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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16. 장군봉-갑사

2006년 9월 28일(목) 오후

산행코스 : 장군봉-삼불봉-금잔디고개-갑사

 

계룡산 박정자에서 장군봉, 신선봉을 거쳐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산행객이 많지 않아 조용하고 호젓하여 혼자서 가끔 찾는 산길이다.

 

대전과 충남 공주시의 경계를 벗어나 삽재를 넘어서면 장군봉이 가장 먼저 그 위용을 드러낸다. 박정자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백제시대' 라는 간판을 단 식당 앞 공터에 차를 주차한다.
 
박정자는 인근 밀양박씨들의 집성촌인 학봉리에 사는 밀양 박씨들이 오래 전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장군봉 아랫도리를 적시고 흐르는 용수천 둑을 따라 걷는다. 장군봉을 배경으로 피어난 코스모스에서 가을이 물씬 풍기고 가을 햇살을 안고 환하게 벌어진 도라지꽃이 반긴다. 봉우리 이름은 장군봉인데 골짜기 이름은 병사골이다.

장군봉코스는 산꾼들의 발길이 덜 밟힌 덕분에 깨끗하고 조용하다. 가볍게 메고 산행에 나선 덕에 발걸음은 가볍다. 낙엽 쌓인 오솔길을 따라 오른다. 발 밑에서 푹신한 감촉이 전해져 온다. 그래도 가파른 오르막길은 숨이 차다. 숨을 고르며 뒤돌아 본 삽재의 모습은 개발이라는 이름아래 자연이 훼손되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다.

박정자를 출발한 지 50분만에 장군봉 정상(해발 500m)에 도착한다. 동학사로 들어가는 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가쁜 호흡을 가다듬은 뒤 만나는 풍경들은 한결같이 아늑하고 정겹다. 남쪽의 황적봉(664m)에서 쌀개봉(828m)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신선봉이 시야에 들어오고 산 아래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장군봉은 사방팔방으로 뻗은 계룡산 산줄기를 몽땅 끌어안고 있다.

 

조망 안내판을 보면서  봉우리들을 하나하나 짚어본다.

 

장군봉(將軍峰) : 산이 장군처럼 위엄이 있다하여 장군봉이라 부른다.

빈계산(牝鷄山) : 암탉이 알을 품은 형국이라 하여 빈계산이라 부른다.

금수봉(錦繡峰) : 산이 수놓은 듯 아름답다 하여 금수봉이라 부른다.

백운봉(白雲峰) : 항상 산에 흰 구름이 끼어있다 하여 백운봉이라 부른다.

황적봉(黃積峰) : 봉우리 형상이 노적가리 같다하여 황적봉이라 부른다.

천황봉(天皇峰) : 계룡산의 최고봉 원래는 상제봉이었으나 백제때에 상봉으로 불리다가 현재 천황봉으로 불린다.

쌀개봉 : 디딜방아의 받침대를 쌀개라 하는데, 산의 형상이 쌀개를 닮았다하여 쌀개봉이라 부른다.

관음봉(灌音峰) : 산의 모습이 후덕하고 자비로운 관세음 보살님 같다하여 관음봉이라 부른다.

삼불봉(三佛峰) : 부처님 세 분이 천황봉을 향해 반원을 그리듯이 서 있다하여 삼불봉이라 부른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잰걸음으로 서쪽 능선을 따른다. 장군봉에서 신선봉까지 산행 코스는 호젓한 암릉길을 밟으며 계룡산의 동쪽면 전체를 한 눈에 전망할 수 있는 멋진 코스다. 대개 능선길이 그러하듯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되지만 그렇게 지겹지는 않다.

 

10분만에 묘 하나 외롭게 자리한 봉우리 정상이다. 산아래 학봉 마을에서 올려다보면 장군봉과 어깨를 맞대고 있는 이 쌍둥이 봉우리의 이름은 임금봉. 임금봉은 서쪽 어깨에 작은 암봉을 거느리고 있는데, 옛날 임금님이 이 바위에서 낚시를 했다고 전한다. 작은 암봉은 옥새를 상징하는 듯하다.

 

산아래 마을들은 폭 파묻혀 있어 더없이 평화스러워 보인다. 굿을 하는지 징소리가 조용한 숲 속에 울려 퍼진다.

능선길의 조망은 어디나 훌륭하다. 황적봉 능선과 쌀개봉 능선이 한 눈에 조망된다. 장군봉에서 신선봉까지는 쉬운 길이 아니다. 가끔 가파른 바윗길이다. 다소 까다로운 구간에는 밧줄이 설치되어있다. 참고로 능선에서는 물을 구할 수 없으므로 식수를 충분히 준비해야한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마주치는 등산객도 없다. 오른쪽으로 황금 들판과 어우러진 상신마을이 내려다보인다. 계룡산 4대 사찰의 하나인 구룡사가 있던 상신 마을은 입구에 솟대와 장승이 서있을 정도로 전통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있고, 인근에는 젊은 도예가들이 집단으로 모여들어 서로 따뜻한 체온을 나누며 도자기를 굽는 도예촌도 있다.

 

장군봉을 떠난 지 40분. 갓바위삼거리에 도착한다. 왼쪽으로 지석골 하산로가 있다. 신선봉으로 향한다.

신선봉에서 내려서면 '동학사 주차장 2.7km, 남매탑 0.6km' 팻말이 서있는 큰배재에 도착한다. 여기서 왼쪽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천정골을 거쳐 동학사주차장에 닿게된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돌계단을 오르면 남매탑고개에 닿는다.

통나무 울타리를 넘어서 산허리를 왼쪽으로 감아 돌다 길게 늘어뜨려진 밧줄을 잡고 오르면 취음선생의 묘가 있다. 이곳에서 남매탑의 조망이 가장 좋다.

절벽 암반에 서자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순식간에 씻어준다. 한 줄기 바람에도 마음의 파도가 크게 출렁인다.

울퉁불퉁한 근육처럼 튀어나온 바위 틈새마다 어떻게 나무들이 자리잡았는지 신기할 정도다. 삼불봉고개에서 철계단을 타고 삼불봉을 오른다.

삼불봉(해발 775m)은 천황봉이나 동학사에서 멀리 올려다보면 마치 세 부처의 모습을 닮았다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자연성릉 끝에 관음봉이 우뚝 솟구쳐 있고, 이어 쌀개봉 암릉과 천왕봉이 거칠게 뻗어 나간다. 관음봉 오른쪽으로 문필봉에서 연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쌀개봉 능선에 뒤질세라 힘차게 솟구치고 있다. 동학사계곡과 갑사계곡도 한눈에 들어와 계룡산의 전모를 볼 수 있다.

가을 바람이 바위에 앉아 쉬는 내 가슴을 열고 들어온다. 지나온 능선을 바라보면서 대자연이 사람에게 주는 말없음의 의미를 바람소리를 통해 듣는다.

 

반대쪽 철계단으로 내려서 삼불봉 고개로 가지 않고 소로를 따라 금잔디고개로 내려간다. 휴일이면 동학사에서 갑사에서 상신리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곳인데 평일 오후 시간이라 아무도 없어 오히려 적막감이 감돈다.

돌계단을 따라 갑사로 내려선다.


햇님은 하루를 마감하려고 그 고운 빛을 창공에 떠다니는 구름을 잡아 붉게 물들이며 능선 뒤로 숨는다. 혼자 산길 전체를 차지하고 맘껏 여유를 부리며 내려간다. 이렇게 혼자 산행을 하면 시간에 쫓기지 않고 행동에 제약이 따르지 않아 여유로운 산행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조선조 말기 문신으로 친일 매국에 앞장섰던 벽수(壁樹) 윤덕영(尹德榮)이 이곳 절경에 취하여 간성장(艮成莊)을 짓고 머물면서 구곡의 이름을 지어 바위에 새겼다고 한다. 이른바 갑사구곡이다.

 

갑사구곡 중 제9곡인 수정봉(水晶峰)아래 자리잡은 신흥암은 대대적인 중창불사가 한창 중이다. 목수들의 망치소리만이 정적을 깬다.

천진보탑과 폭설로 가지가 부러져 안쓰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노송이 대웅전과 어우러져 멋진 그림을 만든다.

 

천진보탑은 인공으로 만든 탑이 아니고, 탑 모양을 한 자연 바위이다. 전설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한 후, 인도의 아육왕(阿育王)이 구시나가라국에 있는 사리탑에서 많은 양의 부처의 사리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를 시방세계에 나누어 줄 때 사천왕 가운데 북방을 담당한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을 계룡산에 보내어 이 천연석탑 안에 사리를 두었는데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이 사리를 발견하고서 천진보탑이라 불렀다고 한다.

 

천진보탑은 그 앞에서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빛을 발하는 방광(放光)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여 유명하다. 이 사실은 6.25 전쟁이 끝난 후 계룡산을 찾은 한 미군 병사가 천진보탑이 방광하는 모습을 최초로 카메라에 담아 세상에 전하므로 써 알려지게 되었다.

제8곡인 용문폭포(龍門瀑布)에 도착한다.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흐르는 영험함 때문에 기우제나 산제의 장소로 많이 쓰인다고 한다. 지금은 가느다란 물줄기로 초라하기 그지없다.

조금 내려서면 길 왼쪽으로 대성암이 보이고 갈림길이다. 왼쪽 연천봉 관음봉 가는 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향한다.

찻집으로 사용중인 윤덕영의 별장이 보인다. 한일합방 당시 순종과 순정황후를 위협하여 옥새를 강탈, 강제 조인케 한 윤덕영에게 공주 갑부 홍원표가 당시 돈 4만원을 들여 지어준 것인데, 갑사로부터 30년 임대 계약을 맺고 갑사 계곡의 암반 위에 건물을 세운 뒤 약사여래입상과 공우탑(功牛塔)을 별장 주위로 옮겨 놓았다.

공우탑은 백제 비류왕 4년 계룡산 갑사에 속한 암자를 건립할 때 자재를 운반하던 소가 군자 냇물을 건너다 기절하여 죽자, 소를 현 위치에 매장하고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해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2층 옥신에는 "우탑(牛塔)", 3층 옥신에는 "공(功)"이 음각 되어 있다.

갑사 절 마당으로 들어서니 절 마당을 등이 가득하고 산사에는 고즈넉함과 평화로움이 넘친다.

갑사는 옛 문헌에 '갑사(甲寺)' 혹은 '계룡갑사(鷄龍甲寺)'로 표기되는데, 갑사라는 말뜻 자체가 '첫째가는 절'이고 보면, 역시 계룡산에서는 가장 크게 지속적으로 번창하였던 절이 갑사였다고 생각된다.

백제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무령왕 3년(503)에 천불전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의 철당간과 고려시대의 부도, 조선시대의 동종 등으로 봐서 오랜 역사와 번창한 사세를 자랑하던 갑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 영규대사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전부 소실되었다.

 

이후 1604년 대웅전과 진해당을 중건하였고 1654년과 1899년 크게 중수하였다. 그러므로 지금의 절 집들은 조선시대 중·후반기에 세워진 것들이다.

 

갑사부도는 보물 제257호. 부도란 승려들의 유골을 안장한 묘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초에 처음 나타난다. 이 부도는 원래 갑사 뒷산 중사자암에 있던 것을 옮겨 온 것이다.

갑사 철 당간 및 지주는 보물 제 256호. 당간 및 지주는 당을 다는 철 깃대와 기둥이다. 당간은 보살의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것을 내쫓는 기능을 가진 당이라는 깃발을 달기 위한 깃대이며, 당간지주는 당간을 좌우에서 지탱하는 버팀 기둥이다.

갑사에서 일주문에 이르는 약 1km 정도 쭉 뻗은 길은 주위에 울창한 거목이 늘어서서 그윽한 숲길을 연출하고 있어 예로부터 5리 숲이라 불러올 정도로 정감 넘치는 길이다.

 

갑사일주문을 나선다. 가을이 깊어간다. '춘(春)마곡 추(秋)갑사'로 불릴 정도로 갑사의 가을 풍광은 알아준다. 잎이 진 감나무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잘 익은 붉은 감들이 더욱 선명하다.

간발의 차이로 주차장을 떠나는 유성행 막차 (18시 10분)버스에 오른다. 차창으로 밀려드는 산바람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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