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06년 10월 2일(월)
산행코스 : 동학사-남매탑-삼불봉-관음봉-연천봉고개-신원사-연애골-등운암-연천봉-연천봉고개-갑사
계룡산에는 동학사와 갑사 그리고 두 절과 함께 유서 깊은 신원사가 삼각구도를 이루며 계룡산의 균형을 잡고있다.
오늘 산행은 혼자 동학사에서 시작하여 신원사를 거쳐 갑사까지 이어가며 계룡산의 사찰을 둘러보는 코스를 택했다.
동학사 가는 길은 호남고속도로 유성 나들목에서 32번 국도를 20분쯤 달리면 박정자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좌회전하여 3분쯤 진행한 다음 동학사삼거리에서 살짝 우회전하면 된다.
선덕왕 23년(724) 상원이 암자를 지었던 곳에 회의가 절을 지어 상원사라 부르기 시작한 데서 시작되었다는 동학사(東鶴寺)는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 동쪽 기슭에 자리잡은 사찰이다. 현재는 비구니 승가대학으로 여승들이 수행 정진하고 있는 사찰로, 예산의 수덕사, 청도의 운문사와 함께 대표적인 비구니 강원(講院)으로 꼽히는 사찰이다.
동학사와 갑사는 워낙 유명하거니와 계룡산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의 들머리가 되는 사찰이다 보니 그 주변은 이름난 관광지가 되었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 관광객이나 등산객은 거의 없고 맑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청아함을 더해주고 있다. 동학사 계곡의 신록은 계룡산의 제 5경으로 일컫는다.
상봉 계곡 사이의 숲 우거진 포장도로를 뚜벅뚜벅 1km정도 걷다보면 계곡에 걸린 세진정에 닿는다. 세진이란 '마음속에 있는 번뇌의 티끌과 온갖 더러움을 맑은 계곡에 씻어 내듯 깨끗이 씻어내고 정갈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향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동학사는 절 자체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국보급 문화재도 없지만 비구니 사찰답게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고려 때 절의를 지킨 야은 길재,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의 위패를 모신 삼은각(三隱閣)과 사육신(단종의 복위(復位)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처형당한 여섯 충신-성삼문·박팽년·유응부·유성원·하위지·이개)을 비롯하여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면서 원통하게 희생된 영혼들을 위로키 위해 초혼제를 지내는 숙모전(肅慕殿)을 둘러본다.
대웅전 아래 음수대에서 식수를 준비한다. 대웅전 앞에서 눈을 높이면 저 멀리 아침 햇살을 받은 천황봉과 쌀개봉이 눈에 들어오고 빙 둘러선 능선들이 아늑한 게 산세에서 느껴지는 심오함 때문에 눈을 쉽게 떼지 못한다.
'산세가 금닭이 알을 품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자 나는 용이 승천하는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이라서 무학대사가 계룡이라 명명했다'는 설도 있고, 주봉인 천황봉에서 쌀개봉, 삼불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흡사 '닭의 벼슬을 쓴 용의 모습" 같다하여 계룡산(鷄龍山)이라 부른다.
등산로는 세진정에서 갈라진다. 오른쪽 길은 남매탑으로 오르는 길이고 왼쪽은 은선폭포를 지나는 길이다. 남매탑쪽으로 방향을 잡고 아무도 없는 돌 박아 잘 정비해 놓은 호젓한 산길을 혼자 전세 내어 천천히 오른다. 남매탑까지 약 40분 정도 소요.
남매탑(男妹塔)은 동학사와 갑사의 중간 지점인 삼불봉 아래, 옛 청량사 터에 세워진 두개의 탑이다. 남매탑의 정식 명칭은 '청량사지 쌍탑'으로 보물 1284호인 5층석탑과 보물 1285호인 7층석탑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통일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기의 탑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탑들이 남매탑으로 불리게 된 연유가 있다. 예전에 상원이라는 승려가 있었는데 어려움에 처한 호랑이를 구해주었다 한다. 그러나 그 호랑이가 고마움에 대한 보답으로 처녀를 업어다 주었는데, 상원스님은 처녀와 남매의 관계를 맺고 수도에 정진해, 이에 감복한 처녀의 아버지가 이를 기려 탑을 세웠다는 전설이다.
남매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떡 한 조각으로 허기를 달래고 삼불봉으로 향한다.
삼불봉은 천왕봉이나 동학사에서 멀리 올려다보면 마치 세 부처님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다.
수치상 최고봉은 천황봉이고, 등산로의 중심은 관음봉이라면, 풍수상의 계룡산 주봉은 삼불봉(三佛峰·775.1m)이라고 풍수가들은 말한다. 계룡산의 모든 기와 혈은 삼불봉에 집중되었기에 계룡산의 심장이 된다고 주장한다.
철계단을 올라 삼불봉 정상에 서면 조망이 일품이다. 관음봉에서 쌀개봉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왼쪽 능선과 문필봉 연천봉으로 이어지는 오른쪽 능선이 장쾌하게 뻗어간다. 계룡산 4대 사찰(동학사, 갑사, 신원사, 구룡사)을 연결한 선이 정확히 다이아몬드형을 이루고, 그 가운데 삼불봉이 위치하는 사실은 자못 신비스럽다.
삼불봉에서 관음봉까지의 자연성릉 구간은 계룡산 산행의 백미중 하나다. 자연성릉은 능선이 마치 자연성곽을 쌓아 놓은 듯 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칼봉처럼 날카로운 봉우리를 암벽 등반하듯 넘어야하는 힘든 구간이 많았으나 지금은 안전한 우회로가 조성되어 있다.
갑사와 신원사의 골짜기와 계곡을 앞뒤로 하여 솟아 오른 해발 816m의 봉우리 관음봉은 산의 모습이 후덕하고 자비로운 관세음보살님 같다하여 관음봉(灌音峰)이라 부른다. 삼불봉에서 관음봉까지 약 50분 소요.
관음봉을 내려서면 갈림길이다. 천황봉으로 향하는 직진 길은 출입이 통제되어 목재 울타리가 가로막고 있고 왼쪽은 은선폭포를 거쳐 동학사로 하산하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평탄하고 부드러운 길을 따라 15분 정도 진행하면 연천봉 고개에 닿는다.
연천봉고개에서 나무계단을 따라 10분 정도 내려가면 도치샘을 지나고 돌계단을 한발한발 내려가면 고왕암에 닿는다. 백제 의자왕의 아들 융이 피신해서 머물렀고, 태조 이성계가 머물렀다 하여 절 이름에 ‘머물 古’자를 썼다고 전한다. 법당 뒤쪽 절벽 아래에는 석간수가 있다.
계속 길을 이어 신원사로 내려가다 보면 모퉁이 길을 한 구비 돌 때마다 금룡암, 보광원, 소림원 등의 암자들이 차례로 딸려 나온다. 절보다는 굿당의 느낌이 든다.
삶이 나를 받아 주지 않을 때
혹은 무덤까지 가지고 갈 요량으로
이 땅의 한 사람과 동행할 때
신원사는 넉넉한 마음으로
참 오랜만에 왔노라고 팔 벌려 껴안듯
반기어 솔바람 소리 풀어내며
가고 오는 신발소리마저 지워주는 것을
늘 그래왔던 것처럼 내 몸의 머리맡에서
풍경이 울고 내 몸 두 다리 사이로
개울물 흘러 인간 세상으로 흘러가는 것을
신원사는 알아
죄 씻고 사랑하는 것을
-서지월 詩...신원사 行-
연천봉고개에서 50분. 맨 먼저 신원사 오층석탑이 나그네를 반긴다. 현재는 4층 지붕돌까지만 남아 있으나 원래는 2층 기단(基壇)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5층석탑은 신원사 대웅전에서 남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데, 원래는 탑이 서있는 곳이 신원사의 중심이었다고 한다.
신원사는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고구려 보덕화상(普德和尙)이 연개소문의 도교 장려로 인한 불교 박해를 피하기 위해 백제에 들어와 창건한 후 조선 초 무학대사가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신원(神院)'이란 이름에서도 살짝 드러나듯 계룡신사(鷄龍神祠) 중악단(中嶽壇)이 위치한 성스러운 제사처이기도 하다.
보물 제1293호 중악단은 태조 3년(1394)에 창건한 신원사의 산신각이다. 제단의 명칭은 계룡단이라고 하였으나 고종 때 묘향산의 상악단과 지리산의 하악단과 더불어 삼악으로 숭배하면서 매년 춘추로 계룡산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왔는데 지금의 중악단은 고종 16년에 중수된 것이다. 고려 말 이성계는 전국의 오악을 다니며 산신 기도를 했는데 모두 소실되었고 이 제단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중악단에서는 지금도 옛 전통을 이어 일 년에 한 차례씩 국가와 백성의 무사안위를 기원하는 산신제를 올리고 있다.
중악단과 담 하나를 사이로 넓게 펼쳐진 대웅전이 보인다. 잔디를 깔아놓아 조경이 산뜻하고 1탑 1금당의 원칙에 충실하며 주변의 나무들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 정갈한 가람의 느낌 그대로이다.
사천왕문을 나와 나무 그늘에 앉아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산길을 오른다. 내려오던 길을 버리고 소림원 옆 입산통제 안내판을 넘어 연애골을 치고 오른다. 길은 뚜렷하다.
20여분 치고 오르면 능선에 붙는다. 눈 아래 저멀리 상월 들판과 계룡지, 경천지가 펼쳐진다.
중턱에서 오른쪽으로 시야를 돌리면 하늘을 가르며 서있는 주봉 천황봉과 쌀개능선의 모습이 늠름하다. 다만 거대한 통신시설물을 이고 있는 봉우리의 모습이 안쓰럽다.
소림원에서 등운암까지 약 1시간 소요. 계룡산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산봉우리 중에서도 가장 영험하다는 연천봉 바로 아래 있는 등운암은 신라 문무왕 5년(665)에 등운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절로 양철 지붕의 초라한 모습에서 최근 중창불사로 멋진 모습으로 새롭게 변모하였다.
등운암 울타리를 왼쪽으로 돌아 연천봉으로 오른다. 신원사의 골짜기와 계곡을 끼고 계룡산의 봉우리 중 처녀의 가슴처럼 아름답고 풍만하게 봉긋 솟은 해발 738.7m의 연천봉은 낙조가 가장 아름답다. 정상에 오르자 오른쪽으로 뻗은 쌀개봉과 천왕봉, 왼쪽으로 뻗은 관음봉, 삼불봉 능선이 용트림한다.
연천봉고개로 내려와 왼쪽 갑사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20여분 내려서면 원효대 이정표가 눈에 띠고 규모가 꽤 큰 암자 대자암에 들린다.
0.7km를 내려서면 금잔디고개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에 자연석굴 안에 약사여래입상이 모셔져 있다. 원래 갑사 뒷산 사자암(獅子庵)에 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머리는 육계(肉界)가 크며, 백호(白毫)가 뚜렷하고 얼굴은 좀 길며 눈은 가늘고 입은 다물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
법의(法衣)는 양어깨에 걸쳐 좌우로 무릎 부분까지 늘어졌고, 가슴 앞 옷은 반원형으로 흘러내렸다. 오른손은 들어 가슴 부분에서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에는 약합(藥盒)을 들어 약사여래임을 보여준다. 오른쪽에 갑사구곡 중 제 6곡 명월담이 있다.
참고로 벽수(壁樹) 윤덕영(尹德榮·1873-?)이 갑사계곡의 절경에 취해 간성장(艮城莊)을 짓고 머물면서 이름지었다는 갑사구곡(甲寺九曲)은 갑사에서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계곡의 절경지로, 제1곡부터 제9곡까지 이름이 큰 바위에 새겨져 있다.
제1곡은 용유소(龍遊沼)로 갑사매표소 못미처 용추교 아래 위치해 있고
제2곡인 이일천(二一川)은 제1곡에서 계곡 위로 200보쯤 오르다 만나는 합수지점이다.
제3곡 백룡강(白龍岡)은 제2곡에서 200보 정도 위 위치한 계류와 바위 그리고 숲이 우거져 좋은 곳이다.
제4곡은 달문택(達門澤)으로 제3곡에서 120보 정도 떨어진 연못이며
제5곡 군자대(君子臺). 갑사구곡 중 최고의 절승지로 꼽힌다.
제6곡은 제5곡에서 100여보 위에 위치한 명월담(明月潭)이며
제7곡 계명암(鷄鳴巖)은 제6곡에서 오른쪽 산 속으로 500보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제8곡은 용문폭(龍門瀑)인데 갑사에서 정상쪽으로600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폭포이고
제9곡 수정봉(水晶峰)은 신흥암 산 위쪽으로 한 덩어리로 이루어진 듯한 큰 바위를 일컫는다.
약사여래 건너편에 전통찻집으로 사용되는 건물은 조선 말기 세도가인 윤덕영의 별장이었다. 한일합방 당시 순종과 순정황후를 위협하여 옥새를 강탈, 강제 조인케 한 윤덕영에게 공주 갑부 홍원표가 당시 돈 4만원을 들여 지어준 것인데, 갑사로부터 30년 임대 계약을 맺고 갑사 계곡의 암반 위에 건물을 세운 뒤 약사여래입상과 공우탑(功牛塔)을 별장 주위로 옮겨 놓았다.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인 북서쪽의 갑사(甲寺)는 으뜸가는 사찰이라는 뜻이다. 백제 구이신왕원년(420년)에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였으며, 풍부한 불교문화의 본산이 되어왔던 계룡산의 여러 사찰 중에서도 가장 풍부한 문화유적을 간직한 천년고찰이다.
경내에 첫발을 들여놓으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처마 밑에 '鷄龍甲寺'라는 현판이 달려 있는 갑사 강당이다.
경내에서 왼쪽으로 조금 언덕진 곳에 자리잡은 표충원(表忠院)은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이었던 휴정·유정·영규대사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대웅전 양쪽으로 응향각과 삼성각이 있고, 해탈문 바로 옆에 종각이 있다.
갑사에서 그냥 지나치기 쉬워 꼭 챙겨야될 답사거리가 하나 있는데 바로 보물 478호 갑사동종이다. 갑사 동종(銅鐘) 명문에 보면, 선조 16년(1583) 여진족 침입으로 하삼도(전라, 충청, 경상) 사찰의 철기를 거두어 병기와 화포를 만드니 갑사 동종도 징발되어서 주상을 축수하는 대사찰에 종이 없어 모두 탄식하자 이듬해(1584) 다시 주조했다는 명문이 자세하게 기록되어있다.
갑사 경내를 둘러보고 난 다음 개울을 건너 대적전으로 향한다. 이곳이야말로 갑사라는 절 집이 숨긴 보석 같은 곳이다. 대적전 안에는 문수보살·보현보살을 협시로 한 석가여래가 봉안되어 있다. 대적전 앞에는 보물 제 257호 갑사부도가 있다. 부도의 기단을 들여다보면 잠자는 사자, 으르렁거리며 포효하는 사자의 모습 등 여러 가지 사자상들이 보인다.
부도 옆 시누대 숲 사이로 터널같이 열린 길을 내려가면 또 하나의 보물을 만난다. 바로 보물 제256호 갑사 철당간이다. 옛날에는 절마다 당간(幢竿: 절에서 법회나 큰 행사가 있을 때 행사는 알리는 깃발인 번과 당을 달던 기둥)을 마련하여 법회가 있는 날 번(幡)이나 당(幢)을 휘날렸다.
온전한 모습을 갖춘 갑사 당간은 지름 50cm 정도 무쇠 통을 이어 만든 철당간으로 천년 이상을 제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종 30년(1893) 벼락으로 당간 상륜부 4칸이 떨어져 나가 지금은 24칸의 철당간이 남아 있다.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현존하는 사찰 당간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비록 4칸이 떨어져 나갔지만 15m 높이의 당간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높다.
산사를 내려오는 길섶에 검소하고 올망졸망한 부도 20여기가 모여 부도밭을 이루고 있다. 부도는 생전의 스님 모습처럼 제각각 얼굴 모습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다.
갑사일주문을 나선다. 갑사에서 일주문에 이르는 약 1km 정도 쭉 뻗은 길은 주위에 울창한 거목이 늘어서서 그윽한 숲길을 연출하고 있어 예로부터 5리 숲이라 불러올 정도로 정감 넘치는 길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춘(春)마곡 추(秋)갑사'로 불릴 정도로 갑사의 가을 풍광은 알아준다. 잎이 진 감나무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잘 익은 붉은 감들이 지난주보다 더욱 선명하다.
주. 갑사 사진은 지난주 산행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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