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 2006년 7월 23일(일)
전날 오후 계룡산 번개산행이 너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약속했던 지리산태극종주 3구간 산행을 취소하고 자정이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요란하게 울어대는 알람소리에 눈을 뜨니 새벽 4시 반이다. 잠시 망설이다가 주섬주섬 배낭을 챙기자 아내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끄러미 바라본다.
남부 지방은 비가 온다는데 지리산 가는 게 걱정되는 모양이다. 속리산으로 산행을 변경할거라고 안심을 시키고 집을 나선다.
약속 장소에서 버스에 오르자 청산님을 비롯하여 귀연 식구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오후 늦게나 비가 올 거 같다며 예정대로 지리산태극종주 3구간 산행을 진행한다고 한다.
지리산 태극종주란 경남 산청군 웅석봉에서 시작하여 하봉, 중봉, 천왕봉을 지나 백두대간을 이어가다 고리봉에서 백두대간과 헤어져 북동쪽으로 세걸산, 바래봉, 덕두봉을 지나 전북 남원시 구인월까지의 도상거리 약 84km의 태극모양의 능선을 이어가는 것을 말한다.
요즘은 무박으로 종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심지어 무박왕복종주까지 하는 사람들의 수도 점점 늘어난다. 보통 사람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래서 세 구간으로 나누어 이어가는 태극종주를 한다.
대진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는 덕유산 휴게소에서 20분간 정차하고, 함양분기점에서 88고속도로로 갈아타고 10여분 정도 진행하여 지리산요금소로 빠져나간다. 861번 지방도로를 타고 진행한다. 지리산 국립공원 반선요금소를 통과하여 달궁민박촌을 지난다.
달궁(達宮)은 삼한 시대에 마한 군에 밀리던 진한 왕이 전쟁을 피하여 문무백관과 궁녀들을 이끌고 지리산으로 들어와 심원계곡에 왕궁을 세우고 오랫동안 피난생활을 하였는데 그때 임시 도성이 있었던 곳이라 한다.
진한 왕이 전란을 피하여 피난할 때, 북쪽 능선에 8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지키게 하였다고 해서 팔랑치, 동쪽은 황 장군이 맡아 지키게 하였으므로 황영재, 그리고 남쪽은 가장 중요한 요지이므로 성이 다른 3명의 장군이 지키던 곳이라 해서 성삼재(姓三峙)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조금 더 진행하면 하늘아래 첫 동네 심원마을 입구가 보인다.
8시 30분 성삼재 조금 못 미쳐 도로 오른쪽의 철조망 부분에 쪽문이 열려있고 쪽문을 들어서면 "만복대 5.3km 당동마을 2.6km" 라고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만복대로 향하는 들머리다.
5분 후 헬기장에 올라서니 왼쪽으로 산그리매와 운해가 장관이다.
오른쪽으로 반야봉이 정면으로는 작은 고리봉이 7월의 신록에 눈이 시원하다.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작은 고리봉을 향해 간다. 작은 고리봉으로 올라서면서도 운해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자꾸만 걸음을 멈춘다.
15분 정도 지나 작은고리봉에 닿는다. 뒤돌아서니 성삼재가 한 눈에 들어오고 왼쪽으로 당동마을 전경이 펼쳐지며 운해와 어우러져 한 폭의 멋진 동양화를 그려낸다.
헬기장이 있는 묘봉치를 지나면 만복대까지 만복대능선이 말 잔등처럼 부드럽게 이어진다.
모두들 추억만들기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얼굴 가득 번지는 환한 미소가 보는 이의 마음까지 기분좋게 한다.
훼손을 막기 위해 줄로 울타리를 쳐 놓은 만복대 오르는 길은 이름 모를 들꽃들의 천상화원이다.
만복대에 도착한다. 들머리에서 약 1시간 50분 소요.
만복대는 남원시 산내면과 구례군 산동면에 걸쳐있으며, 노고단-반야봉-천왕봉으로 이어지는 길고 거대한 지리연봉 능선이 꿈틀거리면서 한 눈에 들어온다. 만복대(萬福臺)는 이름만큼 복스러운 산으로 산 전체가 부드러운 구릉으로 되어 있다. '만복대'란 명칭은 풍수지리설로 볼 때 지리산 10승지 중의 하나로 인정된 명당으로 많은 사람이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하여 만복대로 칭하였다는 설이 있다. 지리산에서 가장 큰 억새 군락지로 가을철이면 봉우리 전체가 억새로 뒤덮여 장관을 이룬다.
이 곳에서 바라보이는 반야봉은 지리산의 웅장함을 실감케 해준다. 반야봉(般若峰)은 그 높이와 관계없이 지리산의 제2봉이며 지리산을 상징하는 대표적 봉우리이다. 지리산 어느 곳을 가던 오롯이 솟아 있는 두 봉우리를 볼 수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소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나 대개 여인의 엉덩이와 흡사하다는데 공감한다. 주봉(1,732m)과 중봉이 절묘하게 빚어낸 지리산의 대표적인 봉우리답게 노고단은 물론 멀리 천왕봉에서도 선명하게 조망된다.
백운봉님이 물 한 모금으로 거친 호흡을 달래고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선두 일행은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 가슴이 뿌듯해지며 걸어갈 길을 봐도 좋다.
줄곧 동행하던 반야봉이 점점 멀어진다.
11시 5분 산불감시탑을 넘어 긴 나무계단을 내려오면 정령치에 닿는다. 해발 1,172m인 정령치(鄭嶺峙)는 서산대사의 《황령암기》에 의하면 기원전 84년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장군(鄭將軍)을 이곳에 파견하여 지키게 하였다는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정령치는 넓은 주차장과 휴게실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휴게소 위 공터에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대는 장승들이 나그네를 반긴다. 벤치에 앉아 간식을 나누며 휴식을 취한다. 737번 지방도로 고기리를 향해 굽이굽이 이어진다.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고리봉을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갈림길이다. 이정표가 오른쪽은 계령암지(0.2km) 마애불상군(0.3km) 왼쪽은 고리봉(0.5km) 바래봉(9.1km)을 가리킨다. 500m 정도 경사 급한 산길을 오르면 고리봉(일명 큰고리봉 1304.5m)에 올라선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박혀있고 세걸산과 바래봉 능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멀리 천왕봉도 위용을 자랑한다.
고리봉은 일명 환봉(環峯)이라 하며, 큰 고리봉과 작은 고리봉으로 되어있다. 고리봉하면 흔히 큰고리봉을 가리키는데, 가을철 억새의 노란색과 은회색 그리고 참나무 잎의 주황색 빛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고리봉 정상에 오르면 남쪽으로는 정령치와 만복대가 우뚝 솟아 있고, 북쪽으로는 세걸산이 있는 주천면과 운봉면 그리고 산동면의 지붕으로서 3개면을 굽어볼 수 있다.
왼쪽 고기리(고천삼거리)로 향하는 가파른 내림길은 백두대간 리본들이 즐비하게 매달려 있고 그 동안 수많은 종주 팀들이 지나간 곳이라 길상태도 매우 뚜렷하다. 바래봉(8.6km)가는 길로 직진한다.
중간에 보굿(거친 겉껍질)이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노송 한 그루가 구부러지고 비틀어진 채 구멍이 생기고 속이 썩어서 반신불수의 모습으로 제 몸뚱이를 세울 자리를 용케도 차지하고 있다.
잡목이 터널을 이루어 몸을 숙이고 진행한다. 양쪽에서 가시나무와 잡목의 가지들이 반소매 입은 팔뚝을 사정없이 할퀴며 엉망으로 만든다.
고리봉에서 세걸산까지는 힘들고 지루한 길이다. 그러나 산봉우리가 없다면 등산의 재미는 없을 것이다. 힘들게 오른 산의 정상에서 만끽하는 기쁨은 산봉우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배가된다.
13시 정각. 정령치를 떠난 지 1시간 40분 진행하여 세걸산에 도착한다.
삼걸산(三傑山)이라고도 하며, 운봉읍 공안리와 뱀사골 반선과의 한가운데에 솟아 있는 세걸산은 그렇게 이름난 봉우리는 아니지만 사방으로 탁 트여 조망이 매우 좋다. 북으로 덕두산, 바래봉, 남으로 고리봉, 만복대와 가지런히 하나의 산줄기 위에 늘어서 있으며 노고단 반야봉 천왕봉이 한 눈에 조망된다.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서로 대치했던 국경지대였으며. 지리산 국립공원에 속한다.
조망을 감상하고 빙 둘러 자리를 점심도시락을 펼친다.
점심을 끝내고 5분 정도 내려서면 세동치다. 왼쪽은 전북학생교육원에서 오르는 길이다. 정상에서 갈증을 달래기 위해 마신 살얼음 낀 맥주가 뱃속에서 전쟁을 일으킨다. 덕분에 세 번씩이나 진한 영역표시를 하게 되고 시간도 그만큼 지체된다. 세동치에서 약 30분이면 해발 1115m 부운치에 도착한다.
바래봉 3.5km 이정표를 지나 5분 정도 숨가쁘게 올라서 1123봉에 닿으면 이국적인 풍경이 열린다.
팔랑치로 이어지는 능선이 옹기종기 핀 철쭉들과 연분홍 꽃으로 불타오르던 봄날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대신 산나리(또는 중나리)를 비롯하여 까치수영과 자주달개비, 산수국 등 들꽃들이 활짝 웃으며 나그네의 눈을 즐겁게 하며 걸음을 더디게 한다.
바래봉은 고산으로 숲이 울창하였으나 1971년 박정희 대통령시절 국립면양종축장을 설치 운영하면서 호주에서 면양 2500두를 도입하여 산지 645ha에 방목하였는데 면양이 철쭉 잎에 독성이 있어 먹지 않게 됨에 따라 자연적으로 철쭉 군락이 형성되었고 한다.
15시 10분 철쭉 군락 사이로 등산객을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목재계단을 따라 진행하면 팔랑치(해발 1010m)에 닿는다. 바래봉 1.5km 운봉 6.3km 이정표가 서 있다.
팔랑치에서 20분 정도 진행하면 왼쪽은 운봉 오른쪽은 바래봉(0.5km) 으로 갈라진다. 3분 정도 진행하면 약수터에 도착한다. 앞서가던 일행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뼛속까지 시원한 약수를 한 바가지 받아서 목을 축이고 식수를 보충한 다음 바래봉을 오른다.
둥그스름하고 순한 산릉으로 정상 주위는 나무가 없는 초지로 되어 있다. 눈앞으로 지리산의 그 거대한 산줄기가 펼쳐진다. 노고단에서 반야봉을 거쳐 천왕봉까지의 그 도도한 지리산 줄기, 약간 흐릿한 모습으로 눈에 들어오지만 아래에서 올라가고 있는 연한 녹색의 구름들이 하늘까지 뻗어 오르고 있다.
약수터에서 5분 정도 오르면 바래봉 정상이다.
바래봉이란 본래 발산(鉢山)이라 하였으며 바래란 나무로 만든 승려들의 밥그릇인 바리란 뜻으로 봉우리의 모습이 스님의 밥그릇인 바리때를 엎어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덕두봉으로 향하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바래봉에서 30분이면 일광산이라고도 부르는 덕두봉(德斗峰)에 닿는다. 산아래 마을이 잘 조망된다.
흥부골자연휴양림으로 내려서는 길을 버리고 태극종주꾼들의 표지기가 주렁주렁 매달린 인월방향으로 내려선다. 계곡을 건너고 진주강씨인월종친 재실을 지나 마을길로 내려서면 태극종주의 종착점을 상징하는 구인월경로당(마을회관)에 펄럭이는 태극기가 보인다.
1380년 인월리 황산(607m)에서 이성계 장군이 왜장 아지발도(阿只拔都)를 물리치기 위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믐날 밤이라 주변이 너무 어두워 적을 분간하기조차 어려워지자 적을 제대로 공략할 수 없었다. 이성계는 하늘을 우러러 “이 나라 백성을 굽어살피시어 달을 뜨게 해 주소서”하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거짓말같이 칠흑 같은 하늘에 어디서 솟아올랐는지 보름달이 떠 환히 길을 밝혀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이성계가 달을 끌어 올렸다고 해서 인월(引月)이라는 지명이 유래된 것이라고 전한다.
17시 30분. 9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영원사 수돗가에서 등산화에 흙먼지를 털어 내고 발을 씻고 난 후 비구니 스님이 먹어도 좋다고 허락한 토마토 하나를 집어든다. 비록 벌레 먹은 토마토지만 꿀맛이다.
1시간 정도 지나서 후미가 도착하고 슈퍼에서 산 시원한 맥주로 간단한 산행 뒤풀이를 하고 대전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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