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 2006년 6월 25일
- 비 그친 새벽산에서 -
비 그친 새벽산에서
나는 아직도 그리운 사람이 있고
산은 또 저만치서 등성이를 웅크린 채
창 꽂힌 짐승처럼 더운 김을 뿜는다
이제는 그대를 잊으려 하지도 않으리
산을 내려오면
산은 하늘에 두고 온 섬이었다
날기 위해 절벽으로 달려가는 새처럼
내 희망의 한 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황지우 님 <1994 제8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사상사
자정이 넘어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 둘 버스에 오른다.
토막잠이 든 사이 버스는 전조등으로 어둠을 밀어내며 대진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달린다.
3시 50분 성삼재 도착.
천은사를 기점으로 구절양장처럼 굽이치며 노고단까지 이어진 20㎞의 비경의 관광도로 그 옛날 성이 다른 3명의 장군이 지켰던 고개라 하여 성삼재(1,102m)라 했다. 아슬아슬한 도로와 까마득한 벼랑 위로 길이 나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 백미다.
4시 10분 성삼재 출발.
나선생님이 준비한 김밥과 찰밥을 한 개씩 배낭에 챙겨 넣고 간단한 준비 운동과 완주를 위한 파이팅 구호를 외친 후 힘찬 발걸음을 옮긴다. 이른 새벽 시간임에도 매표소에는 관리공단 직원이 근무중이다.
4시 45분 노고단대피소 도착.
노고단대피소 우측으로 난 계단 길을 오르면서부터 천왕봉까지 25.5km 주능선 등정은 시작된다.
5시 정각 노고단 도착.
노고단은 천왕봉, 반야봉과 더불어 지리산 3대 주봉 중에 하나로 해발 1,507 m이다. 노고단 정상은 길상봉이라 불리며 정상에서부터 서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30만평의 넓은 고원이 있다.
신라시대 때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셔 매년 봄, 가을 제사를 올렸던 곳이다. 이런 연유로 해서 선도성모의 높임말인 노고와 제사를 올리던 신단이 있었던 곳이라는 뜻으로 '노고단'이라 부르게 되었다.
돼지평전을 지난다.
'돼지평전'이란 어원은 마늘모양의 원추리 뿌리를 멧돼지들이 종종 파먹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 돼지평전을 지나면 진달래 군락이 다시 한 차례 나타나다가 싱그러운 초원지대인 잘록한 능선안부를 지난다.
5시 40분 피아골로 빠지는 피아골삼거리 통과.
피아골은 옛날부터 이곳에서 고대 오곡중 하나인 피를 많이 가꾸었던 연고로 자연히 피밭골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점차 발음이 피아골로 전환된 것이라 하며 지금도 피아골 입구에 직전(稷田)이란 마을이 있어 이 유래를 실증하고 있다. 임진왜란, 조선말 격동기, 여순반란사건, 6·25 등 나라가 어지러울 때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5시 45분 임걸령샘터 도착.
임걸령은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8km거리 능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1,320m의 높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노고단의 능선이 동남풍을 가려주어 산 속 깊이 자리한 아늑하고 조용한 천혜의 요지이며 샘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물이 솟고 물 맛 또한 좋기로 유명하다. 목을 축이고 수통에 가득 채운다.
이곳은 옛날에 의적이나 도적들의 은거지였던 곳으로 유명하며 특히 의적 임걸(林傑)의 본거지였다 하여 임걸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주능선 등반구간 중에서 노고단에서 임걸령까지 4km가 가장 편한 코스에 속하는데 옛날 화랑들이 말을 타고 달려 화살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는 과장된 전설이 있을 만큼 순탄한 편이다.
임걸령에서는 다소 경사 급한 오르막길을 올라야 하는데 얼마 안 가 다시 평지 능선길이 펼쳐진다. 산죽과 단풍나무, 잣나무, 구상나무 등이 울밀한 숲을 가다보면 노루목이 나온다.
6시 15분 노루목 통과.
노루들이 지나다니던 길목이란 의미도 되지만 그보다는 반야봉의 지세가 피아골 방향으로 가파르게 흘러내리다 이곳에서 잠시 멈춰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암두(岩頭)를 이루고 있어서 노루목이라 부른다고 한다. 노루목은 왼쪽으로 반야봉을 오르는 길과 오른쪽으로 반야봉 남쪽사면을 횡단하는 갈림길이다. 10분 정도 지나면 왼쪽으로 출입금지 표지판이 보이는데 묘향대에서 오르는 길이다.
6시 30분 삼도봉(三道峯)에 도착.
삼도의 경계를 이루는 암봉, 삼도봉은 일명 날라리봉으로 부르기도 한다. 지리산의 많은 봉우리 이름 중에서 가장 천박한 느낌을 주는 유일한 명칭인데 연유는 이렇다. 삼도봉의 바위 모양이 낫날 같다 하여 '낫날봉'이라 하던 것이 와전되어 '날라리봉'으로 되었다고 하고, 달리 삼도봉 주위의 봉우리가 나란히 배열되어 있어 처음 명명할 때 '나란이봉'이던 것이 '닐리리봉', '날라리봉'으로 변했다는 얘기도 있다. 노고단에서 5.5km
5분 정도 지나면 550여 개의 나무계단이다. 2년 전 천왕봉에서 성삼재까지 종주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지금은 여유 있게 천천히 내려선다.
6시 50분 계단을 다 내려서면 화개재 도착.
화개재는 화개장터의 해산물과 소금을 마천 지역의 내륙 특산물과 교환하던 곳이라고 한다. 화개재에서 남쪽계곡(칠불사계곡, 연동골)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뱀사골산장으로 물품을 나르는 길로 이용되고 있다. 북쪽(왼쪽) 뱀사골계곡 쪽으로 200m 내려가면 뱀사골산장과 함께 샘터가 나온다.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지리산은 우리 민족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커다란 나무 한 그루마다 골짜기마다 이름없는 산봉우리마다 전설이 숨어 있다.
신라시대 지리산 아래에는 유명한 사찰이 있었고 그 사찰의 고승들이 겨울에는 그 뱀사골 계곡 꼭대기에 있는 (그 당시에는 뱀사골이란 이름이 없었겠지만….) 암자에 올라가 수행(동안거)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다음해 봄이 되면 내려 와야 할 고승들이 내려오질 않는 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 두 해가 아니고 매년….
그렇게 같은 일이 벌어지자 그 사찰에선 봄에 그 산꼭대기(아마 지금의 뱀사골)를 올라가 보았고 수행을 하러 올라온 고승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어느 해 겨울.
또 다시 겨울 수행을 위해 올라가는 어느 고승이 있었다.
주지 스님은 그 스님 모르게 스님 옷에 독약을 발랐고, 다음해 봄에 수행을 위해 올라갔던 고승의 안녕을 확인하기 위해 산꼭대기에 올라갔던 스님들은 기겁을 하였단다. 커다란 뱀 한 마리가 죽어 있더라는 것이다.
해마다 사라진 고승들은 결국 뱀한테 잡혀 먹힌 것이었고 스님의 옷에 독약을 바른 줄 모르고 그 스님을 잡아먹었던 그 커다란 뱀은 결국 독약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뱀이 죽어 있는 골짜기 즉 뱀사골로 불려 졌다는 전설이 전한다.
그러나 뱀사골계곡 입구에 있는 석실 건너편에 배암사(背岩寺)란 절이 있었는데 배암사골이란 이름이 변해 뱀사골로 됐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배암사 역시 정유재란 당시 소실돼 버리고 지금은 이름만이 전해온다.
다시 길을 잇는다. 화개재에서 토끼봉으로 오르는 길은 점차 경사를 더해 가는 힘들고 지루한 길이다. 빗줄기가 굵어진다. 배낭 커버를 씌우고 우의를 입는다.
7시 20분 토끼봉 도착.
토끼봉이란 명칭은 주변에 토끼가 많다거나 봉우리가 토끼 모양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되는 묘방(卯方)이라 해서 토끼봉(卯峯)으로 부르는 것이다.
미끄러운 바위벼랑을 오르면 차츰 완만해지다가 명선봉 부근의 울창한 침엽수림 지대를 지나면 내리막 흙길로 변하고 연하천산장에 이른다.
8시 25분 연하천대피소 도착.
해발 1,480m에 위치한 연하천은 명선봉의 북쪽 중간에 위치한 높은 고산지대인지라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마치 구름 속에서 흐르고 있는 것 같다하여 연하천('오묘한 대자연(烟霞) 속의 정취 어린 샘(泉)'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조그만 대피소는 비를 피해 아침 식사를 하는 산행객들로 북새통이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아침식사를 한다. 25분 소요
연하천부터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된다.
9시 40분 형제봉 통과.
길목 왼쪽 능선 위에 높이 10m가 넘는 두 개의 바위가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이 입석바위를 형제바위라고 한다. 언듯 보기에는 한 개의 큰 석상으로 보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두 개의 석상이다.
이 석상에 얽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지리산에서 두 형제가 수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들에 반한 지리산 요정이 두 형제를 유혹하였으나 형제는 유혹을 물리치고 득도하였다. 그러나 성불한 후에도 집요한 지리산 요정의 유혹을 경계해 형제가 서로 등을 맞대고 너무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서 있었기 때문에 그만 몸이 굳어 그대로 두 개의 석불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 바위 옆으로 조금 내려가면 자그마한 동굴이 자리잡고 있는데 '연하굴'이다.
10시 정각 벽소령대피소 도착.
종주 등반 코스 중간지점에 해당되는 곳으로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 하여 옛부터 이곳을 벽소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벽소령의 달은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운무로 인해 사방으로 시야가 갇혀 어머니 품 같은 지리의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없어 걷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다. 아쉽지만 종주는 가을로 미루고 하산하기로 결정한다.
중요한 것은 네가 무엇을 향해 가느냐 하는 것이지, 어디에 도착하느냐가 아니다.
인간은 죽음이외의 그 어떤 곳에도 도착하지 않는다.
-생텍쥐베리의<사막의 도시>중에서-
10시 30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음정)로 하산 시작.
벽소령(일명 뱁실령)은 화개면과 마천면을 잇는 작전도로가 지나는 곳이다. 대피소에서 왼쪽 삼정리로 10분 정도 내려오면 작전도로를 만난다.
이 작전도로는 화개면 신흥에서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까지 연장 38㎞의 비포장도로이다. 왼쪽으로 이어지는 작전도로를 버리고 오른쪽 출입금지 표지판을 넘어 1시간 정도 낙엽 쌓여 양탄자처럼 푹신하고 부드러운 산길을 따라 내려서면 자연휴양림 포장도로와 만난다.
바로 앞 출렁다리 중앙에 서면 멋진 폭포가 장쾌한 물줄기를 뿜어내며 장관이다.
자연휴양림 매표소를 나오면 오른쪽 비린내골에 비린내폭포가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멋지게 지은 콘도형 민박[자연소리 011-408-2311]도 눈에 띤다. 뒤돌아보면 서서히 운무가 거치는 지리산이 신록과 함께 멋진 모습으로 배웅한다. 다시 오라고...
그토록 유장하고 아름다운 지리산 아흔아홉골 모두 우리 윗세대들의 피눈물이 흩뿌려지 않은 곳이 없음을 알게 되면 지리산을 찾는 발걸음이 한결 경건해질 것이다.
지리산은 막강하지만 사악한 현실논리 앞에 무릎 꿇을 수 없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말없이 보듬어 안는 산이다.
그곳은 영원한 반란의 고향이다. -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에서-
지리산 일성콘도에서 따끈한 목욕으로 우중산행의 지친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고 지리산 토종 흑돼지 삼겹살로 허기진 배를 채운 이번 산행은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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