉은 지리산 주능선의 봉우리들을 아우르고 당당하고 위엄 있게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장수와 같다.

 

 

돌 틈에서 자란 들꽃은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고 연하봉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훤한 속살을 드러낸다. 연하봉을 지나자 천왕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선다. 장터목산장까지는 지척이다.

 

 

14시 15분. 장터목산장에서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청산님 일행과 반가운 해후를 뒤로하고 제석봉을 오른다. 파란 하늘과 제석봉의 고사목이 어우러져 멋진 그림을 그려내지만 황량함이 늘 마음을 무겁게 한다.

 

 

통천문으로 들어선다. 신선들까지도 이 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통천문을 통하여 하늘로 오르고 그 하늘은 천왕봉이다. 장터목에서 50분 소요.

 

 

천왕봉 꼭대기의 표지석 앞면에는 '지리산 천왕봉' 그리고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1915m라고 쓰여 있으며 뒷면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쓰여 있다. 처음 이 비를 세우면서 '영남인의 기상'이라고 새겼는데 이것을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영남인'을 '한국인'으로 고쳤다고 한다. 늘 북적이던 천왕봉은 오늘따라 매우 한산하다.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간식으로 허기를 속이면서 10분 정도 휴식한 다음 중산리로 내려선다.

 

 

천왕샘은 서부 경남지역의 식수원인 남강의 발원지로 이곳에서 솟구친 물은 덕천강을 따라 흘러 남덕유산 참샘을 발원으로 하는 경호강과 만나 남강을 이루어 낙동강으로 흐른다.

 

 

개선문을 통과하면 곳곳에 나무계단 공사가 한창이다.

 

 

천왕봉에서 40분 내려와 법계사에 도착한다.

 

 

자연석 위에 반듯이 세워진 3층 석탑(보물473호)은 인공 석탑으로 보기보다는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 자연이 빚어낸 돌탑으로 여겨진다. 바위 높이 3.6m, 탑 높이 2.5m의 비교적 크지 않고 간결한 탑이지만 풍기는 인상은 신비스럽다. 삼층석탑 이외에는 다른 사찰의 그것들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으나 산신각과 칠성각이 좀 특이하다.

 

 

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이 쇠하고 일본이 흥하면 법계사가 쇠한다 한다. 그래서 옛날부터 왜놈들이 법계사를 자주 침범했다 한다.
 
법당 안에서 아들의 수능대박을 기원하는 여인의 모습에서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묻어난다. 로터리 산장은 적막감마저 감돈다. 문창대에서 뒤돌아보니 천왕봉에 구름이 피어오른다.

 

 

망바위(해발1068m)까지 30분 정도 내려서고, 장터목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고 출렁 다리를 건너기전 계곡에서 족탕을 하며 잠시 산행의 피로를 덜어낸다.

 

 

칼바위를 지난다. 태조 이성계가 등극한 후 자신을 노리는 사람이 지리산 중턱의 큰 바위 밑에서 은거중이라는 소문을 듣고, 한 장수에게 그 자를 찾아서 목을 베어 오라고 명하였다. 그 장수가 지리산을 헤매다 이곳에서 2km 떨어진 곳 큰 바위 밑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칼로 치니 바위는 갈라져서 홈바위가 되고 칼날은 부러져서 이곳까지 날아와 하늘을 찌를 듯 한 형상의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다.

 

 

지리산에서 사라진 허우천선생의 추모비가 있는 자연학습원 갈림길까지 약간 지루한 길이 계속된다. 17시 50분. 중산리매표소를 지나 두류동 주차장에서 약 8시간 반 동안의 산행은 끝이 난다.

 

천왕봉식당에서 두부를 안주 삼아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로 하산주를 하고 버스에 올라 눈을 붙인다. 2시간 30분 뒤 맨 후미가 도착하고 버스는 대전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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